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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김남길 강동원 엑소 온앤오프 성찬
27 전체글ll조회 262l 1


 

 


 

 






"이게... 이게 뭐라고 읽는 거더라..."



아 도저히 모르겠다... 앓는 소리를 내며 의자 뒤로 고개를 젖힌다. 
나는 지금 내 방에서 지민이 다음 수업까지 꼭 외우라고 했던 글자들을 외우고 있는 중이다. 아직 익숙지 않기에 지민이 써준 글자들을 보고 새 종이에 삐뚤빼뚤 옮겨 적는 걸 반복하고 나면 읽는 법이 기억나지 않는다. 지민이 어제 이걸 가르쳐준다고 쓴 종이만 몇 장인가, 아마 다 펼쳐놓으면 저 방 한편은 채울 수 있을 정도였는데. 
태형이라도 있으면 바로 가르쳐달라고 했을 텐데, 태형도 정말 오래간만에 자리를 비웠다.그를 만나고 첫 일주일 동안만 하루에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고, 그 이후로는 내 곁을 비운적이 없어서 그런가 빈자리가 꽤나 크게 느껴진다.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종이를 들여다보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지 않는 발음에 포기할까 생각할 때쯤에, 밖에서 마마, 잠시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오라 대답하면 문이 열리며 얼굴을 익힌 궁녀가 두꺼운 천이 든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그녀의 이름은 단이.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여 친해져놓으면 좋을 듯싶어 얼마 전에 한번 말을 붙인 적이 있는데, 그 후부터 그녀의 엄청난 친화력으로 내 방을 스스럼없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마마, 여쭐 것이 있어 왔사온데, 적색이 좋으십니까, 아니면 청색이 좋으십니까? "




마마껜 청색이 더 어울리실 것 같긴 한데요. 단이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양 손에 각각의 천을 든 채 나에게 다가온다. 




"음... 그럼 청색이요. "



"역시, 청색을 고르실 줄 알았습니다. 저도 청색을 좋아하거든요! "




그거 둘이 대체 무슨 상관이지 싶어 단이를 쳐다보면 그녀는 히-하며 해맑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 그럼 저 여기서 바느질 좀 하고 가도 될까요? 최고상궁님은 저만 보면 이건 이렇게 해야한다, 저건 왜 또 저렇게 해놨느냐- 잔소리를 하셔서요. "




된다는 대답도 안했는데 단이는 벌써 자리에 앉아 바느질을 시작하려는 자세를 취하곤 나를 바라본다. 저렇게 쳐다보는데 안된다 할 수 도 없고. 그런 단이의 모습이 어이없이 웃겨 허탈하게 웃은 뒤 그렇게 하라고 대답하면 감사합니다!하고 단이는 바로 바느질을 시작한다. 그런데 저게 뭔데 나에게 좋아하는 색을 묻는지, 턱을 괴고 단이의 손에 있는 천을 바라보면 단이는 그런 나의 시선을 느끼고 천을 흔들며 말한다.




"마마 겁니다. 내일 저고리에 다실 거요."




"내일요?"




"네, 설마 모르셨습니까? 내일 승전 기념식이잖아요. 대신들이 마마를 뵈려고 얼마나 관심을... 헉 , 죄송합니다..."



단이는 즐겁게 말을 털어놓다 내가 그 승전의 제물이 된 국가의 공주라는 걸 뒤늦게 기억해내고는 놀란 눈으로 입을 막는다. 기분이 살짝 나빠졌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청국의 백성으로선 기뻐할만한 일이 맞으니까.
그나저나 단이가 저 장식을 만드는 걸 보면, 아마 그 기념식에 나도 참가해야하는거겠지. 웬만하면 보통 그런 날엔 나같은 사람을 빼고 하지않나 한참 생각하다 내 처지에 뭘 바랄까 싶어 받아들이기로 했다. 명국에게 이긴 것을 기념하는 장소에 명국의 공주가 참가한다니, 기분이 씁쓸하다. 단이는 표정이 굳은 내 눈치를 살피다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래도 마마께 전하가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아마 나를 위로하려 꺼낸 말인듯한데, 위로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정국이 있어 다행이라니, 태형이 들었다면 당장에라도 단이를 끌어냈을 얘기다. 정국만 없었다면 완벽할 내 인생, 망쳐놓은 게 대체 누군데. 부들부들 떨리는 입으로 아... 네...^^... 하며 억지웃음을 지으면 단이는 내 속도 모른 채 계속 눈치 없는 말을 꺼낸다.





"전하께서 마마를 얼마나 아끼시는데요. 궁녀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태형님도 그렇고 지민 님까지 붙여주신 걸 보면..."





단이는 그 뒤로도 점점 썩어가는 내표정이 보이지 않는 듯 한동안 정말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제발 아무나 와서 빨리 단이의 입을 막아줬으면. 아... 네... 그렇죠... 하며 단이의 말에 대충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보면 내 간절한 소망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태형이 돌아왔다는 최고상궁이 말이 문너머에서 들려온다. 단이는 그 말에 드디어 말을 멈추고 헉,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며 바닥에 있던 천을 챙겨 방을 나선다. 정말...길고 힘든 시간이였다... 단이가 나가고 그 열린 문으로 태형이 걸어들어오는데 그의 뒤에서 빛이 나는 것 같기도하다.





"별일 없으셨습니까."





별일... 별일이라면 별일이죠... 이렇게 사람이 반가운 적은 또 처음이네... 반가운 마음에 태형을 환한 표정으로 맞으면, 영문을 모르는 태형이 의아한 듯 이마를 한번 올리고는 내 쪽으로 다가온다.


종이를 집어 들며 글자는 다 외웠냐며 묻는 태형에게 너무 어렵다며 핑계 아닌 핑계를 늘어놓고 나면 아까 단이가 말한 승전식이 갑자기 떠오른다. 태형은 왜 이런 걸 나한테 말을 안 해주는지. 단이 아니었으면 아마 내일 알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태형을 밉지 않게 흘겨보며 물었다.





"태형님, 근데 저 내일 승전식 가야 한다면서요. "





종이를 보던 태형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온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다 말을 꺼낸다.





"미리 알려드리못해 송구합니다. 방금도 전하께 마마의 참석에 대해 여쭈어보고 오는 길이나, 전하의 생각이 워낙 굳건하셔서... "




태형은 송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의 말로썬 아마 최대한 내가 참석하지 않게 노력했던 것 같은데, 나보다 더 속상해하는 듯한 태형의 모습에 갑자기 가슴이 짠해진다. 이 궁 안에서 내 생각을 해주는 건 태형 밖에 없구나. 좀 늦게 말해줄 수도 있지 내가 뭐라고 태형에게 그렇게 말했는지. 어휴 나는 진짜 오늘도 반성해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태형의 모습에 내가 더 미안해져 태형님이 왜 미안해하세요. 고개 좀 드세요. 하며 안절부절못한 채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시선을 맞추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내 얼굴에 놀라 태형은 뒷걸음질 친다. 꽤나 멀리 뒷걸음질 친 태형의 모습에 "왜 그렇게 놀라세요? 살짝 마음아프려하네..." 하며 장난스레 가슴을 부여잡으면 태형은 말을 더듬으며 나 때문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그러다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아,하며 품 속에서 작은 종이봉투를 꺼내 나에게 건넨다.






"그... 이런 걸로 마마께 사죄를 구하려는 건 아니지만..."






열어보시죠. 하며 건네는 걸 받아 웬 선물이지, 봉투를 살펴보면 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맛있는 향기가 풍겨온다.


어딘가 익숙한 이 향기는...혹시 하며 살짝 밝아진 표정으로 태형을 쳐다보면 얼른 열어보라는 듯 고갯짓을 하며 입꼬리를 올린다.





" 태형님...이걸 어디서... "




봉투를 열면, 익숙한 형태의 과자가 눈에 보인다. 거기다 그냥 과자가 아니다. 이 과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국에서만 생산되던! 과자라고!!!!!!!




태형이 이걸 어떻게 알고 가져왔냐면, 며칠 전에 궁녀분이 가져온 다과를 먹고 있던 때였다.



















"근데, 혹시 청국은 모든 음식에 녹차 같은 게 들어가나요? "






옆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집어 들던 태형에게 그렇게 물었다. 왜냐하면 청국에 온 이후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들던 생각인데, 왜인지 모르게 이곳 음식은 다 조금씩 쓴맛이 났기 때문에.

처음에 식사를 할 땐 식사라서 몸에 좋은 걸 많이 넣었나 보군 하며 넘어갔고 다음 다과를 먹을 땐 쓴맛이 나는 과자인가 보군하고 넘겼는데, 그것들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또 다른 것까지 전부!!!!! 쓴맛이 났다!!!!!!!!! 혹시 내 미각이 이상해진 건가 싶어 태형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네. 녹차가 특산품이기에, 거의 다 조금씩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였다.

내 미각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 엄청 정확한 거였어... 나는 사실 이 쓴 맛들 때문에 안 그래도 고달픈 내 삶이 조금 더 고달프다. 아니 맛들에 집중하려 하면 어딘가에서부터 조금씩 쓴맛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먹는 거라도 입맛에 맞으면 그래도 그나마 조금 행복할 텐데...





"... 혹시 음식들이 쓰신가요? "






"아니 뭐, 조금 쓰긴 한데, 그렇게까지 쓴 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단 걸 좀 좋아하기에... "






다음부터 녹차만 좀 빼달라고 하면 괜찮겠죠! 하하! 하고 웃으면 태형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건, 안될 텐데요. 






"청국은 말씀드리기 뭐하나 녹차에 자부심이라는 게 조금 있는 편이라, 궁녀분들께 녹차를 빼달라 말씀하시면 마마의 말씀이니 그것이 빠지긴 할 터이나, 그분들의 실망이 여간 크지 않을 텐데."



마마께서 그것을 감수하고까지 녹차를 빼실 성격은 아니신 듯 하옵니다만... 태형은 내 눈치를 보며 조곤조곤 말한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빼달라 말하는 것 까진 쉬운 일이나, 녹차를 빼달라고 하면 실망한다니... 녹차가 뭐라고... 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자부심이 무시당하는 기분이겠지... 그 실망한 얼굴을 어떻게 봐... 마음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냥 내가 참고 먹자. 나 따위가 뭐라고...





"음식이 입맛에 안 드신다니, 큰일이네요... 혹시 뭐 따로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 "





있다. 지금 내게 생각나는 바로 그것. 이곳에서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간절히 생각나던 그것. 바로 명국의 자랑거리, 명국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자.
하지만 명국 안에서만 거래되었고, 만드는 방법 또한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었기에, 그것을 지금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였다.





"있긴 한데... 아마 못 구할 거예요... "




축 처진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하면, 그는 혹시 모른다며 말해달라며 나를 달랜다.





"그... 명국과자인데... 이만한 크기에 이런 모양인데... "





손짓으로 모양을 설명하면, 태형은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다 아, 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태형도 아마 아는 과자인 듯한데 알면 뭐 하나... 다신 못 구할 텐데...



그렇게 스쳐지나가듯 태형에게 내가 그리워하는 과자를 알려준,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 내 눈 앞에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 이 과자는 내가 그때 태형에게 말한 바로 그 과자다.





"이것을 말씀하셨던 게 맞으시죠? "




"네. 이거 맞아요... 설마 지금 꿈 아니죠? "




"꿈 아닙니다. 빨리 드셔보세요. "




작게 웃으며 꿈이 아니라고 하는 그의 말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걸 내가 다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기쁨에 떨리는 손으로 과자를 한 개 꺼내 베어 물면, 익숙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게 꿈이 아닐 리가 없는데.





"태형님 너무...너무 진짜...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하셨어요? "




"뭐... 집안에 이곳저곳 여쭤보면... 어디서든 하나는 나오게 돼있으니까요. "





흐뭇한 듯 입꼬리를 예쁘게 올려 웃고있는 태형에게 그도 먹으라며 과자를 건네면, 그는 괜찮다며 사양을 하다 결국 하나를 베어먹는다. 그의 반응이 궁금해 커진 눈으로 그의 표정을 살피면, 태형은 그 모습이 꽤나 웃겼는 듯 갑자기 풉,하며 입을 막고 웃는다. 아 왜 웃으세요! 큰 소리를 치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웃는 그의 모습이 어이가 없어 허,허허...하고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참 고마웠다. 베어무는 한입 한입마다 그가 이걸 찾으려 노력했을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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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르게 입으셔서 그런지 또 다른 느낌이네요. "




태형과 함께 승전식이 열리는 장소로 가던 길, 앞에서 느긋히 걸어가고있던 지민을 만났다. 내가 평소와 달라보이는 이유는 다 단이 때문이지.






"아니 그럼 저거말고 뭐 입으라구요... "



"아 아무튼 안됩니다! 오늘 마마를 뵈려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달려들 간사한 대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수수한 옷이라뇨! 그걸 입고가실 바엔 차라리 제 목을 치고 가세요. 절대 안됩니다!"






나는 승전식에 내가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냥 적당히 차려입은 듯한 옷을 골랐을 뿐인데, 단이는 절대 안 된다며 내가 고르는 옷마다 전부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골라온 옷들을 펼쳐놓으며 이것들 중에 고르세요! 다른 건 절대 안 됩니다!라며 무척이나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한숨을 쉬며 옷들을 살펴보면 와... 누가 보면 뭐 황제 즉위식인 줄 알겠네. 각양각색의 온갖 화려한 옷이라고는 여기 다 모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 이걸, 오늘, 나보고? '


옷을 가리키며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태형에게 입모양으로 말하면 그제서야 큼, 큼, 헛기침을 하며 날 돕는다.





"오늘은 최대한 단정한 옷을 입으시는 게 좋으실 듯한데요."





저 남색 옷은 어떠신지. 하며 한편에 놓여있던 옷 하나를 가리킨다. 적당히 화려하나 단정해 보이는 게 더 큰 지분을 차지하는, 적어도 단이가 가져온 옷들에 비하면 훨씬 맘에 드는 옷이다. 단이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듯 하나 태형을 한번 쳐다보고는 ...어쩔 수 없죠. 대신 장신구는 꼭 제가 골라드리는 걸 하셔야 합니다! 하며 한 발짝 물러난다. 내가 말할 때는 절대 안된다며 엄포를 놓더니, 왜 태형이 말하니까 바로 물러나는지 모르겠지만 뭐 지금 그게 중요한가. 옷이 저만큼 화려한 것보단 차라리 장신구가 화려한 게 낫겠지 생각하며 어렵게 타협하고 난 후에야 나와 태형은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나한테는 단이가 고심끝에 허락해준 단이의 결실들이 치장되어있는데, 평소와 달라보이는 건 당연하겠지.
옆에서 함께 걷던 지민은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한 듯 자꾸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오늘 정말 빛나십니다. 마치 꽃 같으세요."




자꾸만 낯간지러운 말을 꺼내며 칭찬하는 지민 덕분에, 뭔가 자신감이 조금 올라간 기분이 든다. 단이야 듣고 있니? 너의 고심이 이렇게 빛을 발한다. 

그나저나 일찍 승전식에 가봤자 아직 왕후가 아니기에 구경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거라는 태형의 말 덕분에 꽤 늦은 시간에 출발을 했는데, 지민은 왜 이제야 그곳에 가고 있는 건지, 이 사람도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 지민을 흘깃 쳐다보면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연다






"저야 마마랑 태형님 둘이 계시면 심심하실까 봐 늦게 나왔죠. 저 그렇게 할 일 없이 노는 사람 아니에요. "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는데,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나 보다.
아... 네... 하며 대충 그의 말을 수긍하면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태형이 치고 나온다.






"사실대로 말하면 요새 할 일 없이 노는 시간이 많아지신 건 맞지 않습니까. 전하께 마마의 학문을 핑계로 업무를 좀 줄여달라 하시는 걸 제가 다 들었는데."





"그렇게 치면 태형님도 만만치 않으실 텐데요. 전하를 호위하시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이 아주 천당 같으시지 않습니까."





지민과 태형은 그렇게 몇 번 말을 주고받다 갑자기 둘 사이에 누가 더 많이 노는가에 대한 싸움이 붙었다. 둘 다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입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서로 네가 더 많이 논다니, 내 일이 더 힘들다니 아웅다웅 다투는데, 다 상관없지만 왜 하필이면 내 양옆에서 싸우는지. 아직 승전식에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피곤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태형이 나를 호위하기전엔 정국을 호위했나보다. 내가 보기엔 태형은 지금도 꽤 힘들것같던데.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다 잘 시간이 되도 저번에 말했듯 그는 누워서 편히 자지도 못한다. 그런데 지금이 훨씬 나은 거라니. 정국은 대체 얼만큼 그를 굴려먹은건지. 참 여러모로 지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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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안개비 06 | 인스티즈










"근데, 혹시 청국은 모든 음식에 녹차 같은 게 들어가나요? "






옆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집어 들던 태형에게 그렇게 물었다. 왜냐하면 청국에 온 이후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들던 생각인데, 왜인지 모르게 이곳 음식은 다 조금씩 쓴맛이 났기 때문에.

처음에 식사를 할 땐 식사라서 몸에 좋은 걸 많이 넣었나 보군 하며 넘어갔고 다음 다과를 먹을 땐 쓴맛이 나는 과자인가 보군하고 넘겼는데, 그것들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또 다른 것까지 전부!!!!! 쓴맛이 났다!!!!!!!!! 혹시 내 미각이 이상해진 건가 싶어 태형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네. 녹차가 특산품이기에, 거의 다 조금씩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였다.

내 미각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 엄청 정확한 거였어... 나는 사실 이 쓴 맛들 때문에 안 그래도 고달픈 내 삶이 조금 더 고달프다. 아니 맛들에 집중하려 하면 어딘가에서부터 조금씩 쓴맛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먹는 거라도 입맛에 맞으면 그래도 그나마 조금 행복할 텐데...





"... 혹시 음식들이 쓰신가요? "






"아니 뭐, 조금 쓰긴 한데, 그렇게까지 쓴 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단 걸 좀 좋아하기에... "






다음부터 녹차만 좀 빼달라고 하면 괜찮겠죠! 하하! 하고 웃으면 태형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건, 안될 텐데요. 






"청국은 말씀드리기 뭐하나 녹차에 자부심이라는 게 조금 있는 편이라, 궁녀분들께 녹차를 빼달라 말씀하시면 마마의 말씀이니 그것이 빠지긴 할 터이나, 그분들의 실망이 여간 크지 않을 텐데."



마마께서 그것을 감수하고까지 녹차를 빼실 성격은 아니신 듯 하옵니다만... 태형은 내 눈치를 보며 조곤조곤 말한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빼달라 말하는 것 까진 쉬운 일이나, 녹차를 빼달라고 하면 실망한다니... 녹차가 뭐라고... 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자부심이 무시당하는 기분이겠지... 그 실망한 얼굴을 어떻게 봐... 마음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냥 내가 참고 먹자. 나 따위가 뭐라고...





"음식이 입맛에 안 드신다니, 큰일이네요... 혹시 뭐 따로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 "





있다. 지금 내게 생각나는 바로 그것. 이곳에서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간절히 생각나던 그것. 바로 명국의 자랑거리, 명국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자.
하지만 명국 안에서만 거래되었고, 만드는 방법 또한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었기에, 그것을 지금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였다.





"있긴 한데... 아마 못 구할 거예요... "




축 처진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하면, 그는 혹시 모른다며 말해달라며 나를 달랜다.





"그... 명국과자인데... 이만한 크기에 이런 모양인데... "





손짓으로 모양을 설명하면, 태형은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다 아, 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태형도 아마 아는 과자인 듯한데 알면 뭐 하나... 다신 못 구할 텐데...



그렇게 스쳐지나가듯 태형에게 내가 그리워하는 과자를 알려준,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 내 눈 앞에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 이 과자는 내가 그때 태형에게 말한 바로 그 과자다.





"이것을 말씀하셨던 게 맞으시죠? "




"네. 이거 맞아요... 설마 지금 꿈 아니죠? "




"꿈 아닙니다. 빨리 드셔보세요. "




작게 웃으며 꿈이 아니라고 하는 그의 말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걸 내가 다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기쁨에 떨리는 손으로 과자를 한 개 꺼내 베어 물면, 익숙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게 꿈이 아닐 리가 없는데.





"태형님 너무...너무 진짜...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하셨어요? "




"뭐... 집안에 이곳저곳 여쭤보면... 어디서든 하나는 나오게 돼있으니까요. "





흐뭇한 듯 입꼬리를 예쁘게 올려 웃고있는 태형에게 그도 먹으라며 과자를 건네면, 그는 괜찮다며 사양을 하다 결국 하나를 베어먹는다. 그의 반응이 궁금해 커진 눈으로 그의 표정을 살피면, 태형은 그 모습이 꽤나 웃겼는 듯 갑자기 풉,하며 입을 막고 웃는다. 아 왜 웃으세요! 큰 소리를 치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웃는 그의 모습이 어이가 없어 허,허허...하고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참 고마웠다. 베어무는 한입 한입마다 그가 이걸 찾으려 노력했을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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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르게 입으셔서 그런지 또 다른 느낌이네요. "




태형과 함께 승전식이 열리는 장소로 가던 길, 앞에서 느긋히 걸어가고있던 지민을 만났다. 내가 평소와 달라보이는 이유는 다 단이 때문이지.






"아니 그럼 저거말고 뭐 입으라구요... "



"아 아무튼 안됩니다! 오늘 마마를 뵈려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달려들 간사한 대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수수한 옷이라뇨! 그걸 입고가실 바엔 차라리 제 목을 치고 가세요. 절대 안됩니다!"






나는 승전식에 내가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냥 적당히 차려입은 듯한 옷을 골랐을 뿐인데, 단이는 절대 안 된다며 내가 고르는 옷마다 전부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골라온 옷들을 펼쳐놓으며 이것들 중에 고르세요! 다른 건 절대 안 됩니다!라며 무척이나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한숨을 쉬며 옷들을 살펴보면 와... 누가 보면 뭐 황제 즉위식인 줄 알겠네. 각양각색의 온갖 화려한 옷이라고는 여기 다 모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 이걸, 오늘, 나보고? '


옷을 가리키며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태형에게 입모양으로 말하면 그제서야 큼, 큼, 헛기침을 하며 날 돕는다.





"오늘은 최대한 단정한 옷을 입으시는 게 좋으실 듯한데요."





저 남색 옷은 어떠신지. 하며 한편에 놓여있던 옷 하나를 가리킨다. 적당히 화려하나 단정해 보이는 게 더 큰 지분을 차지하는, 적어도 단이가 가져온 옷들에 비하면 훨씬 맘에 드는 옷이다. 단이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듯 하나 태형을 한번 쳐다보고는 ...어쩔 수 없죠. 대신 장신구는 꼭 제가 골라드리는 걸 하셔야 합니다! 하며 한 발짝 물러난다. 내가 말할 때는 절대 안된다며 엄포를 놓더니, 왜 태형이 말하니까 바로 물러나는지 모르겠지만 뭐 지금 그게 중요한가. 옷이 저만큼 화려한 것보단 차라리 장신구가 화려한 게 낫겠지 생각하며 어렵게 타협하고 난 후에야 나와 태형은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나한테는 단이가 고심끝에 허락해준 단이의 결실들이 치장되어있는데, 평소와 달라보이는 건 당연하겠지.
옆에서 함께 걷던 지민은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한 듯 자꾸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오늘 정말 빛나십니다. 마치 꽃 같으세요."




자꾸만 낯간지러운 말을 꺼내며 칭찬하는 지민 덕분에, 뭔가 자신감이 조금 올라간 기분이 든다. 단이야 듣고 있니? 너의 고심이 이렇게 빛을 발한다. 

그나저나 일찍 승전식에 가봤자 아직 왕후가 아니기에 구경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거라는 태형의 말 덕분에 꽤 늦은 시간에 출발을 했는데, 지민은 왜 이제야 그곳에 가고 있는 건지, 이 사람도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 지민을 흘깃 쳐다보면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연다






"저야 마마랑 태형님 둘이 계시면 심심하실까 봐 늦게 나왔죠. 저 그렇게 할 일 없이 노는 사람 아니에요. "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는데,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나 보다.
아... 네... 하며 대충 그의 말을 수긍하면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태형이 치고 나온다.






"사실대로 말하면 요새 할 일 없이 노는 시간이 많아지신 건 맞지 않습니까. 전하께 마마의 학문을 핑계로 업무를 좀 줄여달라 하시는 걸 제가 다 들었는데."





"그렇게 치면 태형님도 만만치 않으실 텐데요. 전하를 호위하시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이 아주 천당 같으시지 않습니까."





지민과 태형은 그렇게 몇 번 말을 주고받다 갑자기 둘 사이에 누가 더 많이 노는가에 대한 싸움이 붙었다. 둘 다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입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서로 네가 더 많이 논다니, 내 일이 더 힘들다니 아웅다웅 다투는데, 다 상관없지만 왜 하필이면 내 양옆에서 싸우는지. 아직 승전식에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피곤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태형이 나를 호위하기전엔 정국을 호위했나보다. 내가 보기엔 태형은 지금도 꽤 힘들것같던데.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다 잘 시간이 되도 저번에 말했듯 그는 누워서 편히 자지도 못한다. 그런데 지금이 훨씬 나은 거라니. 정국은 대체 얼만큼 그를 굴려먹은건지. 참 여러모로 지독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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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안개비 06 | 인스티즈










"근데, 혹시 청국은 모든 음식에 녹차 같은 게 들어가나요? "






옆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집어 들던 태형에게 그렇게 물었다. 왜냐하면 청국에 온 이후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들던 생각인데, 왜인지 모르게 이곳 음식은 다 조금씩 쓴맛이 났기 때문에.

처음에 식사를 할 땐 식사라서 몸에 좋은 걸 많이 넣었나 보군 하며 넘어갔고 다음 다과를 먹을 땐 쓴맛이 나는 과자인가 보군하고 넘겼는데, 그것들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또 다른 것까지 전부!!!!! 쓴맛이 났다!!!!!!!!! 혹시 내 미각이 이상해진 건가 싶어 태형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네. 녹차가 특산품이기에, 거의 다 조금씩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였다.

내 미각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 엄청 정확한 거였어... 나는 사실 이 쓴 맛들 때문에 안 그래도 고달픈 내 삶이 조금 더 고달프다. 아니 맛들에 집중하려 하면 어딘가에서부터 조금씩 쓴맛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먹는 거라도 입맛에 맞으면 그래도 그나마 조금 행복할 텐데...





"... 혹시 음식들이 쓰신가요? "






"아니 뭐, 조금 쓰긴 한데, 그렇게까지 쓴 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단 걸 좀 좋아하기에... "






다음부터 녹차만 좀 빼달라고 하면 괜찮겠죠! 하하! 하고 웃으면 태형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건, 안될 텐데요. 






"청국은 말씀드리기 뭐하나 녹차에 자부심이라는 게 조금 있는 편이라, 궁녀분들께 녹차를 빼달라 말씀하시면 마마의 말씀이니 그것이 빠지긴 할 터이나, 그분들의 실망이 여간 크지 않을 텐데."



마마께서 그것을 감수하고까지 녹차를 빼실 성격은 아니신 듯 하옵니다만... 태형은 내 눈치를 보며 조곤조곤 말한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빼달라 말하는 것 까진 쉬운 일이나, 녹차를 빼달라고 하면 실망한다니... 녹차가 뭐라고... 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자부심이 무시당하는 기분이겠지... 그 실망한 얼굴을 어떻게 봐... 마음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냥 내가 참고 먹자. 나 따위가 뭐라고...





"음식이 입맛에 안 드신다니, 큰일이네요... 혹시 뭐 따로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 "





있다. 지금 내게 생각나는 바로 그것. 이곳에서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간절히 생각나던 그것. 바로 명국의 자랑거리, 명국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자.
하지만 명국 안에서만 거래되었고, 만드는 방법 또한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었기에, 그것을 지금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였다.





"있긴 한데... 아마 못 구할 거예요... "




축 처진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하면, 그는 혹시 모른다며 말해달라며 나를 달랜다.





"그... 명국과자인데... 이만한 크기에 이런 모양인데... "





손짓으로 모양을 설명하면, 태형은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다 아, 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태형도 아마 아는 과자인 듯한데 알면 뭐 하나... 다신 못 구할 텐데...



그렇게 스쳐지나가듯 태형에게 내가 그리워하는 과자를 알려준,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 내 눈 앞에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 이 과자는 내가 그때 태형에게 말한 바로 그 과자다.





"이것을 말씀하셨던 게 맞으시죠? "




"네. 이거 맞아요... 설마 지금 꿈 아니죠? "




"꿈 아닙니다. 빨리 드셔보세요. "




작게 웃으며 꿈이 아니라고 하는 그의 말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걸 내가 다시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기쁨에 떨리는 손으로 과자를 한 개 꺼내 베어 물면, 익숙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게 꿈이 아닐 리가 없는데.





"태형님 너무...너무 진짜...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하셨어요? "




"뭐... 집안에 이곳저곳 여쭤보면... 어디서든 하나는 나오게 돼있으니까요. "





흐뭇한 듯 입꼬리를 예쁘게 올려 웃고있는 태형에게 그도 먹으라며 과자를 건네면, 그는 괜찮다며 사양을 하다 결국 하나를 베어먹는다. 그의 반응이 궁금해 커진 눈으로 그의 표정을 살피면, 태형은 그 모습이 꽤나 웃겼는 듯 갑자기 풉,하며 입을 막고 웃는다. 아 왜 웃으세요! 큰 소리를 치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웃는 그의 모습이 어이가 없어 허,허허...하고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참 고마웠다. 베어무는 한입 한입마다 그가 이걸 찾으려 노력했을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
.
.













"평소와 다르게 입으셔서 그런지 또 다른 느낌이네요. "




태형과 함께 승전식이 열리는 장소로 가던 길, 앞에서 느긋히 걸어가고있던 지민을 만났다. 내가 평소와 달라보이는 이유는 다 단이 때문이지.






"아니 그럼 저거말고 뭐 입으라구요... "



"아 아무튼 안됩니다! 오늘 마마를 뵈려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달려들 간사한 대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수수한 옷이라뇨! 그걸 입고가실 바엔 차라리 제 목을 치고 가세요. 절대 안됩니다!"






나는 승전식에 내가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냥 적당히 차려입은 듯한 옷을 골랐을 뿐인데, 단이는 절대 안 된다며 내가 고르는 옷마다 전부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골라온 옷들을 펼쳐놓으며 이것들 중에 고르세요! 다른 건 절대 안 됩니다!라며 무척이나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한숨을 쉬며 옷들을 살펴보면 와... 누가 보면 뭐 황제 즉위식인 줄 알겠네. 각양각색의 온갖 화려한 옷이라고는 여기 다 모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 이걸, 오늘, 나보고? '


옷을 가리키며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태형에게 입모양으로 말하면 그제서야 큼, 큼, 헛기침을 하며 날 돕는다.





"오늘은 최대한 단정한 옷을 입으시는 게 좋으실 듯한데요."





저 남색 옷은 어떠신지. 하며 한편에 놓여있던 옷 하나를 가리킨다. 적당히 화려하나 단정해 보이는 게 더 큰 지분을 차지하는, 적어도 단이가 가져온 옷들에 비하면 훨씬 맘에 드는 옷이다. 단이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듯 하나 태형을 한번 쳐다보고는 ...어쩔 수 없죠. 대신 장신구는 꼭 제가 골라드리는 걸 하셔야 합니다! 하며 한 발짝 물러난다. 내가 말할 때는 절대 안된다며 엄포를 놓더니, 왜 태형이 말하니까 바로 물러나는지 모르겠지만 뭐 지금 그게 중요한가. 옷이 저만큼 화려한 것보단 차라리 장신구가 화려한 게 낫겠지 생각하며 어렵게 타협하고 난 후에야 나와 태형은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나한테는 단이가 고심끝에 허락해준 단이의 결실들이 치장되어있는데, 평소와 달라보이는 건 당연하겠지.
옆에서 함께 걷던 지민은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한 듯 자꾸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오늘 정말 빛나십니다. 마치 꽃 같으세요."




자꾸만 낯간지러운 말을 꺼내며 칭찬하는 지민 덕분에, 뭔가 자신감이 조금 올라간 기분이 든다. 단이야 듣고 있니? 너의 고심이 이렇게 빛을 발한다. 

그나저나 일찍 승전식에 가봤자 아직 왕후가 아니기에 구경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거라는 태형의 말 덕분에 꽤 늦은 시간에 출발을 했는데, 지민은 왜 이제야 그곳에 가고 있는 건지, 이 사람도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 지민을 흘깃 쳐다보면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연다






"저야 마마랑 태형님 둘이 계시면 심심하실까 봐 늦게 나왔죠. 저 그렇게 할 일 없이 노는 사람 아니에요. "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는데,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나 보다.
아... 네... 하며 대충 그의 말을 수긍하면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태형이 치고 나온다.






"사실대로 말하면 요새 할 일 없이 노는 시간이 많아지신 건 맞지 않습니까. 전하께 마마의 학문을 핑계로 업무를 좀 줄여달라 하시는 걸 제가 다 들었는데."





"그렇게 치면 태형님도 만만치 않으실 텐데요. 전하를 호위하시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이 아주 천당 같으시지 않습니까."





지민과 태형은 그렇게 몇 번 말을 주고받다 갑자기 둘 사이에 누가 더 많이 노는가에 대한 싸움이 붙었다. 둘 다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입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서로 네가 더 많이 논다니, 내 일이 더 힘들다니 아웅다웅 다투는데, 다 상관없지만 왜 하필이면 내 양옆에서 싸우는지. 아직 승전식에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피곤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태형이 나를 호위하기전엔 정국을 호위했나보다. 내가 보기엔 태형은 지금도 꽤 힘들것같던데.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다 잘 시간이 되도 저번에 말했듯 그는 누워서 편히 자지도 못한다. 그런데 지금이 훨씬 나은 거라니. 정국은 대체 얼만큼 그를 굴려먹은건지. 참 여러모로 지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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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안개비 06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둘이 싸우는 걸 듣고 있다 겨우 승전식이 열리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발을 들이자마자 보이는 건 궁 안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모여있는 수많은 관료들, 우아한 차림의 양반가 자제들, 그리고 각국에서 온 대신들. 명국과 확연히 다른 사람들의 의복과, 꾸며져있는 장식들과, 익숙치 않은 궁의 색깔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나에게 청국이 전쟁으로 얻은 부와 드높인 위상을 보여주는 듯 했다.
눈동자를 굴려 전체를 훑고있다보면, 갑자기 위화감이 생기고, 여기 서있는 내가 낯설어진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지? 시선이 머무른 곳에 있는 어두운 남색으로 칠해진 청국의 처마가 이때까지 억지로 묻어뒀던 현실을 수면위로 끄집어낸다.




실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도 내가 악몽을 꿨던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명국에 살때와 다르지 않게 나에게 너무나도 친절히 대해주는 사람들. 큰 차이가 나지않는 삶의 방식들. 가끔 청국과 명국의 차이를 느껴도, 눈을 가린채 그것을 구석에 묻어뒀기에, 실은 내가 있는 이 곳이 명국이고,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아버지가 죽던 모습은 아주 끔찍한 꿈을 꿨던게 아닐까, 이런 망상까지 하기도 했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 말도 안되는 망상이 이어질 수는 없었나보다. 이곳에 와서야 나는 지독한 현실과 마주친다. 그래, 이게 진짜 현실인거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명국의 모든건 불타 사라졌고, 나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모든게 낯설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준비할 틈도 없이 마주친 현실 속에서 나는 아무리 숨을 들이쉬어도 모자란 느낌이다. 손 끝부터 타고 올라오는 떨림이 온몸을 뒤덮는다.
발걸음을 더이상 떼지 못하고 한참을 서있는 나에게 들려오는 건, 나를 부르는 지민의 목소리.






"마마, 이쪽으로 드시지요."







마마, 라는 그의 말과 동시에 사람들은 일제히 시선을 나에게 옮긴다. 서로의 앞에 있는 사람들과 계속 얘기를 하고있으나 시선만은 내게 고정되어있는 걸 알 수 있다.
들키지않으려 조심스레 쳐다보는 시선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나를 관통한다. 그리고 그 화살들에 담겨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계집이 어찌 왕후에 오르려 하는가- 전하는 무슨 생각으로 망국의 공주를 살려두셨는지- 나라를 잡아먹고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와있는가- 이런 것들. 어쩌면 나 스스로가 나에게 가장 많은 화살을 겨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차마 들고있을수가 없었다. 눈 앞이 끝도 없이 캄캄해졌다. 정신을 차리려 아무리 나를 다잡아봐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이 내 모든걸 헤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네가 어떻게 이곳에 발을 들일수가 있냐고, 아버지와 백성들의 죽음을 기념하는 거나 다름없는 이자리에, 그러고도 공주라고 할 수 있냐고, 스스로에게 겨눈 화살이 뚫고지나간 자리가, 너무나도 쓰리다. 도망가고 싶다는 일념만이 머리에 가득해 질 때, 나는 이미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있는 중이였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등 뒤에 서있던 태형과 부딪히고, 나는 그자리에 멈추면, 내 어깨를 차분히 감싸쥐는 태형의 따스한 손이 느껴진다.







"겁먹지마세요. 결국 이겨내셔야할 것들입니다. "








고개를 돌려 불안정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 그는 "제가 뒤에서 지키고 있겠습니다"라 말하며 다정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데, 그게 뭐라고 혼란스럽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하지만 아직 몸의 떨림은 그치지않은 상태였다. 눈 앞이 자꾸만 아득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려고 할 때면 어깨에서 천천히 퍼지는 태형의 온기가 나를 다잡는다.

그래. 이곳에서 살게 된 이상, 언젠간 겪어야 할 것들이고, 또,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이겨야내야할 것들이겠지.

마음을 가다듬고 주먹을 살짝 쥔 채 숨을 크게 내뱉었다. 여전히 모든게 두렵고, 이겨낼 수 있을지 눈 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걱정하지말라는 듯 다정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태형이 있었다. 많은 걸 잃었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었기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다.





조심스레 내가 가야 할 곳으로 느리지만 무너지지않게 발을 내딛는다.

쏟아지는 시선들이 여전히 날카롭긴하나, 더이상 나를 베고 지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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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자까님 남주인공 안정하셨다고 했는데 사실 정하셨죠...? 절대 태형이 아닐리가 없는데... 아니여도 제발 태형이로 가주세요...젭발...
5년 전
27
사실 아직도 못정했어요...! ㅋㅋㅋㅋㅋㅋ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비회원92.193
작가님 오늘 처음 읽게 되었는데 너무 재밌어요 진짜ㅠㅠㅜㅠㅠㅠ 작가님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ㅠㅜㅠㅠ 태형이도요ㅠㅜㅠㅠㅠ
5년 전
27
앗 저는 제가 쓰는거라 무슨 분위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5년 전
비회원236.17
아 태형이 쏘쓰윗...ㅠㅠㅠㅠ 둘이 투닥거리는것도 너무 귀여워요ㅠㅠㅠ 그나저나 여주의 복수는 이대로 시작도 하지않은채 지나가게 되는 것인가.. 궁금하네요! 여주성격상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주면서 복수하진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복수할까요?!
5년 전
27
여주의 복수가 어떻게되냐면...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즐겁게 읽어주신 것 같아 기뻐요 감사합니다💜
5년 전
독자2
태형이 다정한거봐요ㅠㅠㅠㅠㅠ진짜재밌게읽고있습니다ㅠㅠㅠㅠㅠㅠ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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