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훈남 上
"야 말도 마. 엄청나게 잘생겼어! 지금 꼬리치는 1학년 애들도 개많아!!!"
"에이, 일반인이 잘생겨봤자 얼마나 잘생겼겠냐."
"허어, 야 이번 년도 우리학교 신입생들 중에 최고 잘생겼다에 내 손목을 건다!"
정보 빵빵, 구라 빵빵. 이것 저것 아는 정보는 많은데 그 중 반이 뻥이라 일명 빵빵녀로 통하는 같은 과 동기 진리 그리고 나의 유일한 남자사람동기인 종인이와 학식을 먹는 중이였을거다. 아마 진리가 오세훈 이야기를 꺼냈던 건. 나는 이미 입학 후부터 진리의 말 중 50%이상 섞여있는 구라에 참담하게 당한 피해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구라스멜이 풀풀 풍기는 신입 존잘남의 정체에 의문을 품으며 대답했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자기 손목을 내 돈까스 위로 내밀며 진실을 주장하는 진리의 옆, 종인이는 그저 묵묵히 우동을 먹고 있었다. 그래. 나도 진리 열받게 해서 귀찮아지지 말고, 지금 이 상황에서 존나 현명하게 먹고만 있는 종인이를 본받아 괜한데 힘쓰지 말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내 앞자리에서 열을 내는 진리를 다독이고자 진리 입에다 돈까스를 우겨 넣었더랬지.
"즌짜 잘생긋따니까아..우리 세후니...나랑 같은 동아리라고.."
내가 입에 우겨넣어준 돈까스를 입안 가득 우물거리며 진리는 아쉬운듯 저렇게 말했다. 그 때는 그저 오세훈이 내게 멀고도 먼 남이었기 때문에 은근히 같은 동아리라는 걸 깨알자랑하는 진리의 말을 흘려가듯 들었었는데, 이제서야 후회가 된다. 진리가 말해줬던 존잘 신입생 오세훈이 무슨 색을 좋아하고, 뭘 잘먹고, 좋아하는 운동은 무엇이며, 취미는 뭐였다는 걸 제대로 들었다면 최소한 지금 내가 얘가 이걸 받고 싫어하지 않을까 끙끙 앓고 있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 때가 아마 5월이였을거다. 싱그럽던 꽃들이 하나 줄 시들시들해져가고, 조별과제로 몸살을 앓던 그 때쯤. 갑작스러운 휴강으로 생긴 공강시간, 다음 강의를 기다리며 단대 안, 학생들 앉아서 쉬라고 설치해둔 벤치형 의자에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전공책을 테이블에 펴놓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글자들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며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뭔 개소린지, 결국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옆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올리는데, 2층에서 왁자지껄하게 내려오는 무리들의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쳐다보니 그 중 유독 튀는 남자가 있었다. 커다란 키, 이국적인 외모, 이상적인 비율, 또 하하호호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근한 미소만 띌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혼혈인가 싶을정도로 피부도 하얗고. 그래서 첫느낌은 얼굴이 잘생겼다보다는 독특하다는 인상이 더 강했던거 같다. 그렇다고 잘생기지 않았단 소리는 아니다. 독특함의 비중이 잘생김을 약간 초과한 정도라고 말하면 이해하려나, 다시 말해 난 세상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잘생긴 남자들 중 저런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와 외모에 압도당했던 거다. 그렇다고 섣불리 그 남자를 오세훈으로 단정짓지는 않았다. 그냥 우리 과에 저렇게 잘생긴애가 있었나,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오세훈일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줄곧 옆에서 재잘대던 귀염상의 자그마한 여자애가 '세훈오빠!'하고 말하는 탓에 그제서야 저 남자가 오세훈이구나 하고 반짝 깨달았다.
그런데, 오빠..오빠라, 외국에서 학교다니다가 이곳에 입학한거라 우리랑 동갑이라는 진리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옆으로 돌린 그 자세 그대로 후광이 번쩍번쩍하는 그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는데 노골적인 내 시선을 느낀건지 줄곧 자기 주위를 둘러싼 친구들에게 시선을 주던 오세훈이 고개를 틀어 날 바라본다. 그의 짙은 눈과 내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른 고개를 숙여 테이블위에 초라하게 펼쳐져 있는 전공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후, 갑자기 쳐다봐서 놀랐네. 속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혼자 생각했다. 듣던대로 잘생기긴 겁나게 잘생겼다는 생각.
"...."
그런데..왜...왜 자꾸 시선이 느껴지는거지. 다시 고개를 못들겠네..씨발....쟤 때문에 강제로 전공책을 읽게 되니 갑자기 졸려지기 시작하는걸 온몸으로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글자만 보려니 목도 좀 뻐근해지려는 거같은데, 오세훈과 그 무리는 아예 내 반대편쪽 엘레베이터 옆에서 서가지고 잡담한판을 벌여놓은 건지 떠들기만하고 갈생각을 안했다. 미친.
"OOO."
"어어? 종인아. 왔네."
"밥 먹자며."
내가 고개를 숙였음에도 계속 쳐다보는 오세훈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도 들지 못하고 한껏 무안해져있는데, 아까 톡으로 이따 너 강의 끝나면 같이 밥먹자고 했던 종인이가 와서 날 이 뻘쭘한 상황에서 구해준다. 와나 김종인 아니였으면 뻘쭘사했을듯. 책에 쳐박았던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히 가만히 서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오세훈 쪽으로 시선도 못둔채 책을 가방에 마구 챙겨넣었다. 그런데 내 옆에 서서 있던 종인이도 오세훈의 뜨거운 눈길을 느꼈는지 말없이 그 쪽을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뭐야 쟤 왜 쳐다보냐, 종인이가 중얼중얼 나에게만 들릴듯 작게 말한다. 나는 찔리는 구석이 있어 종인이의 말에 대답도 못한채 묵묵히 가방을 옆으로 매고, 가만히 서있는 종인이의 등을 밀면서, 가..가자...하고 찌질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단대 문을 밀고 나가면서도 오세훈을 째려보는 종인이의 등을 밀어대면서.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첫만남 이후. 몇 번 더 오세훈과 마주쳤던 거 같다.우연히 복도를 지나가다가, 또 학교 근처에서 밥먹다가, 또 학교 정문 앞에서 친구 기다리다가. 아예 처음 보지도 못했을 때는 거의 2달간 마주치지 않았던 거 같은데 한번 보니까 자주 마주치는 거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봤을 때, 그렇게 날 물끄러미 쳐다봐서 무안을 주더니 지나가다 볼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갔다. 물론 나도 그랬고.
그렇게 지나갈 가벼운 인연이라 생각했다. 1학년과 내가 강의가 겹치겠어, 아님 흔하디 흔한 동아리도 가입안한 나랑 뭘 같이 하겠어하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그런데.인연이라는 게, 내 뜻대로 안되는건가보다.
평소와 같이 남들보다 20분정도 일찍 도착한 빈강의실 안,책과 공책을 펴놓고 자격증공부에 몰두해있는데 앞 쪽문에서 나는 인기척에 무심코 고개를 들어 마주친 눈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오세훈이 왜 이 강의를? 분명 같이 듣지 않았다. 이 강의 교수님이 얼마나 출석체크를 잘하시는데, 난 출석체크할 때 오세훈이라는 이름을 들어본적이 없는데. 말도 안돼, 대체 뭐지.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머릿속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시 고개를 드는데, 오세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내 옆을 쌩하니 지나가더니, 바로 내 뒤에 앉는다.
그래 뭐, 신경쓸 필요 없어. 내가 뭐 죄지은 것도 아니고 잠깐 눈마주친 그런 아무사이도 아닌데. 왜 나혼자 호들갑이야. 혼자 생각하며. 애써 다시 앞에 놓여진 책에 시선을 고정하려 했다. 입술을 괜히 깨물며, 아무렇지 않은척 샤프를 달칵거리는데, 그래도 단 둘이 교실 안에 있는건 아무래도 불편하긴하다. 한번 심호흡을 하는데 뒤에서 약간 갈라진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네?"
"저번에 단대 안에서 잠깐 눈 마주쳤었는데. 기억나세요?"
"..아니..잘....기억이.."
"아, 혹시 기계공학?"
"네,기계공학이요."
저기,하며 먼저 운을 뗀 오세훈의 말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니, 약간 눈동자가 올라간 듯한 오묘한 두 눈이 나를 반긴다. 저번에 눈마주쳤던걸 기억하냐고 묻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단 사실이 민망해져 모른다고 답했다. 미친,내가 쳐다보다 쟤도 본건데..뻥을 치다니. 말하고나서 바로 나 자신을 자책하는데, 그런 내 대답에 약간 아쉬운듯 아,하는 짧은 기함을 토해내더니 한 쪽 손으로 날 가리키는 제스쳐를 취하며 혹시 기계공학?이라고 묻는 오세훈이다. 첫만남은 조금 그랬지만, 대화를 이끌어가려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다. 내 미소에 연신 딱딱한 표정의 그도 살짝 얼굴을 푸는게 보였다. 아 웃을 때, 눈이 휘는구나.
"근데 2학년 맞죠. 94년생?"
"네 94년생."
"저도 94년생인데."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구나. 여태껏 한번도 목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했었는데,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간간히 미소나, 끄덕이는걸 보이며 화답하는건 봤어도 대화하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기에 조금 놀라웠다. 사실 오세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되게 조용하고 붙임성없는 성격인데 그냥 잘생겨서 사람이 꼬이는 타입으로 속으로 단정시켜버렸는데, 미안해질 정도로 말도 잘붙이고 얘기도 잘이끌어나간다. 나보고 94년생 맞냐고 묻고 그렇다하니, 묻지도 않았는데 반가운투로 자기도 94년생이라고 말한다. 그러고서 어울리지않게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레 '말놓을까요?'하고 묻는다. 어차피, 나이제라 말놓는게 당연한 거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말을 놓는다는 것 뿐. 그래서 말을 놓기로 했으면서 둘 다 뻘쭘하게 마주보고, 허허거리며 한마디도 안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먼저 말트기가 어렵긴하다. 그런데 연신 입술을 꾹꾹 누르며 눈치를 보던 오세훈이 먼저 입을 뗀다.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어."
"응?"
"처음봤을때.."
친해지고 싶었다며 수줍은듯 자그맣게 말하는 오세훈때문에 당황스럽기도, 약간 놀라기도 했다. 친해지고 싶었다니,처음봤을때? 단대안에서 눈마주쳤을때 말하는건가. 물어보고 싶은건 많았지만 그새 속속들이 들어오는 학생들 틈, 왈가닥 진리의 등장에 대화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어??세훈이 여기 왜 있어?"
"아.나 상민선배 대출."
"뭐야?그 선배는 왜 맨날 애들을 대출 시킨대?! 재수뽕이야 증말."
"헐 지...진리야..사람들이 들어.."
"들으라 그래! 근데 오세훈 너 OO이랑 친해진거야? 둘이 뭐야?"
등장부터 엄청 큰 목소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 진리는 세훈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채,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장난스럽게 둘이 어떻게 친해진거냐며, 약간 몰아가는 투의 진리의 말에 우리 둘다 민망해하며 그런거 아니라고,진리를 막는다. 그럼에도 음흉하다면 음흉한 미소를 장난스레 띈 진리는 세훈이보고 여기 앉으라고 책상을 텅텅 친다. 진리가 텅텅 치는 책상은 진리가 앉은 자리의 책상, 그니까 바로 내 옆. 그에 세훈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아,야,너를 연발하며 당황스러움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나 역시 2시간 연강인 이 수업을 아직 어색한 오세훈과 어색하게 보내기 싫어서 책상 아래로 진리의 옷자락을 세게 잡아 끌며 당장 그만두라고 무언의 압박을 줬다. 그런데 진리는 나보다 강한 아이다. 제 옷을 끄는 내 손을 찰싹 소리나게 치더니, 빠르게 세훈이 앉은 옆 책상 위에 올려진 그의 가방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 가져다 둔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세훈이의 팔을 툭툭 치며 내 옆으로 가라고 (협박조로) 말한다. 세훈이 내 옆에 앉자, 진리는 헤실헤실 웃으며 아까 세훈이 앉았던 내 뒷자리에 폴짝 가서 앉는다. 아 못살아..최진리...
그 사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 옆에 앉은 오세훈이 내 옆에 앉자, 눈도 못마주치고 있다가. 살짝 옆으로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보더니 작게 씨익 웃는다.
그 날, 수업이 끝나고 또 진리의 성화에 교환한 전화번호. 잘어울리니 잘해보라고 옆에서 조잘대는 진리의 옆구리를 찌르며, 억지 좀 그만부리라고 말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번호를 교환한 후, 며칠뒤 선톡이 왔었다. 내용은 시시하고 평범했다. 솔직히 할 얘기라곤 둘이 공통적으로 겹치는 인물인 최진리였지만, 그도 소재가 떨어져 금방 이야기가 끝이 났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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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수업을 들으러 오랜만에 진리와 수업 전에 만나 커피 한잔을 사들고 인문대에 들어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사람들이 간간히 지나다녔고, 우리는 작년에 학점을 짜게 주셨던 교수님 뒷담을 한참 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그러다 살짝 이야기가 끊겼었는데, 그 때 진리가 손을 탁치더니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진리가 복도를 울리는 째랑째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야!!그건 그렇고 너 세훈이랑 잘돼가냐?!"
"잘되긴 뭘잘돼.세훈이는 그냥,그냥 후배지."
"왜에~세훈이 잘생겼잖아 잘해봐."
"뭐래, 잘생긴 애들은 얼굴값한다잖아."
아무생각없이 툭 내뱉은 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내 말에 죽자고, 잘생김을 찬양할 진리가 웬일인지 조용하다 싶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최진리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표정이 한껏 안좋다. 뭐지하는 표정으로 진리의 시선을 쫓은 곳엔 무표정하게 우리 둘을 쳐다보다, 이내 발길을 돌리는 오세훈이 보였다. 아...그제서야, 그 상처받은 듯한 눈빛을,그 딱딱하고 차가운 표정을 보고서야, 미안함에 한숨을 쉬며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 어떡해..말실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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