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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온앤오프 성찬 엑소
27 전체글ll조회 247l 2













"이리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마마. 저는 관령 강씨 집안의 ……"






승전식에서의 사람들의 시선은 예상했던 것만큼은 나쁘지않았다.

적대감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있었으나,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 내 앞에서 자신의 집안과 이름을 소개하고 있는 이 남자같은 사람들,



원래는 승전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최대한 구석진 곳으로 태형과 지민을 이끌어 내가 있는 궁에 돌아갈 수 있는 시간까지 버티는 게 계획이었다. 태형이 겁먹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마음에 박혀있는 죄책감들 때문에 이곳에 당당히 서있기는 꽤 힘들었기에.



그런데 그 계획이 깨진 건,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내 앞에 나타난 하얗게 샌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의 자기소개가 계기였다. 갑자기 나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의 이름과 가문을 소개하던 남자는 꽤 긴 대화를 남기고 떠났는데,그것에 어리둥절해있을 때면 내 앞에 또 다른 남자 한 명이 나타나 아까와 비슷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자리를 뜨면 또 한 명, 그 한 명이 자리를 뜨면 또 다른 이가 한 명… 그렇게 조금의 간격을 두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달라 찾아왔고, 겨우겨우 발을 옮겨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지금도 그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명국에서도 아버지가 가끔 연회를 열 때 지금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던 나의 눈에 들어 조금의 권력이라도 얻어보려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고,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궁에 들이지 않던 정국이 갑자기 들인 나의 눈에 들어 조금의 권력이라도 얻는 게 그들의 목적일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내 눈에 들어 조금의 권력이라도 얻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

그것도 모른 채 지금처럼 내 앞에선 남자처럼 이리도 자신을 열심히 소개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건 억지로 들어올린 입꼬리뿐이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혹시 제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음... 강......이름이 중요한가요. 얼굴은 이미 다 익혔습니다."






곧 있으면 입가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내 표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내 앞에 서있던 남자는 자리를 뜨려는 낌새를 보이는 듯하다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물어본다. 분명히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왔다간 걸 보았을 텐데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그가 내 기억력의 한계를 시험해보려는 게 분명했으나, 안타깝게도 내 기억력은 그가 기대하는 만큼 뛰어나지 않아 만족하지 못할 대답을 내놓으면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읊고 겨우 자리를 뜬다.


그의 모습이 사람들 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걸 보고 드디어 끝이구나 싶어 후, 하고 깊은숨을 내쉬면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지민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마마, 오늘 인기가 굉장히 많으십니다." 





"부러우시면 넘겨드릴 생각도 있는데, 어떠세요?"





"음... 받을 수만 있다면야... 감사히 받을 의양은 있습니다."






나는 내 질문에 지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극구 사양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예상치 못한답을 내놓고는 담담히 나를 쳐다본다. 내가 시달리는 걸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봤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해져 진짜냐고 그에게 물으면 여전히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한다






"네. 다 마마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아닙니까."






"음...그런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답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말없이 서있던 태형을 힐끗 쳐다보면 똑같이 나를 쳐다본 태형과 눈이 마주친다. 지민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근데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허울뿐인 가치라는 거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태형과의 대화에 익숙해져 잠시 잊고 있었다. 지민은 나와 정국의 관계를 모른다. 나와 정국이 정치적으로만 엮여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내가 아는 선에서는 당사자인 나와 정국, 그리고 태형뿐이었다. 어쩌면 더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민은 모르는 눈치였다.



가끔 지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게 어떻냐-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그래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앞으로 이 궁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은 하지 못했지만, 지금 내게 주어져있는 예비 왕후의 자리가 오늘만 봐도 나에게 꽤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건 확실했고, 그런만큼 이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나와 그들의 군주가 사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이고, 그의 정치적인 목표를 위해 나를 이 자리에 앉혀놨다는 게 그들에게 퍼진다고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건 나였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그들이 가장 먼저 물어뜯을 것은 나였다. 



왕후는 전하를 가장 가까이서 모셔야 할 존재입니다- 뭐 대충 이런 말들을 꺼내면서 정국에게 가장 위협적일 존재가 나라를 쥐고 흔들 수도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게 말이나 되냐며 나를 끌어내릴 것이었다. 그렇게 끌어내려진 후의 내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지, 그렇게 되면 내 목숨은 그렇다 쳐도 아버지를 볼 낯이 없었다.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뒤로 보내며 살으라고, 살아서 명국을 다시 재건하라던 아버지.


나와 정국의 관계를 다른 이가 알아선 안될 이유는 이렇게도 확실했다. 그리고 방금은 그 이유를 다시금 더 확실히 되새길수 있었고.




갑자기 고요해진 공기를 흩뜨리려는 듯 태형이 입을 열었다.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들이기도 하죠. 가치가 없어졌다 생각하면 가차 없이 그것을 버려버릴."





지민은 태형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냐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에게 물었다. 마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요? 저도 태형님과 비슷한 생각이긴 합니다."





"역시 그렇죠?"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노력하는데 있어선 본받을만한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의외의 대답이십니다."






의외의 대답이라며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지민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웃음소리는 꽤 오랫동안 지속됐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눈가에 눈물 몇 방울이 고여있을 정도까지 불어나있었다. 손가락으로 그 눈물을 닦아낸 지민은 웃음을 겨우 멈추고 입을 열었다.






"명국인들은 대부분 마마와 비슷한 성격인가요?"







"성격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죠. 명국인이라고 다 제 성격은 아닐 텐데요. 근데 무슨 이유로 이런 걸 물어보세요?"







"아,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전부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욕하기 바쁘던데, 마마 같은 분은 처음이라. "






지민은 무슨 이유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겉으로 드러나는 게 다가 아닌 듯한 말들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채 그를 응시하면 그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잇는다.







"그래도 태형님의 말처럼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믿어선 안될 사람들인 건 맞습니다.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뒤쫓으면 그 끝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지민과 미묘히 닮은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남자.



지민의 아버지였다.







.

.

.







지민의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자신의 아들이 마마를 모실 수 있어 영광이다, 혹여 마마께 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등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흔히 하는 말들을 했고, 옆에서 그것을 듣고 있던 지민도 자식이라면 마땅히 할 수 있는 말들을 했다. 그렇게 모두 다 마땅히 할 수 있는 말들만을 했는데, 어딘가가 불편했다. 지민이 아까 꺼낸 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민의 아버지가 떠난 후엔 지민도 잠시 가야 할 데가 있다며 자리를 떴고, 남은 건 태형과 나뿐이었다.





"지민님은 아버지랑 되게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게 생기셨네요."





"그러게요. 예전에 뵀을때는 완전 판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다른 느낌입니다."






예전에,라고 하는 걸 보니 태형은 지민의 아버지를 오늘 처음 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긴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이 같았으니, 아버지도 한 번쯤 뵀을 수도 있겠지.






"태형님은 지민님과 언제부터 아는 사이셨어요?"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제가 궁에 들어오고 일이 년쯤 지났을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궁에 언제 들어오셨는데요?"





태형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열넷이요. 하며 답한다.


열넷. 궁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이르면 7살 늦어도 10살부터 궁에 들어와 교육을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열넷은 조금 애매한 나이가 아닌가?


이유를 물어볼까 고민하고 있으면, 멀리서 주상전하 납시오-라고 외치는 내관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의 시선은 어느 한곳으로 일제히 옮겨지고, 그곳을 나도 바라보면 자리에 착석하고 있는 정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중앙을 비웠고, 그 비워진 곳으로 악기를 든 악공들과 무희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의미하는 건, 드디어 내가 내가 사는 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태형님, 이제 가요."





"... 지금 가시려고요?"





"네. 태형님이 적어도 전하가 오실 때까지는 여기 있어야 한대서 지금까지 있었던 건데. 지금 오셨으니까 가도 되는 거 아니에요?"





태형은 어딘가 곤란한 표정으로 아, 그, 저 같은 말만 반복한다. 왜, 뭐가 문제지?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던 걸 태형의 '적어도'라는 말 때문에 참았는데 여기 내가 남아있을 이유가 더 있었던 건가.


빨리 가자며 태형을 부추기면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래도 전하를 한번 뵙고 가셔야..."





"어찌 여기계십니까."





태형의 말 중간에 언제 다가온 건지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사람은 또 누군지, 왜 갈 때쯤 나타나 여기 있냐고 물어보는 건지 당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태형이 아는 사람인 듯 그에게 말을 건넸다.





"석진님, 무슨 일..."





"늦으셨습니다. 분명 지민에게 전해달라 말해 놓았는데 듣지 못하셨나요?"





지민에게 했다는 말은 또 뭐고, 대체 뭐가 늦었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말만을 늘어놓는 남자는 자신한테 인사를 하는 태형의 말은 다 무시한 채 나에게 어딘가로 빨리 가야 한다며 자꾸만 나를 재촉했다. 살짝 구겨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태형의 팔을 잡으면 태형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다 아, 하며 남자를 소개한다.






"총리대신입니다. 이름은 김ㅅ..."






"김석진입니다. 한가롭게 제 소개나 하고 있을때가 아니오니, 어서..."






"아니, 왜 자꾸 사람말을 끊어요?"






자신의 말을 끊으며 왜 사람 말을 끊냐고 날카롭게 말하는 내 모습에 그는 당황한듯 하던 말을 멈춘다. 자기 말을 끊으면 저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면서, 왜 태형의 말은 그렇게도 잘 잘라먹었는지.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 입술을 지그시 깨물던 그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다.







"제 생각이 짧아 마마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사과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조금 있으면 올라오겠지 생각한 그의 고개는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하고 그를 쳐다보면 잡고 있던 태형의 팔이 조금 움직이면서 태형이 나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속삭였다.


안 받아주시면 계속 저러고 있을 겁니다. 빨리 받아주세요.


태형은 자신의 말을 계속 끊고 무시하던 그가 밉지도 않은지 빨리요. 하며 그를 향해 고갯짓을 하는데 그에 어쩔 수 없이 괜찮습니다. 하고 말하면 그제서야 숙여져있던 고개가 제자리를 찾았다.





"마마는 오늘 저를 처음 보신 것일 테니 다시 소개 드리겠습니다. 청국의 총리대신, 김석진입니다."




현재 전하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고 있습니다.



석진은 자신의 이름과 직위를 알리곤, 이제 본론을 말해도 되겠냐며 나에게 물어봤고, 아까보다 훨씬 정중해진 그의 태도에 나는 그러라고 했다. 살면서 오늘이 가장 자신을 알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생각이 길게 이어질 틈도 없이 악공들의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말을 꺼내려던 석진은 조금 조급해진 듯 보였다.





"지민에게 전달해달라 부탁하였는데, 그가 승전식에서 전하의 옆에 앉으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던가요?"






정국의 옆자리에 내가? 정국의 옆이라는 말만 듣고 눈이 커진 내 표정을 본 석진이 한숨을 쉬며 지민은 대체 왜... 같은 말을 내뱉는다. 꽤나 곤란한 듯 한숨을 푹푹 쉬는 석진에게 제가 왜요? 하고 물으면 그는 뭐 그렇게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 나를 쳐다본다






"왕후가 되실 분이 아닙니까."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한데, 내 말은 아무리 왕후가 될 예정이라고 해도 일단 현재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런 사람을 굳이 왕의 옆에 앉히느냐는 말이다. 지금도 그렇고 모두가 나를 마마, 마마 하며 극진히 대접하고는 있지만, 따져보면 지금의 나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왕후는 무슨, 빈의 지위도 없고, 심지어 궁녀도 아닌, 아무런 직위도 없는 나한테 왜 그렇게 자꾸만 과도한 대접을 하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석진을 바라보면 그는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며 빨리 가셔야 한다고 나를 이끌었고, 그의 조급한 표정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떼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그를 따라갔다.






.

.

.






석진을 따라 발을 옮겨 정국이 앉아있는 곳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무심한 표정으로 악공들과 무희들을 지켜보는 정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형을 처음 만났을 때 본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어, 가능하면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살고 싶었는데 역시 불가능한 소망이었나 보다. 석진이 이끄는 대로 그의 옆에 마련된 자리로 다가가 깊은 숨을 뱉으며 앉으면, 인기척을 느낀 정국이 나를 힐끗 돌아본 뒤 시선을 다시 앞으로 고정한다.





"늦으셨습니다."





늦었다 한 마디만을 꺼낸 정국은 그 후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도 사무적으로 죄송하다는 말만을 꺼내고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정적이었다. 이곳의 어딜 가도 악공들의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데, 나와 정국 사이에는 그것들과 너무나 대비되는 정적만이 흘러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 중에 어느 하나가 입을 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그저 빨리 이 승전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밖엔 할 일이 없었고, 그건 정국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한참 후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석진의 한숨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고, 그 후 석진이 정국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국과 석진이 몇 번 대화를 나누다 석진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정국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 지민의 가르침은 어떻습니까."






느닷없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면 눈이 마주친다. 왜 굳이 궁금하지도 않을 것 같은 질문을 짜내어 억지로 말을 붙이는지, 대체 무슨 의도로 저런 걸 물어보나 싶어 그를 응시하면 정국도 눈을 피하지 않는다.






"... 훌륭합니다. 학문적 소양도 그렇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실 분이 아니더군요."







"그렇군요."






고개를 작게 끄덕인 정국은 다시 말을 잇는다.






"제가 그대에게 스승을 붙인 이유를 아십니까."






"아뇨."






"그대가 대외적으로 나서려면, 이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






"명국백성들에 대한 청국백성들의 평판이 좋지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그냥 억지로 말을 붙이고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장소에서 나오기는 무거운 말들의 나열에 머리가 잠시 멍해졌다. 그가 꺼내는 이야기는 그래서는 안됐지만 내가 잠시 뒷전으로 물려놓았던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인 듯 했다. 언젠가 생각했던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 당장 내가 처한 상황들로 인해 깊게 생각할 수 없었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 명국의 백성들. 명국의 공주인 나를 어머니처럼 따르며 사랑하던 나의 사람들. 어찌 전쟁 후 그들의 삶을 이렇게 잊고 있었는지.

그들이 무슨 대우를 받고 있길래 그가 저런 말을 꺼내는 걸까 사뭇 진지해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 그는 천천히 입을 연다.






"아직은 국경 부근이었던 지역뿐이지만, 백성들이 명국 백성들의 이주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로는 청국 백성들은 모두 명국인들이 더럽고, 도둑질을 쉽게 일삼으며, 병을 몰고 온다고 생각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것 같았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을 겪어보지도 않고 저들 맘대로 판단한다는 말인가. 

백성들은 이리도 참혹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었는데, 그들을 잊고 이렇게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 내가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제일 부끄러운 건 이런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걸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잊고 있었던 일들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 낸 이야기의 끝에 정국은 자신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명국인에 대한 편견을 바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저를 청국 백성들에게 내보이시겠다고요."






"네. 그럴 목적으로 그대를 그 자리에 앉혀놓은 건 아니나 상황이 이리 되어버렸네요."







무거운 침묵이 사이를 흐르면 정국은 나를 쳐다보던 눈을 거두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다. 들려오는 밝은 음악 소리들이 하나같이 이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생각해보세요. 그대가 저를 원망하는 것은 아주 잘 알고있으나,"




"……"




"저도, 그대도 지금은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잊고있었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자꾸만 눈 앞을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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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뭔가 오늘 떡밥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지민이도 그렇고 태형이도 그렇고!!! 빨리 다음화를 보고싶네요!!!! 잘보고갑니다!!!!
5년 전
비회원82.164
등장인물이 슬슬 다 나오겠죠?? 혐생으로 미뤄뒀다가 새벽에읽는중...^^
5년 전
비회원18.27
와 ㅠㅠㅠㅠㅜㅜ요 ㅠㅠㅜ작가님 너무 좋습니다 ㅠㅠㅠㅜ감사해요ㅜ흑흑❤️❤️❤️❤️
5년 전
비회원187.33
와,,,,,,짱예요ㅠㅠㅠㅠ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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