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집이라고 해봐야 한달동안 빌린 숙소에 불과한데, 마크가 데려다주니까 또 새로운 느낌. 이라고 하면 나 너무 쉬운 여자 같아? 솔직히 방금 그거 고백이라고 봐도 무방한거였잖아. 다음번에 다시 하겠다고는 하지만 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고백이고, 아니 사실 이렇게 재고 따지고 할 거 없이 고백이야. 내가 고백이라면 고백인거야. 사귀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나를 좋아한다고.. 간접적으로 말했잖아. 나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해.
“그.. 잘 들어가.”
“응 너도 빨리 집 들어가.”
“으음..”
아예 집 앞까지 마크를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집이 훤히 보이는 거리 즈음에서 인사를 하려는데 마크가 먼 곳을 보고, 땅을 툭툭 차면서 시간을 끄는거야. 그래서 내가 먼저 물어봤어.
“우리 내일도 만날래?”
“What?!”
“아니 내 말은.. 내일 별 약속 없으면 나 좀 놀아달라고.”
“I, I’m.. 난 괜찮아. 너 안 피곤하겠어?”
오늘 하루 좀 놀았다고 그렇게 피곤한 건 아닌데, 너무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그 새카맣고 커다란 눈에 나도 모르게 내가 피곤한가.. 곰곰이 고민할 뻔했잖아. 나도 괜찮다고, 집 가서 연락하라고. 그러고서는 집에 들어가서, 현관문이 쾅! 하고 닫히는데 그 커다란 소리가 내 머릿속에 가득차 있던 구름을 이렇게 헤쳐서 방금 있던 일을 명확하게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거야. 이런 걸 주마등이라고 그러지? 이게 다 오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인가. 믿기지도 않고. 멍하니 내 방까지는 어떻게 걸어들어갔나 몰라. 온몸에 힘이 쭉 풀리고.. 침대에 드러누운 것도 아니고 그냥 침대에 팔을 걸친채로 바닥에 주저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어. 내가 찍은 셀카, 신기하다고 찍은 수족관
-띠링.
그리고 새로 도착한, 마크가 찍어준 내 모습들.
#25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내 사진을 찍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는데, 왜 마크가 찍은 건 하나같이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은걸까. 솔직히 셀카만큼 잘 나온 사진들은 아닌데 하나같이 내가 즐거워보이면서도 못나 보이지는 않는 사진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꼭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
-띠링.
사진 나도 가지고 있어도 돼?〈〈
이렇게 하나하나 나를 신경써서 행동해주는 마크 덕이 큰 것 같기도.. 김여주!! 잘 거면 화장 지우고 자!! 대뜸 소리 질러주시는 우리 어머니 덕에 감상은 싹 다 사라지고 말았네.
“오늘 어디 갔다 왔다고?”
“아쿠아리움.”
“괜찮았어?”
“완전. 진짜 커다랗고, 물이 많고, 해파리도 많고.”
잔뜩 들떠서 말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웃는거야. 아직 애네 하고. 그래서 발끈해서 애 아니라고 소리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좀, 애처럼 말하기는 했다.
“그럼 내일은 엄마랑 좀 돌아다녀볼까?”
내..일? 동공지진 덜덜. 뭐라고 말하지. 뭐라고 둘러대지.
“아.. 언제?”
방법은.. 내가 두 번 나가는 것 밖에 안되겠지..? 아 속으로 울음나네 진짜.. 내가 먼저 마크한테 만나자고 한 건데 ㅠㅠ
#26
결국 방에 들어와서 문자로 마크한테 사실대로 말했어. 내일도 너랑 보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같이 외출하자고 해서 잠깐밖에 못만나겠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그랬더니 마크가 오랫동안 답장이 없더라.. 불안하게 이러지 마.. 이럴 때마다 그 마크 처음 본 순간의 양아치 이미지가 자꾸 떠오르고, 무서워진다고 하면 나 좀 쫄보같아..? 아냐 그냥 쫄보 할래. 나 김여주는 쫄보야..
It’s Okay. 너 편한대로 해.〈〈
아니 너 못 만나는 게 오케이가 아니라〈〈
그러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TT〈〈
그렇다고 세수하고 나온 사이에 이렇게까지 내 긴장을 풀어줄 일 있냐고 이마크! 하여간 귀엽지 않아? 열일곱 먹은 애를 귀엽다고 하면 좀 징그럽나? 근데 마크는 진짜 귀엽거든.. 진짜로!
>>응 알지ㅋㅋㅋㅋㅋ
>>오늘 마크 많이 당황하네~
좀 놀려주고 싶은 것도, 다 이해할 거라고 믿어. 나만 못된거 아니잖아. 그나저나 큰일났어. 마크도 마크인데 엄마가 그 친구 누군데? 라고 물어보기 시작했어. 남자애라는 건 빼고 말하기는 했거든? 엄청 귀엽고, 착하고, 눈동그랗게 생긴 아인데 나랑 되게 잘 놀아준다는 식으로 말했단 말이야. 근데 너무 좋게 말했는지 엄마가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 느낌이 불안해..
“김여주!!”
“어, 어! 왜?!”
이것 봐.. 엄마가 부르기만 해도 심장이 덜컹덜컹한다. 엄마한테 마크 얘기를.. 꼭 할 필요는 없겠지?
#27
오전에는 엄마가 나를 (또) 다운타운에 데려갔어.. 옷 쇼핑이 목적이라는데 혼자서도 여러번 와보셨을 양반께서 지겹지도 않으신지 길거리에 있는 가게 마다 들어가서 천을 만지작 거린다? 그러고는 자기 몸에 대놓고는 이거 어때 여주야? 한다니까. 응 괜찮네. 아니, 그건 진짜 별로야. 사실 한국이었으면 점원 앞에서 대놓고 별로라는 얘기.. 잘 못했을 텐데 벤쿠버라서 했어요. 가게 언니들 미안. 근데 초록색 호피무늬는 너무 난해했다구요.
“너는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옷 사주게?”
“아니 뭐, 비싼 것만 아니면.”
그건 좀 본격적으로 골라야겠는데? 싶어서 눈을 반짝였더니 엄마가 질색을 하더라. 눈빛이 싹 바뀐다고 애가 어쩜 그러냐고. 뭐 사람이 좀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내 눈엔 옷 가게보다, 골동품 가게처럼 생긴 악세사리 가게가 더 띄더라고. 들어갔지.
저녁도 밖에서 먹고 들어오자는 엄마의 말에 나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면서 잠깐 친구 만나야 한다고 손짓했어. 엄마가 살짝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는 했는데, 어쩔 수 없는 걸 아는지 그래 가라 가! 하고 보내주더라고. 한참을 앞으로 쭉 걷다가 뒤돌았을 때 엄마가 안 보이는 것 같길래 마크한테 메시지를 보냈어. 어디냐고.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 앞이라길래 내가 그 앞으로 가기로 했지.
“왔어?”
Hi가 아니라 왔어? 라고 묻는 내 캐니디언 친구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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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가족 행사에 이리저리 일이 많아서 지난 주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따로 공지를 드리는 것도 괜한 알람이 갈까봐 그러지 못했어요.
생활 패턴이 돌아오기를 .. 스스로도 바라고 있습니다.
암호닉 : 동쓰 베리 딸랑이 하라하라 혀긔 메리 슈비두바 작결단1호 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