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운은 재환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제껏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며 그 행동들이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재환에게 들킬 정도로 티가 났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재환은 또 멍 때리며 자신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는 택운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또 저러네, 저 선배. " 어, 선배, 왜 대답 못 하십니까. " " ...그게 있잖아... " " 침묵은 긍정이라던데... " " ...어,그래... 어, 사실은 맞아. 나, 있잖아, 나 너 좋아해. " 계속 재촉하는 재환에 택운은 들킨 마당에 더이상 감출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본심을 뱉어냈다. 물론 재환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땅바닥을 보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 첫 만남에 좋아한다는게 어, 너한테 어떻게 보일진 모르지만 난 그랬어. 그리고 그 뒤로 너 못 봐서 정말 보고싶었고, 계속 네 생각만 했어...어, 나 나름 좋아하는 거 티 내고 싶진 않았는데 티 많이 났나보다. " 택운은 자신의 속에 고여있던 말들을 재환에게 다 퍼부어내고 혹여나 자신의 말 때문에 재환이 너무 부담스러워 하진 않을까, 까지 생각이 닿으니 금방 자신이 너무 생각없이 행동한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이미 뱉어낸 말들을 다시 주워담고 싶었다. 택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시선을 올려 재환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재환은 택운의 말들에 놀랐는지 아무 반응 없이 택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곤 재환이 제 배를 부여잡고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 와, 선배님. 제가 먼저 장난 좀 쳤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 " ...어? " " 항복, 항복. 제가 졌습니다. " 재환은 두 손을 들어 택운을 못 당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배님 연기에 아주, 깜짝 속을 뻔 했습니다. 택운은 재환의 반응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가 이내 재환의 장난에 자신이 넘어가도 단단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씁쓸히 미소지었다. 혹시나 하는 너의 대답을 기다린 건 내 욕심이었구나. 난 나름대로 진심을 얘기한 건데 너한텐 장난에 장단 맞춰준 꼴밖에 안 됐겠다. 재환은 손목시계를 한 번 살펴본 후 누운 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눕느라 교복에 묻었을 흙을 털며 가만히 앉아있는 택운을 내려다봤다. " 선배, 선배와 더 많은 담소를 나누고 싶지만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 " ...벌써 가려고? " " 엄연히 지금 수업시간인데 후배가 공부도 안 하고 계속 여기 있었으면 하십니까. " " 아니야, 나도 들어가봐야겠다. "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이번처럼 인연이 또 닿으면 그 때 봅시다. " 어, 그래... 택운의 대답이 채 끝나기 전에, 재환은 단 한 번의 머뭇거림 없이 옥상 문을 열고 그대로 빠르게 옥상을 빠져나갔다. 재환이 나간 후 괜스레 쌀쌀해진 것 같은 느낌에 택운은 자신의 무릎을 꼭 감싸안았다. 미련이 남은 듯 재환을 삼킨 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넌 인연이 닿으면 보겠다고 했지만 난 어떻게든 인연을 닿게 만들어서 널 꼭 볼 거야. 그리고 내 진심이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께. 넌 가만히 있으면 돼, 재환아. 아씨, 근데 설문지 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