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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달ll조회 1705l 4
스토킹 트리거 조심 또 조심 하라고 햇쨘아

*

사람은 당황하면 원래 알던 것도 헷갈리기 마련이다. 대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일단 네가 너의 존재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라. - 를 어깨 한번 으쓱하는 것으로 전했다. 쿵하면 짝, 개떡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제발. 동생이 입모양으로 뭐 뭐 하다가 제노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둘이 아는 사이야?"

제노가 나와 동생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눈을 또옹그랗게 뜨고서.

"둘도 아는 사이야?"

그리고 체념한 내가 정리했다.

"우리 다 아는 사이야. 넌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냐."

"나 친구들이랑 놀다가 헤어졌는데 차 끊기고 돈은 없고 누나 집은 가깝고. 아 맞다 제노 너도 여기 살지! 근데 둘은 무슨 사이야?"

머리가 펑 하고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사고회로도 안 돌아가는데 쓸데없이 왜 달려있어.

제노가 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비밀 친구."

미친 대사다. 이러고 엔딩 음악 깔리면 그게 바로 시청률 최고점 찍는 인기 드라마지 뭐긴 뭐야.

그리고 또 해사하게 웃는다. 동생은 벙쪄 있고, 나는 멍청하게 입이나 떡 벌리고 있다. 제노가 남매 사이에서 뭐가 문제냐는 듯이 미소 지으며 서있었다.

"둘이... 같이 살아?"

"잠 오냐? 잠꼬대를 왜 서서 해. 들어가 너는. 나랑 제노랑 할 비밀 얘기가 남아있어."

"제노 만났으니까 제노 집 갈래. 둘이 할 얘기 있으면 빨리 끝내. 나 진짜 졸려."

하고선 멀찍이 가더니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서 핸드폰 게임을 한다. 비밀 친구라는 말에 이렇게 쉽게 납득한다고?저새끼 저렇게 단순해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지.

걱정은 뒤로 하고 우선 급한 불은 껐기에 까치발을 들어 제노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웃기지만 비밀 얘기처럼 보여야 하니까. 제노가 목을 살짝 숙여줬다.

"쟤 내 친동생이야. 쟤가 나에 대해서 하는 말 한 귀로 듣고 흘리면 돼. 잘 자고, 잘 가, 제노야."

입을 떼고 발을 땅에 제대로 딛자 빵끗 웃고 있는 제노 얼굴이 보였다. 어둑한 와중에도 네 미모는 빛나는구나.

이번엔 제노가 내 귓가로 가까이 다가와 느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잘 자요. 내일도 봐요."

닭살이 돋았다. 미안, 음흉하지만 너무 좋아서.

멀리서 거만한 걸음걸이로 걸어 온 동생이 제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얘기 다 끝났냐고 물었다. 습관처럼 동생을 흘겨보다가 제노가 카운터를 너무 오래 비웠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손뼉을 치며 요란스럽게 둘을 편의점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뭐야, 뭐야? 제노 집 이쪽 방향이야?"

"제노 알바 도중에 나왔어! 미쳤네 얼른 가!"

"뭐야? 제노 너 알바 해? 이 새벽에? 야간 알바? 편의점?"

동생이 어깨동무를 한 자세로 펄떡펄떡 뛰었다. 저 스애끼가 우리 애기 어깨 아프게스리. 제노가 고개만 뒤로 돌려 나를 바라봤다. 허리에 뒷짐 진 자세로 손바닥만 펼쳐 살짝 흔들었다. 인사성도 밝지 우리 제노.

야 너 진짜 우리 누나랑 어떻게 아는거야

동네 사람들 다 깨울 작정으로 카랑카랑한 동생놈 목소리가 울렸다. 저거 진짜 아가리 좀 닫아주면 안되나. 자동문이라서 큰일났네. 계속 열려 꼬매고 싶게. 두 사람은 사라져버리고 나도 얼른 들어갔다. 서둘러 잠에 들어야 제노 보러 가지요.

그러나 잠을 설쳤다. 동생놈이 제노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상상하며 괴로워하느라고. 출근해야 하는데 몽롱해서 자꾸 침대 위로 엎어졌다. 그렇게 꾸물대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고, 제노의 퇴근 시간을 넘겼다. 나 기다렸으면 어떡하지. 이건 좀 아닌가. 아침에 제노 얼굴을 못 보고 출근하니 허전은 둘째치고 힘이 안 났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밀쳐지고 밀쳐졌다. 왜냐하면... 우리 애기 굿모닝 인사 못 들었잖아... 그러니까 내가 죽음의 출근길을 못 버티는거야. 동생놈을 한번 찔러볼까. 그랬다가 책잡히면 그건 또 어떻게 감당해. 간밤에 나에 대해 뭐 얘기한 거 없냐고. 화려한 욕기술을 가지고 있다던지, 나이는 사실 서른이라던지.

부정적인 생각 자꾸 하면 안되는데 원하지 않아도 무의식이 그쪽으로 기울었다. 안 좋은 생각은 막아야 돼. 일에 집중해야 하니까.

머리에 힘 주고 겨우 업무를 보는데 띵똥 하고 알림음이 울렸다.

누나 오늘 하루도 화이팅

참고 있었는데 우리 애기가 예쁜 짓 한다.

*

퇴근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을 텐데 편의점으로 출근 도장 찍으러 가는 거 안 피곤하냐고? 당연히 피곤하다. 그런데 나 기다리는 예쁜이가 있잖아. 가면 아닌 척 하면서 반가워하는데 지금 내 몸이 피곤한 게 문제냐.---라고 제 정신은 말합니다...나이 생각은 않고...마음은 어린데 몸은 삐그덕댑니다...

제노랑 같이 있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그만큼 잘 시간이 줄어드니까 낮 시간 동안의 노동 강도를 버티지 못해서 퇴근 할 때쯤이면 기진맥진이었다. 차를 끌고 왔지만 가다가 사람이든 구조물이든 하나는 칠 것 같아서 전철을 탔다.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동안에도 꾸벅꾸벅, 앉아서도 열심히 꾸벅거렸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망정이지. 일에 찌든 몰골로는 갈 수 없어서 집에 들어가서 씻는데 잠깐 침대에 누웠다가 기절했다. 와중에도 알람은 맞추고 잤더라. 의지의 손가락. 새벽 1시에 일어나서 눈곱만 떼고 부랴부랴 시유로 달려갔다.

"어? 제노야! 뭐해?"

"누나! 혹시 저 이거 치우고 있을 동안 잠시만 카운터 좀 봐주실래요?"

문을 활짝 열고 바로 앞에서 제노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뭘 담고 있길래 부르니까 눈을 반짝이며 안을 가리켰다. 정신 없어 보이길래 어어 대답하며 들어갔다. 애기 들어오면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지 생각하며 열린 문으로 보이는 제노 뒷모습만 목 내밀고 쳐다보는데 내 앞으로 아저씨 한 명이 다가왔다. 냄새가 나는 걸 보아하니 술을 걸친 모양이었다. 나랑 눈이 마주치고 나서 위아래로 흘겨보더니 진상의 애티튜드 시동을 걸었다.

"아가씨는 손님이 왔는데 어서오십시오~ 인사도 안 해?"

"네?"

"인사도 안 하냐고! 손님이 왔는데! 에잉, 쯧. 인사 교육을 잘못 받았네. 서비스직이 이러면 돼, 안돼?"

"아 예. 죄송합니다."

"디스."

"네?"

"아 디스! 디스 달라고!"

아니 그럼 디스 한 갑 주세요 라고 말을 하등가요~.~ 개좆같은 화법이네. 라고 똑같이 언성을 높이고 싶었지만 내 무책임한 행동에 피를 보는 건 제노였기 때문에 꾸욱꾸욱 분노를 누르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제발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 염불을 외우고 있는데 돈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가더니 무엇인가를 치우고 있는 제노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분노 조절 고장 위기) 훈계질까지 하는 게 내 두 눈깔에 똑똑히 새겨졌다. 성큼성큼 걸어가서 엉덩이를 발로 냅다 까고는 바로 문을 잡고 죄송한 척 방정을 떨었다.

"어머 어떡해! 정말 죄송합니다. 문 닫으려다가 그만.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해요!"

"에잇 씨발 진짜... 아가씨! 머리라도 다치면 아가씨가 책임 질거야? 이씨발, 재수 없어서 다신 여기 안 온다, 안 와."

"네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침을 뱉고 엉덩이를 털며 절뚝 절뚝 걸어가는 진상개저씨의 뒷모습을 보다가 날 따라 인사하는 제노랑 눈이 마주쳤다. 달랑 달랑 발랄한 종소리라도 날 것 같은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척 들어주더라. 우리 애기, 바라만 봐도 사랑이다. (박진성, 연못의 나라 참조) 들어오면서 대체 뭘 치우고 있었느냐고 물으니까 아까 그 아저씨가 들어오는 문앞에다 토를 해서 치우고 있었단다. 그말에 이미 사라지고 없는 진상놈 뒤를 밟아 통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내가 주먹을 쥐자 제노가 양 손으로 감싸며 괜찮다고 웃었다. 아, 애기랑 자연스럽게 손 잡았네.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깍지도 꼈으면서 뭐가 부끄럽다고 더웠다.

"저런 진상 자주 만나?"

"아니요. 그렇게 많진 않아요. 대학가에서도 좀 들어와야 하는 빌라 단지라 그런가. 괜찮아요~"

"누나가 괜찮지 않아... 정말 화가 난다."

"누나 아까 진짜 멋졌어요. 완전 짱. 깜짝 놀랐어요."

이번엔 쌍엄지를 들며 비행기를 띄워준다.

뿌듯함에 광대를 씰룩이며 한 술 더 떠서 잘난척 좀 했다.

"그지? 좀 멋있긴 하지. 반하겠지?"

"네. 넘어갈 뻔."

"아...넘어오지~으하하."

내가, 넘어가는 게 뭐야,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질 뻔 했다.

우리 애기는 말을 좀 살살 해야 돼. 훅 들어오는 것도 브레이크 좀 밟아주면서. 누나 놀란단 말이지. 농튼 사이라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쉽게 깨기 어려운 정적이 생길 뻔 했다. 제노가 같이 웃다가 이렇게 놀면 안된다고 씨씨티비를 가리키며 힐끔 거렸다.

문을 향해 몸을 똑바로 돌리고 서 있길래 똑같이 따라 서니까 팔만 살짝 벌려 툭툭 쳐왔다.

그렇게 팔꿈치로 서로를 치면서 놀고 있는데 딸랑- 문을 열고 단체 손님이 우르르 들어와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묻힐 정도로 복작거렸다. 허씌허씌 거리며 초코우유 있는 쪽에 비좁게 몰려 있는데 개중 한 명이 우리 앞에 쭈뼛이 서더니 담배 매대를 눈으로 훑었다.

"마쎄 두 갑이요."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 안 갖고 나왔는데. 저희 집이 요 앞이거든요. 야 너네 민증 없냐?"

오호라. 말투하며 행동이 이제 막 성인 된 애들인데 얘는 빠른 년생 같다. 단호하게 없으면 판매할 수 없다고 말하자 순순히 자기 친구들과 음료만 계산하고 나갔다. 아씨 안 먹히네- 라는 말 뒤로 비웃음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며 제노를 봤다.

"제노야. 성인 같아 보인다고 민증 검사 대충 하고 그러면 안돼. 무조건 해야 돼."

"네."

"너 솔직히 네가 보고 거르잖아."

물론 나는 제노가 민증 검사 안 해서 스물 여섯이라고 무사히 숨길 수 있었지만. 당당하게 말해놓고 찔리긴 한다.

"넵. 앞으론 무조건 검사 할게요. 누나 퇴근하고 술 사갈 때도 할 거예요. "

"에이. 나는 봐주자. 우리 친구잖아."

품이 남아 헐렁한 제노의 팔소매를 잡고 샐샐거리니까 상체를 나한테 기대더니 말없이 쳐다봤다. 기가 죽어서 제노의 시선을 피해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밀어내니까 힘주어 버틴다.

"아닌데. 친구 아닌데."

어떻게 받아쳐야 어색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와이퍼 켜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응? 제노야, 누나 힘들다."

"...친구 아니고 누나 동생이죠~"

간이고 쓸개고 심장이고 콩팥이고 나발이고 다 떨어트린다, 떨어트려.

*

생그레 웃기만 해서 잘 몰랐는데 날 기다리며 따분한 시간을 보내는 제노는 눈에 띄는 잘생기고 차가운 인상의 미인이었다. 순둥이 우리 애기한테 저런 날렵한 면모도 있구나 감탄하다가 더 늦기 전에 나타나야겠다 싶어 기둥 밖으로 튀어나갔다. 편의점 아니고, 집 주변 아니고 무려 영화관에서 만나는 제노였다. 우리 애기. 다른 장소에서 만난다고 머리랑 옷에 힘준 거 봐. 키키 귀엽고 존나 멋있어 내꺼야 눈물 즙 주르륵. 괜찮다고 했는데도 제노는 영화표를 자기가 샀다. 누나 돈 잘 번다니까 정말. 고집부리는 것도 깜찍해서는. 그래서 들키지 않게 얼굴을 가려가며 줄을 서서 팝콘 세트를 샀다. 제노는 아직 보이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손목에 찬 시계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나 지각 한 거 아니다. 살금 살금 다가가서 뒤에서 덮치려고 했는데 그전에 누가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와서 팝콘을 치고 지나갔다. 눈앞에서 이미 다 튀긴 팝콘이 또 터지고...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그 소리에 제노가 뒤돌아보고...이게 아닌데...

죄송하다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빨개진 얼굴을 숙이며 열심히 떨어진 팝콘이랑 쏟은 콜라를 수습하는데 직원 분이 다가와서 치워주겠다고 하셨다. 지금 모든 이목이 나를 향한 것 같은데. 너무 쪽팔리네. 팝콘도 콜라도 버리고 서프라이즈도 날려서 시무룩해져 있는데 뒤돌아 나를 보며 놀라던 조금 전의 제노 표정이 자꾸 생각나 창피해서 애기 얼굴을 못 보겠다. 제노가 다정한 손길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해주다가 멈추더니 뺨을 감싸 올렸다.

"부끄럽다고 우는 거 아니죠?"

"아우, 안울어어."

"안 울어요~? 아구 어떡해. 괜찮아요, 괜찮아."

한참 어린 애기한테 애 취급 받으니 기분이 묘해졌다.영화관 조명이 노랗고 어두침침해서 다행이야. 얼굴이 노랗게만 보일거 아니야. 손부채질을 하면서 입바람을 부니까 다시 사러 가자고 손을 잡고 끌었다. 우리 애기 오늘따라 스킨쉽이...나이스야.

"제노 멋 좀 부렸네?"

"뭔가 놀러 나오니까 설레서..."

"아 귀여워... 제노야 이렇게 귀여워서 어떡해."

"누나 좋은거죠 뭐."

"에."

하 미치겠네.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싶다. 오늘 처음 만나지만 앞 뒤 옆 사람 치면서 제 기분 아시냐고 묻고 다니고 싶다.

천재 플러팅을 들은 후로 넋을 놔서 주문도 횡설수설하며 겨우 팝콘 세트를 다시 샀다.

상영관 앞 의자에 앉아 있는데 떽떽 거리는 남자 목소리가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들렸다. 아직 보지 않았는데 덩치 있는 놈이 지 애인한테 되도않는 애교 부리는 모습이 선명해서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제노가 옆에서 오물거리다가 팝콘 하나를 입에 갖다대며 갸웃거렸다.

Q. 근데 그 애교남이 혈육일 때 좆같음의 정도를 맞춰보시오. (423점)

"뭐야? 둘이 또?"

아니...서울에 영화관이 몇 갠데 많고 많은 영화관 중에 여길 오냐고. 피가 당기냐고. 본능적으로 앗 여기 내 혈육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게 있냐고오. 도움도 안되는 게.

끓어오르는 짜증에 이마를 탁 치는데 제노가 나긋하게 안녕~ 하고 인사했다. 동생 여자친구가 제노 안녕 하는 걸 보니 아는 사이인 듯 했다.

"너 씨씨야? 이제 막 3월 말인데 벌써 씨씨해?"

"누나는 가만히 있어봐. 제노야 이거 비밀로 해줘야 한다? 애들한테 말하면 안돼 우리 둘이."

"응."

"그나저나 둘이 이 정도로 친해? 엄청난 비밀 친구네."

내 동생의 좋은 점은 무식함이다. 너의 무식하고 단순한 두뇌 정말 사랑해. 그것만. 제노가 주제 노선을 바꾸었다. 오랫동안 보고 있기 뻘쭘하니 서로 모르는 척 하자며 떨어져 앉아있다가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쟤랑 무슨 얘기 했어?"

광고가 나오는 동안 이번 달 최고로 기막힌 일 중 하나에 꼽히는 집 앞에서의 만남이 떠올라 제노를 찔러봤다.

"집에 먼저 보내고 일 하고 오니까 자고 있어서 그냥 같이 자다가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갔어요. 별 얘기 안 했는데. 왜요?"

"아니. 뭐. 저 자식이 이상한 말 했을까봐. 됐어~"

"이상한 말, 어떤 거요?"

"아니야! 됐어 됐어. 우리 제노는 몰라도 돼."

"자꾸 애취급 해."

"에구구. 그래서 똑땅해요?"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던 새끼 강아지가 힘을 풀고는 사르르 웃었다. 암만 봐도 루브르에 전화해야 할 눈웃음이란 말이야. 국제 통화료 노 신경. 당신네 작품이 여기 있는 것 같은데요. 주접을 떨다가 입꼬리까지 바르르 떨려서 참고 있는데 제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어디지 하고 따라 내려가는데,

"어린 애로만 안 봤으면 좋겠다."

눈길이 가 닿은 입술을 가만 못 두겠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영화관은 빠질 수 없는 데이트 장소가 맞는가보다. 110분 간 영화 말고 제노만 봤다. 옆에 있는 제노 말고. 순간 순간의 제노가 스크린 속 영상보다 더 선명하게 자리매김했다.

"재밌다, 그지?"

"네. 이런 영화 만드는 게 꿈이에요. 뭔가 속이 꽉 채워지는? 상영관에서 나올 때 잘 봤다고 만족할 수 있는 거요."

"아! 우리 제노 영화과지! 할 수 있어. 이제노 감독님 작품 빨리 보고 싶네요."

"열심히 해볼게요."

"아자! 이제...집 갈까? 배 고프니?"

"아뇨. 팝콘 먹어서 배는 안 고픈데... 집 가기는 아쉬우니까 코노?"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큰일난댔지? 빠졌어, 빠졌어. 근데 우리 제노 이렇게 예쁘게 입고 왔는게 고작 코노 가는 건 좀 아쉽다. 좀 걸을까? 여기 근처 볼 거 많잖아."

"오, 좋은 거 같아요."

원래는 좀 걷다가 집 가려고 했는데 빙구비어가 눈에 밟혀서 그만 들어와버렸다. 제가 가자고는 안 했습니다. 저는 단지 어! 어! 빙구비어네! 라고만 했을 뿐입니다.

술이랑 안주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얘기를 나누었는데 아까 영화관에서 느꼈던 야리꾸리한 감정 때문인지 말이 끊겼다가 정적 후 이어지는 식이었다.

"근데 내 동생이랑은 어쩌다 친구가 된 거야?"

"음, 입학식 날 옆자리였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게 됐어요."

"어휴, 걔 때문에 제노 네가 고생이 많겠다. 내가 사과할게."

"아이, 아니에요. "

"제노 술은 뭐 좋아해? 참고로 누나 소맥 진짜 잘 말아."

"저 사실 술 오늘 처음 마셔봐요. 학교에서는 딱히 강요 안 해서 물 마시고 콜라 마셨거든요."

"헐. 진짜? 이런 순딩이! 어떡해. 그럼 조금만 마셔봐."

그렇게 해서 제노 취향의 술 찾기가 시작되었다.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 소맥 한 잔, 막걸리 한 잔 마시더니 과학실 알코올 램프 째로 들이부은 것 같다며 시음한다고 촉촉해진 젤리 입술로 쭝쭝거렸다.

"오케 오케~ 그럼 제노는 사이다나 콜라 마셔. 뭐 시킬까?"

"아니요. 그냥 있는 거 조금씩 홀짝거릴게요."

애처럼 보이는 거 싫다고 꿋꿋하게 버티는 것마저 귀엽게 보인다는 걸 또 입밖으로 꺼내면 토라지겠지? 결국 청포도 맥주로 타협을 봤다. 이건 좀 괜찮은지 음~ 하고 눈을 반짝 뜨며 마시길래 참지 못하고 오구오구 거렸더니 뾰로통해졌다.

"누나 얼굴 빨개졌어요."

"진짜? 어우 그만 마셔야겠다. 배 터질 것 같네. 제노는?"

"저도요."

"그럼 이제 집 갈까? 가자 가자~"

"누나 취한 거 아니죠?"

제노랑 팔짱을 끼고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데 취한 거 아니냐고 물어왔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기분 딱 좋은 정도로만 마셨다고 말했더니 그래요- 하며고 만다. 안 믿는 눈치다.

"오랜만에 쉬는 날 생겨서 잠 푹자고~ 제노도 똑같이 쉬는 날이고~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집도 같이 가고~ 하니까 기분 좋아서 그래."

환승까지 해야 해서 가려면 삼십 분이 조금 넘었다. 갈아타야 할 때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졸기 시작했는데 눈 떠보니 어느 순간 제노 어깨에 기대서 자고 있었다. 쩝쩝거리며 머리를 떼고 일어나 아직 내릴 때 안됐냐고 물으니까 사실 지났다고 했다.

"조금 더 걸리지만 이다음에 내리면 돼요."

"깨우지!"

"죄송해요."

"아니야.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미안해서 그래. 어깨 저렸지? 언제 네 어깨로 가서 자고 있었데."

콩콩 두들겨주니까 괜찮다고 손을 젓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어깨를 돌리는데 두둑 두둑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민망해서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제노에게는 미안하지만 웃음이 터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제노야, 오늘 너무 즐거웠어. 누나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

"그러면 저도 누나 바래다 줄게요."

"엥. 그게 뭐야."

"우리 집 찍고 누나 집 가기."

"아니야. 괜찮아."

"안돼요. 내가 걱정돼요."

지앤스를 지나 제노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걸음을 서서히 멈추었다. 제노가 한 발 앞서서 딛다가 멈춰서 나를 돌아봤다.

"우리 애기는 말을 정말. 사람 설레게 잘 하더라. 최고야."

"누나 정말 취했나보다. 우리 집 찍고 가지 말고 그냥 바로 누나 집 가요."

하며 방향을 트는 제노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아니야! 기분 좋은거야. 안 취했어. 나 취하면 네 발 짐승 되거든. 지금 두 발이야. 괜찮아. "

"... 그러지 말고,"

"어허!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가자가자 쭈쭈쭈."

제노 등을 토닥이며 다시 움직였다. 제노가 가다가 잘못 딛어서 삐끗거리는 나를 보고는 안되겠다며 손을 잡았다.

"제노 집 도착~ 이제 들어가."

"아니죠. 이제 누나 집 가야죠."

"오늘따라 강경애기모드네. 알겠어. 우리 제노 하자는 거 다 한다."

애기라는 말 싫어하는데 또 입이 주책이었다. 미안하다고 손으로 입을 찰싹찰싹 치니 하지 말라고 말렸다. 제노 집 찍고 우리 집 가면 그나마 오래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금방 도착해버렸다.

내가 왔다는 걸 알고 그러는건지 한동안 잠잠했던 핸드폰 진동이 비좁은 가방 속에서 징징 울었다.

"벌써 다 왔네. 이제 진짜 바래다 줄게. 가자, 애기야! 아이쿠... 입이 문제."

갈수록 취하나봐. 분명 빙구비어에서 막 나왔을 땐 멀쩡하게 꺼낼 말 삼킬 말 구분 잘 했었는데. 무안해서 웃었다. 평소 같았으면 따라 히히 장단 맞춰줬을 제노가 어쩐지 미묘한 표정으로 말끄러미 바라봤다.

핸드폰은 계속 울었다. 짜증이 나서 아예 꺼버리려고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제노가 손목을 약하게 붙잡아 올렸다.

"누나. 누나, 나 어때요."

"응? 음...좋지. 알잖아. 우리 제노 엄청 좋아하는 거."

"나 누나 좋아해요."

태어나 지금까지 연애 딱 한 번 해봤지만 그 한 번에 앞으로 살아가며 할 사랑은 다 소비한 것 같아서 안 하려고 마음 먹었다. 다 부질없다. 나는 나랑 살련다. 외로움이야 밀려왔다가도 언젠가는 가시니까. 그런 생각으로 이때까지 혼자 지내왔는데 요즘 어리고 예쁜 애기가 눈에도 들어오고 마음에도 들어오려고 낑낑거린...염병할 진동, 감정 잡고 있는데 자꾸 전화 거네. 에이씨, 짜증을 내며 결국은 폰을 꺼냈다. 봐봐. 번호 저장 안 되어 있는 거잖아. 거지발싸개 새끼 맞잖아. 바닥에 확 내팽개치려고 꺼냈는데 제노가 가져가더니 전원을 끄고는 자기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고 있으니까 한없이 순진해 보이는 눈을 맞추며 고개를 갸웃이 기울인다.

"누나, 내 첫사랑 가져요."

스무 살의 처음을, 제가 가져도 될까요.

-

후 ㅎㅎㅎ 가고 싶었는데 결국 개인 사정으로 드콘을 가지 못하였군요. 애기야... 누나 운다...

++앗착차 우리 로맨스 장인 밀레니엄 보이는 다음이 마지막 편 ㅠㅠㅠㅠ 끝날 것 같아용 애초에 길게 쓰려던 게 아니었기 때무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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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어흑...제노 할미가 사랑한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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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71.163
작가님 ,, 관 좀 준비해줍쇼 ,, 전 여기서 죽슴돠 ,,,
•••답글
독자2
당연히 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어흑ㅠㅠㅠ양심없는 할미팬....ㅠㅠㅠㅠ사랑한다 이제노ㅠㅠㅠ
•••답글
독자3
아악,.아악,..스토킹 이래서 제노가 하는줄 알고 조마조마 했는데ㅣ 그냥 로맨스 잖아여 아아악 솔직히 네살 연상 모쏠 만나봤는데 별로였는데 제노면 제노 첫사랑 가져갈래요...노잼이여도 누나 마음 쿵쾅쿵쾅 하게 해주잖아요ㅠㅜ 아악아악저 정말...죽어여ㅜㅜㅜ
•••답글
독자4
첫사랑 가지래 하.... 너무 귀엽자나여..
가져야지 안가지면 내가 미친거지유ㅠㅠㅠ

•••답글
비회원48.85
애기야,,, 사랑해 이제노,,, 내가 정말 너무 사랑한다,,
•••답글
독자5
흐아아아진짜 설렘의 끝입니다ㅜㅠㅠㅠㅠㅠ 자까니뷰ㅠㅠㅠㅠ 당연히 가져야지!ㅠㅠㅠㅠ
•••답글
독자6
아미친ㅠㅜㅜㅜㅜㅜㅜㅜㅠㅜㅜㅜㅜㅜㅜ자까님ㅠㅜㅜㅜㅜㅜㅜㅜ제노야ㅠㅜㅠ누나가 그 첫사랑 가져갈게 미안 염치없어서 퓨ㅠㅜㅠㅜㅠㅜ근데 니가 좋은걸 어째ㅠㅜㅜㅜㅜㅜㅠㅜㅜㅠ
•••답글
비회원129.78
엉엉 문달님 첫사랑 가져요 라니요ㅜㅜㅜㅜ어떡해 설레서 디져불겄어요ㅜㅡㅜㅜㅠ
•••답글
비회원202.6
작가님...대사 ㅁ-쳤ㄷ...
•••답글
독자7
대사 너무 예뻐서 할미팬 눈물로 강 하나 파버렸습니다,,,
•••답글
독자8
와 진쨔,,,,,애기 제노 대박적,,저 보면서 계속 소리질렀자나여,,,,,,작가님 필력 넘 대박이구,,제노야 사랑해ㅠ
•••답글
독자9
저는 죽었어요..... 제노.... 나랑 동갑인데.... 하루망...아 진짜 너무 설렌다...괘조아....
•••답글
독자10
라나입니다 저 지금 관 짰어요 이미 그러니까 다음 마지막 편에 몽땅 다 부어주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냈으니까요 안심하시고 마음껏 마음껏 넣어주세요
•••답글
문달
오호라~ 라나님 오랜만임미당 8ㅁ8 죽어라 써야겠네여 그럼 ㅎㅎㅎㅎㅎ 후하 과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인가
•••
독자11
제노가 누나 누나 이러면 제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요... 제노 최고ㅠㅠㅠㅠㅠ작가님 최고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
독자12
제노야......양싱 뭐야 난 없어 ㅠㅠㅠㅠ 그런거ㅠㅜㅠㅜㅠㅜ
•••답글
독자13
누나.. 내 첫사랑 가져요라니ㅠㅠㅠㅠㅠㅠ
내가 가질게 그첫사라유ㅠㅠㅠㅠㅠㅠ 내꺼하자ㅠㅠㅠㅠ

•••답글
독자14
작가님 ㅠㅠㅠㅠ 이 글 보면서 진짜 나이 들킬까봐 너무 조마조마하면서 봤어요 ㅠㅠㅠㅠㅠㅠ 마지막에 ㅠㅠㅠ 제노야 ㅠㅠㅠㅠㅠ 첫사랑을... 내가 가져도 될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
독자15
제가 감히... 그대의 첫사랑을 가져도 되는건가요...? 제가요...? 아니 제가 준비가.. 아핳 아니.. 진짜ㅠㅠㅠ 로멘스장인 우리 밀레니엄베이비ㅠㅠㅠㅠ
•••답글
비회원123.17
아이고 제노야...서른 할미가 너를 가져도 되겄냐...
•••답글
독자16
헐랭 젠오야,,, 누나 죄짓는 기분이다,,,,,오마이갓드 ㅠㅠㅠㅠ
•••답글
독자17
아 제노야ㅠㅠㅠㅠ 진짜 누나가 사랑해ㅠㅠㅠ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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