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다시 만나는 썰
낭만적인 어른이 되어서
w. 랑데부
1.
낭만적인 어른이 되는 법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거 너네 아니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나중에도 이야기 할 거지만 개강총회였다. 알콜 쓰레기 ㅇㅇㅇ가 호기롭게 한 학년 먼저 들어온 강영현에게 말을 까가지고. 그렇게 만났다. 우리 두 사람은 무려 5년을 만났다. 글을 쓰는 강영현에게 5년동안 ㅇㅇㅇ는 뮤즈였다. ㅇㅇㅇ라서, ㅇㅇㅇ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 했다. 아니 뭐 그랬었다고.
"강영현"
"헤어지자"
"야 너 그 말, ..함부로 하지 말랬지. 내가"
그러나 연애는 거기서 거기였다. 끝내 질리고 소나기가 장마가 됐다. 졸업을 앞두고 하루가 멀다하고 다퉜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은 두 사람을 갉아 먹었다.
"그럼 헤어지잔 말을 어떻게 해"
적어도 울진 않았어, 눈물보다 앞선 감정이 있었으니까. 우산도 내팽겨치고 언성을 높였다. 미친듯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무미건조하게 ㅇㅇ가 말했다. 강영현에게, 정말 헤어지자고. ㅇㅇㅇ는 근래 '헤어지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충동이 절반이었으나 언제나 절반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정말 정말 헤어지자고 말했다.
십 분도 안되서 내가 돌아섰다. 그리고 그렇게 끝이 났다. 어이없게도 십 분으로 오년동안 쌓아올린 젠가를 단번에 부셔버리고 떠났다.
2.
그리고 진짜 헤어졌다. 그 날이 끝이 아니였다, 정말 더럽게 끝을 봤다. 니가 잘했네 못했네, 그간 모든 것을 일일 따지면서 질질 끌고 구차하게 굴었어. 둘 모두. 그리고 졸업을 끝으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강영현은 자신의 세계에서 ㅇㅇㅇ를 끄집어 어디 멀리에 던져 버렸다.
3.
신작 기념
작가 강영현 싸인회
그렇게 ㅇㅇㅇ가 없는 하루에 해가 뜨고 비도 왔다. 동시에 강영현을 지운 하루에도 비도 오고 교통체증도 끊이질 않았다.
다신 안 볼 줄 알았다. 영현은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 일절 나타나지 않았고 일 년이 순식간에 우리 두 사람을 적도 끝과 지평선 끝에 데려다 놓고 홀연히 떠난 후에, 그 후에 우리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ㅇㅇ씨, 강작가 알지? 그 어린 친구"
나는 어린 취준생에서 어린 인턴이 되었다. 일 년하고 반절을 좀 넘겨서 잡은 대형 패션 메거진의 계약직 인턴으로. 영현과 연애중일 때부터 노래를 불렀던 곳이었다. 영현을 만날 때는 그 날이 시험이 하루 남았을지언정 단 한 번도 대충 옷을 걸치고 만나지 않았다. 나름의 철칙이었으니까. 물론 사랑하는 강영현 앞이어서 더 그랬지만. 그리고 결국 들어갔다, 6개월 인턴 생활의 중간을 조금씩 넘어가며.
"네, 알죠 당연히"
모르겠냐 세상이 그렇게 떠들어대는대, 강영현을.
내가 인턴을 따기 위해 죽어가고 있을 쯤 영현은 정식으로 문학계에 데뷔를 했다. 꽤 어린 나이였으나 간결하고 매끄러운 필력이 매력으로 작용하며 다소 어두운 장르로 데뷔작을 치뤘다. 아, 절대 사서 본 건 아니다. 자잘하게 범죄 스릴러와 호러를 넘나 들며 단편집을 내며 영현은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이었다.
- 강영현이 제일 잘 생겼지
- 강영현만큼 잘생긴 사람 없지
- 강영현이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거든
-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여워? ㅇㅇ야. 많이 취했어? 일어나 볼래?
그렇게 입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자랑하던 ㅇㅇㅇ의 안목은 결코 콩깍지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두 번째 작품을 출간하고 처음으로 영현이 얼굴을 드러냈을 때를 기점으로 영현은 수직 상승세를 탔다. 인정한 필력 위에 얼굴이 단단히 한 몫을 챙겼다, 아 물론 피지컬도 한 몫 했지. 모를 수가 있어? sns 남친이 되고 강영현을 알아본 몇몇의 브랜드는 강영현에게 모델 제의를 했다는 기사까지 봤는데. 아 물론 내가 찾아본 건 아니고
"이번에 인터뷰 따려고 하는데, ㅇㅇ씨가 할 수 있겠어?"
아 네, 쉽겠ㄴ. 응?
강영현이라니. ㅇㅇ의 앞 금기어의 일종이었다. 더럽게 헤어져 놓고 직접 얼굴 맞대야한다. '저 말고 다른 친구가 하는 것이 더 수월하고 탁월하고 옳은 성공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가 목구멍에서 나가라고 육두문자까지 치며 발악했다. 엮일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음과 동시에 다시 만나면 그 자리에서 당장 뺨 한 대 정돈 칠 수 있을 거 같은데. 강영현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번만 내뱉으면 떨어진 불덩이를 던질 수 있는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쩌다보니 불덩이를 껴안아 버렸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