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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l조회 1174l 5




아프리카
w. Harvey








허허벌판인것도 모자라 퍼석하게 매말라, 죄다 갈라져 있는 그 땅은. 처련함을 느끼기 전 허무함을 먼저 들게 했다. 금방이라도 마른 땅위로 아지랑이를 피워낼 것만 같은 강렬한 태양은,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는 마른 땅을 괴롭혀 댔다. 땅은 남아있는 여력을, 제 위에 있는 생명에게 쏟아주었다. 비록 마른풀이고 울거진 나무에 더러운 웅덩이뿐이었지만, 그래도 마른 땅은 그 곳에게 제 몸을 뉘어주었다. 마른 땅위로 붉어진 노을이 쏟아졌다. 무리 지은 실루엣이 그 곳의 열기에 어지럽게 뒤틀렸다. 열기로 가득 찼던 그 곳은 아렸지만 노을에 젖은 그 곳은 낙원이었고 천국이었다. 나는 그 파라다이스를 동경한다. 그 곳의 땅이 내게 눈물을 짓게하고 웃음짓게 한다. 까짓 눈에 보인 허물일지라도 내 맘은 그 곳에 머물러있다. 




  




01. 




  




 우중충 하던 하늘이 기어코 심술을 터뜨리고야 말았나보다. 피곤한 눈만 붙여야지이. 하던게 5시간이 넘도록 쿨쿨 자버려서, 한참 시간이 흐른 방 안은 온통 새카맣기만 했다. 뉘엿뉘엿 창문세로 세어 들어오는 잔잔한 가로등불 마저 없었다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듯 한 무서운 기분이 들만큼 방안은 까만 어둠으로 가득 차있다. 겹겹이 진 쌍커풀을 하고서 멍하게 눈만 꿈뻑이는데 뒤늦게 지붕과 창밖으로 투두둑. 요란한 소릴 내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괜히 그 빗소리가 섬뜩해서 말려 올라간 소매너머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다리에 엉킨 이불을 밀어내고 무릎으로 기어 다급히 스위치를 찾아 올렸다.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타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한참이나 깜빡이던 오래된 형광등이 파르르 떠는 소리를 내며 노란 빛을 내뱉는다. 나약한 빛이었지만 숨을 삼켜낼 듯 나쁜 어둠을 한 겹 벗겨 내준다.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따끈한 장판이불 안에 있을 때 몰랐던 서늘함이 마구 느껴졌다. 휑하기만 한 집안을 둘러보며 어깨를 움츠리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던 나는, 금방 턱을 덜덜 떨어대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후끈하게 올라오는 열기에 금방 몸이 노긋해지고 눈꺼풀이 꿈뻑거린다. 쓰읍. 꼬로록 전쟁이 터진, 납닥하다 못해 가죽도 안남은 마른 배를 매만지며 입맛만 다신 나는 비틀거리며 벌러덩 다시 몸을 뉘었다. 




 너덜해지고 노랗게 물든 오래된 벽지가 금방이라도 얼굴 위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어라, 저기 또 물세네. 양동이가 어디 있더라. 아 맞다. 그 양동이 저번에 버렸지. 어씨. 저긴 벌써 떨어지고 있잖아? 물 세어 들어왔어. 저러면 물바다 되는 거 시간 문젠데에. 올려다 본 낮고 허름한 천장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언제나 나에게 걱정만 한가득 안겨준다. 보일러를 돌릴 여력이 없어 집 안엔 집안엔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비가 세, 곳곳에 눅눅한 곰팡이내가 난다. 정말 비가 오는 날이면 더더욱. 내 맘에 하나라도 드는 게 없다. 

 연립주택꼭대기. 누가 꼭대기 아니랄 까봐 금방이라도 머리 위에 뜬 보름달과 신나게 달려들어 부등켜안고 뽀뽀를 해댈 것만큼 마구 가깝게 마주하고 있고, 더불어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계단을 안고 있는 짜증나는 길을 끼고 있다. 그래서 숨이 꼴깍 넘어갈 것처럼 부지런히 열심히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언제나 밝았던 하늘도 붉그스름한 노을을 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좁고 험해서 오를 땐 온갖 짜증을 부리며 심통을 내도, 막상 집이 보이는 꼭대기에서 온 길과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아래를 내려다보노라면 괜히 비실,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졌다. 보여 지는 그 흔들리는 네온사인이 내 발치에 내려 보이니 꼭 그게 다 내 것인것만 같은 그런 벅찬기분이 짜증과 심통을 금방 집어삼켜주었다. 돈 없어서 배곯는 슬픔과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길에 대한 짜증들은 이렇게 허무하게 스르륵 사라져버린다.  




 창가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꽤나 투박하다. 바람도 부는지 청테잎으로 범벅된 창문이 덜컹덜컹 요란한 소릴 낸다. 아아. 천둥은 안 쳤음 좋겠는데. 이불을 슬쩍 코 아래로 끌어올리며 생각해본다. 등과 머리가 따뜻하니 길게 잠을 잤는데도 또 잠이 온다. 바짝 마른 입안을 쓸며 새우처럼 몸을 움츠린 나는 머릿속 가득 먹고 싶은 음식을 양을 세듯 하나씩 떠올리며 슬금 눈꺼풀을 감았다. 지금 자면 언제일어나지? 낼은 월요일. 학교 가는 날인데. 아까 잠도 많이 잤고 지금 또 자면 지각은 안하겠다. 그렇겠지? 나름 이가 맞는 이론에 고개를 끄덕이며 딱 거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팔에 소름을 돋게 했던 서늘한 빗소리나 한숨과 걱정만 늘여놓게 되는 천장 걱정 없이, 나는 신나게 음식천국에서 활개치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꿈은 역시 달콤하고 맛있다. 눈 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에 입을 못 다물고 달려드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꿈에 더 젖어들었다. 
















.  













 비가 오고 나더니 바람은 없는데 기온이 뚝. 정나미 떨어지듯 뚝! 떨어졌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가을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덜컥 겨울을 맞이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수도가 꽝꽝 얼어 있어서 마침 물을 받아 놓은건지 큰 통에서 물을 퍼내는 옆집아줌마에게 물을 얻어다 씻어야 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건지 아닌건지. 여튼 얻어온 물이 어찌나 찬지 데울 여력이 안 되서 그 찬물로 씻어댔더니 손도 꽁꽁 발도 꽁꽁. 머릴 감을 땐 눈앞이 암전이었다. 지옥도 그런 생지옥이 없더라. 벌겋게 얼어붙은 코를 하고 치를 떨며 집을 나선 나는 녹이 다 슬어버린 철로 된 대문을 닫자마자 보이는, 꼬불하고 투박하고 짜증이 그냥 치솟게 만드는 계단에 입김이 용처럼 마구 뿜어질 만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가방도 무거운데.... 뱀처럼 옭아 두른 목도리에 코를 묻으며 속에서 입술을 비죽인 나는 힘없이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헐렁한 바짓자락 세에 닿는 칼기온에 다리가 철통로봇마냥 얼어버렸다. 괜히 아리기 까지해서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이제 반하고도 조금 더 왔다. 아까 나올 때 8시였으니까. 아씨이. 그때부터 벌써 지각이었구나. 이 추운 날 운동장을 돌아야할 걸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다시 한 번 긴 한숨 내쉬고 체념한 마음으로 언 손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기계처럼 척척. 험한 계단을 내려가는 발치에 시선을 내렸다. 







 “.......”  


 “.....우왓!”  

  




이제 마지막 계단이었다. 좋아서 두 발로 깡충 뛰어 착지하려는데, 별안간 옆에서 시커먼게 불쑥 앞을 가로막아서 엉덩방아를 찍을 뻔했다. 놀란 눈으로 척 올려보니, 




  

 “늦었네.”  







 민호였다. 나보다 키가 더 큰 민호는 언제나 뾰족하고 매끈한 턱을 내보이는 거만한 자세로 나를 내려 보았다. 괜히 ‘내려 보는’ 듯한 그 턱이 얄미워 입술을 비죽이며 눈을 냉큼 가슴께로 내려버렸다. 슬금 눈을 내리는 나를 말갛게 쳐다보며 큰 손으로 깔끔히 정돈된 내 머리를 헝크러 뜨린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바람처럼 사라져버리더니 일주일의 부재를 하곤 이렇게 지금 내 눈앞에 있다. 학교 따위 가고 싶을 때 가고 안가고 싶을 땐 안가고. 하여튼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 수능을 치룰 고3씩이나 되는 주제에 그래도 되나 내가 다 걱정이 된다. 

 반가운 맘 터뜨릴까, 괜히 어으 추워어. 코를 훌쩍이며 부르르 몸을 떠는데 순간 눈에 허연 작은 산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발견한 저 ‘허연 산’은 하늘에서 뿜어낸 눈이 쌓인 눈 더미가 아니다. 민호가 태우고 잘근잘근 씹다 버린 꽁초들의 시체들이었다. 얼마나 피운건지 볼록하게 산을 이룬 것을 보니 내 숨이 다 턱턱 막힌다. 미쳤어 미쳤어! 나는 대번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민호를 올려보았다. 지금도 입에 껌처럼 질겅질겅 물고 있는 담배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올려 내고 있다. 







 “너 니 폐가 강철로 만든 폐로 알지?! 대체 얼마를 핀거야?” 


 “......”  







 내 말에 민호는 연기사이로 미미하게 눈을 접어 웃어보였다. 







 “하루에 저렇게 피우면 진짜 암 걸려!” 


 “......”  







나란히 어깨를 하고 정류장을 향해 내려가며 한 내 말에 고개 한 번 끄덕. 그러면서도 입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눈은 웃고있고. 소 귀에 경읽기 식이라는 생각에 에혀.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찌른 손을 더 깊숙이 하며 어깨를 움츠린 나는, 들릴 듯 말듯 목도리에 묻힌 채 말했다. 







 “냄새두 독하고. 옆에서 맡으면 나 간접흡연 하는 거잖아. 에씨이....” 


 “......”  







 다리가 길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뒤에서 보는 민호의 걸음은 갈지자로 휘적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걸음이었다. 크흡. 코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내 가방을 뺏다시피 해서 지 어깨에 척 하니 걸친 민호가 입에 문 장대를 껌 뱉듯이 툭 뱉고 내 앞으로 먼저 걸어 나간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빼꼼이 혼자 연기를 피워낸다. 이로 잘근잘근 물린 필터부분이 괜히 우습다. 홀가분해진 어깨를 으쓱하며 쓸쓸히 혼자 연기를 피워내는 미운 장대를 발로 비벼 끄고, 벌써 저만치 멀어진 민호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힐끔 곁눈질로 보니 뚱뚱해 보일만큼 두껍게 껴입고 코 위까지 목도리를 감아올려도 춥기만 한 날인데 교복만 딸랑 껴입었다. 하여튼.. 







 “이미지 생각해서 목도리도 안하고 장갑도 안했지 그치?” 


 “......”  


 “그러다 감기걸린다? 이미지는 커녕, 추한 코찔찔이 될 수도 있어!” 







 놀리는 내 말에도 그냥 입가만 슬쩍 짓는 웃음뿐. 대답도 없고 큰 반응도 없다. 힐끔 내려보니 주머니에 찔러 넣은 내 손과 달리 벌겋게 상기된 손이 안쓰럽다. 내 목도리라도 줄까? ....아 나도 추운데.. 아님 반만 풀어서 같이 두를까? 불편하려나? 장갑이라도 찾아 들고올껄... 춥겠다. 골똘히 열심히 고민하는데 별안간 이마에 툭. 세게는 아니고 뭔가가 부딪혔다. 







“뭘 그렇게 생각해?”  


 “...아..”  







 다시 피울거면 아깐 왜 버린건지, 언제 꺼낸건지 새하얀 새 담배를 이로 물고 질겅이는 민호의 얼굴이 괜히 밉다. 민호의 등에 부딪혀 살짝 헝크러진 앞머리를 쓱쓱 다듬고 목도리에 코를 박자 그 모습에 또 피식 웃는다. 피식. 그 소리에 코 박은채로 눈만 치켜 떠서 올려보니 또 한 번 더 피식. 하고 웃는다. 소리없이 저렇게 웃는거, 내가 에이씨를 입에 달고 있는 버릇과 같은거다. 괜히 또 나는 입 삐죽이는 못난 버릇인데 쟨 그냥 비죽거리는 웃음인데도 뭔가 태가 다르게 느껴져서 심술이 난다. 아아. 난 심술꾸러기인가봐아... 







 “일주일 못 봤다고 많이 뚱해졌네.” 


 “뭐,뭐가 뚱해져어!” 








웃기네?! 우이씨이. 작은거에 화르르. 열을 띄우는 내 모습이 우스운지. 허연 담배연기 속에 동그랗게 오른 두 뺨이 보인다. 








 “춥다. 가자.” 








 금새 다 태운 담배를 손가락으로 퉁 튕겨낸 민호가 휘적거리며 골목 끝을 향해 등을 돌린다. 나는 눈만 꿈뻑이며 어버버, 잠바로 파묻힌 뚱한 몸을 기뚱이며 그 뒤를 쫓는다. 에이씨. 삐쩍마르기만한 몸인데 뒷모습조차도 잘나서 또 심통이 난다. 













  








  




  

  




 “어때.” 


 “......” 


 “걸작이지. 으히히.”   







 가슴 한 가득 연습장을 끌어안고 빙구 웃음을 지어보이는 내 얼굴 위로 진기의 구린표정이 내리깔린다. 왜왜왜왜 왜에에~ 눈 크게 뜨고 턱을 주억거리니, 에혀어. 괜히 한숨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낙서를 좋아한다. 흔히들 끄적일때 그리는 글이나 사람이나 기하학적 도형같은 것이 아니라, 주된 종류는. 생김새는 다르지만, 칠흑같이 까맣고 반짝이는 작은 곳에서 나른함과 애절함. 무언가의 메세지를 지닌 듯한 눈동자를 공통으로 가진 동물들이었다. 솜씨는 없지만, 예술은 잘그리고 못그리고 그런거없이 그냥 마음으로만 통하면 되는거니. 낙서축에 속하는 내 동물들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라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내 동물들을 보는 진기는 어제와 다름없이 쯧쯧. 혀를 차는 반응만 보여준다. 








 “봐봐. 오늘은 목이 생명인 기린이야.” 


 “.......이건 뭔데.”   

  





관심없는 척 하면서도 따분한 눈으로 내 연습장에 눈을 내리깐 진기가 심심하게 묻는다. 음음. 무성의 하게 가르 킨 손가락을 보니, 





  

 “기린 머리위에 달린 혹! 왜, 꿀밤맞고 쑤욱 올라온거처럼 올라와 있는 혹 있잖아!” 


 “.........” 

  





씨바. 괜히 물어밨어. 라며 냉큼 고개를 휙 돌리는 진기의 옆모습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엑? 너 설마 기린 혹있는거 몰랐던거야?!” 


 “........” 


 “실망이야 이징기. 기린 혹 있는것두 모르구. 너 전교1등 헛이네.” 


 “으씨.” 

  




심술보가 오른 얼굴에 괜히 웃음이 나서 풉. 하고 웃었더니 펄럭 소리를 내며 책장을 넘겨댄다. 그 모습을 보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다시 연습장을 펼쳐 새카맣게 눈동자를 칠했다. 사각사각 연필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한참 기린 눈 살리기에 열중을 하고 있는데, 스을쩍 뚱한 진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민호형, 너한테 뭐라 안하디?” 

 “응?” 

  





형이라는 명칭이 괜히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다시 되묻자 진기가 콧잔등에 얹힌 안경을 검지로 끌어올리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댄다. 

  





 “일주일 동안 잠수탔다가 오늘 나타났다며. 기범이가 그러더라.” 


 “.......” 











안경너머로 반질거리는 진기의 호기심어린 눈이 괜히 부담스럽다. 멈췄던 연필을 다시 끄적이며, 나는 슬쩍 고개를 연습장에 가까이 가져갔다. 




 최민호. 이름만 들어도 가족 같고 살가운 이름. 겨우 남짓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지만 난 단 한 번도 최민호라는 이름이 왜 자꾸 다른 사람의 입방아에 찧어지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신통방통 속 시원히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진기만큼 공부를 특출나게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나긋나긋 지내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유독 민호에게 관심이 많다. 

 언제, 최민호가 뒤에서 깡패 짓 하고 다닐 만큼 주먹 쓰는 무서운 얘라고 으름장을 놓던 아이들이 있었다. 난 당연히 콧방귀를 꼈다.  비록 말수 적고 갸름한 눈과 턱 때문에 날카로운 인상을 주긴 했지만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게 민호였다. 혹시 어디서 버릇처럼 피워대는 담배 태우는 모습을 보고 그러는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일주일 만에 나타난 그의 행적에 은근히 말들이 많다. 나는 속상했다. 어디서부터 엉켰길래 민호가 나쁜 쪽 으로만 이야기가 나도는걸까. 괜히 연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종현이 왜이래?” 


 “흠흠. 냅둬.” 

  





4교시가 되서야 등교를 한 태민이 찬바람을 물씬 풍기며 다가왔다. 인사를 하기도 전에 내 암울오로라가 눈에 띄었는지 진기에게 찌르는게 보인다.  




그래에. 냅둬. 나 지금 기분 안좋아.. 




  




  





  




  

  




 밖에서 자는 것과 다름없는 집과는 달리, 학교에서 책상에 뺨을 붙이고 자는 것은 호화와 같은 일이었다. 필기와 수업듣기에 여념없는 진기의 옆얼굴을 보며 슬금슬금 눈꺼풀을 내려감은 나는 간만에 만나서 그런지 꿈속에서 민호를 만났다.   



 꿈 속의 민호는, 여전히 교복을 입고 담배를 물고 있었다. 같은 교복인데도 보여지는 기럭지가 남과달리 길쭉했고 드러난 어깨나 굴곡의 태가 달라보였다. 키도 나보다 크고 마른편인데 덩치도 제법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 1년 많이 먹고 많이 싸고 잘살아서 그런거라고 탕탕 거린 내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꿈속에 나는. 오늘 아침에서 마주한 것처럼 뚱한 얼굴로 연기를 피워내는 민호의 가슴께에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뭐가 불만인지 입은 한대발이고 밉게도 머리도 엉망인 못난 모습이었다. 

 민호는 담배를 태웠고 나는 뚱한 얼굴로 마주했다. 주위는 한적했고 아. 실눈이 내리는것 같기도 하다. 오늘 갑자기 맞았던 겨울이 확실히 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그렇게 심심한 분위기던 잠시. 젖살로 토실한 내 얼굴에 왼쪽손바닥을 얹은 민호가 다른 손으로 필터까지 태운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내며 연기를 불어냈다. 부스럭. 다시 한 개 피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입에 필터를 잘근 무는 것으로 끝으로 이제 두 손으로 내 두 뺨을 쥔다. 





  

“.......” 


“.......”     





  

얼굴을 보고 싶은데 피어나는 연기가 너무 하얗고 뿌애서 좀처럼 보여지지가 않는다. 가리워진 얼굴을 보려 팔을 드려 하지만 마음처럼 꿈속의 나는 멍청하게 두 손을 내리고 눈만 꿈뻑였다. 

  





“종현아..” 


“.......” 


  




응. 민호야. 




대답은 입안에서만 멤돌뿐. 움직여지지 않는 두 손처럼 목도 꽉 막혀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종현아..” 


“.......” 





  

응. 응 민호야. 나 듣고 있어. 말해. 








“.......” 

  





 거짓말처럼 담배연기가 불연듯 사라졌다. 대답을 위해 소리치기 위함일까, 우습게도 애처로운 눈으로 민호의 얼굴을 올려보던 내 모습이 민호와 맞닥드리자 말자 상기되었다. 




     





“........” 


“........” 





    




민호야. 왜 울어? 응? 울지마.. 







  




  








  

  




  




“야. 김종현!” 


“.......” 


“잘 자다가 왜 질질 짜고 지랄이야. 꿈에 못볼 동물이라도 봤냐?” 


“.......”  










흔드는 손길에 눈을 뜨자 노련하게 혀를 내두르는 진기의 얼굴이 보였다. 잠깐의 암전. 빡빡한 눈꺼풀을 다시 감았다 들어올리며 부스스. 허리를 펴고 앉았다. 일어나서도 눈만 꿈뻑이는 나를 보고 고개를 내저으며 돌아선 진기의 뒷모습이 아직 꿈속을 헤매는 기분을 준다. 

  





“뭐지...” 

  





꿈 속에서 민호는 울었고 






  


“.......”  




  





꿈을 꾼 나도 . 꿈속에 나도 울고 있었다. 




 연습장은 여전히 기린이 그려진 장이었다. 민호의 냉랭한 그 눈동자가 자꾸만 그림속에 있는 동물들의 눈동자와 겹쳐져서 나는 연습장을 덮어버렸다. 




일주일동안 잠수 타서 나만 고생이야. 우이씨... 




  

  




  
















  쉬잇.  

차가운 검지손가락이 입술을 억눌렀다. 




 그래. 착하지.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이 낯설다. 




 응. 그래- 

아니예요. 아니야. 나 부정하잖아. 아니야.... 싫어요.  

















02. 













 일찌감치 야자는 못하겠다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 놓은터라, 8교시가 끝난 나는 홀로 책가방을 싸고 교실을 나섰다. 처음엔 부럽다며 내 등에 시선을 던져주던 아이들도 이젠 내가 가는지 마는지 관심조차 없다. 나 갈께. 그래. 정리해논거 낼 보여줄께. 고마워.  응 잘가. 적막한 교실 안에서 입모양으로 벙긋벙긋 내게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진기에게 답례의 손을 흔드는 것을 끝으로, 조심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가방만 냅다 무거워 어깨만 아프다. 그러면서도 내심 헤어진 가방끈이 끊어 지는건 아닐까, 괜한 걱정이 들어 끈을 질끈 잡고 등을 추스렸다. 운동장엔 짧아진 해 때문에 일찍 켠 가로등불이 옅게 쏟아져있었다. 1년이 넘도록 걸은 길이지만 아이들 다 공부할 때 혼자 걷는 이 하교길은 언제나 쓸쓸하다. 

 터덜터덜. 왼발 오른발 번갈아 보이는 발치에 눈을 내리고 걸으며, 아까 잠시 꾸었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오랜만에 봐서 좋았는데, 좋은걸 또 이렇게 표를 내나. 괜히 스스로가 우스워진다. 민호는 내가 입학한 중학교의 한 학년 선배라고 하며 대뜸 이름을 묻는 터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한살 터울이었지만 성장이 빠른건지 마르고 작기만 했던 나와는 달리 지금 내가 느끼는 모습 그대로, 교복만 입어도 태가 나고 멋이 있었다. 말수가 적어 저를 동경하거나 좋아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는데도 굳게 입을 닫고 그 관심들을 무시해 버렸다. 그 반응에도 사람들은 까무라치며 그를 뒤쫓고 관심을 부어댔다. 왜, 티비에서든 만화책에서든, 모여진 공동체 생활 중에 암것도 안하고 존재만 하고 있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눈가고 마음가고 하는 그런 주인공이 있지않는가. 꼭 민호가 그랬다. 언제어디서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민호는 그렇게 받는 관심만큼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에휴우우....” 








 갑자기 또 머리가 암전이다. 뿌연 담배연기속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것이다. 그래. 일주일동안 못봐서 뭐 보고싶었거나 아쉬웠겠지. 그래 그래서 꿈을 꿨겠지. 근데 왜 울어 왜. 것두 내 뺨은 왜잡는건데에. 자꾸 내 뺨에 갖다댔던 늘씬하고 섬세한 손가락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닭살이 일었다. 나는 한 번 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쬐끄만게 뭘 이렇게 들고다니냐?” 


“........!” 








 어깨를 짖눌렀던 가방의 무게가 사라짐과 동시에, 난 정말 엄마를 외치며 자리에 주저 앉을 뻔했다. 놀라기도 했지만 눈앞에 빙글 웃는 민호의 얼굴을 보아서 놀라는 정도가 더 컸다. 나는 금방 울상이 되었다. 진짜. 진짜. 진짜 너무너무 놀랬다. 








“이 시간에 나온길래 기다렸는데.” 


“........” 


“또 늦었네?” 

  




 머리위에 쏟아지는 가로등의 주황빛이 어둠과 섞여 얼굴위에 검게 그늘을 만든다. 어김없이 담배를 껌처럼 질겅질겅 물고 있는 민호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였다. 그의 입에서 옅게 뿜어지는 연기를 보며 놀라서 울상이 된 채로 버릇처럼 작게 에이씨를 되풀이하던 나는, 아까 내쉬던 한숨과는 차원이 다르게 가슴이 눈에 훤히 보일만큼 크게 내쉬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뭘?” 


“아침에도 그렇구 지금도 그렇구. 나 너땜에 오늘 두 번이나 놀랬잖어.” 


“.......” 








내 말에 또 눈만 접어 웃어보이던 민호는 괜히 내 머리를 헝크러뜨렸다. 으이씨이. 하지마아! 손을 쳐내고 헝크러진 머리를 쓱쓱 정리하자, 또 웃으며 머릴 헝크러뜨린다. 






  

“밤톨이같이 해가지구.” 


“뭐?! 밤톨이?!” 


“이쁜아. 나 밥 좀 해주라.” 









화낼 틈도 없이 내 목을 죄어오는 그 두꺼운 팔에 나는 캭캭 소리만 질러내야했다. 밤톨이에 이쁜이에 오만걸 붙여 부르니 정신도 없고 괜히 얼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놔 달라고 발버둥치자 자꾸 반항한다며 더 꽉 조여내는 바람에 곧 소리도 못질렀다. 









“으이씨이...” 


“.......” 

  






머리는 엉망이 된지 오래고, 느껴지는 바 얼굴도 홍시처럼 발개졌음이 틀림없었다. 분을 삭힐 틈도 없이 얼퀴설퀴 엉킨 목도리가 축. 땅 밑으로 떨어진다. 볼에 바람을 가득넣고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자 민호가 필터를 질근 문 이를 하고서 입꼬리를 시원하게 끌어올린다. 이에 물린 필터부분이 눌린 종이처럼 납작하다. 바짝 타들어간 빨간불씨가, 민호가 움직일 때마다 힘없이 바닥으로 소리없이 떨어졌다. 불씨를 밟고서 내게 한걸음 다가온 민호가 허릴 구부려 내 눈을 맞추었다. 






  

“나 진짜 배고파. 밥 안해줄꺼야?” 


“........” 



  




머리에 얹은 손이 따뜻하다. 아니이.. 좀처럼 빠지지않는 바람 넣은 뺨을 하고 설레설레 고개를 내젓자 가만히 얹었던 손을 또 움직여, 가뜩이나 엉크러진 머리를 더 엉망으로 만든다. 









“그럼 가자. 오랫만에 우리 이쁜이가 해주는 밥 좀 먹어보자.” 


“....치.” 

  






  




  








  




  




  




  혼자 오르던 계단은 언제나 가파르고 길고 무섭기만 했는데, 오늘은 누군가와 함께어서 그런지 가뿐히 올라올 수 있었다. 여느때 처럼 헉헉. 숨을 몰아 쉬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것이 있어서. 입가엔 괜히 웃음만 내걸렸다. 









“보일러가 고장나서 집이 좀 추워. 장판 금방 데워지니까 거기 앉아 있어.” 


“........” 






  

가방을 바닥에 내리게 하고 어정쩡히 서있는 민호의 어깨를 눌러 앉힌 나는 목도리를 풀고 부엌을 향했다. 가스렌지와 식기를 보며 일단 팔부터 걷어붙였다. 허리까지 오는 작은 냉장고를 열자 미미한 냉기가 터져나온다. 안을 훑어보니 있는 거라곤 반포기도 채 남지 않은 김치와 달걀 두개가 다다. 문을 닫고 일단 쌀통에서 쌀을 퍼냈다. 아침엔 꽁꽁 얼었던 수도가 어느정도 녹았는지 수도꼭지를 비트니 졸졸 물이 나온다. 받는데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두 번이나 쌀을 씻고 얹혔다. 밥이 되는 동안 김치를 꺼내 잘게 썰어 도마에 얹어놓았다. 밥도 김치도 조금은 모자랄 것 같은 양이라 걱정이 좀 되지만, 뭐 모자라면 라면이라도 사서 끓여주지 뭐어. 라는 생각에 금방 어깨가 으쓱해진다. 








“.....후우.” 


“으익!” 






  

 아아, 오늘만 세 번째다. 




부엌과 방을 경계로 둔 문지방을 밟고서서 오른쪽어깨를 문턱에 기대 선 민호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습하게 내뱉는 그 연기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이번엔 제대로 놀라 엉덩방아를 찧어버렸고. 덕분에 손에 묻은 김칫국물이 옷에 죄다 튀어버렸다.   

  






“최민호!!!” 


“........”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자, 버릇처럼 한 쪽 이에 필터를 질겅 씹으며 어슬렁 다가온 민호가 두 손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너어. 오늘 나 세 번이나 놀래켰어. 거의 울듯이 씩씩거리자 연기너머로 또 샐쭉웃으며 미이안. 한다. 
 일으켜 준 손을 뿌리치고 너무 놀라 찔끔 나온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빵빵해지고 뚱해진 입을 하고서 휙 돌아 싱크대 앞에 섰다. 중얼중얼. 있고 없는 온갖 짜증을 되씹으며 눈을 부라리기도, 이를 악 물기도 하며 화를 표출했다. 죄없는 김치를 조각내며 툴툴거리던 나는, 아랫입술을 안으로 말며 김치를 썰던 칼을 탁. 내려놓았다. 









“아무리 생각해...ㄷ...” 


“.......” 









아무리생각해도 안되겠어. 너 왜 나 자꾸 이렇게 놀래키는거야?! 엉?! 하고 따지려 했던 물음이, 뜬금없이 허리에 감겨온 손에 놀라, 도로 쑥 들어가버렸다. 




  



“미,민호야.” 


“........” 









나즈막히 이름을 부르자 감긴 손에 더 힘이 들어간다. 등 뒤로 느껴지는 민호의 코끝이 괜히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돌아보지도 못하고 눈만 굴려대는데, 꽉 잠긴 듯 잔뜩 뭉개진 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쁜게 삐쩍 마르기만 해가지구.” 


“.......” 









 그 말에 긴장했던 맥이 풀렸다. 으이씨이. 너 또 장난쳤지! 하고 몸을 비트려 하는데 좀처럼 손에 힘을 풀질 않는다. 초조한 눈을 내리니 감고 있는 손등 위에 울긋불긋 올라온 핏줄들이 보인다. 나는 눈을 감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너 장난 그만하고 이 손 놔.” 


“.......” 


“빨리 놔. 나 화났어.” 


“.......” 









 내 경고에도 안 풀어주면, 때리고서라도 벗어나려했다. 말을 하고도 한참이나 그 모습 그대로 잠잠하기에 어깨를 비틀며 옆으로 피하자 생각한 것 외로 쉽게 손을 놓는다. 나는 붉어진 얼굴로 위태하게 서 있는 민호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 이씨이. 배고프다길래 데리고 왔더니 뭐야!” 


“.......” 


“누가 자꾸 장난치래! 놀래키는것두 한 두 번이지!” 


“.......” 

  






 내 앙칼진 외침에도 민호는 묵묵부답이었다. 굽은허리를 한 그 자세 그대로 있는 가 싶더니 곧 허리를 곧게 펴며 나를 향해 눈을 접어 웃는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게 진짜! 울상이 된 얼굴로 방을 향해 등을 떠밀었다.  응응. 알았어.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께. 내 떠미는 손길에 순순히 방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민호가 내게 손을 흔들며 또 웃어보인다. 




 김치 볶음밥을 만들긴 했지만, 날이 선 칼처럼 괜히 잔뜩 예민해진 나는, 결국 밑바닥에 누룽지가 늘러붙은 볶음밥을 만들어버렸다. 다시 만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내 자신에게 실망한 채로 힘없이 상을 올려냈다. 그래도 자취한게 얼만데 밥이나 태우구. 이게 다 민호 탓인것 같아 또 눈이 활활 타오른다. 무릎을 세워 앉은 나는 무릎에 뺨을 대고 밥상쪽이 아닌 벽을 보았다. 

  






“안 먹어?” 


“너나 먹어.” 


“..에이. 진짜?” 


“.......” 


“그럼. 잘먹을께.” 









숟가락이 후라이팬을 긁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입안에서 김치가 씹히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안엔 참기름과 탄내가 진동을 한다. 심술이 나서 배가 고픈 것도 잊었다. 먹다가 체하고 켁켁거려라. 속으로 그렇게 얘기하며 투덜댔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다 눈으로 열심히 숟가락질 하는 민호에게 눈빛을 쏘았다. 볼이 미어져라 열심히 입안에 볶음밥을 밀어 넣는 모습이 괜히 뭉클하다. 저거 태워서 맛도 없을텐데. 그 생각이 미치자 아까 체하라고 저주 내렸던 마음이 미안해진다. 정말 체하면 어떡하나, 냉큼 물을 떠서 옆에 밀어주었다. 









“맛있다.” 


“...거짓말. ” 


“아냐. 맛있어. ” 


“........” 









 태운게 뭐가 맛있어. 말대답 하려다 꾹 다물었다. 민호는 정말 쌀 한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내어준 물까지 원샷하며 손등으로 입가를 문지르고 시원하게 웃어보였다. 나는 말없이 후라이팬과 숟가락을 싱크대에 담구고 상을 닦아 한 쪽에 세워두었다. 바로 설겆이를 하려다 어깨를 늘어뜨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어? 가게?” 


“밥 얻어 먹었음 됬지 뭐. 자주 와서 밥 얻어먹을께.” 


“누가 준데?” 


“이쁜이 또 까칠하게 군다.” 


“이씨! 이쁜이하지마! 그게 뭐야!” 

  






방에 들어서니 넌지시 일어나 나갈 문을 찾는 민호가 보였다. 냉큼 옷자락을 붙들자 이쁜이네 마네 또 징그러운 소릴 하며 나를 놀린다. 그 놀림에 불이라도 붙은 것 처럼 화르륵 열을 내던 나는 붙잡은 옷을 놓고 자리에서 씩씩거렸다. 또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민호가 이로 잘근 씹으며 정말 갈 테새로 문고리를 잡는다. 냄새도 베고. 너 피곤하니까 얼른 자라. 라며 되려 내 등을 떠민다. 






  

“그럼 저기 골목 까지 배웅해줄게.” 


“배웅은 무슨.” 









뒤따라 신발을 챙겨신으려는 나를 단번에 저지하고 다시 내 등을 떠민 민호가, 아예 긴 팔로 문을 가로 막고 선다. 고개짓으로 방 안을 가르키며 들어가서 자. 한다. 배웅해준대두 그래. 툴툴 거리면서도 이불 위에 앉은 나는 물끄럼이 민호를 올려보았다. 









“간다. 잘자.” 

  






신발을 신은 채로 문 옆에 있는 불 스위치를 턱. 내려 꺼버린다. 갑자기 어두워진 방안에 어어? 하고 허둥대는 나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는 민호의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잘가!” 


“응응. 잘자라.” 

  






끼이익. 듣기싫은 문소리가 나고 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닫겼다. 피, 이제 8시도 안됬는데 무슨 잠이야. 까만 천장을 올려보며 눈을 깜빡이는데 순간 다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요즘은.” 


“응?” 


“..요즘은 꿈 안꿔?” 


“무슨 꿈?” 



  




등지고 있는 가로등에서 주황불빛이 쏟아졌다. 민호는 까맣게 보였지만 입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지금 담배를 태우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갑자기 왠 꿈 타령이야? 뉘었던 몸을 일으켜 되묻자, 요즘은 안꿔? 하고 물었던 걸 내게 다시 묻는다. 난 고개를 내저었다. 






  

“안 꿔.” 


“.....그래. 간다. 잘자라.” 


  





민호야! 하고 이름을 외치기도 전에 쾅 닫힌 문 너머로 저벅거리며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린다.  뭐야아..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뉘이며 나는 다시 새까만 천장에 시선을 두었다. 주황빛이 문에 달린 작은 창문 너머로 어른거린다. 나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지금 자면 일찍일어날테니까 설겆이는 낼 하지뭐. 시계도 없어 텅 빈 방안에서 울리는 귀울림을 자장가 삼아 나는 눈을 감았다. 






  

- 요즘은 꿈 안 꿔? 


- 아니. 안 꿔. 


- 그래. 간다. 잘자라. 


- ......... 


- .... 다행이다. 내가 없는 동안 안 아파서. 






  

민호야. 안들려. 뭐라구? ... 너 오늘 이상해. 

왜 자꾸 내 꿈에 나와? .....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이불을 개어 올릴 때 어제는 보지 못했던 흰 봉투가 발치에 떨어졌다. 그리고 봉투 뒷 면에 적힌 쪽지.  







[밥 값 미리낸다. 쌀 사놓고 반찬 사 놔. 내일은 불고기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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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누나 글 진짜 잘쓰세요......................................... 지금까지쓰신거 다읽ㄱ고옴.....
12년 전
Harvey
감사합니다ㅠㅠ
12년 전
Harvey
하편도 올렸어요!
12년 전
독자2
와...느나..아니 작가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Harvey
ㄴ...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3
너므너므 잘쓰셨스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Harvey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4
아이쿠 아닙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Harvey
부끄더워서그래옇.......
12년 전
독자5
뭐가 부끄더우세여...ㅇㅁㅇ!!!
12년 전
Harvey
그....그냥..... 본인글확인하는게 제일 부끄러워욬ㅋㅋㅋㅋㅋㅋㅋㅋ
12년 전
독자6
음...그러쳐?저도 그래여 그건 헹헹헹
12년 전
Harvey
하편도 올렸습니당!
12년 전
독자7
아ㅠㅠㅠㅠㅠ최미노같은남자친구있었으면좋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김종현부러워ㅠㅠㅠㅠㅠ
12년 전
Harvey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부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편도 올렸어요~
12년 전
독자8
어ㅜ우우 달달... 근데 왜 아프리카에옇?
12년 전
Harvey
글 시작하기 전의 첫 문단을 먼저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거였거든요... 원래는 글의 전반적인 시놉을 잡아놓은 후에 주인공도 정하고, 제목도 정하는데 이 글 쓸때는 커플링도, 제목도 글보다 먼저 생각하고 썼네요ㅠㅠ
12년 전
Harvey
下편도 올렸습니다 ㅍ_ㅍ
12년 전
독자9
작가니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신작알림신청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또써줘여
12년 전
Harvey
헐 ㅠㅠㅠ 감사합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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