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07
하루에 4시간도 못자고 일한지도 벌써 1주일째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지긋지긋한 새 프로젝트 기획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몽롱한 정신을 다잡고 마지막으로 수정한 기획안과 피피티파일을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 늘어진 직원들에게 커피를 나눠주며 밝게 인사하는 재수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재수씨도 수고 많았어요.”
“다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주말이니까 다들 집에 가서 푹 쉬세요. 다음 주에 봅시다!”
부장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짐을 챙긴다.
“주말 푹 쉬세요.”
김 대리까지 나가고 부장님과 재수 그리고 정상만 남은 사무실
재수가 짐을 싸는 정상에게 다가왔다.
“어우- 이 다크써클 좀 봐”
눈 밑으로 덤벼드는 재수의 손을 반사적으로 피한 정상이
재수의 얼굴에 공격적으로 거울을 들이밀었다.
“야 거울 봐 거울 너도 만만치 않거든?”
팀의 막내들인 둘은
1달간의 누구보다 고생하고 스트레스 받은 서로에게
장난을 가장한 위로를 건넸다.
“정상씨, 퇴근해요? 저녁 같이할까요?”
다니엘 부장도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상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 저 오늘 너무 피곤해서...”
지금 대화하는 순간에도 날아가려는 정신을 다잡고 말했다.
“아쉽네요... 그럼 데려다줄게요 집에 가서 쉬어요.”
“지금 차도 막히는 시간이고 차타면 더 멀어요. 걸어갈게요. 부장님도 오늘 쉬세요.”
혹시 따라올까 황급히 짐을 챙겨 나섰다.
“부장님 저 데려다주세요. 부장님00동 사시죠? 저 그 근처 살아요”
이때다 싶어 호탕한 웃음으로 넉살좋게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재수와
그런 재수의 눈을 피하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다니엘을 두고
쾅쾅쾅쾅!!
소파에서 자고 있던 정상은
커다란 소음에 강제로 잠에서 깼다.
‘가방도 안 풀고 잠들었네...’
몸을 일으키려는데 무언가 당기는 느낌에 시선을 돌리니
아직까지 어깨에 가방끈이 걸려있다.
엉킨 끈을 푸는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
이럴 수가, 실수했다.
생각 없이 벌컥 연 문 앞에는 다니엘이 서있었다.
이미 문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다니엘의 손과
문턱에 내밀어진 다니엘의 운동화를 본 정상은
문을 닫는 건 포기하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다니엘이 이사 온지도 2달째
그동안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한 번도 집으로 찾아온 적은 없었던 그였다.
“저녁 안 먹었지? 나랑 치킨 먹어”
오른손에 달랑거리는 하얀 봉지를 흔들며 말한다.
“저녁 먹었어.
그리고 피곤해 잘 거야”
도착하자마자 신발만 벗은 채로 소파에서 누워
10시가 넘은 지금 일어나놓고는
얼굴색하나 안변한 채로 말했다.
문턱에 자리 잡은 다니엘의 운동화를 발로 밀어내려는데 문이 확 열렸다.
“뻥 치지 마. 너 오늘 프로젝트 끝났잖아.
퇴근하자마자 하루 종일 잔거 다 알아.”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들어가면서 말한다.
이건 명백한 주거침입인데 폭력을 써도 정당방위겠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 정말 막대기 하나 들 힘도 없고
배도 너무 고파 곧바로 접었다.
“microwave 어딨어?”
전자레인지를 찾는 다니엘에게 소파에 축 늘어진 채 손가락만 들어 주방을 가리켰다.
다니엘이 가지고온 봉지에서 햇반을 꺼내들더니 주방으로 향한다.
딸깍
전기밥솥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니엘이 시끄럽게 떠든다.
“이거 봐- 밥 없어, 계속 굶었지?”
들려오는 소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갑자기 드는 소름끼치는 생각에 몸을 벌떡 일으키고 물었다.
“야 너 나 프로젝트 끝난 거 어떻게 알았어??!!”
역시 몽둥이... 밀대가 어딨더라
재빨리 무기를 찾아 눈을 굴리고 있는데 들리는 말에 다시 소파에 축 늘어졌다.
“재수 인스타-,
오늘 프로젝트 끝났다고 하루 종일 달릴꺼라고 애들이랑 사진 올렸던데?”
‘그놈 참 체력도 좋다.’
의심을 거두고 재수의 체력에 감탄하고 있는데 다니엘이 주방에서 나왔다.
“자 밥 먹자!”
치킨이랑 햇반만 달랑 있는 상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조촐한 밥상(?)을 멍하니 내려보고 있자 손목을 잡아 이끈다.
못이기는 척 나무젓가락을 뜯다가
“야 내가 말했지 밥이랑 같이 먹을 땐 순살이라고”
치킨의 다리부위를 찌르며 말했다.
“아 맞다. 미안, 미안.”
씨익 웃으며 말하는 다니엘의 표정은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다음엔 꼭 순살로 사올게.”
다음이라니...
이어지는 말에 그제야 아이고 내가 실언을 했구나 느꼈다.
정상은 큰 프로젝트가 끝난 날이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12시간을 넘게 내리 자곤 했다.
고등학생 때 시험 기간 때부터 이어오던 버릇같은거였는데
동거를 시작한 후 다니엘은 이런 날마다 정상을 깨워 꼭 식사를 챙겨줬다.
자신은 귀찮으면 삼시세끼를 내리 굶는 주제에
정상이 부족한 잠 좀 보충한다고 누우면 얼마안가
이렇게 정성은 없고 마음만 가득 담긴 밥상을 들이밀며 찡찡댔다.
일어나 밥 먹으라며
처음엔 달랑 계란 프라이에 밥만 주더니
자기도 민망했던지 주방에 이것저것 건들여도보고 사고도 여러번치고
결국엔 배달음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배달음식 중에서도 단골메뉴는 치+밥이었는데
뼈있는 치킨이랑 밥을 같이 먹는 건 거의 2년만이었다.
2년 전쯤 시험이 끝나고 늘어져 자고 있는 정상을 깨워 저녁이라며 준비한 치킨과 밥을 보고 ‘밥이랑 먹으려면 순살치킨을 시켰어야지~’
신경 써 준비해준 다니엘이 귀엽고 고마워 장난스럽게 말한 후로
그 뒤로 2년간 다니엘은 항상 순살 치킨에 밥을 준비했다.
그새 그걸 까먹었을 리는 없고
입 꼬리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웃음을 보고
얘가 날 시험했구나
거기에 대고 ‘내가 말했지’라니
피곤에 잠식당한 뇌만 아니어도 이런 실수 안했을 정상이었다.
아니 문부터 안 열어줬겠지
말없이 먹고 있는데 아까부터 영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다니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신경 쓰여도 애써 무시하고 있는데
“다니엘-, 여기 있었구나!”
다니엘이 소파 옆 구석에 처박혀 있던 캥거루인형을 꺼내들자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니엘’은 그가 작년 호주에 다녀오면서 사온 인형이었는데
캥거루 주머니 안의 작은 아기 캥거루 이름은 ‘정상’으로 둘다 다니엘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가관이다 진짜
‘다니엘’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어디 갔나 했어-”
말을 걸고 있는 다니엘을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선물 받은 거라고 자신의 물건이라며 들고 온 것이 문제였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그 집에 두고 오는 건데
늦은 후회를 하며 인형을 뺏어들었다.
“정상, 다니엘을 그렇게 다루면 어떡해. 아껴주기로 했잖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다니엘에게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여지를 줘선 안 된다.
미련을 갖게 하는 것도 안 된다.
이미 지나치게 이 관계를 질질 끌었고 정리할 시간 역시 충분했다.
“그건 너랑 내가 아직 사귀는 사이일 때 이야기고”
“지금 나한테 이건 전 남친이 사줬던
어디 있는지 못 찾아서 못 버린 쓰레기일 뿐이야”
“찾아줘서 고마워. 지금이라도 버릴게”
‘다니엘’과 ‘정상’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치킨 잘 먹었어.
너도 식사 끝난 거 같은데 이제 그만 돌아가 줘.”
문 쪽으로 향해 서서 말했다.
다니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본래 남한테 상처주고 사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다니엘의 상처받은 표정을 마주하면 다시 무르게 행동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한참 뒤에야 다니엘이 집에서 나갔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
풀썩 쭈그려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다 다시 쓰레기통 앞으로 갔다.
쓰레기통 옆의 책장 위에는
정상이 어린 시절 친구처럼 함께한 곰인형이 놓여있었다.
이제는 지어줬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낡고 해진
누구에게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
처음으로 가졌던 그래서 가장 아끼던 이 곰 인형처럼
책장 선반 위 외롭게 앉아있는 갈색 곰인형 옆에
‘다니엘’을 대충 털어 올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치킨은 내일 치워야겠다.
멀쩡한 정신으로 억지로 잠을 청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건 휴식이라 자신을 타이르며
살면서 이렇게 편지말고 긴 글을 써보는게 처음이라 부족한것도 많고 글 자체도 투박한데
항상 제 글 재밌게 읽었다고 댓글달아주시고 정말 감사드려요ㅠㅠㅠㅠㅠ
댓글로 독자님들이 막 등장인물에 대화걸고 같이 화내고 답답해하시는거보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ㅠㅠ♥
댓글 전부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이 제가 글을쓰는 이유!! 하나하나 전부 너무 소중해서 놓치는 댓글없이 답글 달려고 노력하고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뇌를 쥐어짜서 독자님들에게 소소한 즐거움 드릴수있도록 노력할께요 사랑해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