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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상하지만 운명 01


W. 꾸꾹이
 


 


 


 

 



'카페 플로르' 가 문을 열면 지옥이 시작된다.
영업 전,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로 너덜 거리는 허름한 간판을 가만히 올려다보니 피식 웃음만 나왔다. 말이 좋아 카페지 그냥 술집이다. 아, 그냥 술집도 아니지. 거래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여자를 구매해 하룻밤의 노리개로 삼아도 아무 문제 삼지 않는 그런 술집. 가슴이 훅 파인 저렴한 드레스를 내려다보다 조용히 양 손바닥으로 가려보지만 턱 없이 부족했다. 마치 내가 술집 년 따위라는 것을 가릴 수 없다는 걸 알려주듯.


" 엘리, 바빠죽겠는데 거기서 뭐 해? 4번 룸이야. 저번에 왔던 그 손님. 지갑 열어놓고 기다리더라. 들어가 봐. "


빗소리에 한창 젖어있던 나를 향해 쏘아대는 마담의 가래 섞인 고함에 살짝 움츠러들었다. 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같이 들었어도 귀에 익지 않는 목소리다.  4번 룸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난 직감으로 느낄 수 있다. 좁아터진 룸 안에서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리며, 바지춤을 부여잡고 있을 사람이 누구인지. 드레스룸에서 잡히는 대로 신은 구두는 뒤가 많이 남아 불편함이 온몸을 감쌌다.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들어가고 싶지 않다. 비가 와서 그런가.   


" 네. 가요 지금 "


뒤늦게서야 성의 없이 대답한 날 못마땅하게 노려보며, 혀를 끌끌 내둘렀다. 4번 룸으로 향하는 그 짧은 와중에도 1절 더 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서둘러 4번 룸 문고리를 휘었다. 마담의 걸걸한 목소리도, 시덥지 않은 시기 섞인 잔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 저 샹년, 돈 벌어다 주니까 참는다. 내가 " 방음도 좋은데 문이라도 닫히면 욕하지. 기분 더럽게


 "엘리, 15분이나 오버 됐어. 오빠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
 " 언제는 시간 맞춰서 온 적 있어? 다음부턴 늦게 오던가 그럼. "
" 피식, 그러니까 오빠가 엘리만 찾지. 이리 와. "


저의 무릎에 내가 자리하길 바라는 듯 두어 번 탁탁 치고도 내가 아무 반응 보이지 않자 눈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한번 흘긴다. 더러워. 뒤가 많이 남아 헐거운 구두를 거의 끌다시피 다가가 남자의 옆에 앉았다. 신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네. 상당히 못마땅한 듯 남자의 미간이 좁혀지고, 눈가에 기름진  주름이 살짝 졌다. 그 꼴이 보기 싫어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고 반쯤 남은 양주 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 깍쟁이. 오빠 다리 불편할까 봐 그랬어요? 자 술 받아 술 "


남자는 아프지 않게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피할 타이밍을 놓치고 그대로 받아줬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위해 웃어주고 몸을 내어준다는 건 지독히도 힘든 일이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밥 먹듯이 해왔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술은 나에게 사람답지도 않은 이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무언가였고, 당장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사실 술이라면 세상에 나만큼 증오하는 사람이 또 있었을까. 아버지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그분은 술을 사랑했다. 토끼 같은 자식도 여우 같은 아내 보다 더. 그 술은 그를 타락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술, 도박 그리고  남겨진 빚. 엄마는 지켜야 할 게 많았고, 그래서 엄만... 내 손을 가장 먼저 놓았다.


1억에 가까운 빚더미는 나와 아버지를 사지로 내몰았다. 빚에 시달리던 와중에도 아버지의 도박은 이어졌다. 도박으로 잃은 모든 걸 도박으로 되찾겠다는 멍청한 생각 때문에.  아버지에게 남겨진 건 집도, 차도, 땅도 그 어떤 것도 아닌 겨우 빚과... 나..

아니다,  나도 이제 이곳에 버렸으니.. 이제 빚만 남은 건가..


" 엘리의 살냄새를 맡으면 딴 년한테는 못 간다니까. "
" ... ... ... "
" 이 바닥에서 자연산 찾기가 얼마나 힘들지 알아? 다른 술집에서 겉 돈 시간과 돈이 아까워. "
" 당신 돈 많지. "
" 그럼, 평생 너 하나 모실 돈은 있어. 왜 오빠한테 시집오게? "


끈적한 다음 단계를 간절히 원하는듯한 남자는 듣기 거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내 허벅지를 쓸어만졌고, 점점 깊숙하게 들어오려는 손길에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남자의 손등을 소리 나게 내쳤다.


" ...호텔로 가. 아니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던지. "



                                                                                    
         *                    *                    *



" 최대한 가까운 호텔로 가주세요! "

택시를 탔다.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의 낯 빛은 점점 보기 힘들어질 정도였다. 급할 만도 하지. 옷만 벗기면 게임이 끝나는 상황에 끌려 나왔으니.  빗물이 맺힌 창밖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기에는 심하게 다리를 떠는 남자로 인해 전해져 오는 진동이 굉장한 방해였다. 남자를 살짝 노려보기만 할 뿐 따로 입을 열거나 하지 않았다. 오랜만의 외출이다. 특히 비가 오는 오늘 같은 날 많이 드는 생각.

도망치고 싶다.


" 도착했습니다. "
" 엘리, 내리자. 다 왔..."  
 "여기 싫어. 다른 데로 가. "  
" 아 시발. 지금 장난해? 호텔이 다 거기서 거기지. 빨리 내려. "
" 플로르로 다시 가던지 "


반쯤 열렸던 택시 문이 다시 닫혔다. " 최고급 호텔로 가주세요! 우리 엘리가 좋아할 만큼 " 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힐끔거리던 운전기사는 좋지 못한 시선으로 우리를 쳐다봤고 나지막이 욕을 지껄였다. 택시가 다시 한번 부릉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택시가 도착한 곳은 플로르와 거리가 한참 되는 어느 지점이었다.  최고급 호텔이라는 명성에 어울릴 만큼 그 외관은 너무도 화려하다 못해 눈부실 만큼이었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카페 플로르와 너무나 비교되는 이곳은 내게  꽤나 이질적이게 다가왔다.  호텔 로비에서부터 풍겨오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나와 어울릴 리가 없었기에  목 언저리부터 올라오는 화끈거림에 얼굴이 저절로 바닥을 향했다.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가 호텔 룸 키를 받아왔고, 강하게 내 손목을 잡아끌더니  엘리베이터 안으로 나를 구겨 넣었다. 구두 굽이 바닥에 내리꽂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게  로비에 울려 퍼졌다.


" 25층. 전망이 죽인데. 좋지 엘리?"  벌써부터 허겁지겁  벨트를 풀어헤치며 헉헉 거리를 숨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고, 난 남자로부터 등을 돌린 채 야경이 훤히 비치는 엘리베이터 창밖을 응시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난 찬찬히 남자의 뒤를 따랐다.  남자가 어느 방 문 앞에 서서 카드키를 가져다 대자
장금 장치는  '삐빅 ' 초록불이 아닌 빨간불을 띈다.   



" 뭐야 시발. 왜 안돼!"
" ... ... ... "  

 
 
난 조용히 지켜만 봤다. 남자는 계속해서 카드를 가져다 댔지만 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불빛은 빨간색을 띠었다.  성욕에  눈이 먼 남자는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었는지 신경질적으로 만 행동할 뿐 호수를 다시 살필 생각은 1도 없어 보였다. 카드에 적힌 호수는 2509호. 문 앞에 붙혀져 있는 마크는 2019호. 잘못 왔다.

목 주변을 시작으로 붉은기는 얼굴 전체를 감쌌고 그 모습은 마치 성냥개비와 같은 형상이었다. 난 남자를 제어하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가만히 기다렸다. 어쩌면 저 남자가 폭발하기를 기다렸을 수도. 정말 재밌는 광경이 되었을 텐데.   



 " 뭐 이런 거지 같은 호텔이 다 있어!! 좆같네  "
 
 
남자는 신발 앞 코로 문을 거세게 내리쳤다. 발악에 가까운 발정에 옭매인 남자는 이성을  완전히 잃기 바로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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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뭡니까."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꽤나 젊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나이는 내 또래쯤이나 될까.   말끔하게  넘겨진 머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의 눈망울은 순수함과 매서움 그 중간쯤을 넘나들고 있었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기에 그의 단잠을 방해했을 거라 나는 예상했고,  방  주인의 한껏 휘어진 짙은 눈썹은 그가 충분히 화가 났음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 아 시발 뭐야. 여기 아니야? 재수가 없으려니까. 괜히 시간 낭비했네. 가자 "
 " 거기 서. "
 " ... ... ... "
 " 거기 서라고 했다. "
 " 섰다. 뭐. 사과라도 하라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병신같이 잘못 와서 지랄하고 가서 아이고 죄송합니다. 됐냐? "

 
뭐 낀 놈이 성낸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누가 봐도 이쪽의 잘못이었고, 무례였다. 사과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사죄가 마땅했다.     
비꼬는 말투에 장난스러운 몸 인사까지 아주 최악. 아마도 저보다 어려 보이니 대충 얼버무리고 마려는 눈치였지만, 짝다리를 집고 피식 웃는 남자의 눈은 장난 없이 매서웠다.




 " 아나, 미친 새끼. "  
 " 야. 뭐라 했냐? 뭔 새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의 새끼가. 몇 살이야 너!! "  
 " 내가 몇 살인지는 그쪽이 알바 없고. 내가 원래 이런 꼬락서니를 보면 참는 성격도 아니고, 호텔 더러워지는 꼴은 더 못 보고. "
 " 말하는 싹수 봐라. 야! 전화 안 꺼!!"


난 뒤늦게야 열린 그의 방문 뒤로 몸을 숨겼다. 방주인의  정신은 미친 듯이 펄쩍 날뛰는 남자에게 팔려 있었고, 내  얼굴 팔려서 좋을 것 없는 상황인데다가, 난 저 상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도망가려고 했다. 나 하나 사라져도 모를 상황이었다. 문 뒤로 숨어들었을 때 남자는 전화를 꺼내든듯했고 이 와중에도 난 그가  어디에 전화를 하는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 난데. 호텔 물 관리 이따위로 할 거야? 개나 소나 다 받아주면 그게 호텔이야? 여관이지! 지금 내 방 앞에서 누가 와서 지랄하는지 알아? 아 됐고. 올라와서 이 쓰레기 당장 치워. "

 
 
듣는 쓰레기는 상당히 기분 나쁠만한 전화 내용이었다. 살짝 충격을 받았다. 아마도 경찰서에 신고를 하거나, 호텔 프런트에 항의 전화 따위로 끝날 줄 알았는데 마치 자신이 이 호텔이 무엇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한 전화가 아니겠는가. 어버버어버버 아무 말도 못 하던 남자는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리고 이 자리, 이 상황을 달아나려고 할 때쯤 마침 좋게 경비원들이 들이닥쳤고, 재수 없게 나 또한 도망칠 시기를 놓쳤다.   

 
"이 남자 당장 치워버려. 경찰에 넘기든지 함부로 호텔에 들어온 죄 같은 거로. "  
" 죄송합니다. 사장님. "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사장님이라고 했다.  나 역시 양 팔을 경비원들에게  내어주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발버둥 쳤다.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곱게 따라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경비원들은 가차 없이 날 힘으로 제압했고, 난 통증에 몸서리쳤다. 난 질질 끌려가는 신세를 모면하지 못했고 구두 두짝은 내 발과 점점 멀어졌다. 이 구두를 신는 게 아니었는데. 멋없게.  

 
 " 이봐요! 잠깐... 이것 좀 놔주세.. "
" ........ 잠깐 "  
 

 
문턱에 고리를 걸어 복도로 걸어 나온 남자는 내 비명에 가까운 처절한 고함에 끄떡도 없던 두 경비원이 남자의 잠깐이라는 말에 곧바로 멈춰 섰다. 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씩씩댔다. 난 남자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남자는 날 쳐다보고 있다.

 

 " 내가 여자까지 치우라고 했던가. "
 "  ... 예? "  
 " 내 기억으론 저 남자 치워-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 아.. 아 그랬습니다. 사장님. "
" 알았으면 그 손 놔. "


경비원은 내 두 팔을 빼줬지만, 배려는 없었다. 난 그대로 바닥에 내팽겨 쳐졌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닥에 주저 앉혀졌다. 발등이 쓸려 벌써 빨갛게 부어올라 오는 게 보였다. 더럽게 아프네. 남자는 성큼성큼 내게 걸어왔다.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 앉은 채 남자를 올려다볼 뿐 난 아무것도,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죄송하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는 어느새 내 코앞으로 다가왔고, 여전히 그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있다.

 언제 주워왔는지 그의 한 손엔 내 구두가 쥐어져 있다.    
 


 


 


 


 


 


 


 


 

----------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신알신 부탁드려요~ 

피드백도 좋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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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미친.ㅡ......작가님 글 완전 제취향이예요.....영앤 리치 전정국 만만세ㅠㅠㅠㅠㅠㅠ
5년 전
독자2
꺅 다음편 기다릴게요!
5년 전
독자3
기다립니다 ㅠㅠㅠㅠㅠ 조아용
5년 전
독자4
좋아요 작가님 .. 사장꾹이 너무좋아요ㅠㅠㅠ
사실 사장정국이가 쓰레기치우라고했을때 여주도 포함인줄알았는데 완전 다행이네요 ! 첫눈에 반한건가 하핫 ~~~~!~!~! 얼른 다음편보고싶어요 ! 분위기에 치이고 정국이에 치여갑니당 (*´∇`*)

5년 전
독자5
ㄲ꺄ㅑ아ㅜㅜㅜㅜㅜ 담편 궁굼해요 ㅠㅠㅜㅜ
5년 전
비회원8.231
워메 제스타일의 글이군요 우리 작가님 사랑합니데이♡♡♡♡
5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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