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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선] 우리에게 끝은 없다 0 6 | 인스티즈






그는…









 침대에 앉아 창 바깥을 내다보는데, 어느 순간 내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후 네시였다. 권태가 그만 슬픔으로 변해버리는 시간, 모든 것이 무상하고 남루해지는 이유 없는 슬픔이 몰려들었다. 허공중의 빛이 돌아서는 듯 산그림자가 바뀌고 있었다. 나는 수첩을 폈다. 수첩 속의 이름들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다가 혜윤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



 혜윤의 음성 속에 낯선 떨림이 느껴졌다. 한 옥타브쯤 높고 잔뜩 긴장되고 건조했다. 어쩌면 와이셔츠 열다섯 장쯤 다린 여자의 음성 같기도 했다. 그런 열기와 한 가지 일에 집중한 사람의 피로가 느껴졌다.



“ 혜윤아 나야. ”

‘ …너, 어떻게 된거야? 거기 어디야? ’



 혜윤은 나를 확인하자마자 화를 내며 다그쳤다.



‘ 사람이 밑도끝도없이 그렇게 증발해버리는 경우가 어딨어? ’

“ 여기 시골이야 ”

‘ 어디 시골? 시골엔 왜? ’

“ 그냥, 여기서 사는 거야. 나도 여기거 어딘지 아직 잘 모르겠어. 근처에 바다가 있는 산골 마을이야. ”



 김주영의 사무실을 정리하게 되었다는 데까지는 알고 있었던 혜윤은 대강 짐작을 하는 것 같았다.



‘ 주영씨는? ’

“ 시내에서 서점을 시작했어. 대학 앞이야. ”

‘ 잘되고? ’

“ 시작이니까 밤낮없이 매달리고 있어 ”

‘ 지내긴 어때? ’

“ 좋아 ”

‘ 하긴 넌 어차피 돌아다니는 타입이 아니니까 거기가 어디든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 정말 좋은가 봐, 목소리도 맑고 밝네. ’



 피아노 학원까지 운영했던 혜윤은 결혼한 뒤론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피아노는 전혀 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가 자라 유치원을 다니자 평생교유원과 문화 센터를 다니며 온갖 취미 교실을 섭렵하고 영어와 철학, 명상과 단소, 컴퓨터를 차례로 배웠다. 그렇게 나다니는 이유는 혼자 집에서 점심 먹기 싫어서인데, 자칫하면 남편에 비해 너무 똑똑해져서 수준 차이 나 못 살게 될 거 같다고 농담을 했다.



“ 너 이거 들어봐 ”



 수화기를 음악이 흐르는 스피커에다 대주었다.



‘ 주 트 뵈… 맞네 ’

“ 내 결혼식… ”

‘ 그래, 내가 축하 연주를 했었잖아. 근데 너무 새삼스럽다. ’

“ 최근에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어 ”



 혜윤은 숨만 내쉴 뿐 말이 없었다.



“ 최근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사람 차에서 이 노래가 나오더라 ”

‘ 너, 연애해? ’



 혜윤의 음성이 다시 한 옥타브 높아지고 건조해졌는데, 그 건조함이란 것이 불에 달군 듯이 뜨겁게 느껴졌다.



“ 나 있잖아 ”



 혜윤은 호흡을 고르느라 말을 멈추었다. 까칠까칠하고 따갑도록 건조한 숨소리.



“ 나 누구 만나는 사람 있어. 너무 혼란스러워, 모든게 제 자리를 이탈해 버렸어. ”

‘ 그 사람 전화 기다리는 중이었구나. ’

“ … 옳지 않다 해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아직 너무 젊다는 걸 느껴. ”

‘ …… ’

“ …그곳은 어때? 그렇지 않아도 도영이하고 네 이야기 했어. ”

‘ 언제 도영이랑 한번 와. ’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혜윤과 통화를 끝냈다. 사랑은 교훈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는 거다. 어느 시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서른살이 넘으니 세상이 재상영관 같다고. 단 하나의 영화를 보고, 보고, 또 보는 것만 같다고. 대체 우리는 어떻게 성숙해야 하는 것일까… 선은 텅 비고 추상적이기만 하고, 일상은 자고 먹고 섹스하고 사냥하는 욕망의 습관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니.






 장마가 시작되었다. 한결같은 빗줄기가 손님이 들지 않는 때묻은 중국집의 긴 주렴처럼 지겹도록 내렸다. 한결같은 소리로 한결같은 굵기로, 한결같은 속도로. 가끔은 거센 바람이 불고 한낮이 밤처럼 캄캄해지며 천둥과 번개가 지둥을 쪼듯이 무섭게 내려치는 날도 있었다. 하늘이 뽑혀나온 고목의 흰 뿌리처럼 새하얗게 갈라지고 어디선가 내달려온 휘파람 소리가 소용돌이 치며 집을 휘감았다. 번개가 떨어질 때면 집 안에서 젖은 종이에 불을 붙여 연기를 피웠다.


 우기 동안 나는 차를 몰고 많이 돌아다녔다. 비가 오면 관절이 더욱 아픈 늙은이들만 남아서 사는 울적한 산촌과 탈의장의 튜브 대여점, 민박집 따위가 비를 맞고 있는 텅 빈 해수욕장 마을과 종업원들과 개들이 함께 낮잠에 빠져버린 바닷가의 횟집 거리나 포장도 되자 않아 누런 흙물이 흘러내리는 좁고 경사가 심한 산림로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보곤 했다. 차안에 주 트 뵈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 혹은 샤콘느나 아란후에스 협주곡이 흐르고 차창엔 누가 매달려서 우는 듯이 끊임없이 빗물이 흘러내렸다.


 김창수와는 두 번 마주친적이 있었다. 한 번은 계곡길에서 서로 비켜갈 때 그가 클락션을 울렸다. 내가 주춤대며 속도를 늦추자 그는 급히 차를 세우더니 차창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빗줄기가 거세게 내려쳐서 금세 얼굴이 빗물에 젖었다. 그는 빗물에 젖은 앞머리를 이마 위로 걷어올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언가를 묻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이내 서로 비켜 지나갔지만 그 짧은 순간에 반듯하고 흰 이마와비에 젖은 검은 머리가 목덜미에 착 달라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그 모습이 눈앞을 가로막아 내 몸에 미열이 떠다녔다.






 아침에 김주영과 후가 떠난 뒤, 커피를 봅아 현관 앞 테라스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숲에는 비가 오는데도 새들이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튀어오르며 서글프게 울고 무덤가의 홍화밭엔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가 파란 우의를 입고 풀을 매고 있었다. 오렌지색 가장자리에 붉은 물을 들인 듯한 작고 단단한 홍화꽃이 드문드문 개화하기 시작했다. 초경을 맞는 소녀들의 작은 가슴을 연상시키는 꽃. 그 넓은 홍화밭에 홍화꽃이 다 피면 어쩐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긴 푸른 옥수수 잎들과 비를 맞으며 조금씩 흔들리는 숲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아랫집 여자 애선이 한 손엔 접시와 비닐 봉지를 들고 한 손으론 우산을 받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애선은 곧장 우리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석분을 마구 밟으며 휘적휘적 걸어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커트한 파마 머리. 시장에서 사 입은 꽃무늬 면바지. 엉덩이를 푹 덮는 줄무늬 반소매 셔츠에 플라스틱 슬리퍼 차림이였다. 애선은 대문 앞과 테라스 가장자리에 다시 넝쿨을 뻗고 올라오기 시작한 나랑꽃을 보며 중얼거렸다.



“ 비가 오니까, 할 일이 없네… ”



 나는 애선을 테라스 의자에 앉히고 커피를 한 잔 더 뽑았다. 애선은 이런 커피를 맛이 없다고 투덜댔다.



“ 맨날 집 안에서 뭐해요? 어디 꼼짝하는 걸 못 봤어. 마을 사람들이 후 엄마 병자인 줄로 알아. 처음엔 아래윗집을 헷갈려가지고 윗 집에 들어온 우체국장 여자라고 소문이 났다가 중간집에 이사온 사람인 줄 알고부터는 병에 걸려 요양온 거라고 수군거려요. 햇빛이라곤 안 봐 얼굴이 새하야니까 더 그러지. 여기서 살려면 마을 사람들하고 무던하게 지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동네에 온갖 말이 다 도니까. ”



 애선은 표면적으로 부지런하고 선량하고 수다스러운 건강한 여자였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악의가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험함할 때 유난히 생기가 돌았다. 애선은 늘 그렇듯이 어느 집 남자는 알코올 중독자고, 어느 집 남자는 바람이 나서 이 년이나 떠돌다가 돌아왔고 어느 집은 아내가 자살을 했고, 어느 집은 집 팔고 전답 팔아 도시로 나갔다가 사업에 실패해서 여자와 아이들만 돌아왔다는 등. 끝도 없을 것처럼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때 김창수의 차가 언덕길을 지나 올라갔다.



“ 저 윗집 남자는 어떤 사람이에요? ”

“ 음, 우체국장님… 생긴 거 봐요. 여자 꽤나 많게 생겼지. 세련되고 키크고 게다가 잘생겼으니까. 근데 과묵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말이 없어. 좀처럼 알고 지내게 되지 않으니, 늘 봐도 낯선 사람 같아. ”



 갑자기 애선은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소리를 낮추었다.



“ 마을엔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요. 본 적 있죠? ”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작년에 이 인근 마을 땅을 많이 사가지고 들어왔어요. 이 산에만 해도 땅이 제법 많다고 들었어. 원래 부잣집 아들이어서 최근에 유산 상속을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본업은 우체국장이 아니라 투기꾼들에게 돈 될 땅을 소개하는 은밀한 부동산 업자라는 말도 있고, 반반한 인물을 미끼로 돈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해 한밑천 잡았다고 하기도 하고… ”



 나는 우체국장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기가 거북해 화제를 바꾸었다.



“ 그런데 새벽마다 우리집 뒤에 염소를 묶어놓고 갔다가 해질녘에 풀어가는 그 허리 굽은 할머니는 누구예요? ”

“ 인실댁 할머니… 옛날에, 한 오십 년쯤 전이겠다. 시장 거리에서 국밥집을 했는데 노름만 일삼는 남편이 한 손님과의 관계를 의심했대요. 그 남편은 매일 술 퍼마시고 국밥집에 가서 그릇들을 부수고 하다가 어느 날 두 아이에게 농약을 먹여버리고 집을 나가버린거예요. 그 할머니 한때는 완전히 미쳤었대요. 나이 들면서 그나마 괜찮아 진거고… 끔찍하지 뭐. ”



 처음 마을에 들어올 때 마주쳤던 부적같이 해독 불가능한 불길하고 추상적인 노파의 표정이 떠올랐다. 머릿속으로 기차가 지나가듯 둔탁한 충격이 몰려왔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 왜 그래요? ”



 잠시 후 나는 머리에서 손을 떼어내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 …괜찮아요. 간혹 머리가 아파서요. ”



 애선은 어디가 아픈 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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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작가님 글 잘읽고갑니다!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작가님 글은 비유가 참 좋아요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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