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준형태] 가만히있으면중간이라도간다④
"잉? 형, 브래드 짐 다 어디갔어요?"
"브래드 방 옮겼어."
"왜요?!"
"밤마다 여자친구랑 통화를 두세시간씩 하는게 미안했나봐."
"흠… 그래요? 미안할 법도 하겠네요, 그정도 되면."
처음에 브래드가 방을 옮기면 어떻겠냐고 내게 말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브래드가 밤마다 여자친구와 통화를 길게 하는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일찍 잠이 드는 형태 같은 경우에는 배게로 귀를 막으면서 짜증을 내기도 했었고, 브래드가 통화를 할 때면 깨있던 나는 예의상 항상 방 밖으로 나가주었는데, 그게 많이 신경이 쓰였나보다. 그리고 키가 큰 브래드는 이층 침대의 길이가 그의 키보다 짧아 항상 다리를 굽히거나 침대 밖으로 삐져나오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 나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겐 아주 꼭맞는 침대였는데 말이지 - 해서 일인용 침대가 있는 방으로 옮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방은 형태와 나 단 둘만 쓸 수 있게 된다. 심장이 조금 더 신나게 발악을 하기야 하겠지만, 이제까지 그래왔는데 뭐 어떤가.
"형, 안 졸려요?"
"나? 안 졸린데. 너 먼저 자. 나 이거 편곡 좀만 더 해보고."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나도 잠이 안 오네."
"그래? 그러면 베이스 연습이나 하다 자던가."
"에이… 그러면 지금 다른 방에서 자는 형들이 화낼껄요? 그렇다고 지금 연습실에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쵸?"
"…뭘 바라는데."
"야.간.도.주"
미쳤구나 김형태. 야간도주라니. 아무리 편곡이 어렵고, 합숙생활이 힘들다 해도 야반도주라니. 야반도주를 하면 우리 팬들은 우릴 어떻게 볼 것이며, 제작진 분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욕을 하실 것이며, 형들이랑 투개월 애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술 한 잔 하고 올까요?"
"뭐라고…?"
"몰래 술 마시고 와요, 우리. 크리스티나 누나 갈 때 먹은 맥주가 너무 맛있었나 요즘 자꾸 맥주가 땡기네요. 히히."
"야간도주라며. 그거는 아예 도망가자는 거잖아."
"어떻게 TOP3 공연을 앞두고 도망을 가요. 형도 생각하는거 하고는 참~"
니가 어휘 선택을 잘못한거야, 김형태. 내 탓 하지마.
"갈까요? 가요? 진짜 가면 안돼요~? 아아아아이 혀어어엉~"
"가자, 가! 그래!!! 가자!! 하하. 니가 원한다면야."
형태야, 니가 그렇게 애교를 부리면 형은 진짜 미칠 거 같다는 거 넌 모르겠지. 그래… 널 좋아하는 내 잘못이지… 그래, 다아아~ 내 잘못이다아~
*
시간도 시간이니만큼 그렇게 마스크나 선글라스로 중무장을 할필요는 없다고 느끼면서 숙소를 나왔다. 지금까지 확인을 안해봐서 그렇지, 그렇게 경호나 감시가 엄하지는 않았다. 진작 이 전에 한번 나와볼껄 그랬다. 그나저나 이 주위에 술 마실 데가 있던가. 꽤 합숙 생활을 오래 했는데, 이 주위의 지리가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여기서 쭉 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안주 많이 주는 싼 데 있어요."
야… 너 뭐야…
"에이… 그렇게 쳐다보지 마요~ 다 알 수 있는 법이 있으니까. 아 물론 제가 형 허락도 안 받고 나와본 건 절대 아니구요! 히히. 아 신난다!"
신난다며 벌써 저 앞으로 뛰어가는 김형태. 뭐가 그리 좋을까. 참… 가끔은 알다가도 모를 그런 애, 김형태.
*
"형아~ 여기 A세트요!"
"네,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저 사람은 너 모르잖아. 근데 누구 맘대로 니 형아야. 진짜 김형태…
"아 형… 우리가 아무리 버스커버스커 하면서 떴다 하지만 이렇게 무방비상태로 있는데 아무도 못알아보네. 피…"
"그러게… 크크"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오고, 그닥 술이 땡기거나 하는 날은 아니어서 입 축이는 정도로 천천히 마시고 있는데… 김형태 저거저거. 벌써 500짜리 하나 비웠다. 날 잡았구나. 지갑에 돈도 별로 없는데. 젠장. 여기서 슈퍼스타카드 긁으면 여기 나온거 걸리고, 아 진짜… 마실꺼면 안주도 먹으면서 마시든가, 술만 저렇게 벌컥벌컥 마셔대면 더 취하는데…
"안주도 먹어, 바보야. 내가 너 업고 갈 일 없게 하라고."
"에히~ 그럴 일 없어요, 없어어…"
"눈 풀렸다. 너. 어묵국물 드링킹 실시."
"히히 실시!!!"
안 뜨겁나?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캬 목울대 봐라 환상이네 환… 아오. 미친… 매번 겪는 일이지만 내가 김형태 목울대를 보면서 침을 삼킬 때면 나는 내 성정체성에 대해 심히 고민을 시작한다. 나도 목울대라는 게 있으며, 심지어 밑에 같은 거 달고 있는 놈을 향해 침을 삼키는 꼴이라니…
"혀엉~ 형은 왜…"
"으, 응… 말해."
"왜… 예림이가 좋아요?"
급 진지해지는 분위기에 잠시 식겁한 내가 병신이지. 저렇게 병신같은 질문 할 거였으면 분위기를 왜 이렇게 만들어. 예림이랑 러브라인이 컨셉이라는 건 저도 뻔히 알면서.
"뭐라냐 너 지금. 500 겨우 하나 마시고는 취했구만. 그냥 지금 바로 숙소 갈까?"
"뭐라냐 형 지금."
이게 진짜.
"싫어요~ 오늘 내가 형한테 궁금해 했던 거 다~ 물어보고 갈꺼야. 그러면 오늘 밤으로는 부족할지도 몰라요오…"
"많아봤자 예림이 얘기 같은 말도 안되는 얘기 할 꺼면 그냥 관두는게 좋을 듯 싶은데."
"싫어싫어. 아 왜 대답 안하고 말 돌려요!!!! 예림이가 왜 좋냐니까?!!!"
"허 참… 내가 언제 말을 돌렸어? 대답할 가치 없는 질문은 내가 패스할 거야. 다음 질문."
"아 그런게 어딨어어어어!!!!!!!!!!!"
가게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김형태. 그래 내가 졌다.
"아, 알았어… 그래 대답할테니까 조용히 좀 해."
"히히… 빨리~ 대답~"
"나 예림이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예림이랑 문자하면 맨날 웃고 있잖아요. 내가 모를 줄 알고…"
"진짜 아닌데? 겨우 그런 이유로 형을 의심하다니."
"정말요? 그럼… 다행이구요…"
장난스레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받아치고 있는 형태의 말투가 이상했다. 김형태의 말투도 설레어하는 표정도 뭣도 다 마음에 안들었다. 너…지금… 무슨말을 하려는거야.
"그럼 이번엔 내가 질문할거야. …너…설마…"
"아 벌써 말할 때가 된건가. 히힝… 이따가 말하려 했는데…"
"설마… 좋아해?"
"네… 좋아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 히히."
"예림이를…?"
김형태는 계속 실실 웃으면서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아니 쓰러졌다고 하는 게 맞는 건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김형태와 술을 마시러 오는게 아니었는데. 김형태가 술마시러 나가자고 할 때 순순히 애교에 넘어가는게 아니었는데. 이런 말 따위를 들으려고 이 곳에 온게 아닌데. 그동안 설마설마 하면서 그냥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생각이 현실로 일어나니 머릿속, 마음속에는 그 무엇도 남아나질 않았다. 형태가 예림이를 좋아한다니. 예림이도 형태 베이스 치는게 멋있다 멋있다 이야기 한적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가르친거라며 우쭐대기 바빴을 뿐이었는데. 예림이가 리허설 때 형태 베이스에 눈을 꽂고 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설마 서로 마음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씨발.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 같다. 씨발. 김형태 개새끼. 누가 이런데서 이렇게… 그런 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래… 그렇다고… 내가 널 좋아하지 않게 되는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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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저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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