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을 재택근무를 하던 루한이 집에서도 끊임없이 전화를 받으며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루루, 오늘 엄마 말 잘 듣고있으면 아빠가 쿠키 사올게, 약속-"
"으응, 루루 아빠랑 있을래..."
"아빠도 루루랑 있고싶은데...."
"으응 시러, 아빠랑 같이갈래, 흐으.. 루루.. 압빠...흐아앙-"
"흐끅...느에..."
"옳지, 울지마요 아들. 엄마랑 쿠키 만들자."
루한은 눈물을 그 작은 손으로 훔쳐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루루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브리프케이스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아빠 안녀히 다녀오세요..."
"아빠가 맛있는거 사올게, 약속."
거실에 루루를 내려놓자, 창문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는 루루.
"아빠........."
누가 보면 영원히 못보는 줄 알겠다.
루한이 출근한 후, 루루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아침에 약속한 쿠키를 구울 준비를 했다.
재료를 계량해서, 체를 치고 반죽을 하는데 내 소리를 들은 루루가 시무룩하게 부엌으로 들어왔다.
기분은 안좋은데 쿠키는 만들고싶고.
"루루 손 씻고 왔어요? 퐁퐁이로 깨끗이?"
"녜.. 버블버블 해떠..."
"일루와, 우리 아들. 오늘은 동물로 할까요, 자동차로 할까요?"
"사슴! 루루 사슴할래-"
쿠키커터를 고르는데 어쩜 그리 제 아빠같은 것만 고르는지.
부전자전이라는 생각을 하며 루루를 발받침대 위에 올려 같이 쿠키반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우와- 루루야, 사슴이다 그치?"
"음마, 사슴 눈도 그려줘-"
"이거 쿠키 굽고 나서 그려줄게, 알겠지?"
끄덕끄덕-
루루는 오늘 부쩍 말수가 줄었다. 아빠가 벌써 보고싶은가. 쿠키를 팬닝하고 예열된 오븐에 집어넣었다.
루루와 뒷정리를 하고 쿠키가 다 구워지기만을 기다리고있는데 시무룩한 루루가 계속 신경이쓰였다.
"루루."
"녜....."
"아빠 보고싶어요?"
"웅..."
"엄마랑 아빠 보러갈까?"
"징차????"
"응- 루루랑 엄마가 만든 쿠키 주러 가자."
"우와- 엄마 최고!!"
다 구워진 쿠키를 대충 식혀 포장한 후, 오랜만에 예쁜 원피스를 꺼내입고, 루루도 예쁜 옷을 입히고 오랜만에 차키를 들었다.
뭐만 하면 큰일나는 줄 아는 루루아빠 때문에, 임신 소식을 앎과 동시에 차를 못 몬지 2개월이 다 돼가는 터였다.
"루루 안전벨트 매고, 쿠키 잘 챙겼어요?"
"녜 엄마!!"
아까랑 다르게 활기찬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었다.
강남까지 가면서 쉴새없이 재잘대는 아이의 모습이 딱 어릴 때 설레는 마음으로 아빠회사를 처음 가던 나의 모습과 흡사했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루루의 손을 잡고 내렸다.
오랜만에 회사에서 일하는 루한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비서에게만 살짝 일러둔 상태였다. 그 덕에 무리없이 루한의 사무실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와, 밖에 엄청 덥죠 백현씨."
"장난 아니죠- 회사에서만 일해서 다행이예요 진짜..."
"그래도 고생이네요, 이 더운날에 일하는거.."
"에이 뭘요, 에어컨 완전 빵빵한데. 아, 형수님 냉녹차 한잔 드릴까요?"
"네, 그래주면 고맙죠."
루한의 친한 동생이자 비서인 백현씨가 우리를 맞았다.
루한은 지금 회의중이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백현씨를 기다리고있는데, 루루가 계속 칭얼거렸다.
"아빠는...? 조기 아빠 이름 있는데..."
제법 영어도 읽을 줄 아는 루루가 루한의 책상 위에 써있는 사장 명패를 보고 아빠의 이름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아빠 일하러갔어, 좀 이따 오실거야. 루루 착하니까 기다릴 수 있지??"
"루루 삼촌이랑 놀까?? 아니면 삼촌이랑 아빠 보러가자."
"아빠 보러가쟈!!"
냉녹차를 내게 건네고 얼른 루루를 안아든 백현이 내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고, 살금 따라가자 한 회의실이 보였다.
부분적으로 투명한 창문 사이로 심각하게 회의중인 루한이 보였다.
"루루, 저기 아빠있으니까, 삼촌이 놀아줄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알겠지?"
"으응..."
"알겠습니다- 해야지."
"녜에..."
다시 사장실로 돌아와 백현과 노는 루루를 보며 루한을 기다린지 20분정도 지났으려나, 여러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사장실 문이 열렸다.
"그럼 그 세미나는 홍콩에서 주최할.....어? 여보!"
"아빠아빠!!!"
"루루도 왔네?? 으구, 아가-"
꼭 닮은 둘이서 얼싸안고 있으니까.......
귀여워, 완전.
뒤에 같이 들어온 종인씨와 준면씨도 반가운 기색이었다.
"제수씨 임신하셨다면서요, 김루한 얘가 좀... 그래요. 하하-
근데 3개월인데 어째 티도 안나네요."
"아니예요, 배 많이 불렀어요. 루한오빠 때문에 저만 힘들죠- 수정씨는 잘 있죠?"
"수정이도 요새 입덧이.. 어후 말도 마세요. 저 다크써클 보여요? 회사에선 김루한한테 시달리고, 집에선 수정이한테..."
준면씨는 루한의 먼 친척쯤 되는 사람이고, 요즘 아내인 수정씨가 임신중이라 많이 예민한 듯 했다.
그래도 얼굴에 만연한 저 미소는, 3년 전 내가 루한에게서 본 그것이리라.
"루루 안녕, 삼촌 기억나?"
"삼톤......? 아 마따! 아프리카 삼톤!!!!!"
유독 피부가 까만 종인씨에게 루루가 직격탄을 날렸고 백현씨를 포함한 우리 넷은 배를 잡고 웃었다.
"이야, 우리 아들 정답!! 루루 엄청 똑똑한데?"
킬킬거리며 웃던 루한이 루루를 토닥이며 마구 칭찬했다. 준면씨와 백현씨는 이때다 하고 종인씨 놀리기에 바쁘고 뭐.
"죄..크흡..죄송해요 종인씨. 루루, 삼촌 안...안 까매-"
"....아닙니다, 저 까만거 맞는데요 뭘.."
"김상무 삐졌냐?? 새끼, 크흡, 역시 아이들의 눈은 정직했어."
종인씨를 제외하고 웃는 모두를 뒤로하고, 쿠키봉투를 루루에게 건넸다.
"루루야, 삼촌들한테 선물 줘야지."
"아! 아빠, 나 엄마랑 쿠키 만드러따!!"
"오구, 그랬어? 내 강아지, 오구오구-"
"아.. 나도 빨리 결혼하고싶다. 형수님, 저 딸 낳으면 변백희라고 짓게요. 어때요?"
"백희? 예쁜데요? 근데 백현씬 결혼할 여자는 있어요?"
"......아뇨"
"....크흡"
"ㅋ...큭.. 넌 여자친구도 없냐"
"으아... 미안해요, 그러려던게 아닌데.."
"괜찮아요 형수님..."
백현씨도 조용히 종인씨 옆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우리 모자에게 상처받은 서로를 위로해 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는 개뿔 큭큭대며 놀리기 바쁜 둘이었다.
"새끼....여자친구도 없으면서"
"뭐 이놈아, 여자친구 있어도 까만 니는 안부럽거든? 에베베-"
초딩같은 두명이 옥신각신하며 다투는걸 보며 정신이 아득해져갈 때쯤,
루한과 루루가 조용히 사장실을 나갔고, 준면씨가 나에게 루한을 따라가라는 눈짓을 해 셋이서 조용한 회의실에 들어갔다.
"시끄럽지, 쟤네가 원래 저래. 일은 잘 하는데 참...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서."
"나사 빠진게 매력인데 뭘, 장가는 잘 갈거야. 쿠키 먹어봐. 잘 구워졌어"
"루루가 아빠 주려고 사슴 모양으로 만드러써!"
쿠키 봉투를 뒤적여 제게 쿠키 하나를 건네는 루루를 본 루한이 웃으며 쿠키를 베어물었다.
"오! 아빠가 이때까지 먹어본 것 중에 최고다, 최고. 고마워 루루-"
"헤헤 아빠도 최고"
"엄마는 엄마는?"
"엄마는 더 최고!!"
"루루도 최고-"
루루에겐 아빠 없는 우울한 하루가 될 뻔 했지만,
아프리카 삼촌, 배큥 삼촌, 그리고 아빠와 함께한 행복한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