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만하고 퇴근들 좀 해.”
저 말만 봐서는 흔히 직장 상사들이 할 수 있는 빈말, 겉으론 가라고 하지만 절대 들어서는 안되는 말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작 저 말을 한 주인공인 2팀의 반장님은 아무리 말을 해도 들은척 하질 않으니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 소식은 서창님의 귀에 까지 흘러들어갔다. 사건 처리 중에 반장을 잃은 팀원들이 도무지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몇일 동안 숙질실-사무실을 반복하기만 한다고.
험하디 험한 강력반에서 늘 최고를 유지해오던 1팀이 그 지경에 처했음에도 겉으로는 슬픈척, 아끼던 후배를 잃은척 사람들을 만나며 위로를 주고 받았지만 정작 그 팀원들은 챙기지못하고 있던 경찰 청장이 늦게라도 나서서 겨우겨우 팀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일이 터지고 장례까지 치르면서도 경찰서를 떠나지 않던 그들이 몇일 만에 모두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섰다.
민현의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와 같은 방향인 성우와 여주를 태웠다.
어떤 조합이든 그렇겠지만, 성우&민현&여주 라니. 차안이 시끌시끌 떠나가라 웃음이 터져나와도 모자를판인데 이상하리만큼 차안에는 단 한마디도 흐르지 않았다.
그렇게 정적속을 달리다 민현의 차가 성우의 집앞에서 멈추어 섰다. 깜빡 깜빡 비상등이 켜지고 곧바로 성우가 차문을 열고 내리더니, 차를 향해 꾸벅 인사를 건네고는 말없이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걸음 걸었을까,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던 성우가 고민에 빠진듯 멈칫- 하고 섰다가 이내 다시 몸을 돌려 차쪽으로 향했다.
성우가 집에 조심히 잘 들어가는지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민현이 다가오는 성우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창문을 내렸다.
“아무래도 이건 저보다 황형사님이 잘해주실것 같아서요. 저 멍청이, 분명 이번일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을게 뻔한데, 위로 좀 잘해주세요.”
그런 성우의 말을 공감한다는듯 작게 웃어보인 민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우가 몸을 낮게 숙여 조수석에 앉아 있는 여주를 바라봤다.
“대놓고 말하는건, 들으라고 그런거에요.”
이제는 속이 좀 시원하다는듯 “고생하세요.” 하는 인사를 남긴 성우가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이제 단 둘이 남았음에도 달달한 분위기는 커녕 서로가 생각에 잡혀 다시 한번 정적을 불러냈다. 그리고 그 정적은 얼마가지 못해 도착해버린 여주의 집에 곧바로 물러났다.
차가 멈춰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주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런 여주를 기다려주던 민현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여주를 답답하게 옭아매고 있는 안전벨트를 부드럽게 풀어냈다.
“저 경찰서에 좀 데려다주세요.”
"너 10분전에 퇴근했어."
"거기 있는게 몸도, 마음도 편해서 그래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여주를 바라보던 민현의 눈이 살짝 찌부려졌다. 살짝 한숨을 내쉰 민현은 곧바로 차에서 내린 뒤 빙 돌아 조수석 문을 열고 단호하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여주를 차에서 내리게 끌어당겼다.
그런 민현의 반응이 놀랍지 않다는듯 여주의 표정엔 미동하나 없었다. 하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힘드시면 택시로 갈게요."
민현의 대답은 들을 생각도 하지않고 꾸벅 인사를 건넨 여주가 먼저 뒤돌아섰다.
먼저 등을 보이는 여주의 행동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듯 긴다리로 휘적휘적 걸어 여주에게 다가간 민현이 살며시 뒤에서 여주를 안았다.
부드러운 움직임이었지만 여주를 안아오는 손길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오늘만, 딱 하루만. 너무 힘들었잖아, 그러니까 오늘밤만 편하게 쉬자. 응?"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귓가에서 부드럽게 속삭이는 민현인데, 어떻게 안 따를 수 있을까.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맞춰 걷는 민현의 발걸음이 단호하던 여주를 어느새 집앞에 다 다르게 했다.
결국 등 떠밀리듯 현관 비밀번호까지 누르자 기다렸다는듯 복도에 불이 켜지고 문이 열렸다.
그러자 여주의 눈앞에 아직은 어둠에 그을린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모자를 눌러쓴것만 같은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꽉 말아진 주먹과는 다르게 눈에는 눈물이 잔뜩 차올랐다.
이대로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릴것만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어둠으로 부터 뒷걸음질을 쳤다. 한발, 두발 멀어지던 발걸음이 어느새 빠르게 달려 민현의 앞으로 향했다.
"집에, 혼자 있기 싫어요 ....나 무서워요."
두 눈 한가득 눈물을 머금은 여주가, 웬만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않는 여주가, 눈에 한가득 힘을 주고 자신에게 말해왔다.
그 낯선 모습에 심장이 쿵- 하고 아래로 떨어져버린것만 같은 느낌에 민현이 곧바로 여주를 품에 안았다. 습관처럼, 또는 보이지 않으니까 울어도 괜찮다는 민현의 따뜻한 마음처럼 큰손이 머리를 감싸 안았다.
여주가 많이 힘들텐데, 마음이 아플텐데. 계속 그 마음만 짐작하려 했지 왜 한번도 여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질 않았을까. 혼자있는 그 공간이 휴식의 공간이 아닌, 두려움의 공간이었을텐데.
바보처럼 이제야 깨달아버린 죄책감에 민현의 눈에도 살짝 미안함이 고였다.
***
"먼저 씻을래?"
자신이 말해놓고도 이상한 말투에 민현이 당황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런 농담을 할 힘도 없다는듯 여주가 살짝 입꼬리를 올려보이곤 먼저 화장실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
조용한 집안에 물소리가 울려퍼지고 자신은 뭘 하면 좋을지 몰라 집안을 방황하던 민현의 발걸음이 화장실앞에서 천천히 멈추어섰다.
화장실 타일에 아프게 떨어지는 물소리를 뚫고 여주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작게 흐느끼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커져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도록 잡아먹을것만 같은 오열로 변해버렸다.
너무도 서럽게 울다가도 억지로 그 울음을 삼키려는 행동이 느껴져 화장실 문앞에 서있던 민현 마저 등을 돌려 기댄채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아픔을 대신해주진 못해도 최대한 가까이서라도 함께 하겠다는듯 문에 기대어 앉은 민현이 애써 고개를 하늘로 들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등돌려 주저앉은 두사람의 눈물이 서럽게 흘러내렸다.
"저녁 못먹었잖아. 뭐라도 먹어야지."
"괜찮아요, 입맛이 없어서."
"그래도..."
밥투정을 하는 남편과 부인이 서로 뒤바뀐듯, 앞치마를 둘러맨 민현이 뭐라도 먹어야한다며 여주를 꾀어내려했다.
"내가 밥 해줄게. 딱 한숟갈이라도 먹자, 응?"
"황형사님 요리 못하시잖아요."
"...... 김치찌개는 할 수 있어."
손에 국자를 들고 다짐한듯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민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주는 그런 민현을 바라보다 마시던 물을 내려놓고 거실의 쇼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 모습에 민현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듯 결국 앞치마를 곱게 벗어두고는 여주가 있는 쇼파에 걸터앉았다.
그런 모습마저도 미워할 수 없게 축 쳐진 여주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일이 터지고 여주는 웃음은 커녕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듯 고개를 푹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민현이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성우가 한 말 처럼,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자책만 하지마."
"........"
"우산을 쓰고있다가, 우산이 바람에 날아가게 되면 그 비를 맞게되는건 당연한거야. 물론, 비에 젖겠지. 춥겠지. 근데 반드시 비는 그치고 언젠가 태양은 떠. 지금 이 비도 너무 차갑고 춥지만, 곧 지나갈거야."
최대한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민현과는 다르게 고개를 든 여주의 눈은 그저 공허하기만 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내가 언제나 다 막아줄 수 있는 지붕이 될게. 그러니까 여주 너는 나한테 숨어서 기대기만 해."
평생을 약속하는 프로포즈처럼, 내가 너를 지켜줄게라는 멋진 대사가 길게 늘어졌다. 어떤 비라도 막아줄것만 같은 민현의 든든함에 오히려 여주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형사님은 안 힘들어요? 힘들잖아요. 나보다 더 힘들고, 괴로울거잖아요. 반장님이랑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만데, 둘이 서로에게 갖는 그 믿음이 얼마나 컸는데.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아파해야 맞는거잖아요. 근데 왜 계속 나만 챙겨요? 왜 괜찮은척, 멀쩡한척 그렇게 있어요?"
"........"
"........하, 따지듯 말해서 죄송해요. 미안해서 그랬어요, 먼저 잘게요."
꾹꾹 억눌러왔던 감정을 토해내듯 말하던 여주가 이게 아니라는듯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내쉬더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자신도 힘들거면서 티하나 내지않고 자꾸만 자신을 챙기려하는 행동이 또 다른 미안함을 가져와서, 그래서 더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게 민현에게 짜증으로 표출되어 버렸다.
고맙다고 말하고, 말해도 모자란데 그런 말은 커녕 역으로 화를 내는 꼴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민현의 표정에는 슬픔 속에 또 걱정이 가득해서 마음이 아렸다. 정말, 끝까지 미안하게 만든다.
이대로라면 걷잡을 수 없이 미안해질것만 같아서, 차라리 민현이 화라도 내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사람이 아닌걸 알아서, 여주가 먼저 침실로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슬픈 표정을 한 민현이 고개를 숙이곤 팔을 잡아왔다. 그 팔에 제법 힘이 서려서, 민현이 온힘 가득 감정을 참아내고 있음이 느껴져서, 여주 자신도 모르게 마찬가지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괜찮아야해."
"........"
"어릴 때, 아버지가 출장가실때면 항상 날 보고는 '내가 없으면 네가 이 집의 가장이다.' 그러셨어. 근데 반장님이 딱 그러더라. 매번 '내가 없으면 민현이 네가 나 대신이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어. 내가 반장님만큼 일을 잘하지도, 리더십이 뛰어나지도 않은데,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이 뭔지는 알겠거든 ......팀을 지켜내야 한다."
"........"
"그래서 난 견뎌야해. 이 악물고 어떻게 해서라도 버텨낼거니까, 여주 너는 그냥 나한테 기대서 편하게 쉬어. 나는 괜찮을거니까."
여주를 잡고 있던 민현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그런 민현의 마음을 몰랐던건 아닌데, 지금 모습이 위태위태 힘들어보이면서도 든든해보이는 민현이라서 여주의 눈이 흔들렸다.
오늘 따라 유독 더 무거워 보이는 민현의 어깨를 여주가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그 작은 품으로 민현을 끌어안자, 민현 또한 천천히 여주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가끔은 이렇게 나한테 기대도 돼요.
여주의 작은 손이 민현의 넓은 어깨를 작게 토닥였다.
***
고요한 적막속에 두사람의 발걸음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서로의 발걸음 속도에 맞추어 걷고 있을만큼 서로를 배려하지만, 머리속은 각자의 생각으로 복잡했다.
익숙한듯 오피스텔 앞에 다다르자 이 타이밍을 기다렸다는듯 동시에 "저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늘 배려투성이 이던 민현이 이번에도 여주에게 먼저 말하라고 따뜻하게 말할것 같았지만 이번만큼은 이 말을 먼저 해야겠다는듯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여주야."
"우리 헤어져요."
"......."
하지만 민현이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다는듯 여주가 민현의 말을 자르고 먼저 말을 꺼냈다.
당황스러운 말에 민현이 뒷통수를 한대 세게 맞기라도 한듯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지만 두 사람 다 다른의미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끝에 차갑게 돌아서려는 여주의 팔을 민현이 힘겹게 잡았다.
"여주야.."
"더 이상 감정이 없어요. 이렇게 손잡아도 안설레고, 바라봐도 이제 안떨려요. 제가 황형사님 이제 안좋아한다구요."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듯한 말에 민현의 손이 스르륵 풀려 여주를 놓았다. 하지만 눈으로는 여전히 그녀를 쫒았다.
하얀 볼을 타고 누구의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드러운 달빛도 저문 새벽, 민현이 여주의 끙끙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신의 팔을 베고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자고있던 여주가, 어느새 이마에는 송글송글 식은땀이 맺힌 채 나쁜 꿈을 꾸기라도 하는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괜찮아, 다 꿈이야. 나 여기있어. 하며 여주를 깨우려던 민현의 손이 멈칫 하더니, 이내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꾸는 꿈은 일반적인 꿈이 아니니까, 그걸 알기에 쉽게 잠을 깨울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민현이 더욱더 꽉 여주를 끌어 안았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 너를 지켜주겠다고.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깝게 닿기를 바라면서 더욱더 세게 끌어안는 민현이었다.
***
간밤에 꾼 이해할 수 없는 꿈 때문에 그 무엇보다 포근하던 황형사님의 품에서 아침을 맞았음에도 온몸이 뻐근했다.
그 꿈속의 여자는 분명히 나였고, 내가 내입으로 황형사님에게 헤어짐을 고하고 있었다.
분명 나인데, 내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대체, 왜?
"여주야, 김치찌개 다 끓였어. 얼른 와."
저렇게 사랑스러운 남자를? 에이, 말도 안 돼. 다른 이유가 있겠지. 예를 들어 몰카라던가...몰래카메라라던가...깜짝카메라라던가....
이런 저런 생각은 머리 끝에 맺혀있던 물기와 함께 가볍게 털어버리고 머리를 말리던 드라이기를 정리했다.
제법 익숙하게 늘어진 선들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익숙한 손길이 등뒤에서 따뜻하게 나를 안아왔다.
"뭐에요, 가려고 했는데."
"보고싶은사람이 와야지, 별 수 있나."
어깨에 얼굴을 괴고는 입술을 삐쭉이며 귀엽게 부리는 투정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일 모레 서른인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거야?
코끝을 감싸는 비누향에 허리를 감싸안고 있는 손을 풀고 뒤로 돌아 듬직한 넓은 품으로 안겼다. 출근시간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는거구나.
몇일 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죄책감과 두려움도 이렇게 황형사님 곁이라면 그늘에 들어선것 처럼 괴로운 마음도 느껴지지 않았다.
"읏차,"
아침부터 힘자랑이라도 하듯 나를 번쩍 안아올린 황형사님 때문에, 저절로 황형사님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았다. 이런 황형사님이, 지금이 너무 좋아서 불안한 미래가 다가오더라도 놓치지않겠다는듯,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말만은 하지않을거라는 마음으로 더 깊게 얼굴을 묻었다.
그런 내가 무겁지도 않은지 긴 다리로 아무렇지 않게 부엌까지 나를 안아들고온 황형사님은 아침이 예쁘게 셋팅되어있는 식탁의 끝에 나를 살짝 내려놓았다.
"밥값은 하셔야죠?"
그리고는 능청스럽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톡톡 가리키는 손짓에 웃으며 짧게 입술도장을 남기자 그제야 만족한다는듯 의자에 앉혀 손에 수저를 쥐어주는 황형사님이셨다.
그 뒤로도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고기란 고기는 죄다 골라서 나의 밥그릇 위에 올려주는게 큰 행복인냥 웃음짓고 있는 황형사님을 바라보다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황형사님도 얼른 드세요, 제가 먹을게요."
"황형사님 말고."
"말고...?"
"오빠."
오빠라니. 다른 형사님들도 언제까지 그렇게 딱딱하게 형사님이라 부를거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선배님, 그리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형이라고 부르는게 다였다. 그런 나에게 오빠라니.
으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못해.
애초부터 밥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듯 수저도 들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황형사님의 눈길에 아무래도 더이상은 밥을 넘기지 못할것 같았다.
결국 하,하, 하는 어색한 웃음소리와 함께 슬쩍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번엔 또 그 토끼같은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황형사님이었다.
"잘먹었습니다!"
"밥은, 다 먹은거야?"
금세 식탁을 정리하고 온 황형사님에게 간지럼 고문을 받으면서도 오빠라는 말은 못하겠다며 서로 아웅다웅 실랑이를 벌이다,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치카치카 양치도 하고, 가방에 잔뜩 들어있던 옷 중 가장 말끔한 옷을 꺼내 출근복장으로 갈아입고 함께 신발장에 섰다.
"너무 놀았나봐, 이러다가 늦겠다."
늦을것 같다면서도 내가 신어야하는 신발을 신기 편하게 내쪽으로 돌려주는 황형사님의 일상적인 매너를 보다 문득, 결혼한 신혼부부의 생활이 이런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밤 같이 잠이들고, 따사로운 아침을 함께 맞이하고, 전쟁같은 출근시간에도 틈틈이 달달하고. 그렇게 출근해서 하루종일 일에 치이다가 집에 돌아와서 가볍게 맥주 한잔 기울이며 오늘 하루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그런게 결혼생활이라면, 그 사람이 황형사님이라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여주야?"
"네?!"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빠져 황형사님과 결혼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가, 눈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황형사님에 깜짝 놀래 마치 내 생각을 다 들켜버린 사람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느,늦겠어요. 얼른 가요."
"잠깐만."
"네?"
"집도 빌려줘, 밥도 해줘, 게다가 내 팔베게 되게 비싼데."
이번엔 또 무슨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그래서? 바라는게? 뭔데요? 눈으로 수없이 질문을 던지자 부끄럽다는듯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웃음짔던 황형사님이 지긋이 두눈을 감고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뽀뽀."
그런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데. 예쁘게 눈을 감고 내민 입술에 살며시 내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짧게 쪽 하고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웠지만 잠깐의 입맞춤에도 느껴지는 상큼한 향기가 서로 입에서 함께 난다는 사실이 또 한번 설레였다.
"다음에는 더 비싸게 받아야지."
***
아무도 신경쓰진 않지만, 굳이 굳이 5분간의 텀을 두고 입장해야한다는 의견이 일치하는 탓에 민현이 주차를 할 동안 여주가 먼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반장님의 장례도 마무리 되고, 오늘부터 그 범인을 중점적으로 수사해야하기 때문에 무거울줄 알았던 경찰서 내의 분위기는 척 봐도 무슨 화제거리가 있는듯 모두가 수근거리기 바빴다.
"야, 옹성우. 무슨 일 있어?"
"후. 대낮도 아니고 아침부터 술이 땡기긴 처음이네."
"왜,왜?"
아침부터 잔뜩 열이 올라있던 성우가 제 분에 못이겨 서류파일을 탁- 소리나게 책상에 던져놓고는 마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담배를 꺼내들며 하형사님과 눈빛을 주고 받았다.
분명 출근 전에 피고 들어왔을텐데, 출근 하자마자 또 담배를 피러나갈만큼 화가 나는 일인가? 우리팀 뿐만 아니라 다른팀도 군데군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거 보면 제법 큰 일 같긴 한데, 도대체 무슨일인건지.
이 일을 설명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조용히 눈을 굴렸다.
함께 담배를 피러 나가는 하형사님과 성우를 따라 나갈까? 에이, 그러다가 쓸데없이 하형사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쏟아질게 뻔했다. 그럼, 혼자 앉아서 궁시렁거리고 있는 윤형사님? 이것도 아니야. 괜히 우울의 끝을 달리는 윤형사님을 건들였다간 함께 마주보고 앉아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화가나 욕을 늘어놓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어, 출근했네요. 좋은아침."
그래, 너다.
.
.
.
내 눈빛이 심상치 않은지 아침부터 한가득 복사본을 만들어 들고오던 다니엘이 불안한 직감을 느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 다니엘 대신 품에 들린 종이들을 책상에 내려놓고 다니엘을 의자에 앉혔다. 무슨일이야, 대체.
"아니, 그니까, 그게...아, 우째 말해야되노."
"빨리 말해봐."
말을 꺼내기가 힘든듯 머리를 긁적이는 다니엘의 손을 내가 대신 잡아서 내리고는 빨리 다니엘을 재촉했다.
"그, 반장님 돌아가시고 자리가 공석이잖아요. 그니까 누가 그 자리에 들어가야되는데..."
"당연히 황형사님 아니야?"
팀 내에서도 반장님이 없으면 늘 대신 업무를 처리하던게 황형사님이고, 반장이라는 자리가 그 팀원들과 하나로 마음이 잘 통하고 어우러져 이끌어가는게 기본이니 누가 봐도 반장님의 자리는 황형사님이 올라가야 맞았다. 게다가 얼마 뒤에 승진시험도 앞두고 있고, 그렇게 당연한 이야기가 지금 왜 나오는건데?
"그니까, 당연히 황민현아니냐고. 황민현 아니면 그 자리에 올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지금이 무슨 80년대, 90년대야? 민중이 지팡이가 가장 투명하고 공정해도 모자를판에 혈연? 청장님 아들? 이게 말이야, 방구야."
분명 조용히 다니엘을 재촉했는데 언제 왔는지 모를 윤형사님이 갑자기 뒤에서 등장해서는 흥분한 채 속사포로 말을 뱉어냈다.
아니, 그러니까. 대충 정리하자면, 황형사님이 당연히 올라가야 할 반장님의 자리에 갑자기 대뜸, 청장님의 아들이 온다. 지금 이 말인거야?
복잡한 머릿속에 완벽히 다 정기되기도 전에 등장한 황형사님 때문에 다니엘이 급하게 흥분해있는 윤형사님의 팔을 두드렸다. 황형사님이 왔으니 조용히 하라는 의미었다.
황형사님의 등장에 눈치를 보는건 우리만이 아닌듯 2팀, 3팀 할것 없이 모여서는 수근거리던 사람들이 황형사님을 보자마자 모두 급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황형사님이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다 웃으며 "좋은아침입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뒤를 이어 담배를 피고 돌아온 하형사님과 성우마저 자리에 돌아오자, 사무실의 모든사람들이 모니터를 바라보는척 얼굴을 고정하고 곁눈질로 황형사님의 눈치를 살폈다.
똑똑-
그리고 그 눈치싸움을 깨트리는건 열려있는 문에 노크를 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계장님의 등장이었다.
"자. 모두 전달 사항이 있으니, 집중."
모두가 올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계장님을 바라봤고, 계장님의 등 뒤에서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큰 키를 가진, 하얀 피부와 매서운 눈매를 가졌지만 호리호리한 체격 탓에 강력반에는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남자가 말끔히 제복을 차려입고 등장했다.
모두의 날이 선 시선에도 여유있는 웃음을 입에 건 남자가 중점의 목소리로 짧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반가워요. 강력 1팀 반장을 맡게 된 권현빈 경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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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쨔님들, 저번편으로 예쁜안티를 대량 생성한 작가입니다❤️
저번화에 저도 글쓰고 너무 경건해져서 오늘은 못한 말들좀 할게요!!
늘 그랬듯 별거아닌 잡담이지만👉🏻👈🏻 제가 저번 잡담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다보니 사건을 풀어가는게 오래걸린다고 말씀드린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반장님과 비하인드 스토리 였답니다 ㅠㅠ 그래서 많은 분들이 반장님이랑 여주 살려주실꺼죠?! 라고 하셨지만 아무말도 할수없었던...ㅠㅠ 근데 많은 독쨔님들이 진짜 울었다고 말씀해주셔서 전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변태같지만... 뭐랄까 그만큼 제 글이 감정이입이되고, 몰입이 되는 그런 글이라는 몸소 보여주는 칭찬같았달까요 ㅎㅎ 그치만 우리독쨔님들 이제는 울지마요 ㅠㅠ
그리고 추가로 또 설명드리자면! 제가 옛 에피소드에서 다니엘이랑 여주가 같은 주택의 아랫집, 윗집 사이였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시간이 오래지나기도 하고, 크게 비중을 두지않고 넘겨버려서 그런지 기억 못하시는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남매였던건지 오해하시는분들도 많아서 이렇게 오늘 탕탕! 알려드립니다 ㅎㅎ
근데 정말 독쨔님들 추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댓글로 그럼 반장님 자리가 비니까 이제... 로 시작해서 꽤 많은 추측들이 나왔는데 정말 소름돋게 전부다 맞추셨어요!!! 우리 독쨔님들 이제 하산하셔도 될것같습니다❤️
슬쩍,슬쩍 지나간 부분들에서 아직 남아있는 떡밥들이 있긴한데 다음부터는 글 마지막에 제가 그전 떡밥이 이것이었다! 하고 설명드릴게요 ㅎㅎ
그리고 이번에 제가 글을 연재하는 동안 가장 긴 시간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가진것 같네요. 허허허. 글 써야되는데 하면서 너무 바쁘기도 하고, 뭐랄까 살짝 지치기도 하는데 자꾸만 생각나는 독쨔님들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조금 쉬다가 왔어요 ㅎㅎ 감정선 유지하라고 해놓고 다 끊어졌네요, 그쵸? 사실 이번주가 시험기간이라 다음주는 되야 연재가 가능하겠구나 했는데, 맞아요. 시험기간에 뭔들 다 재밌잖아요? ㅎㅎ 그래서 미루던 글 얼른 들고왔습니다!
오늘 짠단짠단 글 잘 읽어주시고 모두들 시험기간이실것 같은데 다들 힘내요 우리!
(+저 답답해서 짤도 제가 만들어버렸어요, 헤헷. 그냥 찡얼,자랑 하는고에요)
❤️소중한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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