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소식 이후로 백현은 경수에게 엄청 지극정성이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에도 시도때도 없이 경수에게 전화를 해 괜찮냐며 뭐 먹고싶은건 없냐며 묻기도 했다. 언제는 경수가 귀찮다며 전화를 받지 않은날도 있었는데 그 날 백현은 회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달려왔다가 까꿍이를 꼭 껴안고 자고 있는 경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경수는 그닥 입덧이 심한건 아니었지만 먹고싶은게 많아졌다. 아마 특권아닐까 임신한 자만의 특권.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백현은 경수의 말에 오밤중 추어탕을 사러 나가기도 했으니. 그러나 백현은 별 불만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 진심으로 경수를 사랑해서일수도.
"그럼 까꾸니 동생 두명이니니?"
"응 까꿍이 동생! 두 명!"
까꿍이는 매일 아침 일어나 경수의 배를 쓰다듬으며 뭐 그리 할말이 많은지 태어날 동생들에게 많은 대화를 시도했다. 쌍둥이라 그런지 남들보다 두배 부푼 배를 가지고 집안 일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경수를 위해 백현은 회사를 다녀오고 가사일을 돕기도 했다. 어느덧 배가 슬슬 불러오고 경수의 움직임이 더딜즈음 백현은 출산휴가를 내 하루종일 경수 옆에 붙어 경수를 간호했다. 까꿍이는 유치원에 꼬박꼬박 백현이 데려다 주었다. 백현이 다시한번 멋진 아빠라는것을 증명하기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까꿍이의 소식을 들은날 부터 곧 태어날 까꿍이에게 쓸 편지 등, 백현의 행동 하나하나가 경수에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여보 그렇게 좋아?"
"그렇지! 안 좋을거 뭐 있어."
힘이 드는것도 두배지만 기쁨과 행복과 기대또한 두배였다. 경수의 친구들이 경수의 쌍둥이 임신소식을 들었을때는 금실도 좋다며 농담을 하며 축하한다고 전했다. 그 전 생활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경수가 쌍둥이를 가지면서 변한 백현의 태도에 더욱 더 큰 감동을 느꼈다. 소소한 행복인지 큰 행복인지는 모르겠다만 생명을 가지고 사랑을 받는다는건 또 다른 느낌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날이 갈수록 경수의 배는 천천히 불러왔다. 힘들다며 한 걸음도 못움직이기도 했고 몸이 퉁퉁 부어 신발까지도 작아 밖에 나가는일이 있으면 슬리퍼를 신어야했다. 그렇게 경수의 몸이 출산의 신호를 천천히 켜자 백현은 안절부절못해 행여나 사고라도 있을까봐 경수의 옆에 붙어 경수를 경호하느라 바빴다. 까꿍이도 어엿한 남자라며 경수의 옆을 지켰고, 그렇게 둘은 경수를 열심히, 있는힘을 다해 보호했다. 양가 부모님들은 번갈아가며 집으로 와 반찬이나 밥을 해주시고 가셨고 가끔 신발이나 내복따위의 선물을 주시고 가셨다. 경수는 아마 영원히 임신한 상태로 있고싶다는 생각을 했을거다.
"안 힘들어? 좀 쉬어, 응?"
"뱃속에 있는 내 새끼들보면 힘들지도 않아."
그렇게 하루가 평화로웠다. 주말. 까꿍이도 유치원에 가지않고 날씨도 정말 좋았다. 여름의 날씨라지만 햇빛이 그리 따갑지가 않아 외출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백현과 경수는 큰 결심을 하여 외출을 결심했고 일반인의 만삭의 배를 가진 경수를 부축해 차에 오르기까지 성공했다. 까꿍이는 경수의 배를 만지며 아니나 다를까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동쌔나, 나준에 나오면 내가 꽃 접는 법 알려주께!"
"우리 까꿍이 꽃 접는 법 알아?"
"응응!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해줬어. 그래서 알아!"
컨디션은 최고였다. 날씨도 좋았고 운전석에서 팔을 걷어올려 운전을 하는 백현의 옆 모습도 좋았고, 뒤에 앉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까꿍이도 좋았다. 왠지모르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될것같다. 경수는 손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하다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백현은 꽤나 먼 길을 운전하기 위해 커피를 마셔가며 정신을 똑바로 차렸고 그런 백현을 보며 경수는 작게나마 애교도 부리고 힘도 복돋아주었다. 아, 목적지는 바다였다. 여름바다. 지금가면 사람도 북적거리고 물도 더럽겠지만 그닥 꺼려지지는 않았다. 경수가 가자고 요청한 이유때문일까 백현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마 경수는 모래사장위에 비스듬하게 누워 햇빛을 맞고싶을 것이다.
"백현아."
"오랜만이네."
"뭐가?"
"이름 불러주는거. 결혼이후 처음이지 아마?"
경수가 바람빠지게 웃었다. 사실 제도 말을 하고 입이 간지러웠던것이다. 경수와 백현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서로가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나름 첫사랑같은 아픔이 있었다. 사실 말이 거창해 아픔이지 보통연인과 같았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고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둘은 같은 반이 되었고 한 친구가 접전이었다. 경수와 백현은 아주 지독한 천적이었다. 서로 만나면 으르렁대기 바빴고 가끔 의자에 흙을 뿌려놓는것과 같은 유치한 장난도 일삼아 했었다. 그런데 둘이 어쩌다 결혼을 하게 되었냐면 말하자면 조금 길다. 파란만장하다는 것이 더욱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
아마 둘의 마음을 확인한건 경수의 집에서였다. 둘은 서로 견제하지만 만나지 않을수가 없는 사이였다. 둘은 공통인 친구를 사귀었고 어느날 경수의 집에서 만남이 성사되었다. 경수, 백현, 친구 세명과 총 5명의 만남이었지만 경수의 집에서 얼굴을 맞이한건 백현과 경수 둘뿐이었다. 친구들의 계략이었다. 둘이 제발 친해지라고 억지로 붙혀놓은것이었으나 결과는 대참사였으니 친구들은 만족을 뛰어넘어 의아했다. 하루사이에 저렇게 친해질 수 있나 하고. 둘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백현이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끝이었지만 그럴수 없었던것은 경수의 집은 넓었고 조용했으며 경수의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가셨다. 요컨데, 경수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경수는 혼자 잠을 자는 것을 무서워했다. 사나이 체면에 말이 아니다만 백현에게 부탁을 한 경수는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백현은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웬수의 집에 와서 무슨 망신이나 싶지만 곧 경수는 백현의 팔을 끌어당겨 침대위로 이끌었다. 둘은 밤새 이야기를 하다 끌어안고 밤을 보냈다.
그 뒤, 같은 대학교, 군대까지 모조리 붙어다니느라 바람은 커녕 다른 연인을 사귀지도 못했다. 헤어진적은 많았으나 서로가 없어 허전한 둘은 결국 다시 만나 눈물의 재회를 했다지. 결국 결혼을 택했던 것이다.
"그냥 갑자기 불러보고 싶어서."
"연애할 때 생각나네."
"그러게. 그 날 기억나? 너 야동보다가 나한테 걸린거."
"그 얘긴 안했으면 좋겠는데? 까꿍이랑 애기들 앞에서..."
"까꿍이 자."
신호를 받아 뒤를 돌아본 백현은 정말로 자고 있는 까꿍이의 얼굴을 보고 경수를 바라보았다. 저 큰 눈안에 많은 뜻이 담겨있다. 나는 모든걸 알고 있어.
둘의 대화가 무르익자 어느새 목적지에 다달았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다. 그러나 하나 오점이 생겨버렸다. 아주 큰.
"여보, 바다!"
"..."
"여보?"
주차장에 차를 세워 내린 뒤 경수의 방향에서 차문을 열어주고 넓은 바다를 손으로 가리키며 경수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경수는 미동도 없었다. 경수는 천천히 백현의 손을 잡아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힘겹게 이야기했다.
"여보...병,병원"
백현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백현은 문을 닫아주고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까꿍이는 여전히 아까와 같은 상황으로 잠에 들었지만 지금 차 안에는 비상 경보가 울렸다. 백현은 네비게이션을 찍고 찾아온 터라 주변에 산부인과가 있는지도 모르고 또,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 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일단 모르겠다 싶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급기야 경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을 내기도 했다. 경수를 잡고 있는 손에서 땀이 축축하게 베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