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꽃 – prologue00
; 나를 사랑해주세요.
W. 화양동탄소
*** "뚝 그치래도." 말 한마디에도 가슴 깊은 곳까지 쉼 없이 휘몰아치는 슬픔에 절벽 끝에서 난 태어나 가장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전 못합니다." "해야 한다.". "제 곁에 오래 머무른다 약조하셨잖습니까." "그 약조··· 지키지 못하겠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 한 마디에 처마 밑으로 떨어지던 물방울 같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내 아무리 널 예뻐했다 한들 이리 울면 내," "제발···제발, 절 혼자두지 마세요···." "마음이 아프구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 슬픔이 깃들어있다. 눈이 마주치며 정적 속 우린 짧은 키스를 나누었고 이윽고 눈을 다시 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난 그의 눈과 코, 귀, 입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혹여 일이 잘못될지라도 그를 잊지 않기 위해 한 순간도 그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떨리는 목소리를 잡기 위해 주먹까지 움켜주고 말했다. "당신을 만난 것을 후회해요.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첫 만남부터 평범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짝지어준 운명일만큼 엮이지도 않았었다. 그리 지나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보잘 것 없는 나를 차가운 궁생활로부터 지켜주었고 소중하게 대해주었다. 그런 그를 난 지켜주지 못했다. 지금 이 선택이 틀린 거라면 나더러 자신을 어떻게 견디라고. "넌······ 내 전부였다." 처음 내뱉은 모진 말에도 슬픔이 가시지 않은 미소로 받아주는 그가 밉다. "이게 최선일까요····?" "다른 방도가 없으니 이 방법이 최선인게지. 이후 어떤 결과에도 자책 말거라 함께 선택한 것이니." "만약···만약··, 눈을 떴을 때 저하가 제 앞에 계시지 않는다면 전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지금까지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온 너인데, 어찌 나 하나 없어졌다 한들 네 삶이 변하겠느냐." "그땐 전하를 몰랐던 인생 아닙니까, 허나 지금은 이리도 제 속에 깊숙이 계신 대요·····." "내 어디있든 널 항상 지켜볼 것이다, 지켜줄 것이다." "너무 외로워서···· 너무 그리워서··· 죽을 만큼 힘들 면요?"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언젠가 내가," 차마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끄집어내며 "당신을 잊으면요.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내 말에 적잖이 당황한 그가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당겨 힘껏 품에 안는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지도 모르겠구나." 외롭고 그리워서 죽을 만큼 힘들 바에는 아예 존재자체를 잊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도라 생각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눈물이 터져 나온다. 내 어깨가 눈물에 들썩일수록 그도 더욱 세게 나를 당겨 안는다. 네가 나를 잊는다 한들. 내가 널 어떻게 잊어. 한 없이 추운 겨울이었던 내 궁 생활에 봄을 데려온 너를 내가 어떻게 잊어. "탄소야," "........." "네가 날 잊는다 한들 내 널 평생 기억할 테니 걱정말거라." ".........." "우리가 만약··눈을 뜨고 다시 만난다면 내가 먼저 널 알아볼 터이니 편히 내 뒤에 있거라.." "....." "그래도 혹여 내가 문제가 생겨 우리가 다시 마주할 수 없다 할 지라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다정함이 깊숙이 깃든 채 말하던 그도 목이 매이는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마지막 미소를 보이며 내게 말한다. "나 좀 잊지 말고 기억해줄래." 마주하고 있는데도 밀려오는 그리움에, 우리의 승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는 부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그 이름, 조금 더 빨리 실컷 불러줄 걸 후회하는 그 이름. "정국아···." 오랜만에 존칭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날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 정국은 전보다 환한 미소와 함께 말한다. "널 연모한다." "......." "연모하기에 이런 방법으로 널 지킬 수밖에 없는 날 원ㅁ." 멀리서 보이는 우리를 쫓던 무리 그 가운데엔 익숙한 얼굴이 있었으니 절대 그럴리 없다 믿었던 그 또한 우리 둘을 마주하고 적잖히 당황한 눈빛이었다. 이름을 외쳐 부르려는 순간, 휘이이잉-, 푸욱-. 화살은 동시에 정국이와 내 가슴을 명중하였고 우린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죽음 앞에 두려운 난 서로 안으면 안을수록 깊숙이 찔러오는 화살의 아픔도 잊은 채 정국의 품을 더욱 끌어안았다. "사랑해···. 사랑한다 탄소야." "...정국아 나도, 나도 널 사ㄹ..."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어젯밤 셋이서 함께 보았던 별똥별처럼 쉼없이 내리꽂는 그 화살이 박힌 채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다 못 전하고 우린 그렇게 눈 위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정국이가 화살에 맞고 내가 맞는 그 순간까지 한성이는 최선을 다해 막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거면 됐다. 차라리 그의 손에 죽을 수 있어 다행이다.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생에도 정국이도, 한성이도 허락만 해준다면 다시 인연이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 2018년 어느 눈 내리는 추운 겨울 날.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길을 건너는 탄소. "난 눈만 오면 삭신이 그렇게 쑤시더라." 아주 잠시, 몇 초의 아주 짧은 시간 지나친 남자 무리 속에 정국의 모습이 보이고 친구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면서 하는 말에 탄소는 쓰고 있던 우산을 떨어뜨리고 뒤돌아 곧장 정국에게 뛰어가 말을 건다. "저기, 그 쪽 저랑 어디서 마주친 적 없으세요? 제가 낯이 익어서요. 진짜, 진짜 한 번이라도 우리 마주친 적 없어요?" 고개를 갸우뚱 하는 정국에 옆에 있던 친구들은 이상한 여자 아니냐며 가자는 친구들에게 잠시 손짓을 한 후 차분히 내 말을 이어 들어준다. "아니라면 죄송한데, 그 쪽이 정말 낯이 익거든요. 저 정말 모르세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에 있던 폰에 번호를 찍어주며 귓가에 몇 마디를 속삭인다.
"·····천년을 돌고 돌아 드디어 만나는 구나." _____ 안녕하세요. 작가 화양동 탄소입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쓰고 있던 사극글이 있었지만 이 소재로 먼저 독자님들과 소통하고 싶어 이리 급하게 써서 왔습니다.(두 팔 벌려 따스히 맞아주세요ㅎ) 이 글을 조금 부연설명하자면 백퍼센트 사극은 아닙니다. 전생과 현생이 오묘한 조화를 이룰 것이고 그 인연이 끊기지 않았지만 또 다른 인연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뭐, 그런 처절한 복수심을 느낄 수도 사랑에 애절복걸할 수도, 그리움에 사묻혀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큰 일이 없다면 자주 자주 오고 싶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늘도 해!피!데이 독자님들💜
소재: 독방의 미모의 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