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익숙해진 방 안, 벽지 무늬를 따라 눈을 굴리며 어쩌면 누군가는 듣고 있을 생각에 조용히 소리내어 봅니다.
' 오늘은, 오늘은 꼭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
어두운 벽지마저 사라진, 또 다시 나는 암흑속에 갇혀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이요.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힘껏 앞을 향해 내달려봐도 끝은 보이지 않으며 시작 또한 알 수 없는 공간에 나는 또 혼자 남겨졌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이 긴 어둠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희미하게 사람 형태를 가진 빛이 천천히 내게로 옵니다. 천천히 내게 손을 뻗은 그 빛은, 그저 차가울거 같던 그 손은 보드랍고 따듯했습니다. 두 손으로 그 손을 꼭 쥐고 오늘은 얼굴을 확인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알수없는 긴장감에 붉어진 내 시야가 원망스러워서 낮게 그르렁거리며 그 빛을 올려다 봅니다. 내 몸을 쓰다듬으며 드디어 선명해게 보이는 그가 내 볼 위로 눈물을 떨궈냅니다. 눈물을 주체하지도 못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으려 입꼬리를 올리는 그가 왜 이리 아릴까요.
" 재환아, ......재환아... "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담아내는 그는, 끊임 없이 '재환'이라는 이름만 뱉어냈습니다. 어쩌면, 이게 내 이름일 수도 있는거겠죠.
" 끄윽, 흐..내가, 너무..흐으....늦게 와서.. 흐윽, "
그가 몸을 굽혀 나를 꼭 끌어안고 머리 위로 연신 사과만 해댑니다. 미안해, 형이 미안해. 형아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자신을 '형'이라 칭하며 그는 내 몸을 토닥여주며 괜찮다며 나를 달랩니다. 사실 달램을 받아야할 것은 그 같은데 말이죠. 어둠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진지 오래고 내 앞의 그는 너무도 서럽게 울어대는 통에 나는 괜찮다는 소리를 내며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오늘은 꿈에서 깨고 싶지가 않네요. 이 사람과 더 있고싶고, 더 안아주고싶어요.
" .........울지마요. "
그를 달래기 위해서 처음으로 그들의 언어를 사용함과 동시에, 품에 있던 그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