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다급해져갔다. 경수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흐르고 자꾸만 걸리는 신호에 백현은 애꿎은 핸들만 꽝꽝 쳤다. 입술이 하얗게 질려가는 경수는 어깨를 축 늘인채로 백현과 마주잡은 손의 힘이 점점 빠져가고 있었다. 그냥 힘들었다. 분명 첫째를 낳을때는 이렇게 진통의 주기가 짧지는 않았는데.
"여보 조금만. 조금만."
바보같다. 만삭인 경수를 데리고 집 근처도 아닌,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 부근도 아닌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버려서 뭘 어쩌겠다는건지. 경솔했던 백현은 그저 경수에게 미안할 뿐이다. 정작 그 고통을 받을 수는 없나 그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로 가야한다. 한 아름 눈 앞을 가리던 눈물들에 백현은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덧 지옥같던 시간이 흐르고 병원 근처에 다달았을 때 경수는 의식을 잃기 직전이었고, 백현또한 그랬다. 뒷자석의 까꿍이를 안아들었다. 이렇게 기쁜날 왜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경수를 보면 그랬다.
뭐 하나 진득하게 붙은 적이 없다. 공부도, 취미도,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금방금방 실증이 나 던져버리거나 케케묵은 옷장에다 집어 던져 놓기도 했다. 나름 장족의 발전이라면 발전이고 인간이 됐다면 인간이 됐다. 백현은 기분파여서 다루기 힘들었으니까. 그걸 통제해준이가 경수이다. 지금 백현의 손을 꼭 잡고 소리를 지르는 저 이말이다.
출산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글로 어찌 그 기분을 표현하겠나. 10개월을 한 몸으로 살았던 아이를 세상밖으로 꺼낼때에는 행여나 아이가 놀랄까 소리도 마음대로 지르지 못하는게 부모이다. 고통에 대해선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분이 다 억눌러주니까.
"여보, 여보 나 무서워 응?"
"까꿍이도 잘 낳았잖아. 할 수 있어."
"두 명이잖아, 두 며엉..응?"
"여보, 제일 예뻐. 사랑해. 잘 할 수 있어 응? 걱정하지말고...옆에 계속 있을게"
그 말을 한지 몇 분이나 됐다고 백현은 분만실에서 쓸쓸히 퇴장당했다. 제 아무리 한번 아이를 낳아봤다고 한들 두번째가 두렵지 않을리가 없다. 어쩌면 더 두려울 수도 있다. 이미 그 아픔을 한번 알아보았기 때문에 두번다시는 하고 싶지 않겠지. 경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배 위에 기차 한대가 지나가는 듯 했다. 얌전히 미끄덩 나오면 좋으련만. 경수는 속으로 말도 안되는 바람을 하고있었고, 의사들은 뭐 그리 바쁜지 입도 바쁘게 움직였다. 의사들의 말투와 말들에 경수는 어쩌면 더 긴장했을 수도 있다.
"숨 크게 쉬시구요~ 자 하나 둘~ 후~"
"후,후..."
"하나 둘 셋 하면 힘 주는겁니다 어머니!"
"으윽, 아! 잠깐만.."
*
분만실 밖의 백현은 까꿍이를 등에 업은 채 안절부절 못하고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했다. 제발, 제발. 자꾸만 최악의 경우가 하나 둘 떠오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경수의 진통이 시작 되고 분만실에 들어간지 어연 3시간이 지났으니 말이다. 경수의 부모님이 오시고 까꿍이를 안고 백현의 등을 토닥 거려주는 동안 백현은 쉬지않고 기도를 했다. 원래라면 한 자리에 십분이상 못 앉아있던 백현도 끄떡없이 기도를 하고 있었으니.
경수의 신음소리는 여전히 복도를 울린다. 경수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백현은 초조한 마음에 자꾸 손톱을 물어뜯거나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혀로 입술을 축였다. 경수의 어머니는 까꿍이의 밥을 먹이러 가셨고 지금 복도에는 백현과 경수의 아버지만 남아있었다.
"많이 떨리지. 두번 째 인데도."
"네..."
"내 자식이 아이를 낳고, 또 이번에는 쌍둥이라고 하니..."
백현은 이내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경수의 아버지는 백현의 등을 쓸어주며 경삿날에 울면 복 날아간다며 백현을 진정했다. 백현은 그저 의사선생님의 말이 떨어질때 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밖에서 경수의 신음소리만 들어야 했다. 대신 아파주지 못하는 백현의 속은 타 들어가 새카맣게 재가 된지 한참이다.
"아버님 들어오셔도 돼요~"
동시에 벌떡 일어난 백현과 경수의 아버지는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백현의 등을 밀어주었다.
"2014년 8월 9일 5시 30분, 32분입니다."
경수는 거의 쓰러지다 싶이 눈물을 흘리며 누워있었고,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작은 핏덩어리를 들어 경수의 옆에 뉘었다. 경수는 눈을 떠 옆을 보더니 작은 두 아이의 모습에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고 백현은 경수의 머리를 넘겨주며 수고했다며 막히는 목을 가다듬었다.
"변백현이네 변백현!"
경수는 침대에 누워 백현의 얼굴을 보고 두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와하 웃으며 이야기했다. 까꿍이는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 동생을 보려고 했고 얼굴을 힐끔 보더니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눈은 완전 도경순데?"
사실 백현은 딸을 원했으나 아주아주아주 다행이게도 건장한 남아 두 명이 태어났다. 경수의 부모님은 고추장사해도 되겠다며 백현의 등을 툭 때리셨고 경수는 여전히 행복한 느낌에 사소한 일에도 와르륵 웃고는 했다. 백현은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내려가지 않는 입꼬리를 더 활짝 올렸다. 예쁘다. 정말. 사실 까꿍이도 백현과 판박이지만 어찌 유전자가 많이 투입됐는지 이번에 두 쌍둥이 또한 백현과 판박이다. 사실 경수의 얼굴을 조금 닮은 구석도 조금씩은 있지만 아직은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까꿍이도 처음 태어났을 때 도경수랑 똑같다며 백현이 놀렸으니.
"진짜 우리집 이제 슬슬 고추장사 해야하지 않아?"
"너희 집은 고추밭이네 고추밭."
입원실안에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웃음이 화르륵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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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도 일이 많은지 너무 늦게 오네요 ㅠㅠ 죄송합니다 사랑해요..
아참 이번 연재는 좀 짧은 단편이에요 좀 많이 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