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06
회상
“너 목에 이거 뭐야?”
“컥!”
의자에 쭈그린 채 자장면을 먹고 있던 다니엘의 고개가
우악스러운 정상의 손에 의해 꺾였다.
먹고 있던 자장면과의 갑작스런 뽀뽀에 놀란 다니엘은
곧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나아비~ 이쁘지?”
목을 들이밀며 말하는 다니엘의 귀여움에
하마터면 웃으며 예쁘다고 대답할뻔한 정상이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아니 못생겼어”
가만있다가는 또 잔소리로 이어질것같아 아랫입술을 깨문 채 가방을 챙겼다.
자유분방한 외국인 다니엘이 혹시 자신의 잔소리에 질려버릴까
최근 정상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어디가?”
“도서관”
“다음 주 시험이지”
“응. 늦어도 12시 전에는 들어올 거야”
“올 때 전화! 다니엘이 데리러갈게”
여전히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다니엘
외국인이란 걸 감안하지 않았다면 굉장히 밥맛일 말투가
정상에겐 마냥 귀엽게 느껴져 닫히는 문틈 사이로
“응, 사랑해!”
라고 외쳤다.
다니엘과 함께한지 1년
감정표현에 훨씬 솔직해진 정상이었다.
얼마 후 집을 나서 시간 확인 차 꺼내든 폰에는
‘내가 하려했는데!!!’
‘내가 더 사랑해 정상’
-“다니엘이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음성메시지까지 확인한 정상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10시 20분
평소보다 일찍 도서관을 나섰다.
정상은 10분째 도서관 앞에서 다니엘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데리러 오겠다는 다니엘의 말을 기억하고
좀 이른 시간에 짐을 정리한 정상은
모처럼 다니엘과 저녁데이트를 즐길 생각이었다.
“여보세요!!”
전화가 연결되자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다니엘이 소리치듯 말했다.
“아... 다니엘 클럽이야?”
‘또’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전화기 넘어 주변이 조용해지고 다니엘이 대답했다.
“응 정상 공부 끝났어?”
“응 그냥 공부가 안돼서...”
“으아... 어쩌지? 나 지금 바로 거기로 갈게 금방 가 30분?”
도서관에서 집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했다.
“아니야 나 집에 가있을게 놀다와”
섭섭함을 숨기고 거절했다.
“안 돼. 밤길 위험해 내가 갈게”
그걸 알면 클럽을 가질 말았어야지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미운 말을 삼키고
정상은 걸음을 옮겼다.
“금방 가 도착하면 톡 해놓을게 걱정 말고 놀아”
클럽 가지마
그 한마디가 어려워 또 그냥 전화를 끊었다.
정상의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는 중이었다.
시간이 벌써 12시였다.
눈치 없는 다니엘은 놀다오랬다고 정말 정신없이 노는 중인가보다.
어쩌면 조만간 자신은 화병이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
다니엘과 사귀기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정상은 여전히 연애가 서툴렀다.
첫 연애인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탓도 있었고
남들보다 늦은 시작인만큼
워낙 주변에서 들은 것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사랑은 남들보다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남자는 구속하려할수록 도망가는 거야’
‘잔소리만 하면 그게 엄마지 여자친구야? 완전 질려할걸’
연애상담을 상의하는 친구에게
연애경험이 많은 친구들이 항상 하는 소리였다.
호주에서 자란 다니엘은 술, 담배를 좋아했고
스킨십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클럽도 좋아했고
온몸을 스케치북처럼 타투로 도배했고
그러더니 최근에는 타투이스트로 활동중이긴 하나
정상의 눈엔 안정된 직업도 아니었고
그냥 놀기 좋아하는 백수일 뿐이었다.
다니엘의 이 모든 게 정상에게는 불안요소로 다가올 뿐이었다.
하지만 정상은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화려한 외모로
언제든 정상보다 잘난 여자에게로 가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고
하얀 몸에 타투가 점점 늘어갈 때면
하나뿐인 몸뚱이 리필도 안될텐데 나중에 후회될 땐 어쩌려고 그러나 걱정도 됐고
부모님께 소개시켜 드릴 때가 오면 저 얼룩덜룩한 몸을 어떻게 보여주나
그런 불안감과 고민만 쌓여갔다.
처음 자신에게 거침없이 다가왔던 만큼
다른 여자에게도 그렇게 가버릴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그 순간은 정상에게 있어 최악의 지옥이 됐다.
가장 싫은 점은 그거였다.
피붙이 한명 없는 타국으로 날아와선
적당하고 안정된 일자리도 구하지 않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걸 하고 사는 점
언제든 원하면
정상을 두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것만 같아서
자신은 그냥 혼자는 너무 외로워서 잠시 기댈 곳이 필요해서 만나는 것만 같아서
자신의 진심은 갈수록 커져가는데
다니엘이 알면 질려 도망갈까봐 정상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채 속만 태웠다.
“역시 동거같은거 절대 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혼삿길만 막히게 생겼어”
사랑에 눈이 멀어 가치관까지 무너트린 멍청한 1년 전의 자신을 원망하며
북받치는 억울함에 쿠션에 고개를 박고 울고 있는데 다니엘이 들어왔다.
“정상~ 내가 떡뽀끼 사왔다~”
깜짝 놀란 정상이 급한대로 쿠션에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드는데
“킁, 왔어?”
흐르는 콧물에 지저분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그래? 콧물 나, 울었어?”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에
“아니 그냥 코가 막혀서 그래”
라고 변명했다.
“정상 너 공부 너어무 열심히 해서 감기걸리는거야”
이때다 싶어 공부 좀 그만하라며
흥분해서는 감기의 원인을 공부 탓으로 돌리는 다니엘에게
공부와 콧물의 상관관계를 변호하며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곤
그깟거 사랑하는 동안 있는 힘껏 열심히 져 주리라 결심했다.
다니엘이 가끔 정상을 무릎위에 앉히고
나중에 결혼해 너 닮은 딸을 낳자는 청혼은 철없는 장난으로 치부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