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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쉬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이 호텔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할머니를 설득했다.

그의 할머니는 내가 쉬시의 약혼녀라는 이유만으로 흔쾌하게 내가 원하는 만큼 그녀의 호텔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했고, 나는 그렇게 염치불구하고 이 곳에서 머물며 모든 생활을 해결하고 있었다.

쉬시에게 약점을 잡힌다거나 빚을 지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지만 홍콩의 거의 모든 호텔은 아버지의 손에 달려있다 해도 무방했으니, 나로썬 별다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소문이 빨랐다. 그것도 매우.


황쉬시의 말대로 그와 나의 약혼 소식 뿐만 아니라 나와 아버지의 불화까지 홍콩 사교계에 다 퍼진 것 같았다.

회사의 주가와 앞으로 내 행보에 골치가 딱딱 아파 그런 자질구레한 일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에 등교하니 조금의 과장도 없이 모든 이들이 나를 보며 수군댔다.

그런 시선들을 무시하는 것 쯤이야 익숙했지만 거기에 황쉬시의 이름이 들리자 조금 짜증이 일었다. 


봐, 나와 엮이니 바로 네 이름이 더럽혀져. 


공교롭게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라 학교 내에서 그가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진 알고 있었다. 

나야 워낙 학교 자체를 있는 듯 없는 듯 다니니 그 애가 내 존재를 모르는게 당연했지만,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아무도 싫어하는 이 없는 학교의 인기인. 잘생긴 얼굴에 키도 크고 매너도 좋은 모든 사람들의 짝사랑 상대.


그런 빛이 나는 사람이 나 같이 이기적이고 가정사 하나 제대로 되지 못한 애랑 어울리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유 모를 자괴감에 절로 힘이 빠졌다.



나를 보는 모든 시선들을 무시하며 자리에 가 앉자, 곧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밀었다.


“…뭐야.”

“니가 쉬시 약혼녀라면서?”

“근데?”

“유성 호텔, 맞지?”

“…”


긴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말아 반묶음으로 얌전하게 묶은 여자애가 나를 보며 웃었다.

악의 없는 웃음이 아니라 차가운 비소였지만, 어쨌든 나를 향해 예쁘게도 웃어보인 그 애는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청쉬엔. 화이 엔터테인먼트가 우리 아빠꺼야.”

“…근데?”

“어제 소식 들었어. 네가 쉬시의 약혼녀로 결정되었다며? 축하해.”


입으로는 축하한다는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그 애의 얼굴은 전혀 축하의 내색을 담고 있지 않았다.

빙그레 웃는 얼굴이 마치 전래동화에서나 나오는 선녀 마냥 예뻤지만 나를 뜷어지게 쳐다보는 두 눈동자는 화를 담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거지 얘는. 예의 그 쉬시 팬클럽인가. 

한심하단 생각에 무시하려고 내 책을 꺼내자 쉬엔이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원래 쉬시의 약혼녀 자리는 내 것이었어. 워낙 집안끼리 친하거든.”

“…뭐?”

“어렸을 때 부터 그렇게 알고 자랐어 난.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쉬시의 옆자리는 늘 내가 있었지.”


공상에 잠기듯 쉬엔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그 애가 분명하게 끝맺지 않은 단어들은 내 귀를 통과해 허공에 먼지 마냥 내 주위를 날아다녔다.

잠시 무언가를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보던 쉬엔은 곧 나를 내려다보며  한글자 한글자 분명하게 씹어 뱉었다.


“얘, 난 네가 싫어.”

“…”

“내가 어릴 때 부터 그리도 원하던 그 자리를 채가놓고, 필요 없다고 그랬다며? 정말이지,”


쉬엔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한쪽 귀 뒤로 넘겼다.

언뜻 보면 무척이나 다정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나를 보는 그 애의 눈이 전혀 웃질 않고 있어 마치 인형같았다.


“정말이지, 죽여버리고 싶어. 너.”

“야. 너 말이,”



“청쉬엔.”


도를 넘는 그 애의 말에 내가 뭐라 하려는 순간, 내 바로 뒤에서 얼마나 들었다고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언제 온건지 무섭게 인상을 쓰고 서 있는 황쉬시가 보였다.

처음 보는 차갑게 굳은 얼굴에 반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에 비해 쉬엔은 천사같이 웃으며 그 애를 향해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었다.


“쉬시.”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뭐하긴. 화풀이 중이었지.”


자신의 패악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쉬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쉬시를 향해 다가갔다.


“쉬시, 이 애가 걱정돼?”

“너 그만 좀 해. 내가 너랑 결혼 할 생각이 없었다고 몇번을 말 해. 넌 그냥 여동생이라니까.”

“…언제부터, 우리가 사랑으로 결혼했다고 그래? 집안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장기말일 뿐이잖아.”

“…”

“그래도 넌 운이 좋았어 황쉬시. 나는 널 아꼈거든. 어렸을 때 부터 내 약혼자는 너 뿐이라고 생각 했으니까.”

“…쉬엔.”

“안타까워. 우리 아빠는 내가 아까운 나머지...쟤네 부모처럼 딸 좀 데려가라고 너네 집에 돈을 퍼주지 않았거든.”


누군가의 비웃음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울렸다.

쉬엔의 조소어린 모욕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황쉬시가 무어라 큰 소리로 화를 내는게 들렸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명 소리 비슷한 것이 귓가를 울렸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부터 내 앞에서 깔짝깔짝 약 올리는게 재수 없었는데, 그래도 참고 넘어갔어. 쓸떼없는데 감정 소모하긴 싫었으니까.”

“…”

“그런데. 기어이 선을 넘는구나, 니가.”


여전히 오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쉬엔에게 다가가 생긋 웃어주니 당황하는 얼굴이 썩 볼만 했다.

그리고 곧, 그 예쁜 얼굴이 내 손에 의해 철썩 소리와 함께 돌아갔다.


내 온 힘을 다해 때려서 큰 소리와 함께 교실 바닥에 쓰러진 쉬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게 맞은 쪽의 얼굴을 붙잡고 나를 노려봤다.

그 눈이 보기 싫어서 쓰러진 쉬엔의 머리채를 잡고 마구 흔드니 쉬엔이 울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주변에서 멍 때리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던 애들이 그제서야 하나 둘 나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내가 씩씩거리며 쉬엔을 노려보자, 그녀는 울며 쉬시에게 손을 뻗었다. 누가 봐도 애처롭다 할 만큼 가녀린 몸짓이었다.

황쉬시처럼 착한 애라면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틀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 손은 매몰차게 뿌리쳐졌다.


"쉬엔. 네가 잘못해놓고 왜 이제와서 피해자인 척 해. 너 정말이지...역겹다."


냉기가 풀풀 날리는 것 같은 한마디에 쉬엔은 훌쩍이며 벌떡 일어나 교실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충분히 피해자라고 오해할만한 얼굴이었다.


"여주, 이리와."


쉬시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내게 곧게도 뻗어진 그 손을 차마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못이기는 척 그 손을 잡았다.


그제서야, 그 애의 얼굴에 내게 보여주던 그 햇살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

쉬시 번외도 4편 남았네요.

재민이 번외 2편까지 달릴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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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끄앙 쉬엔인가 쉰앤가 짲응이었는데 여주 사이다 크으으으
5년 전
독자2
아 정말 별것도 아닌게 왜 여주한테 말같지도 않은 소리만 골라서 하믄지 모르겟네여 쉬시 멋있었다ㅠㅠㅠㅠ
5년 전
비회원63.71
대박이에요
5년 전
독자3
아구 설레라
5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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