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공영'
찬식은 진영을 흘긋 쳐다보았다. 애초에 그를 먼저 내친 것은 저였다. 울며 매달리는 그를, 자신은 너무도 매정하게 밀어냈었다. 분명 그 날도 오늘과 같이 카페에 마주보고 앉아있었지. 그 날과 같은 메뉴, 같은 농도의 핫초코는 여전히 씁쓸했다. 설탕이 덜 들어간 탓인가, 제 삶에 더 이상의 달콤함이 없는 탓인가. 찬식은 핫초코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왜 부른거야, 2년만에."
2년만이다. 그 오랜 시간동안 네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 그 오랜 세월에도 너란 존재는 지워지지 않아 어쩌면 2년간 그의 곁을 맴돌았는지도 몰랐다. 찬식은 대답할 수 없었다. 차마 그를 잡기엔, 너무도 자신은 면목없는 사람인지라, 잡지 못한다.
"번호, 안 바꿨더라."
"응."
"내가 준 반지, 왜 계속 끼고 다녀."
"이거 말하려고 부른거야?"
"응."
찬식은 뒷말을 삼킨다. 삼킨 말의 뒷맛은, 핫초코와 무섭도록 닮았다. 쓰다.
"이 반지, 애인이랑 맞춘거야."
"응."
"나, 애인 있어."
아아. 어쩌면 너는 변하지 않으리라, 홀로 믿어버린 것일지도. 순간 네가 사라진다. 쓰다. 미칠듯이, 쓰다.
'바들'
"뭐야, 갑자기 불러내고."
선우는 불평에 가득 찬 정환을 밉지 않게 노려보다 그대로 볼을 쭉 잡아당겼다. 안 그래도 동글동글한 얼굴에 볼까지 부풀리고 있으면 아무래도 장난끼가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놓으라 소리를 지르길래 그제야 놓았더니 잠시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고 있다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귀여워."
"아, 진짜! 사람 많은데."
"뭐 어때."
"내가 어떻지 않거든요, 차선우군?"
"하여튼."
선우는 손을 내젓다 정환을 잠시 바라보았다. 주문했던 조각케잌이 나온다.
"뭐야, 이 분위기."
"정환아."
"설마 이깟 치즈케잌에, 대낮에, 카페에서 프로포즈라거나 하는건 아니지? 나 진짜 뛰어내릴거야."
"나 치즈케잌 먹고싶어서 시킨건데."
선우의 말에 정환은 잠시 선우를 쳐다보다 말없이 치즈케잌을 퍼먹는다. 왠지 상당히, 민망하다.
"진짜 프로포즈였으면 완전 실망했을거야."
"원래 치즈케잌에 촛불 켜고 반지 주려고 했는데 니가 먼저 선수쳐서 그냥 안하려고. 치즈케잌 먹고 싶기도 했고."
정환은 선우가 무심하게 만지작거리는 반지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파란 사파이어가 박힌, 그러나 상당히 유행에 뒤떨어진 디자인의 반지. 차선우스럽다.
"그냥 지금 할까?"
"프로포즈 한다고 알려주고 하는게 어딨어."
"원래 서프라이즈였는데 니가 망쳤잖아."
정환은 대꾸할 말이 없다.
'신영'
익숙한 곳에, 낯선 네가 앉는다. 그리하여 그곳은 낯설게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네가 결혼한다며 전화했던 놈들도 있었을 뿐더러, 넌 너무도 잔인하게도 내게 기어이 청첩장을 보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였을지, 이 청첩장을 보내는 네 마음은 어떠했을지 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넌 단순히 축의금을 받겠다며 염치 불구하고 청첩창을 보낼 정도로 생각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넌 그랬다. 그렇다면 넌 몇 년전 너와 나의 관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단지 어릴 적의 한순간 치기어린 장난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일까. 교차하는 생각들이 네 목소리에 멈춰선다.
"동우야."
"...응."
"나 결혼해."
넌 어째서 이미 알고있는 사실을 또 한 번 되뇌이는 것일까. 너와 나의 사이를 상기시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더 이상 너와 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명확한 경계선을.
"결혼식, 와줬으면 해."
"내가 널 축하해주길 바래?"
결국 본심이 넘쳐나와 버린다. 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날 바라본다. 그런 네 모습에 화가 난다. 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그 반지가 빛나고 있는 것에 화가 난다. 항상 내 것이었던 네가, 어느순간 사라져 버린것이, 그 바랜 추억이 아스라히 무너진다.
'카페, 그리고 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