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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그대야 안녕 4화 | 인스티즈 

 


 

 

 

 

BGM - 반짝이던 날들 (세레노)

 

 

 


 


 


 


 


 


 


 


 


 


 

4화 

: 용기 


 

 


 


 


 


 


 


 


 


 

 "아싸. 금요일이다아아." 

 "그러게.. 금요일이네." 


 

 

 고된 평일의 끝이자 각자마다의 휴일 전야제가 있는 날. 바로 지옥 같은 금요일이다. 쉬는 날을 이틀이나 견뎌야 하는 지독한 현실에 우울해져 손에 힘이 빠지니 샤프가 노트 위로 무기력하게 도, 르, 르, 굴렀다. 마음 같아선 학원비를 두 배로 낼 테니 제발 주말에도 학원을 열어달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물론 엄마 맘이 아닌 내 맘일 뿐이지만. 어차피 평일이든 주말이든 하루 대다수의 시간을 거의 다 공부에 할애해야 하는 건 똑같으니, 이왕이면 널 볼 기회가 있는 평일이 더 좋은 건 당연했다. 근데 참 주말이 될 때쯤이면 어김없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궁금증. 정국이는 분명 주말에도 계속 공부를 할 텐데 도통 어디서 공부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직접 물어볼 수도 없으니 난 휴일만 되면 애가 탔고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궁금해서 안절부절못한 맘도 있었다. 내가 다니는 독서실엔 이름이 없었고 나영이네 집 쪽에 있는 독서실에도 역시 없다고 했다. 이 녀석, 주말만 되면 어디 숨어있는 건지. 아, '숨어있다'라는 말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뒷목이 당기네. 어제는 그렇게 착각에 빠져 혼자 얼굴을 붉히다가도, 내 사랑엔 오뚝이 성질이 있는지 나도 모르게 수학 수업이 끝나고 다시 인사를 시도해볼까 했었지만.. 학원 종이 치자마자 우르르 정국이에게 다가가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여고 애들 때문에 그냥 홧김에 나와버렸었다. 거의 뭐 나한테서 정국이를 숨기는 것처럼 둘러싸기에 별 것도 아닌 걸로 견제당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 학원에서 막 나와 걸으면서도 어떻게라도 인사를 하고 나올 걸, 지금 다시 올라갈까 후회가 들었었지만 또 집에 다 올 때쯤이면 어느새 파워긍정 기운이 뿜뿜한 사람으로 바뀌어 언젠가 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희망을 가졌었다. 


 

 근데 하필 잊고 있었던 게 오늘이 벌써 금요일이라는 사실. 나영이 옆에서 3교시 쉬는 시간을 보내며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상기되는 사실에 기운이 빠졌다. 오늘 인사 못 하게 된다면.. 아 상상도 하기 싫어. 놓치면 무려 사흘이나 기다려야 하는 건 나에겐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처음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고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성과 달리 욕심이라는 건 배부를 줄 몰랐다. 허무하게라도 정국이의 말이 처음으로 나를 향했던 어제. 채워진 욕심에는 빈 공간이 더 늘어나 나도 모르게 말 걸어볼 기회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제는 학원 첫 날이었고 모든 상황이 낯설기에 불가능했다고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고서, 이제 오늘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오늘은 학원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알아서 찾아갈 수 있으니까 차근차근 적응해갈 일만 남아있었다. 이따가는 어제처럼 어리바리하게 굴지 않고 반드시 말을 걸어보겠단 다짐을 하는데 그러고 보니까 아 참. 오답 노트를 안 썼다. 정국이를 향한 직진 사랑과 홈쇼핑 심리가 맞물려 무작정 학원을 등록하긴 했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하루 만에 크게 덩치를 불리는 사심도 감당 못할 정도로 곤란한 일이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곤란했던 건 내 성적. 무슨 애들이 공부를 그렇게도 잘하는지. 내가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어제 같이 수업을 들었던 애들은 모두 너무 월등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정국이는 단연 1등이었는데 걘 정말 영어든 수학이든 모르는 게 없더라. 나도 정국이처럼 답을 다 맞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틀리는 개수를 받았던 어제 두 교시의 두 번의 시련. 현실은 영어나 수학이나 꼴등이었다. 그리고 잣 됐다고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 틀린 문제 모두 간략하게라도 써와야 하는 오답 노트 때문에. 방대한 양을 매일 써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답답해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 한 시간은 넘게 걸릴 텐데 이따 자습시간엔 내내 오답 노트만 써야 될 것 같다. 

 


 

 "수학 안 가?" 

 "가.." 


 

 

 막막한 기분에 젖은 대걸레처럼 책상에 퍼져있다가, 재촉하는 나영이 말에 느릿느릿 수학 교재를 꺼냈다. 반가운 정국이와 약간 반가운 정호석은 수학 상반에 있어, 내가 지금 갈 중반에는 없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제부터는 수학 공부도 열심히 하는 방법밖엔 없겠다. 그래. 어차피 했어야 했어. 

 


 

 "하.."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좀비처럼 털레털레 교실을 나오며 한숨을 쉬는데 복도를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빛. 내 맘도 모르는 하늘은 미울 정도로 참 맑았다. 


 

 


 


 

 


 


 


 


 

 석식 급식에는, 더위가 제대로 닥치기 전 마지막인 것 같은 뜨거운 우동이 나왔고 그 덕에 내 배는 면발로 퉁퉁 불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너무 많이 빨아들였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행복했으니 된 거였다. 불러있는 배를 탕탕 치며 설레는 걸음으로 정문에 딱 나왔는데, 정국이가 딱 없다. 급한 맘에 미친 기계처럼 흡입하고 오긴 했는데 시간이 많이 이른가 싶어서 확인하니 6시 20분. 이르긴 이른 시간이었다. 


 


 

 “큼..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촉박한 것보다야 여유로운 게 낫지, 많이 남은 시간도 다시 생각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혼자서 연습을 시작했다. 자습실에서 믿지 못할 속도로 오답 노트를 해치우고 나서 혹시 석식 먹을 때 정국이를 마주치면 어쩌나 그때부터 속으로 말투를 연습해오던 거였는데, 음. 역시 속으로 하는 것과 직접 해보는 건 꽤 달랐다. 맘속으로 해볼 땐 그래도 이정도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해보니 현실은 달랐다. 계속 연습해도 높낮이가 정리 안 된 것 같은 말투였고, 과하게 친한 척 하듯이 들려 스스로도 넌더리가 났다. 사실 친한 척 하는 건 맞는데 티가 나면 안 될 일이니 일단은 숨기고 봐야 했으니까.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들을까, 그렇게 한참을 눈치 보며 소곤소곤 연습하는데 오늘따라 정국이 기다리는 시간이 긴 것 같다. 정신없이 중얼거리다 멈추고 그제야 시간을 봤는데 6시 38분. 벌써 학원차 올 시간은 거의 다 돼가는데 정국이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젠 이것보다 더 일찍 나왔던 것 같은데. 오늘 학교에서 한 번도 못 본 탓에 혹시 무슨 일 있나 잠깐 걱정이 됐지만 마침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정국이는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반가움에 울음을 삼켰다. 


 


 

 “...” 


 


 

 어제 상황을 붙여넣기 한 것처럼 단어장을 보며 걸어오는 정국이는 어쩜 그렇게 시야마저도 넓은 아이인지. 자칫 넘어질 수도 있었지만 작은 돌들을 무리 없이 피해가며 가까워진다. 인사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엇.. 안녕!” 

 


 

 아, 좀 과했다. 결국엔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급하게 인사하려다 영구 같은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곧바로 후회가 돼 입술을 무는데 내 손은 또 언제 올라가 있었는지. 어정쩡하게 다 펴지 못한 손을 아차 싶어 바로 내렸다. 


 


 

 “..안녕.” 

 


 

 허망하게 날려버린 중요한 첫 기회에 속으로 울고 있는데 내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준 정국이. 미치게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있음에 믿을 수 없어 눈만 깜빡였다. 창피함이 몰려왔던 어제랑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에 어김없이 빨리 뛰기 시작하는 심장이 곤란해진다. 진작에 정국이를 볼 때부터 주체가 안됐지만 인사를 들으니 이젠 내 것이 아니었다. 얼떨떨한 기분에 가만히 굳어있다 급히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는데 그와 동시에 나처럼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정국이의 고개.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다시금 찾아온 어제 같은 정적. 부끄러운 걸 다 티내고 있을 볼따구와 흔들리는 눈동자 때문에 애써 바닥을 보고 있었을까. 금방 가까이 다가온 승합차 엔진소리에 ​달려가 먼저 문을 열었다. 그에 뒤따라 오는 정국이의 기색이 나만큼이나 서먹하다. 정국이도 낯을 많이 가리는 애였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내린 엘리베이터. 학원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설렘에 빠져있다 눈 뜨니까 여기였으니.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뒤에 있는 정국이를 엄청 의식하며 앞선 걸음으로 강의실로 향했다. 근데 순간 가면서 드는 생각이 ​영어 강의실이 2번이었나, 3번이었나. 멈춰 고민하기엔 지금까지 도도한 척 걸어온 게 있어서 그냥 가까운 2번 강의실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2번이 맞는 것 같았다. 


 


 

 “..여긴데.” 


 


 

 내가 문고리에 손을 올리기 무섭게 들리는 또 무미건조한 목소리. 나보다 몇 걸음 더 걸어가 3번 강의실 문을 막 열고 있었다. 아마 날 힐끗 보고 잘못된 걸 안 듯했다. 순간 민망해져 소리 없이 손을 놨다. 지긋지긋한 시선을 또 여러 개 받을 뻔 한 걸 구해준 정국이었다. 


 

 

 “형. 샤프심 있어?” 

 “다 씀.” 

 “야, 김태형. 그럼 우리 내일은 햄버거 먹자.” 

 “오, 좋은데.” 


 


 

 길 잃은 적 없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뒤따라 강의실에 들어가니 어제와 같은 애들이 앉아있었고 어제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근데 좀 달랐던 건, 이제 내 등장으로 인한 시선집중과 정적이 없었다는 거. 그 덕에 편안하게 자리로 들어가려는데 방금 전부터 미치도록 튀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누가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와서 교실에까지 냄새가 배게 한 건지 원망스러울 정도로 날 덮치는 냄새가 사악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인 김태형이라는 애의 얼굴. 제법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얼굴이었다. 오늘은 뭐 안 뺏기고 잘 먹은 모양인데 방금까지도 내일은 햄버거를 먹자며 유쾌하게 말을 걸던 정호석의 낯빛이 이내 어두워진다. 


 

 

 “망할. 지금 보니까 옷에 떡볶이 다 튀었어. 그러니까 내가 뭐 먹을 땐 지랄하지 말랬지.” 

 “내가 언제. ​지랄은 네가 먼저 했지. 어묵을 먹자니 말자니, 가만히를 못 있었으면서.” 

 “어묵 먹으면 이따 피방 못 가니까 그런 거지. 쪼잔하게 돈도 안 빌려주는 놈이.” 

 “나도 오늘 돈 딱 맞게 갖고 왔다고 몇 번을 말하냐​.” 

 “아니. 넌 돈이 아니라 친구에 대한 마음이 없는 거야. 친구가 진정으로 원하면 대신 구해줄 수도 있지.” 

 “귀 나가겠어. 둘 다 조용히 좀 해. 특히 정호석.” 

 “둘이 인강 아이디 같이 공유하고 그런다고 나만 구박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사람이 그러면 안 돼. 그치, 정국아?” 

 “응.” 


 

 

 오늘도 싸운다. 이제 막 정국이 대각선 자리에 앉아 가방을 풀려는데, 누가 들어오든 말든 시작된 둘의 싸움. 실랑이는 생각보다 길어져 강의실을 울렸다. 아무래도 낮은 목소리의 느린 말투와 높은 목소리의 빠른 말투가 싸우니 당연히 귀에 때려박히는 건 높은 목소리였다. 게다가 음량도 정호석이 더 커서 살짝 귀가 아파올 뻔 했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은 사람이 짜증에 가득 차 싸움을 제지했다. 그 사람은 방금 들어올 때 샤프심 다 썼다고 한 김태형 옆자리 민윤이었는데 잠깐 들었지만 김태형이 형이라고 불렀다. 혹시.. 유급 당한 건가. 그럼 조금 무서울 것 같은데. 톡톡 쏘듯이 흘리는 말투가 좀 살벌한 것 같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의자를 벽 쪽으로 붙였다. 몸도 살짝 숙인 후에야 조금 안심하고 나서 교재를 펴려고 하는데 정신없는 대화가 정국이에게 향한다. 정국이를 보고 작은 동의를 구하는 정호석의 눈이 반짝거리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한없이 감흥 없다. 평화롭게 시작한 대화가 끝에는 저렇게 피가 터지는 게 익숙한 일인 것 같았다. 이어서 정호석은 필통을 꺼내고 있는 정국이를 붙잡고 다소 불만 있는 말투로 재잘댄다. 뒤에서 정호석이 끊임없이 말하는 걸 지켜보다 보니, 문득 어젯밤 티비에서 본 주인에게 한국말로 말을 걸던 앵무새가 떠오른다. 


 


 

 “그치, 맞지? 저렇게 편 가르면 벌 받지, 어깨빵?” 


 


 

 그러다 갑자기 내게 날아든 앵무새 발톱 같은 질문. 뒤돌아 내게 말 건 정호석 옆으로 김태형도 이쪽을 본다. 

 


 

 "어, 어. 그렇지."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던 대화에 내 목소리가 섞일 줄은 몰라서 뇌에서 나오는 대로 동조했다. 그러자 또 쉴 새 없이 말을 뱉는 앵무새. 아니, 정호석. 


 

 

 "그치, 나쁜 사람이라니까. 윤기 형 들었어? 깨빵이도 형 너무하대." 

 "..." 

 "..진짜 넘행." 


 


 

 윤기 형? 갑자기 등장한 이름에 당황해 두리번거리는데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민윤이라는 형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 '민윤' 뒤에 있는 '기'라는 글자. 이제 보니 어제 책 아래 적힌 이름을 내가 끝까지 다 못 본 거였다. 그래놓고는 외자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렇게 불렀으니 누가 보면 웃긴 모양새였겠다 싶다. 어제부터 여러모로 고마워, 호석아. 오늘은 이름도 제대로 알려주고. 근데 고마운 건 고마운 건데 호칭이 너무 야박하단 생각은 안 드니? 그 행위를 당한 건 난데, 내가 왜 그렇게 불리는지 모를 일이구나. 진짜 너무한 건 너란다. 그래도 뭐, 나쁜 뜻으로 부르는 건 아니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네 방식대로 친해지려고 하는 걸 수도 있으니 일단은 더 생각해보고 뭐라고 할게. 허나 다음엔 네 본분을 지켜 양심을 찾아 물어왔으면 좋겠구나. 안 그럼 새장을 좁은 데로 옮겨줄 테야. 정호석, 아니 앵무새야. 


 


 

 “아, 참. 근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우리 학원 어떻게 들어온 거야?” 


 

 

 말을 걸었지만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윤기 형에 잠시 혼자 뚱해있던 정호석이 눈길을 돌려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들어오긴 돈 내고 들어왔지. 


 


 

 “아. 우리 엄마가 과외나 학원 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마침 여기 들어올 수 있대서 등록하셨다고 하시더라고.” 

 “아하, 그렇구나.” 


 


 

 급하게 머릿속 말들을 잡아와 둘러대니 금방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거짓말한 건 미안하지만 이게 아니면 할 말이 없었다. 나쁜 생각이지만 속이기 쉬운 아이인 것도 같았다. 잠깐 내 연기가 완벽했나 생각해보지만 나는 나를 알고 있다. 18년 동안 살아오면서 거짓말이 자연스러웠던 적은 없으니 정호석이 잘 믿는 쪽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았다. 


 

 

 “어제는 어땠어?” 

 “뭐가?” 

 “학원 어땠냐고. 쌤 좋지?” 

 “응. 친절하시고 잘 가르치시는 것 같아.” 


 


 

 이어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내게 계속 말을 걸어주는 정호석. 아, 오늘 아침에 콘푸라이트 살 만큼 돈을 넉넉히 챙기지 않은 게 후회된다. 


 


 

 "수학도 들어?" 

 "응." 

 "어제부터?" 

" 응." 

 "그럼 전정국이랑 같이 듣겠네." 

 "..응." 

 "학원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너도 좀 알려주고." 


 


 

 정호석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앉아 내게 계속 말을 걸어주는데 순간 나온 정국이 이름에 성공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어 자신의 팔을 가볍게 툭 친 정호석에 응, 짧게 대답하고서 다시 보던 책을 보는 정국이. 


 


 

 "나한테도 물어봐도 돼." 

 "응. 고마워." 


 


 

 정국이의 무심한 대답이 또 멋있어서 속으로 펄쩍 뛰고 있는데 정호석 옆으로 들리는 저음의 목소리. 이쪽을 돌아보는 김태형이었다. 어제도 그러더니 생각지 못했을 때 내게 말을 건다. 저기, 미안한데 사실 나 잘생긴 사람 알러지 있어. 조금 타이밍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줄래. 


 

​ 

 "근데 너 산소 독서실 다니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나도 다녀. 한 일주일 됐나." 

 "아, 그래?" 


 


 

 그때 내게 제법 아는 체를 해오는 김태형.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눈이 커졌다. 조금 놀라서 소름이 끼칠 뻔 했는데 자기도 거기 다닌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옆에서 바로 또 나처럼 눈이 커지며 내게 되묻는 정호석. 


 


 

 "너 나랑 같은 데였어? 너도 산소야?" 

 "응." 

 "대박. 소나무 다니다가 개시끄러워서 옮겼는데. 우리 학원 애들 많이 다닌다." 


 

​ 

 그래? 그러면 정국이는? 앞에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정국이는 주말에 어디 있는 거니. 아는 애들 많이 다닌다며 반가워하는 정호석에 순간 물어볼 뻔한 욕구가 우왁 솟구쳤지만 너무 뜬금없을 것 같아 어렵사리 억눌렀다. 그리고 이어서 내게 무언가를 묻는 정호석. 


 

​ 

 "근데 오늘 석식 뭐 나왔어?" 

 "석식? 우동." 

 "후식은?" 

 "어묵 꼬치." 

 "아, 어묵. 내 어묵. 아, 다음 달부턴 나도 그냥 학교에서 자습하다 올까." 


 


 

 아니. 꼭 다시 생각해봐. 오늘 석식 메뉴를 물어보던 정호석은 콧대를 잡으며 탄식을 내뱉는다. 평소 어묵을 좋아하는지 아쉬움에 몸부림치다가 무서운 말을 하는데 순간 온몸을 던져 말릴 뻔했다. 


 


 

 "야아. 너 없으면 난 저녁 누구랑 먹으라고." 


 


 

 호석이의 말에 반응한 건 나 뿐만 아니라 김태형도 있었다. 꽤 띄어있는 책상 사이에도 의자가 넘어갈 듯이 다가와 정호석한테 능청스레 어깨동무를 거는데 그 폼이 자연스러워 싸우다 노는 게 일상인 것 같아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눈길이 간 김태형 뒷자리. 아니나 다를까 여자애는 어딘가 반짝이는 눈으로 김태형 등을 보고 있었다. 저 눈빛, 그럼 자기랑 같이 먹자는 눈빛. 상대방에겐 닿지 않겠지만 무언가를 갈구하는 저 얼굴. 내가 모를 리 없다. 반갑다, 친구야. 역시 어제 내 예상이 맞았어. 낯선 학원에서 같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껴 눈가를 적실 뻔하다가 마침 들어오시는 쌤에 정신을 차리고 수업할 페이지를 찾았다. 


 


 


 


 


 


 


 


 


 


 

 전쟁 같이 머리를 굴린 영어 시간에 무기력해져 시든 시금치처럼 정국이의 뒤를 따라 가고 있다. 터덜터덜 걸으며 향기로운 정국이가 여는 문에 고개를 드니 보이는 어제 그 애들. 다시 한 번 뚫어져라 내게 시선이 꽂힌다. 수학 강의실만큼은 어제와 같은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연스레 내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 

 "..." 


 


 

 조용히 창가가 아닌 벽 쪽 앞자리에 앉는 정국이. 그 덕에 비어있는 내가 어제 앉았던 창가 자리. 원래 저기가 정국이 자리 같은데 이상하게 옆으로 앉는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나 때문인가. 내가 뭔가 자리를 뺏게 된 것 같아 잠시 멈칫했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라 그냥 들어가 앉았다. 


 

​ 

 "..." 

 "..." 

 "..." 

 "..." 


 

​ 

 근데 아오 따가워. 난 분명 뒤통수에 눈이 없는데 안 봐도 느껴지는 와다다 몰려있는 시선에 괜히 한 번 뒤통수를 긁적였다. 도대체 나한테 왜 저렇게 관심이 많은 건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어제 수학 수업이 끝나고 나한테서 정국이가 안 보일 정도로 주위를 둘러싼 것도 그렇고. 보다시피 정국이랑 나는 전혀 안 친해서 견제할 이유가 없는데. 이유 없는 따돌림 당하는 분위기에 속이 약간 답답해졌다. 


 


 

 "정국아. 이거 먹을래?" 

 "아니. 괜찮아." 


 


 

 그때 정국이 뒷자리에서 초콜릿을 건네려는 여자애. 성격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도 참 예쁘게 생겼다 싶었는데 주려 했던 그 애 손이 길을 잃었다. 뒤에서 말을 거는 소리에 잠깐 뒤돌았던 정국이는 금방 거부의 의사를 표하고 다시 책을 본다. 멋있다. 정국이 철벽 너무 멋있다. 콘크리트 같은 철벽이 나에게도 예외는 없다는 게 살짝, 아주 살짝 슬프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그러는 거라면 딱히 슬플 것도 없었다. 


 

​ 


 


 


 


 


 


 


 


 

 "오답 꼭 해오고. 알았지?" 

​ 


 

 정국이랑 같이 있으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는 시간이었지만, 수학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시계와 친해지는 때였다. 빨리 끝나면 좋겠는데 학원을 일찍 나가고 싶진 않은 모순적인 마음. 10에 가까워진 시침과 12에 다 와가는 분침이 째깍째깍 내 맘을 슬프고 들뜨게 하며 수업이 끝났고 수학쌤도 막 나갔다. 그리고 번쩍 든 생각. 너를 못 보는 주말을 버티기 위해선 지금 꼭 잘 가라는 인사를 해야 했다. 그동안 보기만 하며 지낼 땐 어떻게 버텼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한 번 인사를 성공하니 저절로 솟아나는 용기였다. 그래. 처음이 어렵지, 그 후는 쉬울 거다. 


 


 

 "안.." 


 

​ 

 머리에 말이 가득 찬 상태에서, 입을 말아넣으며 책을 덮는 정국이에게 인사를 하려 입을 뗐는데 또 우르르 다가오는 여자애들. 입을 열자마자 벌어진 상황에 말이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어제처럼 포기하지 않으리. 인사할 타이밍을 엿보려고 이미 짐을 다 쌌지만 대충 가방 속을 보며 챙기는 척 하는데 다소 피곤한 기색의 정국이가 내 맘을 콕콕 아프게 한다. 어떤 애가 물어보는 문제에 마지못해 샤프를 받아드는 정국이. 내가 영어 말고 수학을 좀 잘했으면 그 짐 내가 덜어줄 텐데. 아니, 애초에 쟤네는 아무리 몰라도 나한텐 안 물어보려나. 그런데 또 피곤해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문제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정국이는 멋졌다. 지식을 나누는 남자. 참 아름답다. 


 

 아, 이럴 때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보고 있던 정국이의 문제 알려주는 모습에서 빠져나왔다. 목소리도 참 듣기 좋게 부드러워서 정신 찾아오는 데 애를 먹었다. 혼자 가볍게 도리질을 하고서 생각을 비우고 비장하게 가방을 멨다. 


 

​ 

 "..정국아! 안녕!" 

 "..." 


 

 

 이번엔 좀 잘한 것 같다. 차분하게 문제를 알려주고 있던 정국이를 향해 흡사 단말마의 비명처럼 훅 치고 들어가, 분위기를 알아차릴 새도 없이 도망치듯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아까 처음 인사했을 때와 같게 쿵쿵 뛰는 심장을 추스르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얼른 학원 밖으로 향했다.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물론 정국이는 방금 뭐였지 싶을 정도로 눈 깜짝할 새 말하고 나와버렸으니 당황했을 수도 있겠지만 난 꽤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했다. 문득 고개를 들려는 정국이의 눈을 못 마주치고 나온 것만 빼면.​ 


 


 


 


 


 


 


 


 


 


 

 집에 가는 길. 어김없이 어두운 밤 10시의 하늘과 여럿 고장나있는 가로등.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몇 개의 가로등 때문에 저번부터 우리 아파트 부녀회 분들이 민원 넣었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고쳐진 모양이다. 그래도 옆으로 꽤 많은 차선에서 차가 전조등을 비추며 쌩쌩 다니고 있으니 딱히 무섭진 않았다. 따분한 길에 핸드폰을 할까 하다가도 난 정국이가 아니라 괜히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생각을 접었다. 이 참에 오랜만에 밤공기를 온몸으로 느껴보자는 생각으로 걷고 있는데 발에 걸리는 조그만 돌. 군데군데 빨강색인 걸 보니 얼마 전 이 인도를 새로 다질 때 같이 들어가지 못한 친구 같았다. 나중에라도 어떤 우연한 기회로 정국이를 마주치게 된다면 발에 걸리지 말라고 옆에 나무 쪽으로 살짝 밀어보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달과 함께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것 하나. 정국이가 나를 의식하나.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나를 꽤 불편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 인사도 내가 내 욕심에 과하게 시도한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정국이가 오늘 교문에 좀 늦게 나온 것도, 어제 내가 모르고 뺏었던 정국이 자리가 오늘 비어있던 것도 모두 우연의 일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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