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별빛이."
사실 너는 자주 꿈을 꾼다.
예지몽이라든가, 루시드드림이라든가, 뭐 그런 건 아니고.
"우리 별빛이는 있잖아."
요즘은 꿈에 나오는 사람이 거의 정해져 있다.
그만큼 너가 꿈 속에서까지 그 사람이 보고싶다는 걸까?
"맨날 나한테 툴툴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너는 그런 남자를 괜히 흐뭇하게 쳐다봤다.
"뭐, 그게 매력이긴 해."
그 남자의 말을 계속 듣다보면 그 남자가 대뜸 간다는 말을 던지곤 했다.
몇 시간이든 몇 일이든 더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나 남자의 말 한마디면 너는 아, 이게 꿈이구나. 라는 생각에 쉽게 그를 놓아주게 된다.
"이따 보자. 별빛아."
"응."
*
푹신푹신한 감촉과 편안한 느낌에 살짝 눈을 떴다.
집인가 싶은 마음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위는 꽤 시끄러웠고 그런 소리에 너가 눈을 질끈 감았다.
"별빛아."
익숙한 목소리에 너가 감았던 눈을 떴다.
누워있는 너 옆으로 이재환이 너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너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써보았다.
병원,
갑자기 띵한 느낌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너가 머리를 잡자마자 놀란 이재환이 벌떡 일어나 너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눕혀주었다.
"조금 정신이 들어..? 무리하지 말고,"
이재환은 이제야 조금 안심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너 앞에 앉았다.
너는 그런 이재환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사선생님이 찾아오고 머리가 많이 아픈지,
그 도둑놈이 손전등으로 너의 머리를 찍어박았다든지,
그런 소리에 너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꼬맸다는 말 뒤로 사라진 의사선생님을 보며 너가 머리를 매만졌다.
얼굴을 찡긋거리다 그런 너를 바라보는 이재환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재환은 너와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긁적거리며 잠시 시선을 피하는 눈치였다.
"뭘 그렇게 피해."
너의 말에 이재환이 눈을 움직이며 너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은 안경을 만져대었다.
너가 안경을 쳐다보니 안경테가 부러져있는 모양새였다.
너는 그런 안경을 한 번, 어색하게 웃고 있는 이재환을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
"...그 도둑은..?"
"..경찰서에. 현관문으로 당당히 나오길래 일단 손만 못쓰게 하고 경찰 불렀어.."
"너가?"
너가 웃음을 지으며 이재환에게 말하자
이재환이 부러진 안경을 살짝 들어보이며 히죽댔다.
"안경은 부러졌지만,"
너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너 친구분은 지금 조금 바쁘셔서 아침에야 온댔고,"
"뭘 그래, 아침까지 여기 있을 생각도 없어."
너가 이재환의 말을 끊고 머리를 붙잡으며 신발은 어딨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불을 밀어내고 입은 옷을 확인해보니 핏방울이 상의에 조금 튀어있었다.
"이러고 어떻게 가지."
너의 말에 이재환이 다시 이불을 덮어주며 고개를 내밀었다.
꽤 가까운 거리의 얼굴을 맞닿자 너의 얼굴이 빨개졌다.
"안 가면 되지."
싱긋 웃는 이재환이 상체를 일으킨 너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너가 그런 이재환을 보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거봐. 이렇게 행동하면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 별빛아."
너가 살짝 눈을 들어 이재환을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는 이재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몰랐다.
천천히 입을 여는 이재환이었다.
"그니까, 나는."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한 번쯤은 다시 얘기하게 됬을 때,
이재환은 너에게 무슨 얘기를 꺼낼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이재환은 너에게 말 없이 가방을 건네준게 다였고,
아마 그 때 너는 마음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끝이구나, 라고 말이다.
"사실 나는 이런 내가 조금 한심해서,
너에게만큼은 아픈 걸 들키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너가 좋아한다 말했을 때도 나는 바보같이 어떻게 내가 거기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
너가 이런 나를 진짜 좋아해주는게 맞는건가 싶어서."
이재환은 한 박자 숨을 고르며 너를 바라보았다.
"물론 지금은 내가 아파 보이지도 않아 보이겠지, 넌."
그건 이재환이 잘못 아는 사실이다.
언제나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 뒤로 쉽게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 항상 보였기 때문이었다.
빤히 재환이를 바라보고 있자 이재환이 살짝 웃어보이며 말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널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별빛아."
*
옆 집이 빈지도 벌써 몇일 째,
매일 그림만 그리려 하면 옆 집 창문에서 아줌마가 홀짝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탓에
차라리 이렇게 비어있는게 낫겠다 싶었다.
언제 이사가나 이를 갈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창문을 편하게 열고 있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맞은 편 집에서 오랜만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다른 사람이 이사를 오나 보구나.
별로 달갑지는 않은 터라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거실에 가보니 바닥에 누워있는 학연이와 택운이가 보였다.
학연이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 옆 집 시끄러운 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걸었다.
"여기 진짜 방음 좀 얘기해라. 잠을 못 자겠네!"
그런 차학연의 배를 툭툭 치며 택운이가 입을 열었다.
"이사 하느라 그런거잖아. 그냥 집에나 갈까?"
그런 둘이 너무나 웃긴 내가 물을 따르며 그런 둘을 구경했다.
구경하던 내가 거슬렸던지 택운이가 살짝 눈을 뜨며 말했다.
"또 이사오면 창문 닫고 살아야겠다, 너."
"뭐 전에 살던 아줌마 같은 사람만 아니면 그럴 필요는 없지."
찬장에 있는 약을 꺼냈다.
몇 알씩 세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는 학연이었다.
"재환아. 그럼 우린 갈게!"
약을 입에 탈탈 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ㄹ.."
"아우 진짜!! 한상혁!! 할거면 좀 제대로 좀 도와줘!!"
물을 넘기려는데 옆 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약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옆 집에 여자가 왔나보다 라며 차학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택운도 화통을 삶아먹었냐며 한 마디 보태는 걸 잊지 않았다.
나도 그냥 꽤 시끄러운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나 너 좋아해."
그렇게 병실이 조용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지금 내 심장소리가 행여나 별빛이한테 들릴까봐 침을 꼴깍 삼켰다.
이 말을 별빛이에게 들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는 별빛이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라고 말하고 싶은데
*
"나도."
순간 고민했었다.
이렇게 날 고생시켜 놓곤 이제와서 좋아한다고?
나쁜 이재환.
그래도 바보같지만 너는 지금이라도 진심을 말해준 이재환이 고마워서 웃음이 나왔다.
이재환은 너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별빛아."
"아, 어쩌지. 너무 잘 받아주는 여자 같나."
뺨을 긁으며 괜히 이재환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너를 본 이재환이 씩 웃더니 너를 꽉 안았다.
"야, 재, 재환아. 여기 병원,"
병원이라는 말에 그제야 놀라며 힘을 푸는 이재환이었다.
그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한 너가 푸흡 소리를 내며 웃어보였다.
이재환도 그런 너를 보더니 뭐가 웃긴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보세요?"
"누구는 바보같이 집에 도둑이나 들었으면서."
어느새 이사온지 한 계절이 지났다.
쌀쌀했던 날씨가 점점 풀리고 있었다.
-
20편 경축☆ 자축★ ㅋㅋㅋㅋㅋ후 벌써 20편이네요! 그리고 드디어 얘네 사겨요ㅠㅠㅠ엉엉
방학 때 다 끝내려던 제 계획도 날아가고 어느새 개학이지만...ㅎ...
지금까지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직 내용은 멀었다는거...ㅋㅋㅋㅋㅋ
앞으로도 30편 아니 끝까지 함께해요!ㅠㅠ 그럼 이제 지난편 댓글 답달으러 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