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왕세자
<대총>
w.가시리
***
귀티가 흐르는 곱상한 용모의 푸르스름한 도포를 두른 선비 차림을 한 대현이 책방으로 들어선다.
책방 주인은 그런 대현이 꽤나 반가웠는지 앞까지 마중나와 눈주름을 만들며 웃어보인다.
"오셨습니까, 정도령"
"그간 내가 말해둔 책들은 도착한 것이오?"
"암요, 그렇고 말구요. 우리 도련님은 암만봐도 예사의 미남이 아니구만요.
조선 천하에 이런 선비가 어디있단 말입니까, 으하하!"
"에헴, 조용..!"
게걸스럽게 웃어대는 책방 주인 탓에 반대편에서 책을 고르던 앳되어 보이는 사내의 시선이 대현을 향했다.
주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당황한 대현이 부자연스럽게 책방 주인을 나무란다.
"어허, 이상한 웃음소리는 그만내고 어서 책들을 내오지않고!"
"알겠습니다요,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쇼"
책방 주인이 자리를 뜨자 아까 그 사내가 대현의 곁으로 다가섰다.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지만 둘은 꽤나 키 차이가 많이 났다.
"자자, 기다리던 책이 여기왔소. 모두해서 다섯 냥이요!"
"여기있네, 나머지 돈은 내 인심을 쓴거이니 앞으로도 잘부탁하오.
비밀은 꼭 지켜주는거 잊지말구"
"아이구 별말씀을요, 감사히 받겠소, 하하!"
비밀이라는 대현의 말에 곁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을 관찰하는 듯 했다.
사내는 대현의 계산이 끝나자 서둘러 책방 주인에게 돈 몇푼을 쥐어주고는 서둘러 대현의 뒤를 따라나섰다.
"자네 지금 뭐,뭐하는 짓인가! 당장 내려놓지 못해!?"
"그쪽한테 무거워 보여서 말이지, 덩치에 비해 책 욕심이 강하군 그래, 이게 다 무슨 책이요?"
"어허! 당장 이리 내놓지 않..!"
대현이 자신의 책을 들키지않기 위해 발버둥 쳐봤지만 키가 훨씬 큰 사내가 두팔을 번쩍 들자 닿을 턱이없었다.
책 내용을 대충 훑어 본 사내는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쯧쯧, 학문 보다는 성에 관심이 많은가보오? 그래도 그렇지 이거 너무 문란한거 아니요?!"
"뭐,뭐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게, 당신 이름 석자 좀 알려주시오. 내 이름은 최준홍이요, 그쪽은?"
"내..내 이름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대현을 준홍은 이상하다는 듯 내려다 보았다.
그러더니 곧 곱게 뻗은 두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뭐, 왕세자라도 되는 것이오? 기껏 해봐야 내 또래에 유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흠..그러고보니 피부에서 윤기가 흐르고 입술에도 생기가 도는게 신분이 평범해 보이지는 않소?"
"뭐,뭐..뭐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그분을 입에 올리는 것이냐!
다,당연히 난 아니지!..아니지말구!"
"하하, 장난이요. 왜이렇게 발끈하는거요? 왕세자야 당연히 궁 안에서 꼼짝을 못할테니!"
"그,그야.."
준홍은 애써 변명을 하기위해 식은 땀까지 흘리는 대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발길을 돌렸다.
대현은 준홍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서야 참던 숨을 한번에 내쉬었다.
"어휴, 괜히 바짝 쫄아있었어. 어느 집안 아들인지 정말 무례하군!
뭐? 다음에 또 보자고? 그땐 꼭 곤룡포를 차려입고 그 잘난 상판을 보고싶군 그래!"
***
오늘 입학하는 성균관 유생들을 반기기라도 하듯, 웅장하게 얼굴을 내민 해가 중천에 올랐다.
얼굴에 어린티가 나는 유생들이 막 새로 지은 듯한 파란 빛깔의 성균관복을 입고 늠름하게 줄 맞춰 서있다.
그 사이에서 유독 큰 키와 하얀 피부를 빛내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준홍이 눈에 띄었다.
"저자는 유씨 가문의 장남,..저기는 어디서 많이 본듯하군.."
눈썹을 꿈틀거리며 주변 유생들을 살피던 준홍의 눈에 영재와 힘찬이 들어왔다.
'경쟁자들이 아주 출중하군, 근데 그때 그 친구는 역시 올해 입학생이 아닌..,'
아까부터 대현을 찾던 준홍이 실망한듯 할 때 북이 울리며 목청 좋은 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자 전하 납시오!"
'왕세자가 입학한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진짜였다니, 이거 같은 방이라도 쓰게 되면 끔찍하겠군'
왕세자를 태운 가마의 오른 쪽으로는 호위무사 종업, 왼쪽으로는 방용국을 비롯해
조선의 최고 학자들이자 유생들의 스승이 될 자들이 일렬로 행진했다.
조심스럽게 지상 위로 놓여진 가마의 가리개가 천천히 거두어졌고 곧 대현의 용안이 드러났다.
상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준홍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지기를 잠시,
왕세자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준홍의 눈은 토끼눈 처럼 커지며 입이 떡 벌어졌다.
"그,..그,그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