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비로소 행복을
“하늘을 봐”
“…….”
“맑고 높지? 구름 한 점 없어. 아주 파랗고 넓지.”
“…….”
“왜 아무런 말이 없어? 하늘을 보라고 했잖아. 자, 어서 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 봐. 저 평화롭고 아름다운 하늘을 봐. 너무 새파란 하늘을 봐. 구름조차도 사라진 저 하늘을 봐!”
폐를 찢는 것 같은 처절한 외침이었다. 나는 눈앞의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내 배를 찔렀던 칼이, 내 피로 물든 얇고 긴 칼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넌 항상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나를 보지. 웃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비웃지도 않아. 그냥 그렇게 나를 봐. 나를 보지 말고 하늘을 봐. 한번만 내 말을 들어봐. 고개를 들어!”
나는 항상 그렇듯 그를 바라본다. 그는 화를 내고 있었고 필요 이상의 분노에 칼을 쥔 손을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하늘을 바라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눈앞이 어지럽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엔 하늘이 너무 푸르다는 것을, 나는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분노가 아주 비슷한 체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거야. 그런 표정 짓지 마. 날 보지 말고 하늘을 보라고!”
측은한 사람. 그는 참 불쌍했다. 전에도, 지금도,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이제 나는 죽겠군. 너는 이곳에 남을 거고. 가엾어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먼저 행복해져서 미안하군. 죽음을 행복이라고 부르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는데.”
“…….”
이제는 그가 아무 말도 없었다. 다시 본 그는 금방이라도 울 듯 한 표정이었다.
“하늘을 보라고? 눈부시게 푸를 저 하늘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라고?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고 너는 지금 내 앞에서 울고 있는데 하늘을 보라고? 너는 하늘을 보며 바닥까지 내려앉는 슬픔을 느끼고 있잖아. 내가 하늘을 본다면 그와 비슷한 슬픔을 느끼겠지. 나는 죽는 중이야. 비로소 행복해지는 중이지. 더 이상의 슬픔을 느끼지 않겠어. 지금 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괴로우니까”
점점 숨이 가빠져왔다. 칼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웃음이 나왔다.
“하늘. 저 맑은 하늘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아마도, 그와 내가 아직 어른이 되기 전 함께 본 하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 후에는 하늘은 보면 그가 생각나서, 미칠 듯 괴로워져서 올려다보지 못했었다.
“한 번도 이런 결말을 원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죽음이 바로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정말로 나는 지금 행복한가. 사랑하는 친구 손에 죽어 이제 다시는 그에게 칼을 거누지 않아도 된 지금 나는 정말로 행복한가. 더 이상의 생각은 부질없었다. 눈이 감기고 몸에 힘이 모두 풀어져 쓰러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시 눈을 뜨려고 했다. 갑자기 하늘이 보고 싶어진 탓이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이지 아닌가. 하지만 감긴 눈은 다시 떠지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가 칼을 놓치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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