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속의 상관관계
백현의 등을 쓰다듬는 찬열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곧 깨질것같은 유리마냥 백현의 상태는 아슬아슬했다. 이토록 백현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찬열은 제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삭혀야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종인을 찾아가 그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백현을 품에서 떼어내어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만해, 이제 그만좀 해. 백현 자신이 상처받을것이라는걸 뻔히 알면서도 백현은 한줄기 희망을 놓지못했다. 하지만 비참하기 짝이 없는 백현을 그저 아무말 없이 받아주는 제 모습도 백현 못지않게 비참했다. 백현을 놓기만하면 저는 모든것이 다 끝나는 것이였다. 김종인이든 도경수든 변백현이든, 찬열 저 한명이 백현을 놓기만 한다면 세사람과 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 되는것이였다. 하지만 찬열은 백현을 놓지 못했다. 놓을 수가 없었다.
제 가슴팍에 기대어오는 백현을 꽈악 안았다.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던 저는 백현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 버렸다.
…… 백현이 없는 저는 상상할 수 없었다.
" 찬열아……. "
백현의 목소리가 갈라져있었다. 백현이 가슴팍에 묻은 얼굴을 떼어내곤 찬열을 주시했다. 조심스럽게 백현을 바라보는 찬열의 눈과 빨갛게 달아오른 백현의 눈이 좁은 공간을 틈으로 삼고 마주했다. 백현이 찬열의 목에 팔을 둘렀다. 찬열아, 다시 한번 백현이 찬열의 이름을 불렀다. 왜, 찬열이 백현의 눈꼬리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찬열의 차가운 손이 닿자 백현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찬열이 제 손으로 백현에게 마른세수를 시켜줬다. 두 손에 들어오는 양 볼이 뜨거웠다. 찬열의 손이 곡선을 그리며 백현의 양 볼을 정리해주고 있을 찰나였다. 백현이 찬열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실으며 찬열에게 입을 맞췄다.
백현의 볼에서 헤엄치던 찬열의 큰 손이 멈췄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이였지만 찬열은 이내 곧 백현의 허리로 손을 내렸다. 백현의 혀가 먼저 찬열의 입안을 파고들었다. 찬열이 백현의 안으로 들어서려하지만 백현은 끝까지 비켜서지 않았다. 계속해서 찬열의 혀를 옭아내리며 입안 이곳저곳을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백현의 리드였다. 낯선 백현의 리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숨이 가빠오는것이 다 느껴지는데도 백현은 짙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급급한건지 되려 찬열을 끌어안으며 매트위에 등을 붙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미세한 공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울지마
파르르-.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백현의 입술에 찬열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제 아래에 깔린 백현이 눈을 질근 감고있었다. 찬열 제가 닦아준 양 볼은 또 다시 백현의 눈물로 적셔지고 있었다. 이처럼 백현은 항상 그랬다. 종인으로 인해 상처받은 제 마음을 찬열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는듯 치유받았고, 찬열이 다시 안정을 되찾아놓으면 다시금 백현은 종인에의해 아파했다.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항상 백현은 상처를 받아왔고 그 상처를 보듬어주며 백현의 상처까지 안아가는것은 찬열 제 자신이였다. 찬열은 이 레퍼토리에 큰 불만은 없었다. 서로 다른곳을 바라보는 맹목적인 사랑이였지만 백현이 저를 찾아주니까. 항상 제게 기대고 저를 믿고 의지하기때문에 큰 불만이 없었고, 김종인, 그와, 종인과 백현의 관계에 대해서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었다.
나쁜 새끼는 도경수야 배신당한건 나고 배신한건 도경수야.
믿었던 친구라고 했다. 백현은 경수를 그렇게 지칭했다. 그래, 나쁜 새끼는 도경수다. 백현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도경수고, 백현을 아프게 한 것도 도경수고, 지금 백현이 만신창이가 된 꼴로 울고 있는 것도 다 도경수때문이다. 백현의 볼을 잡고 있던 찬열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이 행동이 백현에게는 더 자극이 된것인지 백현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기에 바빴다. 찬열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충동적인 행동이였다. 찬열이 백현이 제 입안을 헤집어 놓던 판을 순식간에 엎어버린것은. 평소와 달랐다. 항상 백현을 배려하고 부드럽던 찬열이 거칠게 백현의 입안으로 파고들었다. 백현아, 도경수는 신경쓰지마. 이제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항상 웃었으면 좋겠다.
" 너 완전 퉁퉁 부었어. "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교실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교사들의 목소리만이 들릴뿐 찬열과 백현만이 존재하는 복도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백현의 볼을 쿡쿡 찌른후 찬열이 자연스럽게 백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키에 비해 넓은편에 속한 백현의 어깨였지만 찬열의 팔에는 한품에 들어왔다. 그래, 이거다. 이 평온함. 세상에 백현과 찬열, 저희 둘만 남겨진것만 같은 평온함. 두 사람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는지 알지못했지만 발이 가는대로 걷고 있었다. 복도 코너를 돌아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기도 하고 수업이 한창 진행중인 교실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했다.
" 얼음 찜질이라도 하러갈래? "
" 아니, 괜찮아. "
" 이제 울지마라, 응? "
너 울면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다니깐. 장난끼묻은 찬열의 목소리에 백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은 하지 못하겠지만 저도 모르게 벌어진 움직임이였다. 그 작은 움직임이 마음에 드는지 찬열이 백현의 어깨에 걸친 손으로 백현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직까지도 몸에 열기가 남아있는 모양인지 백현의 볼은 여전히 뜨거웠다. 차가워, 백현이 손을 치우라는 듯이 찬열의 손을 쳐냈다. 까칠하기는, 찬열이 걸음을 멈추고 다시 백현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쭈욱, 찬열의 손에 의해 억지로 올라간 백현의 입꼬리가 어색했다. 이렇게 웃으라고. 머하는 그아, 덕분에 발음이 잔뜩 뭉게진 백현의 목소리에 찬열이 살풋 미소를 지었다. 귀여워. 백현의 양볼을 그대로 잡고 요리조리 흔드니 백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지만 찬열은 개의치 않고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 야 백현아, 그렇게 가면 어떡해, 같이가! "
결국 참다못한 백현이 찬열의 양 손을 쳐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찬열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귀여워 죽겠다 아주. 경보를 하는듯이 복도 끝을 향해가는 백현의 뒷모습도, 박찬열 너 수업중에 뭐하는짓이야? 얼른 니 교실로 안들어가? 찬열의 큰목소리에 다른 반 교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곤 제게 잔소리를 하는 평소 밉상의 대명가라던 노쳐녀 선생님도, 그냥 찬열은 이 상황이 즐거웠다. 백현에게로 향하는 찬열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 혀,형 ……? "
- " 응, 형이야. "
경수는 하마터면 수화기를 떨어뜨릴뻔 했다. 얼마만에 듣는 목소리인지, 경수는 다시금 수화기를 똑바로 쥐었다. 준면이 없는 경수의 5년은 복잡하기 짝이없었다. 백현과 종인 그리고 저, 세 사람의 관계는 말로 설명하기 복잡했다. 백현과 저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웬수마냥 사이가 지나치게 틀어져버렸고, 저와 같은 마음일거라 굳게 믿었던 종인에게는 적지않은 충격과 실망감, 비참함에 휩쌓인 상태였다. 털어놓을 곳도 없고, 기댈곳도 없던 경수는 그저 혼자 속으로 제 마음을 삭힐 수 밖에 없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큰 교통사고의 주인공은 진학한 기숙형 예술고등학교에서 경수 저를 보러 내려오던 준면이였다. 사고로 인해 준면은 제 생명과 같은 오른팔에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십칠년동안 그림 하나만을 보고 달려왔었다. 제 어머니의 억압속에서 그림하나만이 제게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고 어머니의 꿈이였던 그림이 곧 준면의 꿈이였다. 하지만 그 사고현장은 무척이나 처참했다. 당시 한국 의학기술로는 고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준면의 오른팔에 결국 준면은 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했다.
- " 잘 지내고 있어? "
" 응? 그냥……. 형은? "
잘 지내고 있어?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준면이였지만,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준면이였지만, 그런 준면에게 말하는 경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 자신때문에 그 사고에 준면이 있었다는 죄책감에 경수는 준면에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 할 수 가 없었다. 잘 못지내. 경수의 풀이 죽은 목소리를 준면이 듣는다면 준면은 저를 걱정할게 뻔했다. 더이상 형에게 피해를 끼지고 싶지않다.
- " 나도 잘지내지. "
" 팔은……. 팔은 어때? 그림은 계속 하고 있는거야? "
- " ……. "
" 형? "
수화기를 사이에 둔 경수와 준면의 고요한 정적속에서 경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물밀듯 죄책감이 다시한번 밀려왔다. 형,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 " 나 그림 안해 경수야."
" ……. "
- " 오른쪽 팔을 쓸 수가 없데, 그래서 왼쪽으로 해봤거든? "
" 형, 미안해. "
- " 니 잘못이 아니야, 왼손으로는 도저히 ……."
준면의 목소리가 사그라 들었다. 다시 한번 찾아온 침묵에 경수는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 형. 그 날 내가 형 보고싶다고 연락만 하지 않았어도……. 경수는 준면이 마치 제 앞에라도 있는 것 마냥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끊임없이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미안하다는 경수의 목소리에 준면의 목소리가 다시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 왜 그래, 정말 괜찮다니까. 대신 아버지 회사들어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
" ……. "
- " 그래서 지금까지 안돌아오고 있는거잖아. 모르겠어? "
" 공부는 …, 할만 해? "
- " 응, 뭐 괜찮아. 너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
나도 뭐……. 이도저도 아닌 경수의 대답에 준면이 열심히 해야지, 라며 면박아닌 면박을 주었다. 장난스러운 준면의 목소리에 경수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 형은 여전하구나.
- " 공부 열심히해, 형이 곧 찾아가서 확인할거야. "
" 어, 어? "
- " 곧, 갈게. 한국. "
안녕하세요 :) |
ㅜㅜ진짜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개학하고 종업식하자마자 또 설날이고... 이제서야 12화를 업뎃하네요ㅜ 또 조금있으면 개학인데...완결은 아직 좀 멀었는데 제손은 똥내만 나고................... 면목이없습니다.
미흡한글 싸지르고 사라질게요 소금소금 암호닉 다음화에 불러드릴게요. 오랜만에와서 정신이 없어서ㅠㅠ 죄송합니다 항상 봐주시는 독자님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