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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봄이오면- 김윤아


 







*** 

  

  

 





 

 

푸른 자수가 놓여있는 이불 위로 적색 비단이 물결치듯 깔려있고, 
여인은 잠이드려는 듯 눈을 무겁게 깜박이는 아이에게 속삭이듯 자장가를 부른다.
곧이어 아이는 눈을 감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적색 비단의 여인은 이불을 어깨춤으로 고쳐올리고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정원을 거느리다 발걸음을 멈추며 
유난히 밝게 빛을 뿜어내는 달을 응시하였다.

 

  

 


"마마, 곧 해시입니다. 침소에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죄가 그리 컷단 말인가." 

  

 


시종의 말에도 여전히 달을 응시하며 말을 하는 여인의 눈에는 작은 일렁임이 생겼다.

 

  

 


"마마께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사람 연(緣) 모두 하늘의 뜻 아니겠습니까."

 

 


"하늘의 뜻......잔인하구나..."

 

 


"눈물 흘린다 한들, 원망한다 한들, 무엇이 바뀐다 하더냐."

 

  

 


여인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시종을 바라보자, 
앳된 시종은 밝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늘의 뜻은 이미 내어진 길일 뿐이다."

 

  

 


여인은 그제사 같이 미소를 띄우며 시종과 마주하여 입을 열었다.

 

  

  

"내진 길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가거라. 새로운 운명이 나타날 것이다." 

  

 


두 사람의 맑은 목소리가 조용한 달빛 사이를 잔잔히 가로질렀다.

 

  

  

  

  

  

  

  

  

  


 


 


 


 


 

  

  

  

  

  

  

*** 

  

  

  

 


"그럼 저는 고국으로 돌아가 답신을 받아오겠나이다."

 

 


"조심히 다녀오시오."

 

  

 


사신에게 답신을 전하고 침소로 돌아온 황제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했다. 
청(淸)나라와 진(珍)나라에서 동시에 혼사가 들어왔다.
사실 청나라와 조용히 혼담이 오가었지만, 
연맹국에서 통합된지 얼마 되지 않은 진(珍)에서 혼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국세야 청나라가 우세하였지만 진의 황제가 고립을 막으려, 
혼담을 거절한 다음에 전쟁을 일으킬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황제는 답답한듯 창을 활짝 밀어 열었다.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것이오? 당신이라면...어떻게 했겠소..."

 

  

 


활짝 열린 창 사이로 보이는 달은 곧 만월임을 알리듯 배를 부풀리고 있었다.

 

  

  

  

  

  

  

  

  

  

  

  

  

  

  

*** 

  

  

  

  

"놔라!!!이거 놓지 못하겠느냐!!!내가 안가겠다 하지 않았느냐!!!!" 

 


"황녀마마, 제발 진정하시옵소서, 황제폐하의 명이라 저희도 어쩔수가..."

 

 


"그놈의 어명!!!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무엇이냐!!!!"

 

 


"지금도 마음대로 하고계시지 않습니까."

 

 


"이...이상궁..."

 

 


"청나라 황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걸음을 옮기시지요."

 

 


앳된 시중이었던 향아는 이제 제법 나이가 들어 위엄을 풍기며 황녀를 제지했다.
자장가를 듣던 어린 아이는 어느세 훌쩍 커버려 혼사가 오갈만큼 자라버렸다.
뚜렷한 이목구비, 도톰한 입술 하얀살결 그리고 황후를 닮은 청아한 목소리까지
어느하나 남자의 시선을 빼앗지 못할 곳이 없이 자란 아이는, 
제 어미를 잃은 슬픔담긴 눈마저도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향아는 황녀를 볼 때면 그 아름다웠던 여인이 생각나 
마치 자신이 열 댓살로 돌아가 버린 기분이 종종 들었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자신의 뒤를 따르는 황녀의 마음을 향아가 모를리 없었지만,

 

이 모든일이 황녀로서 피해갈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 화내시지 마십시오. 분명 두분 중 하나는 황녀님 마음에 들것입니다."

 

 


"흥, 둘다 마음에 안들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럼, 안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뭐..뭐라구요?"

 

 


"하기 싫으면 안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다만, 한 번 쯤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궁은 손을 들어 황녀의 얼굴을 살며시 쓸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기회는 한번 주셔야지요."

 

  

 


상궁의 말에 황녀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휙-하고 청나라 황제가 기다리는 곳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향아는 한숨을 푹-하고 쉬고 뒤돌아 걸어갔다.

 

  

  

  

  

  

  

  

  

  

  

  

  

  

  

*** 

  

  

  

 


향긋한 국화향이 차를 따르는 황녀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황녀가 잔을 내밀자 청황제는 잔을 받아 차를 음미하였다. 
한동안 둘 사이엔 국화향만이 맴돌았고, 옷자락이 스치를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황녀는 청혼을 하러왔으면서 아무말이 없는 청황제의 태도에 입술을 비죽였다. 
그리곤 슬쩍 청황제의 외견을 훑었다.

 

 


단정한 검은 머리와 하얀 피부에 붉은입술 어째 여인같은 외모에, 황제가 맞는지 싶었다.

 

 

청국이 오랜동안 태평성대였다 하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닌듯 
전쟁터에서 살을 태운 흔적이 없었다. 
손가락도 대나무처럼 죽 뻗은것이 검보다는 붓을 쥘 손이었다.

 

  

 


"제 이름은 아시는지요."

 

  

 


이리저리 곁눈질로 청황제를 관찰하던 황녀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화들짝 고개를 들었고, 처음으로 그의 눈과 마주하였다. 
황녀는 청(淸)의 이름이 괜한게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마주한 눈은 맑고 깊었으며 그 빛은 부드러웠다.

 

 


황녀가 빤히 눈을 맞추자 청황제의 귀가 발개지나 싶더니 뺨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큰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헛기침을 하는 모양이 
꼭 제 어린 스승인 이 선생 같아 푸흣-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흠...제 이름은 도 경수라 합니다."

 

 


"O OO이라 합니다."

 

 


"저..."

 

 


"말씀 하시지요."

 

 


"제가...말주변이 뛰어난것도, 여인의 맘을 잘 헤아릴 줄 아는것도 아니나,
청의 국모가 되어주신다면 황녀님의 말을 귀담아 들을것이며, 
행동과 표정 하나 소홀이 넘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른 여인은 곁눈질로도 보지 않을것이고..."

 

 


"저...송구하오나 잠시만..."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달달달 언변을 하는것 마냥 토해내는 경수의 말에 
OO은 무슨일인지 알 수 없어 그를 제지하였다. 
그리곤 자신의 제지에 입울 딱 다물고 몸을 굳히는 황제가 귀여워 결국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마치 상소문 하나를 읇는듯한 그의 태도에 자신이 황제라도 된 느낌이었다. 

 

 

OO이 소리내어 웃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경수는 
곧 자신이 얼간이 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깨닫고 같이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계속된 정적에 긴장하던 문지기 나인들은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긴장한 얼굴을 풀며 같이 미소지었다.

 

  

  

  

  

  

  

  

  

  

  

  

  

  

  

*** 

  

  

  

  

첫 만남 후로 둘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었다. 

OO의 작은 정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더운 날이면 계곡으로 놀러가 더위를 식히기도 하였다. 

오늘도 기승을 부리는 더위에 둘은 얼음을 띄운 매실차를 마시며 계곡에서 발을 적시고 돌아는 길이었다. 

문 앞에 닿으니 궁 안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OO은 도착하자 마자 영문도 모르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곱게 단장시켜졌다. 

경대 앞에 멍하니 앉아 누군가 이 상황을 알려주길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이 상궁이 급히 들어와 OO을 안내하여 어디론가 가기시작했다. 

  

 


"이 상궁, 어디가는거에요?"

 

 


"진황제을 만나러 갑니다."

 

 


"진황제?"

 

 


"네, 전갈을 보내어 답신이 올줄 알았지, 황제가 직접 올줄은 몰랐습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일단 보러가셔야 겠습니다."

 

  

 


OO은 짜증스러움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오늘  낮 청황제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약속 했건만 이렇게 일이 틀어질 줄 몰랐다. 

문 앞에 멈춰선 상궁이 길을 비키자 OO은 열린 문 사이로 발을 내딛었다. 

창문가에 서 있던 진황제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황녀는 상상 이상이었다. 

사실 진나라의 영토확장과 청을 견제하기 위해서 맘에 들지 않아도 옆에 둬야 할 사람이었으나, 

그녀의 아름다움에 흡족한 미소가 일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OO에게 진황제는 같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에 다과상이 차려지고, OO은 아무말 없이 차를 우려내 잔에 따랐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찻잔입술을 빙글빙글 돌며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랬다. 

진황제는 그런 OO은 보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마음에 안드시는가 봅니다."

 

 


".....아닙니다."

 

 


"그럼, 이미 마음엔 다른 사람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녀는 짐짓 사람좋은 웃음을 하며 차를 마시는 그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속없는 웃음을 띄며 자신의 생각을 숨기려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청황제와의 혼사가 성사되어 간다는걸 알고 있었을텐데, 

무슨 기대를 하고 자신의 나라까지 발걸음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OO은 결심을 한듯 작게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예,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단호하십니다."

 

 


"연정을 품는것에 우유부단 해서야 되겠습니까."

 

 


"연정이라...벌써 그리 된겁니까. 이거 헛걸음을 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몰랐다는듯 빙긋 웃어대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미 알고 발걸음을 했을 터인데,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 그저 웃기만 하는 진황제에게 

한바탕 쏘아붙이고 나가버리고 싶은 맘을 꾸욱 눌러 삼키느라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차피 제게 선택권이 없는건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보셔도 되지 않습니까?"

 

 


"방금 온 손님에게 이리 박하게 대하시는 겁니까?"

 

 


"진국의 손님이라면 더욱 황녀인 저와 이리 시간을 보내실게 아니라 외교관을 불러드림이 어떠실런지요?

 

그들이라면 손님께서 만족할만한 시간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것입니다." 

 


"제가 설마 연국에 여인이나 취하러 왔겠습니까? 황녀."

 

 


"황후를 얻지 못할 터이니 그것으로나마 위로가 필요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전 여기서 제 황후를 얻어갈 것입니다."

 

  

 


OO은 그의 억지같은 말에 이마살을 찌뿌렸다.

 

자신이 거절을 했을 터인데도 굽히지 않는 모습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그런 황녀를 지긋이 응시하던 진황제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그녀 앞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진귀한 보석들로 장식된 옥가락지가 들어있었다. 

  

 


"진국의 황후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전쟁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암호닉 

워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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