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cissus
사람들을 혐오했다. 온통 가식과 위선에 둘러싸인 작자들. 겉으로 미소지으며 뒤로 칼을 꽂을 인간들.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라곤 순수한 혐오와 불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탐욕에 쩔은 얼굴들은 역겨웠고, 난 스스로 그들에게서부터 격리되는 방법을 택했다. 저들에게 정을 주는것은 쓸모없는 에너지 소모였다. 왜 굳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입꼬리를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그들에게 뭔가 얻을것은 없다. 물론 간간이 음료수라던가 밥이라던가를 얻어 먹을 수는 있겠으나, 난 그깟 물질적인 사소한 이익으로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의 반 이상을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제 감정을 컨트롤하느라 애쓰는 머저리들. 그런 병신들과 같은 급으로 추락하고 싶진 않았다. 평생, 그 긴 인생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들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 사회는. 그리고 그것이 '적응'이라 말하는 것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단 말인가. 정신과에서 하나하나 인쇄해 준 진료기록을 옆으로 치워냈다. 그들과 동떨어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머저리들은, 내게 대인 기피와 사회 부적응이라는 글자를 붙여놓곤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겹다.
거울 속 나는 꽤 머리가 많이 길어 있었다. 아무래도 자르는 편이 낫겠지. 미용실엔 가고싶지 않아 가위를 찾아 꺼냈다. 실없는 웃음소리와 쓸모없는 물음을 건네며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나가려 애쓰는 자들로 넘치는 그 시끄러운 공간이 싫었다. 한낱 머리를 자르는 그 짧은 시간동안 의미없이 주고받는 말은 분명 상당히 비효율적인 대화였다.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려는 탐욕과 소문이 돌까 두려워 제 속얘기는 하지 않은 채, 결국 둘 사이의 대화는 다른 이의 뒷담화 주위에서 빙빙 맴돈다. 은빛 미용가위가 반짝거렸다. 모든 걸 충분히 홀로 처리할 수 있음에도 굳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그 종이 쪼가리를 주고받으며 위선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혐오감. 길어진 옆머리를 잘라냈다.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도 이리 쉽게 잘라내어지면 좋으련만. 저 뭣같은 사회도, 이 세상도 모두 내 주위에서 사라져버리길 소망했다.
"...아."
문득 거울을 다시 바라보았다. 비스듬하게 짧은 머리와 긴 머리가 교차되며 흔들리는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겼던가. 위선과 가식으로 넘치는 저 역겨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실된 존재, 나 자신. 아아, 나의 완벽한 이상적인 존재. 내 자신 앞이라면 억지로 미소지을 필요가 없다. 애초에,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내 자신은, 저 거울 안의 내 자신을 사랑한다. 거울 속의 완벽한 이상형이 미소지었다. 나 또한 미소지었다.
거울을 몇 개 더 구입했다. 택배기사는 뭔가 묻고 싶었던 듯 하였으나 난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문을 닫아버렸다. 실제로는 다른 이에 대한 배려라던가 도와줄 마음따위 갖고 있지도 않은 주제에 다른 이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저들이 싫다. 멍청하게 속아 제 마음을 경솔하게 쏟아붓고 나면 남는 것은 동정심이 아닌 비웃음과 경멸. 어느새 소문은 부풀려져 경솔했던 '진심'은 망가지고 왜곡된다. 그리하여 난 진심의 마개를 막아버렸다.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한 방울도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
완벽하다. 벽의 네 면에 걸린 거울엔 위선이 비치지 않는다. 거울 속 거울, 거울 속 내 자신,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은 만족스러웠다. 그는 날 경멸하지 않는다. 그는 날 비웃지 않는다. 애초에 소문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아, 미칠 듯 사랑스럽다. 거울 속 미소짓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완벽한 대칭, 완벽한 데칼코마니. 그에겐 내 진심을 쏟아놓을 수 있다. 그에겐...
...내 진심이 뭐였지?
말을 걸어줘.
안아줘.
위로해줘.
이해해줘.
외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