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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그대야 안녕 6화 | 인스티즈 

 


 

 

 

 

BGM - 우산을 타고 내린 비 (세레노) 


 


 


 


 


 


 


 


 


 


 

6화 

: 불편 


 

 


 


 


 


 


 


 


 


 

 벚꽃잎이 세상을 감싸기 무섭게, 이를 질투하듯 주말 내내 빗줄기를 내려대던 먹구름은 물러갔다. 이에 다시 돌아온 월요일이 생각보다 제법 선선해져 기분이 좋을 뻔하다가, 아직 나뭇잎 위에서 놀던 빗방울에 방금 정수리를 맞았다. 새벽까지도 비가 왔던 탓이었다. 에이씨, 하고 얼른 정수리를 털어내지만 이미 머리카락 사이를 축축하게 적신 후였다. 흡수력이 뭐 거의 스펀지. 공부할 때도 이렇게 흡수력이 좋아보지 생각하며, 봉지를 달랑달랑 든 채 학교 1층 현관을 열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봉지는 수준별 영어쌤의 가벼운 심부름이다. 수업이 끝난 후 회의가 있는 쌤은 내게 사탕 한 봉지를 부탁하셨고, 먹고 싶은 걸 하나 골라와도 된다고 하시기에 설레는 걸음으로 향한 매점이었다. 이 선생님이 올해 초임하셔서 여고생의 먹성을 잘 모르시는 건가 하고 순간 눈이 반짝 빛날 뻔했는데 귀에 꽂히는 '하나'라는 말. 쌤은 우리를 잘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급식을 두 번 도는 우리 반 애들을 보고 잘 먹어서 좋다, 하고 그저 하하 웃으시던 모습이 이제야 생각난다. 절호의 찬스였는데 꽤 아쉽단 생각을 하며 빠르게 교무실로 향했다. 


 

 나영이는 자고 있고 나 혼자 심부름을 다녀온 쉬는 시간. 아이스크림을 볼에 갖다 대니 세상에 다신 없을 정색을 하며 언제 깼냐는 듯 다시 엎어진다. 나눠먹으려고 구구콘 말고 쌍쌍바 골라왔더니. 먼저 물어보고 갔다올 걸 내심 후회를 하며 포장지를 뜯자 보이는 내 가방 속 삐져나온 오답 노트. 무슨 깡따구로 금요일부터 손도 안 댄 건지는 나도 몰랐다. 이걸 안 해가면 무슨 불이익이 있는 건지도 몰랐기에 홧김에 오늘은 안 해갈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할 수 있는 기회는 주말에도 충분했지만, 내 발목을 묶는 한 생각 때문에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정국이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나. 이제 학원 겨우 두 번 간 건데 앞으로 어떡해야 좋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기차를 타고 지겹게도 매달려 끝나지 않던 생각. 여기에 대한 정확한 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내린 결론은 있었다. 불편해하면 피해주면 되는 거다. 정국이가 나를 피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내가 먼저 피하는 게 덜 속상한 편이었으니. 어제 하루종일 같은 자리에서 방울토마토만 먹으며 머리를 싸매 결정한 임시방편이 그래도 내 맘을 조금은 편하게 해준다. 한결 나아진 기분을 다시 느끼며 경건하게 쌍쌍바를 가르려고 쓰레기를 버리러 갔는데, 망할. 우리 반 쓰레기통은 벌써 과부하 상태였다. 아직 점심 먹기 전이라 그런지 군것질 봉지가 교실 바닥 구석을 누비고 있어서 거기에 내 것까지 더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싶다. 아 정말 귀찮다 생각하며 할 수 없이 신나게 정수기 옆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아까 영어 수업 시간에 정국이를 거의 보지 못 한 탓에 내 발은 날개를 단 듯 붕 떠있었다. 성공적으로 정수기 옆에 쓰레기를 버리고 산책하듯 슬쩍 4반 뒷창문에 기웃대기 시작했다. 요기 있나, 조기 있나. 우연히라도 날 보게 된다면 더 불편해할 것만 같아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움직이는데 갑자기 열리는 뒷문. 서로 바로 앞에 있는 거에 깜짝 놀라 정호석의 졸린 눈이 커진다. 


 


 

 "아 깜짝이야." 


 

​ 

 문을 열자마자 보인 나에 생각보다 많이 놀란 것 같은 정호석이 순간적으로 문에 달라붙는다. 그 문은 곧 천둥처럼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고, 정호석은 이에 더 놀라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너무 우두커니 서있었나 싶은 생각과 함께 살짝 놀란 나도 속을 진정시키는데, 금방 내 손을 보고는 능청스레 웃으며 묻는다. 


 

​ 

 "오. 그거 내 거야?" 

 "어.. 뭐, 응. 먹을래?" 

 "진짜로? 고마워." 


 

​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질문에 나도 모르게 떨떠름하게 대답하고 반쪽을 건네니 반갑게 받아든다. 딱 내 눈치 없는 사촌 동생 같다. 그래도 뭐 사촌 동생 주는 게 아까운 적은 없었으니. 


 


 

 "근데 왜 여기 있었어?" 

 "..어?" 

 "왜 이렇게 놀라. 뭐, 누구 훔쳐봐?" 

 "아, 아니! 그냥 지나가다가." 


 


 

 눈치가 없긴 개뿔. 방금 속으로 했던 말을 격하게 취소한다.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던 정호석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았다. 그것도 크게 찔리는 게 있던 개구리.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니 그런 내 옆으로 와서 창문을 요리조리 보는 정호석. 내 각도에서 누가 보이는지 보려는 것 같은 움직임에 순간 쌍쌍바를 뺏을 뻔했다. 세지 않게 살짝 정호석을 밀어내고 은근히 정수기 앞 쪽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내 자리에서 정국이가 보이면 안될 일이었다. 


 

​ 

 "쓰, 쓰레기 버리러 왔다가. 우리 반 쓰레기통이 다 차서." 

 "아, 그랬어?" 


 


 

 자연스럽게 점점 뒷문과 떨어져 정수기 앞으로 데려오니 자연스럽게 따라온 단순한 정호석. 어느 한 구석이 짓궂던 낯이 쉽게 수긍하며 열심히 마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러다 별 얘기 아닌 대화를 나누는데 먹는 모습이 참 천진하고 애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안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보는 사람도 마음이 깨끗해지게 하는 애는 처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한 친구 옆에 있기엔 내가 너무 겉과 속이 다르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니 좋은 기운을 받는 느낌에 계속 흐뭇하게 웃었다. 누가 보면 변태라고 할 정도로 혼자 조용히 웃는데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계속 재잘대는 우리 앵무새. 손을 쓰며 어제 있었던 웃긴 얘기를 생생하게 해주는데 문득 눈에 띄는 게 손목시계였다. 대부분 고3 돼서 차는 시계를 일찍이 찬 게, 미리 수능에 적응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때 익숙하게 제 시계를 보며 말하는 정호석. 


 

​ 

 "들어가야겠다." 


 


 

 들어가야겠다며 시계를 보는 폼이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걸 보니 꽤 오래 전부터 갖고 다닌 것 같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들어가는 건 싫은지 종 치려면 아직 2분이 남았지만 쿨하게 인사를 건네며 사라진다. 그동안 제법 계획적인 하루를 산 모양인데 시간 관념이 투철한 게 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타입 같았다. 세상에서 그런 애들이 제일 신기하고 부럽더라. 난 할 때도 놀고 싶어서 해야 하는 일을 미루는 게 부지기수인데.. 그 기억들이 전구 켜지듯 줄줄이 생각이 나 내가 한심해진다. 새삼 이 시간에도 공부하고 있을 정국이가 대단해 속으로 존경을 표했다. 아, 근데 그래서 정국이 못 봤다... 


 

​ 


 


 


 


 


 


 


 


 

 아까 밥을 먹고서, 웬일로 나랑 같은 시간에 입을 헹구는 정국이를 보고 지체없이 달려가 인사할 뻔 했다. 나영이가 사람 많다고 징징대며 날 자습실 쪽 화장실로 이끌었으니 망정이지, 또 후회할 짓을 할 뻔한 거였다. 나영이 옆에서 양치를 하면서도 맘은 딴 데 가있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 열심히 닦았던 입 속인데, 지금은 답답해서 금방 막혀버릴 것만 같다. 솔로 팍팍 밀고 있는 에어컨 필터에서 텁텁한 회색 가루들이 피어올라 내 숨을 다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번에 아침 등교길에 우연히 정국이를 본 후 앞지르기엔 내 간이 작아 안달난 마음으로 천천히 뒤를 따르다 지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이제 와 복병이 될 줄이야. 반년 내내 먼지를 먹은 에어컨 필터 청소가 그 벌이었으면 어떻게든 삥 돌아 뛰어서라도 세이프 했을 텐데. 어느정도 지각을 허용해주는 4반과 달리 우리반은 칼 같은 지각 체크였기 때문에 필터 청소할 의인을 찾던 쌤은 날 지목했다. 그 덕에 청소와 종례가 끝난 후에도 남아 4반 앞 공용세면대에서 묵묵히 먼지를 떼어내는 중이었고. 애들이 다 떠나고 교무실에서의 쌤들 대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고요한 복도에는 부지런한 내 솔질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열일에 몸도 후끈해지려 하는데 문득 작년부터 들었던 생각. 아니 근데 반년 동안 안 쓸 거면 겨울 동안 다시 에어컨에 달아놓을 게 아니라, 다 봉지에 싸서 어디 창고에 넣어두면 될 일 아닌가. 여름이 끝나고서도 한 번 청소하고, 에어컨을 틀기 전 겨울 동안 입은 먼지를 다시 털어내기 위해 굳이 또 고생스러운 일을 만드는 게 도통 이해가 안 갔다. 이번에 뽑힌 전교회장이 건의함 활성화시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거기에 넣어볼까 생각하며 인상을 팍 쓴 채로 솔질을 하는데, 별안간 옆에서 들리는 낯익은 저음의 목소리. 


 

​ 

 "여기서 뭐해?" 

 "어! 안녕!" 

​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엔 반가운 바나나 우유가 가방을 멘 채 서있었다. 날 보며 짓고 있는 웃음과 함께 궁금한 듯 이쪽으로 다가오려 하길래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재빠르게 제지했다. 


 

​ 

 "오지 마, 이거 먼지 날려. 필터 청소하는 거야." 

 "아, 도와줄까?" 

 "아니야. 다 했어. 헹구기만 하면 돼. 넌 이제 독서실 가는 거 아니야?" 

 "응. 그러려는데 정호석이 없네. 어디 갔는지 알아? 전화도 안 받아." 


 


 

 다가와 도와주려는 김태형을 막고 마지막으로 헹구고 있는데 말하는 목소리가 나한테 말할 때와는 달리 좀 짜증이 나있다. 요새는 잘 나온다 싶더니 오늘은 또 어디로 사라져버렸다며 다시 복도를 두리번거리는데 문득 든 생각.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까 어렴풋이 들렸던 교무실 대화 소리에 남다른 웃음소리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선생님 웃음소리 치고는 심하게 발랄하다 했는데 혹시 정호석인가. 


 

​ 

 "교무실에서 들렸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아, 진짜?" 


 

​ 

 다 헹군 필터를 잠깐 물을 빼려 구석에 세워두는데 내 말을 듣고는 다소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이따 봐, 하고는 교무실 쪽으로 사라진다. 흡사 학원 땡땡이친 아들녀석 잡으러 피씨방에 가는 엄마 같았다. 아무래도 정호석의 시간에 김태형은 예외인가 보다. 


 

​ 


 


 


 


 


 


 


 


 

 낮에 햇볕을 많이 받아 빗방울이 도망간 나뭇잎들. 정문으로 나가면서 보이는 보송한 나무들에 괜히 내 정수리를 슬쩍 만져보며 걸음했다. 아직 꽤 밝은 하늘의 6시 35분. 해는 아직 달과 교대하기엔 마음의 준비를 못 하고 있었고 조금 남아있던 내 미련 또한 떨기치기엔 약간 이르다 생각했다. 혹시나 그날 무슨 일이 있어 몇 분 늦게 나온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노릇이니, 당장 오늘부터 걸어가려던 생각은 그냥 생각으로 묶어뒀다. 무엇보다 겨우 하루 뿐이었는데 내가 속단하는 걸 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렇게 오늘은 나도 좀 마음을 놓고 여유롭게 나오니 35분이 막 넘어가는 시각. 정문에 다 와가면서 혹시 원래 시간에 나왔을까 턱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지만 역시 없다. 


 

​ 

 "..." 


 

​ 

 그리고 39분에서야 나오는 정국이. 급해보이지도 않는 발걸음을 보면 우연은 아니었다. 그러고는 내가 먼저 하지 않으니 인사는커녕 날 애써 못 본 척 단어장에만 코를 박는다. 저 불편해하는 눈빛 보면 역시 나 때문인 게 맞나 보다.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확인 사살 당한 사실에 기분이 무너져 느릿느릿 학원차에 몸을 실었다.
 


 

​ 


 

​ 


 


 


 


 


 


 

 "안 해왔어?" 

 "..." 

 "아이구. 학원 다닌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숙제 땡땡이야." 

 "..." 

 "다 하고 가." 

 "네.." 


 

​ 

 수학 시간. 수업이 거의 끝날 때가 되자 오늘 날짜가 텅텅 비어있는 내 오답 노트에 쌤이 불호령을 내린다. 필터 청소하는 데 체력을 다 써버려서 그냥 안해온 숙제였다. 거기에 별 감흥 없이 대답을 하고 책에 툭 고개를 떨궜다. 이마에 닿은 종이 질감. 내쉬는 숨이 좁은 공간에 맴돌아 따뜻해지는 인중. 눈 바로 앞에 보이는 모르겠는 수학 문제. 그리고 옆에서 수업이 끝날 때를 기다리며 필통을 정리하는 정국이 인기척. 영문도 모르고 있을 애한테 속으로 조금 서운해져서 집중을 못 한 수업 시간이 상기돼 약하게 도리질을 했다. 내가 학원을 공부하러 다니는 건지, 공부하는 정국이를 목격하러 다니는 건지. 뇌는 전자를 향하고 있었고 마음은 온몸으로 후자를 가리키고 있음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며칠 안 다녔는데 벌써 머릿속을 채우는 혼란에 계속 고개를 박은 채 있었을까. 


 

​ 

 "..풉." 


 

​ 

 뒤에서 들리는 또 누구 들으라는 듯한 코웃음. 아니, 비웃음.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수업이 끝날 어수선한 분위기였기에 나를 향해있는 게 분명했다. 저절로 구겨지는 인상에 팍 고개를 쳐들어 신경질적으로 돌아봤다. 평소 같았으면 확 마, 책 페이지마다 지우개 가루 뿌려버릴라 내가 귀여우니까 참는다 하고 말았을 텐데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예민함 폭발이었다.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범인이 유력한 고개 숙여 웃고 있는 저, 입술 빨간 애를 째려보는데 얜 시선을 들지도 않는다. 내가 돌아본지도 모르고 계속 혼자 웃길래 기분이 더 나빠졌다. 너 때문이라도 내가 이 학원에 있는 동안 수학 아작내고 만다. 


 


 

 ​"..." 


 

​ 

 그냥 안 보는 게 마음 안정에 나을 것 같아 다시 앞을 보려는데 오늘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정국이. 별 생각 없이 코를 훔치는데 오늘은 그냥 네가 밉다. 우울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박았을까 수학쌤이 수업을 끝내고 교재를 챙기신다. 다들 나갈 준비를 하는데 난 다시 오답 노트를 폈다. 책을 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생각에 샤프를 쥔 손은 그자리 그대로였다. 그저 널 보기만 하는 게 너에게 불편이 되지 않으면 정말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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