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캠퍼스 로망스 :: 02
The Campus Romance :: 02
더 캠퍼스 로망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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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모두들 술에 취해 뻗은 어두운 연습실 안에서 나는 울렁거리는 속에 못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다 깨서 그런지 술을 마실 때엔 몰랐는데, 연습실 안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는 듯 하다. 보일러 하나 되지 않는 바닥에서 사람들은 잘도 자는구나. 손바닥에 느껴지는 차갑고 딱딱한 감촉에 온몸의 신경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의 손, 발을 밟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연습실을 나왔다. 바스락- 자갈밭을 걸을 때에 나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울려퍼졌다. 밖은 더 춥네. 얇은 가디건만 걸치고 있던 나는 스스로를 껴안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 여주야. 화장실에서 나오던 정우는 나를 발견하고 씩 웃는다. 달빛을 받아서 그런지 안그래도 하얀 피부의 정우는 더 하얗고, 잘생겨 보인다. ' 위험한데, 앞으로 어디 갈 땐 나 불러서 다녀. 알겠지. '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정우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후드집업을 벗어 나한테 둘러주었다. 괜찮은데.. 내 말에도 정우는 팔 부분을 매듭지어 내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시켜주었다. ' 여기 있을테니까 다녀와.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장실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한 일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화장도 다 지워지고 머리도 산발이네. 이 몰골을 남자친구에게 보여줬다는게 너무 창피해져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혹여나 눈곱이 끼진 않았는지 계속 확인하고 머리를 손으로 빗었다. 볼일을 볼 때에도 모든것이 신경쓰였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오늘따라 왜이리 천둥번개가 치는 것 마냥 크게 들리는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밖을 나왔다. 정우는 말했듯이 안 가고 그대로 있었다.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이런 거구나. 나는 정우가 준 후드집업을 꼭 쥐었다. 우리는 연습실 컨테이너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앉으려 하자 정우는 ' 잠깐, ' 하며 나를 못 앉게 하고 본인은 멀뚱히 앉아있었다. 뭐지 싶었는데, 이제 됐다며 옆 쪽으로 비켜앉더니 자신이 앉았던 곳에 나를 앉게 해주었다. 정우의 온기가 느껴지자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 안 자고 뭐했어. ' 라는 정우의 물음에 나는 차마 정우 쪽을 보지도 못하고 그냥.. 속이 좀 울렁거려서. 라고 답했다.
" 아, 오늘 애들 때문에 많이 마시는 것 같긴 하더라. "
" 너는 괜찮아? "
" 난 술 잘 마셔서 괜찮아. "
" 부럽다. "
" 그래야 오늘 같은 날에 너 옆에 끝까지 있지. "
그 말에 정우를 보았다. 웃는 얼굴의 정우는 더 잘생겼다. 어떻게 반응할줄도 몰라서 그저 정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 왜 그렇게 쳐다봐. 부끄럽게. ' 정우는 살짝 몸을 뒤로 빼더니 얼굴을 문질렀다. ' 뭐 묻은건 아니지? ' 부끄러워하는 정우는 귀여웠다. 정우를 처음 본 건 입학식에서다. 당시 집과는 먼 학교에 입학을 한 탓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홀로 멍하니 서 있을 때, 저 멀리서 어느새 친구들을 사귀어 무리지어 있는 정우를 보았다. 그 때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내가 먼저 피해버렸다. 3월에 첫 수업 날, 학교에 늦게 도착 한 나는 이미 꽉 차버린 강의실에 당황하여 한동안 문 앞에 서있다가 정우와 그의 친구들이 앉은 자리에서 맨 끝에 비어있는 책상을 보고 무작정 그곳으로 갔다. 어색한 틈 속을 비집고 들어가 앉으니 저 쪽 여학생들이 앉은 쪽에 자리가 있음을 알았다. 입학식날 겨우 말이 튼 친구도 그곳에 있었다. 어떡하지, 저기로 갈까. 그렇지만 자리를 옮기면 옆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줄로 오해하면 어쩌지. 또 생겨난 걱정 뫼비우스의 띠에 가방을 움켜쥐고 안절부절했다. 그러다 펜이 있냐고 물어오는 옆 남자애들에게 필통을 꺼내 펜을 빌려주며 말을 트게 되었고, 그 때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정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 너네 벌써 친구 사겼냐, 부럽다. '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는 나를 보다가 어색한듯, 다시 앞을 보았다. 그렇게 말 한 마디 붙이기도 어려웠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남자친구로 내 옆에 있는 정우가 자꾸만 보아도 신기했다.
" 여주 너, 핸드폰에 나 뭐라고 저장했어? "
" 응? 아... 16김정우. "
" 난 바로 너 이름 바꿔서 저장했는데... 나 완전 에바킹스같다. "
" 아아니야! 미안.. 나도 지금 바꿀게. "
황급히 편집버튼을 눌러 [16김정우] 를 지웠다. 뭐라고 해야할지 생각을 하다 정우는 나를 뭐라고 저장했을지 궁금해졌다. 정우는 창피하다고 필사적으로 보여주길 거부했지만, 계속 졸라대는 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여자친구♥] 라고 적힌 걸 보니 조금씩 정말 내가 정우랑 사귀는 구나, 하는게 실감이 났다. 나도 정우를 따라 [남자친구♥] 라고 저장을 하니 멋쩍은 듯 정우가 웃는다. 문득, 정우는 언제부터, 왜 나를 좋아했는지 궁금해졌다.
" 근데.. 정말 내가 좋은거야? "
" 그럼 안 정말로 좋게? "
" 아니. 신기해서.. "
" 내가 널 좋아하는거? "
" 응. "
" 흠- 왜지? "
정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 너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고민 좀 해볼게. ' 정우는 그러면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내 앞머리를 정돈해 주기도 했다. 칠흙같이 어두운 새벽, 달빛 하나에 의존한체, 이 세상에 나와 정우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기에, 정우가 손길을 건넬때 마다 옷깃에 스치는 소리가 귀를 간질거렸다. 코로 내쉬는 숨소리마저 너무 생생해서 내 치부를 다 보인 것만 같이 자꾸만 떨려오는 심장에 반작용으로 발이 베베 꼬인다.
" 입학식 날, 나랑 눈 마주쳤던거. 기억나? "
" 응. "
" 그 날 같아. "
" ... "
" 너 보자마자 반했어. "
05
" 그래서 종이에, 쉬시하고 친구 이름 썼어요. "
아아- 출석체크 하다가 교수님이 내 이름 말한 걸 들었구나. 바보같다 나도. 친구가 나 하나 뿐이어서 2인 1조 과제 명단에 나를 적었다는 쉬시의 말을 듣고 그의 의견을 긍정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 같았어도 그 상황에선 쉬시 말고는 적을 이름이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굿? 하며 엄지를 보이는 쉬시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쉬시는 다시 빙수를 먹기에 바빴다. 그러고보니 참 잘 먹는 사람이다.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빙수와 쉬시를 보며 느꼈다. 덕분에 유당불내증이 있는 나는 편하게 과일만 조금씩 떠먹었다. 나와 쉬시는 공책에 레포트 분량과 발표 ppt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시는 '이,가,을,를' 을 연결하는 것만 빼면 한국말로 대화하는데에도 지장이 전혀 없었다. 중간중간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엔 중국어도 했다가, 영어도 했다가. 몸짓, 손짓을 대동하는 그를 보며 처음에 느꼈던 것과는 달리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외관으로 상대방이 어떻다고 생각하는 걸 제일 싫어하면서, 어느순간 남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는 사이에 쉬시는 어느새 빈 빙수그릇을 숟가락으로 긁으며 말했다.
" 맞아, 쉬시 발표 안 좋아요. "
" ...나도.. 안 좋아하는데. "
" 그럼 가위, 바위, 보. "
가위바위보? 그렇지만 나는.. 나는 정말. 덜컥 겁에 질린 얼굴로 쉬시를 보았지만 쉬시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기면 되겠지 뭐. 굳게 다짐을 하고 가위바위보를 외쳤다. 그리고 결과는 정말 처참히 내가 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갑자기 수 많은 사람 앞에서 홀로 나가 벌벌 떠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쉬시, 쉬시가 해주면 안 돼요? 난 정말 못해요. 그렇게 빠르게 말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쉬시는 ' 왜 못해요? ' 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 말이 없어졌다. 왜냐면.. 나는 앞으로 뺐던 몸을 천천히 뒤로 당기며 입을 다물었다. 하긴, 복학하면서 다짐했던거긴 하잖아. 발표를 할 일이 생길거라고 무조건. 입술을 깨물며 다시 쉬시와 마주했다. 쉬시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양팔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 쉬시가 만든걸 내가 다 망치면 어떡해요. "
" 망쳐도 돼. 괜찮아. "
" ...응? "
" me 상관없어. "
쉬시는 두 팔을 들어올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뭐야, 별 거 아니네. 라는 듯. 나는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망쳐도 된다는 저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거지? 나는 쉬시에게 과제가 무엇인지 아냐는 원초적인 질문을 했다. 자칫 무시하는 질문으로 들릴까 걱정했지만, 반응을 보니 정말 모를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 과제 20프로 ' 쉬시는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쉬시는 ' OK? ' 하며 우리의 회의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안절부절하며 다시 물었다.
" 내가 발표를 못 해서 교수님이 낮은 점수를 주면- "
" 여주가 망친거 아니야. "
" ... "
" 우리는 하나잖아. One, you know? "
" ...아.. 아이 노우. "
엉겁결에 한국 본토 발음으로 대답을 한 나는 창피함을 느낄 새도 없이, ' 맞다, 오늘 술? ' 쉬시의 질문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을 내젔는 쉬시를 보며 고개를 끄덕, 하자 알겠다는 듯 ok 사인을 보이며 쉬시는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시와 카페에서 헤어지고 버스를 타러 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방학 동안 알바를 했던 식당 사장님이었다. 워낙에 잘 챙겨주신 사장님이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 어, 여주야. 우리가 지금 일손이 모자라서 그런데, 오늘 하루만 좀 도와줄 수 있겠니? ' 사장님의 목소리에 나는 차마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내 성격을 잘 아시고, 방학 동안 밖에 일을 못 하는 상황인데도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잘 챙겨주셨던 사장님의 모습들이 떠올라 나는 결국 알겠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전화를 받지 말걸,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 발걸음은 빨갛게 빈차 표시를 띄며 다가오는 택시를 잡으러 달려가고 있었다.
06
" 선배님! 서비스 많이 주셔야 해요! "
주문서에 메뉴를 적어내려가다 부과대의 외침에 고개를 들어 어설프게 웃어보았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이 가게로 올 줄이야. 워낙에 사장님이 인심도 좋고 음식이 맛있어서 방학 때에도 다른 가게들에 비해 대학가 치고는 이곳은 장사가 꽤나 잘 되었다.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빗겨나간적이 없구나. 사장님은 괜히 자기 때문에 회식에 참여를 못 한거 아니냐며 서비스 음식을 잔뜩 주셨다. 나는 별 말 없이 우리 과 사람들이 있는 테이블에 가져가 내려놓았다. 와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익숙치 않아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음식을 나르고, 그릇을 나눠주고 빠르게 그곳을 나왔다. 카운터에 서서 사람들이 노는 걸 지켜보았다. 한 명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을 보니 답지않게 옛날 생각이 났다. 남들은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를 짓겠지만, 내 입꼬리는 미동도 없다. 괜히 주문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을 하며 딴짓을 하는데 누가 카운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 반 과대였다.
" 선배님, 오셔서 애들이랑 인사해요. "
" 네..? 아, 아니 저는- "
" 에이, 그러지 마시구요. 네? "
선한 인상을 가진 그를 보고 더이상 뿌리칠 수가 없어 두 손을 모아 과대와 함께 테이블로 갔다. 내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적은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어서 적응이 되질 않았다. 경직된 나를 대신해 과대는 내 옆에 서서 나를 소개했다. 그러고 나는 개미가 지나갈 법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도 크게 반겨주는 사람들에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과대가 일어나 외쳤다. ' 선배님도 오셨으니까 다같이 한 잔 할까요? ' 잔을 들어올리자 사람들이 따라서 줄줄이 술 잔을 높이 올렸다. 괜찮다며 만류하려다 언제 준비했는지 술 잔을 건네는 과대에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자 작게 ' 물이에요. ' 라고 웃으며 답하는 그를 보고 안도했다. 건배사를 재촉하는 사람들에 과대는 쑥쓰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 그럼 사이 좋게 지내자는 의미로.. 제가 이멤버 하면, 여러분이 리멤버 해주세요. "
" 우웩~ 완전 구식이다. "
" 야야 저정도면 잘 한거야 민형이 치고, "
" 오케이, 인정. "
엉겁결에 사람들과 함께 ' 이멤버, 리멤버 ' 를 외친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 잔을 비웠다. 이제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려 잔을 내려놓으려는데, ' 선배님, 조금 계시다 가세요. 아직 저희밖에 손님도 없는 것 같은데, ' 과대의 말에 난감해졌다. 그의 말대로 가게는 우리 반 사람들을 제외하곤 없었기 때문에 주춤거리며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과대는 새 수저를 건네며 빈 그릇을 들고 무엇이 먹고 싶냐 물었다. 제가 할게요, 내 말에 과대는 국자를 들어 그릇에 탕을 옮겨담았다. 감사합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에서 국물만 홀짝거리는 내게 과대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 선배님 여기서 일하실 줄은 몰랐어요. '
" 여기는 원래 방학에만 하다가, 오늘 갑자기 도와달라고 하셔서.. "
" 아아, 그렇구나. 그래도 이렇게 봬서 다행이에요. 선배님 안 오셔서 조금 아쉬웠는데, "
벌써 몇 잔을 마신 듯 그는 두 볼이 약간 발그레져 있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겐 소주를, 내겐 물을 따라주며 건배를 권했다. 물을 마시며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쉬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다행이게도, 가게에 손님들이 더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들고 몇 명이세요, 라고 물으려는데 손님쪽에서 먼저 ' 어, 김여주네. ' 반응했다.
" 여주 너 여기서 알바해? "
" .....아, "
" 정우 밑에 있어. 곧 올라올거야. "
" ...응. "
나와 같은 학번 남자애들 3명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에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물과 컵을 챙겼다. 자칫하면 머릿속이 하얘질수도 있겠단 생각에 정신차리자. 를 계속해서 홀로 되뇌었다. 테이블로 가서 주문서에만 시선을 고정시킨체 주문을 기다렸다. 때마침 가게 종소리와 함께 내 뒤로 정우가 지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자리에 앉은 정우는 아직 나를 못 알아본 듯 친구들과 메뉴를 정했다. 그러다 ' 어... 여주야? ' 하는 그의 목소리에 천천히 주문서를 내려 그를 마주했다.
나를 발견한 정우의 표정은 미묘하게 웃는 듯 하면서도 무심해 보였다. ' 신기하다, 여기서 보내? ' 정우 다운 첫 마디였다. 응. 애써 담담한 척 하며 주문서를 다시 들었다. 저 멀리서 선배님, 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정우가 우리 반 테이블 쪽을 보며 ' 우리 학과야? ' 라고 물었다. 응, 뭐 시킬거야?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정우에게 내가 먼저 건넨 말이었다. 정우는 ' 너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걸로 줘. 소주 3병하고. '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별 말 않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화면에 대고 메뉴를 누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우중충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직도 정우에 대한 습관이 남아버린 내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괜히 앞치마에 마른 손을 닦고 냉장고를 열어 술을 꺼내기 전, 테이블로 가서 물었다.
" 술은 뭐로 줄까. "
" 알면서. "
" ...ㅈ, 종류가 많아서 그래. "
" 처음처럼. "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발악도 그 순간 가볍게 무너뜨리는 그와 조금이라도 더 말을 섞다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결국엔 잔을 깨뜨림으로써 서서히 몸이 반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황급히 깨진 유리조각을 줍는 손은 미친듯이 떨렸고 피로 범벅이된 손은 다른 손으로 제압해도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아 휴지로 감쌌다.
" 괜찮아요 선배? "
" ....아. 네. "
" 제가 치울게요. 비키세요. "
얼떨떨한 나를 뒤로 밀고 유리조각을 치우는건 과대였다. 순간 눈앞이 뿌얘지면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뻔 하는 나를 끌어당기던 과대는 ' 선배 진짜 괜찮아요? ' 라며 물어왔다. 허리께에 닿은 그의 손에 나는 힘껏 과대를 밀쳐냈다. 그리고 밀쳐내자마자 사과했다. 과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바닥을 정리했고 곧이어 나온 사장님이 피범벅이 된 내 손을 보며 그만 가봐도 좋다 말하셨다. 뭐가 어떻게 되는건지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 눈은 무의식적으로 정우의 테이블을 향했다. 가만히 나를 보던 정우는 눈이 마주치자 먼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정신이 들던 나는 두 눈을 비비며 고개를 흔들었다.
" 여주야, 안되겠다. 이쯤하고 집으로 가렴. "
" ...죄송해요 사장님. 저 때문에.. "
" 아니야, 아니야. 헌데 혼자서는 집에 보내기가 좀 그런데.. "
" 제가 과대니까, 제가 책임질게요. 선배 옷 입고 나오세요. "
" 아니에요. 저 혼자- "
과대는 자리로 돌아가더니 자켓을 집어들고 나왔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앞치마를 벗어서 걸려있던 코트를 입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정우였다.
" 너 괜찮아? "
" ... "
" 내가 데려다줄게, 쟤 너네 집 모르잖아. "
" ..나 혼자 갈거야. "
" 혼자 가다가 무슨 일 날 것 같으니까 그래. "
" 됐어. "
됐다는 나의 말에도 정우는 계속해서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무작정 가게 밖을 나와서도. 뒤늦게 따라나온 과대는 나와 정우를 번갈아 보더니 ' 가요, 선배. ' 하곤 나와 정우의 사이로 들어왔다. ' 나랑 여주랑 친구거든요, 그러니 내가 데려다줄게요. ' 정우는 과대를 지나 내 팔을 다시 잡으려 했다. 과대는 바로 그 손을 막으며 답했다. ' 저는 같은 반 과대에요. 저희 반 사람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것도 제 책임이구요. ' 과대는 정우로부터의 내 시야를 막아섰다. 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02-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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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얼마 안가 또 찾아뵙게 돼서 기뻐용 곧 개강을 앞두어서 올릴 수 있을 때 빠짝 올리고 3월부터 연재 텀이 길어질 예정이에요 ㅜ 많은 분들이 재밌게 봐주셔서 넘 행복해요 :) 하지만 심장이 아파서 숨을 못쉴 정도이면 안 돼요..! 걱정돼요... 진심으로.. ㅋㅋㅋ ..ㅠㅠ ♥ 여튼간에 감사합니다 ♥ 오늘도 재밌게 봐주세요 ♥ [ 참고로 루카스(영어이름)=황욱희(루카스 한국이름)=쉬시(루카스 중국이름) 셋 다 동일인물 입니다 >_<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