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힘든 이 밤은,
“눌러붙는데.”
“… 알아.”
애써 그 향을 코에서, 머리에서 밀어내며 멈춰버린 손으로 다시금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애꿎은 책을 집어들며 배열된 글자들을 씹어넘기려 두 눈을 홉떴다. 오른쪽으로 저으라더니 순 개소리다. 그단새에 뻑뻑해져버린 액체를 휘젓는 내 팔이 가련하게만 느껴졌다. 가뜩이나 선천적인 팔자도 가련해죽겠는데, 그 위에 민트 초콜릿 향이 얹어지면서 내 팔자는 더 가련해질 것이 분명했다. 저으면 저을 수록 강하게만 느껴지는 그 향은 쓸데도 없이 달콤하기만 했다. 처음에 맡았던 그의 향은 맵고 얼얼한 민트향이 강했다면. 아모텐시아가 뿜어내는 그의 향은 초콜릿의 향이 배가 되어있었다. 어지러울 만큼 치고들어오는 향기에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민트 초콜릿이 간절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그 향의 주인이 간절해지는 것일수도.
“이제 반대편, 이름아.”
“….”
김정우의 손이 주걱을 쥐고 있던 내 손 위에 겹쳐올려지더니 함께 주걱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로몬을 그가 풀었을 리 없는데도. 그렇지 않아도 강한 그 향이 더 강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아 저절로 입 안에 숨이 고였다. 맞닿은 손의 열기가 그대로 손바닥으로 옮겨가 땀이 배어나왔다. 미끌거리는 손바닥에 주걱을 놓으려고 하면 겹쳐진 그의 손에는 힘이 더더욱 들어갔다. 빌어먹게도, 그 맞붙은 손과 손이 뭐라고, 온 몸은 화끈거리며 달아올라왔다. 그의 손아귀 아래에 붙들린 손부터, 그의 숨결이 스미는 목덜미까지. 어느 하나 달아오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안간힘을 써가면서 히트 사이클을, 그 무더운 여름을 미뤘는데. 방파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더워? 아니면 너 열나, 지금.”
그의 손이 멀어졌다. 그 손은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내 뒷목을 가볍게 훔쳐내었다. 여름이 찾아들어버린 몸은 잠재우기 어렵다. 걱정스런 말투로 실려오는 질문에 괜찮다는 손짓을 해가며 주걱을 움직였다. 머지 않아 휘젓기를 멈추라는 슬러그혼 교수님의 목소리가 온갖 연기로 뒤엉켜 뿌옇게만 보이는 교실을 웅웅 울렸다. 냄비는 놔두고 가라며,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다며 한 뼘의 톤을 끌어올리는 목소리를 귓등에 얹은 채 누구보다 빠르게 교실을 벗어났다. 앞으로, 앞으로. 다잡지도 못하는 발걸음은 열을 흩뿌리며 앞으로 향했다. 김정우에게 인사 나부랭이를 할 시간은 없었다. 불이 붙은 듯 달아오르는 몸을 잠재울 시간만이 필요했으니까.
“…성이름!”
휭하니 남겨진 그는 내 이름을 불렀다. 호명의 목소리가 뒤를 울렸다. 그리고 난 대답도 하질 못했다. 뒤돌아 그를 덮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빠르게 기숙사 휴게실으로 들어온 나는 처방이랍시고 억제제 두 알을 물도 없이 삼켜냈다. 억눌렀던 페로몬을 흘리고 온 건지는 알 겨를이 없었다. 들쑥날쑥한 숨을 다잡으며 저 아래로, 저 심연으로 열병을 밀어넣었다. 여름을, 그 무더위를, 차디찬 바다 아래로, 그렇게 밀어넣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으면서. 눈에는 그 말간 얼굴이 동동 떠다니는데도, 그 다채로운 색깔의 머리카락이 망막 위에 그려지는 데도, 그렇게 그 무더위를, 그 여름을. 애써 씻어냈다. 그 노력도, 물론 가련했다. 그래서 그런가 눈물이 비어져 나와 발치에 툭툭 빗방울마냥 떨어졌다. 내 세상은 가련한 것들 천지였다. 내 팔자도, 내 노력도.
*
노력이 무색하게 열병은 열대야로 이어졌다. 그 열대야의 하늘에 띄워진 꿈들은 하나같이 낯간지럽다 못해 낯뜨거웠다. 그 탓에 달뜬 숨을 뱉으며 밤 중에 눈을 뜨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면서도 낮에는 뻔뻔하게 철판을 깔고 다녔다. 그 뻔뻔한 낯짝으로 둔갑을 해놓고선 김정우는 귀신같이 피해다녔다. 그냥 귀신도 아니고 김정우 한정 귀신. 그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열흘이 되었다. 안간힘을 쓰면서 피해놓고 꿈은 열흘 중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꿈을 꾸었다. 후텁진 숨으로 가득한, 여름은 내 모든 것을 잠식하려 들었다. 그 여름이 열병이 되고, 또 열병은 열대야로 이어졌다. 그 일련의 과정에 써붙인 이름은 김정우 세글자였다.
“…….”
“…….”
그리 가열차게 피해다녀놓고 내가 자초한 결과에는 웃질 못했다.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눈동자만 재빠르게 옆으로 굴려버리는 김정우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먼저 피한거야, 이게 맞는거야. 가당치가 않잖아, 나는 너한테. 합리화를 하면서도 기분은 꿀꿀했다. 꼭 이럴 때만 내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성 오메가로, 혼혈으로 태어난 가련하디 가련한 내 처지를.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너한테 그렇게 못다가가는거야. 합리화도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합리화는 처음이었다. 내가 해놓고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건데도 꼭 이럴 때만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밤은 온통 너로 데워지고 덥혀지는데. 내 낮에는 보란 듯이 너를 쏙 빼버려놓고서. 그 수업 이후로 민트 초콜릿 향은 더이상 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어느 꿈에서도. 맡고 싶은데 맡아지지가 않았다. 네가 풀지 않은 탓일까, 내가 피한 탓일까.
단순한 호기심이, 그에 대한 흥미가, 호감에서 기인한 것이란 걸 알아챘어야했는데. 다가오는 너를 피해 돌아가야하는 것이 맞았는데 내가 어리석었다. 그런데 있잖아, 이것도 다 핑계고 변명이고 모든게 다 엉망진창이야, 정우야. 너를 피하면서도 네가 나를 피하는 행동에 서운해지고 미련이 남는 것도 전부 다. 어지러운 것 투성이야.
‘이거 너 주려고.’
‘버리면 안돼! 나중에 봐!’
어렵게 구한 민트 초콜릿은 끈적히도 입 안을 메웠다. 덩달아 너의 모습들도. 여즉 선연한 네 머리칼들도. 내 망막을 메웠다. 메우다 못해 흘러 넘쳤다.
‘이제 반대편, 이름아.’
네가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가면서도,
‘더워?’
내 밤은 한없이 더워
‘아니면 너 열나, 지금.’
그 열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좋아해, 정우야. 좋아해서 미안해. 비겁한 한 마디를, 입에 욱여넣은 민트 초콜릿 속에 숨겨 넣었다.
*
언제까지 피해다닐 건지 성이름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때, 아모텐시아를 만들었을 때. 정우는 기억한다. 아모텐시아에서 맡아지던 미치도록 달콤하던 그 향을. 그리고 그 여린 살결 위에 어른거리던 그 코코넛 오일 향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제 페로몬을 흘린 것이었다. 그걸 우성 알파인 정우가 모를 리는 없었다. 우성 오메가의 향은 기가 막히게 파악했으니까. 느끼려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냄새들이었다.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 그 본능에서 기인한 감각은 이름이의 향까지도 단박에 알아챘다. 거기에다 살결에 맺히던 땀방울까지 보탠다면 그녀의 히트 사이클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성이름!’
애써 모른 척 하면서도 갈무리 하지 못한 손을 뻗어 그녀의 뒷덜미를 훔쳤다. 그 손길에 잘게 떨리는 어깨도 정우는 보았다. 그렇기에 빠르게 교실을 벗어나는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흔한 알파들이라면 페로몬을 맡는 순간 그 살결을 입 안 가득 머금었겠지만 정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저에겐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했다.
좋아하니까.
그녀는, 그로 하여금 단순한 욕정의 대상이 아니었으니. 그러니 그런 욕망이 생기더라도 그는 있는 힘껏 억눌러야했다. 한낱 다섯 글자의 배열에 지나지 않은 그 이유로. 좋아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치밀어오르는 충동을, 몸을 섞고 싶은 욕망을, 그녀에 대한 갈망을 집어삼켰다. 체를 할 것 같아도 그는 참았다. 혹여나 그녀를 마주한다면 저번에 스니치를 쥐어줬던 때처럼, 입술을 파묻기보단 겹쳐올린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욕망을 채웠던 때처럼. 늘 그랬듯이, 언제나. 모든 억누름의 이유는 그녀였고 그녀에 수반되는 이유 하나였다. 그런데 이름이는 저를 피했다. 그때 이후로, 계속. 어렴풋한 이유 한 조각이라도 남겨주지 않은 채. 괜시리 미워져 저도 그녀를 피했다지만 이제는 무리였다.
“… 이름아.”
닿지도 못할 이름은 아무도 없는 복도 위를 떠돌았다. 찰나였지만 진득히 배어버린 그녀의 향기를 되새기며 정우는 또 닿지 못할 말을 중얼거린다.
“나 그만 피해, 제발.”
*
내 여름은 한층 더 무거워지고 무더워졌다. 하루의 시작에는 억제제를 미지근한 물과 함께 밀어넣었고 하루의 끝에는 억제제로 감당이 안되는 열들을 풀어놓았다. 그 열들을 풀어놓으며 김정우를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찾지 않으면 사람들 속에 파묻혀가는 그를 생각했다. 틈새에 그의 모습을 욱여넣으면서도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의 향을 맡고 싶어하면서도 이제 다 녹아가는 초콜릿으로 그 욕망을 떼웠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더 이상은 새어나가는 페로몬을 억누를 방도가 없었다. 혹시나 한 줌이라도 흘릴까 싶어 식사도 마다하고 기숙사 안에만 틀어박혔다. 그걸 풀어내야한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미련스럽게 그딴 선택을 했다.
“… 너 페로몬 엄청나. 억제제로 해결 안되는거 알면서 왜 계속….”
늦은 밤이 되어 돌아온 룸메이트가 쓴소리를 했다. 좀처럼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잔소리도 감당이 되지 않아 기어코 기숙사를 나섰다. 병동에 가서 조금 더 센 억제제를 처방받으면 이 지긋지긋한 열대야가 끝날까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걸음에 걸음을 더할 수록 열기가 치고 올라와 숨이 막혀왔다. 괜히 나왔어, 괜히.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인걸 염두에 두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몸 상태는 그 걸음을 지탱하기에 상당히 버거웠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걸음을 딛어나갔다. 더워, 더워. 목이 말라왔다. 온 몸이 홧홧한 느낌에 절로 페로몬이 풀려나갔다. 내 시야도, 열기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
“…….”
그리 가열차게 피해다녀놓고 내가 자초한 결과에는 웃질 못했다.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눈동자만 재빠르게 옆으로 굴려버리는 김정우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먼저 피한거야, 이게 맞는거야. 가당치가 않잖아, 나는 너한테. 합리화를 하면서도 기분은 꿀꿀했다. 꼭 이럴 때만 내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성 오메가로, 혼혈으로 태어난 가련하디 가련한 내 처지를.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너한테 그렇게 못다가가는거야. 합리화도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합리화는 처음이었다. 내가 해놓고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건데도 꼭 이럴 때만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밤은 온통 너로 데워지고 덥혀지는데. 내 낮에는 보란 듯이 너를 쏙 빼버려놓고서. 그 수업 이후로 민트 초콜릿 향은 더이상 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어느 꿈에서도. 맡고 싶은데 맡아지지가 않았다. 네가 풀지 않은 탓일까, 내가 피한 탓일까.
단순한 호기심이, 그에 대한 흥미가, 호감에서 기인한 것이란 걸 알아챘어야했는데. 다가오는 너를 피해 돌아가야하는 것이 맞았는데 내가 어리석었다. 그런데 있잖아, 이것도 다 핑계고 변명이고 모든게 다 엉망진창이야, 정우야. 너를 피하면서도 네가 나를 피하는 행동에 서운해지고 미련이 남는 것도 전부 다. 어지러운 것 투성이야.
‘이거 너 주려고.’
‘버리면 안돼! 나중에 봐!’
어렵게 구한 민트 초콜릿은 끈적히도 입 안을 메웠다. 덩달아 너의 모습들도. 여즉 선연한 네 머리칼들도. 내 망막을 메웠다. 메우다 못해 흘러 넘쳤다.
‘이제 반대편, 이름아.’
네가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가면서도,
‘더워?’
내 밤은 한없이 더워
‘아니면 너 열나, 지금.’
그 열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좋아해, 정우야. 좋아해서 미안해. 비겁한 한 마디를, 입에 욱여넣은 민트 초콜릿 속에 숨겨 넣었다.
*
언제까지 피해다닐 건지 성이름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때, 아모텐시아를 만들었을 때. 정우는 기억한다. 아모텐시아에서 맡아지던 미치도록 달콤하던 그 향을. 그리고 그 여린 살결 위에 어른거리던 그 코코넛 오일 향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제 페로몬을 흘린 것이었다. 그걸 우성 알파인 정우가 모를 리는 없었다. 우성 오메가의 향은 기가 막히게 파악했으니까. 느끼려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냄새들이었다.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 그 본능에서 기인한 감각은 이름이의 향까지도 단박에 알아챘다. 거기에다 살결에 맺히던 땀방울까지 보탠다면 그녀의 히트 사이클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성이름!’
애써 모른 척 하면서도 갈무리 하지 못한 손을 뻗어 그녀의 뒷덜미를 훔쳤다. 그 손길에 잘게 떨리는 어깨도 정우는 보았다. 그렇기에 빠르게 교실을 벗어나는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흔한 알파들이라면 페로몬을 맡는 순간 그 살결을 입 안 가득 머금었겠지만 정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저에겐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했다.
좋아하니까.
그녀는, 그로 하여금 단순한 욕정의 대상이 아니었으니. 그러니 그런 욕망이 생기더라도 그는 있는 힘껏 억눌러야했다. 한낱 다섯 글자의 배열에 지나지 않은 그 이유로. 좋아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치밀어오르는 충동을, 몸을 섞고 싶은 욕망을, 그녀에 대한 갈망을 집어삼켰다. 체를 할 것 같아도 그는 참았다. 혹여나 그녀를 마주한다면 저번에 스니치를 쥐어줬던 때처럼, 입술을 파묻기보단 겹쳐올린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욕망을 채웠던 때처럼. 늘 그랬듯이, 언제나. 모든 억누름의 이유는 그녀였고 그녀에 수반되는 이유 하나였다. 그런데 이름이는 저를 피했다. 그때 이후로, 계속. 어렴풋한 이유 한 조각이라도 남겨주지 않은 채. 괜시리 미워져 저도 그녀를 피했다지만 이제는 무리였다.
“… 이름아.”
닿지도 못할 이름은 아무도 없는 복도 위를 떠돌았다. 찰나였지만 진득히 배어버린 그녀의 향기를 되새기며 정우는 또 닿지 못할 말을 중얼거린다.
“나 그만 피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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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름은 한층 더 무거워지고 무더워졌다. 하루의 시작에는 억제제를 미지근한 물과 함께 밀어넣었고 하루의 끝에는 억제제로 감당이 안되는 열들을 풀어놓았다. 그 열들을 풀어놓으며 김정우를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찾지 않으면 사람들 속에 파묻혀가는 그를 생각했다. 틈새에 그의 모습을 욱여넣으면서도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의 향을 맡고 싶어하면서도 이제 다 녹아가는 초콜릿으로 그 욕망을 떼웠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더 이상은 새어나가는 페로몬을 억누를 방도가 없었다. 혹시나 한 줌이라도 흘릴까 싶어 식사도 마다하고 기숙사 안에만 틀어박혔다. 그걸 풀어내야한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미련스럽게 그딴 선택을 했다.
“… 너 페로몬 엄청나. 억제제로 해결 안되는거 알면서 왜 계속….”
늦은 밤이 되어 돌아온 룸메이트가 쓴소리를 했다. 좀처럼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잔소리도 감당이 되지 않아 기어코 기숙사를 나섰다. 병동에 가서 조금 더 센 억제제를 처방받으면 이 지긋지긋한 열대야가 끝날까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걸음에 걸음을 더할 수록 열기가 치고 올라와 숨이 막혀왔다. 괜히 나왔어, 괜히.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인걸 염두에 두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몸 상태는 그 걸음을 지탱하기에 상당히 버거웠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걸음을 딛어나갔다. 더워, 더워. 목이 말라왔다. 온 몸이 홧홧한 느낌에 절로 페로몬이 풀려나갔다. 내 시야도, 열기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
“…….”
그리 가열차게 피해다녀놓고 내가 자초한 결과에는 웃질 못했다.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눈동자만 재빠르게 옆으로 굴려버리는 김정우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먼저 피한거야, 이게 맞는거야. 가당치가 않잖아, 나는 너한테. 합리화를 하면서도 기분은 꿀꿀했다. 꼭 이럴 때만 내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성 오메가로, 혼혈으로 태어난 가련하디 가련한 내 처지를.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너한테 그렇게 못다가가는거야. 합리화도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합리화는 처음이었다. 내가 해놓고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건데도 꼭 이럴 때만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밤은 온통 너로 데워지고 덥혀지는데. 내 낮에는 보란 듯이 너를 쏙 빼버려놓고서. 그 수업 이후로 민트 초콜릿 향은 더이상 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어느 꿈에서도. 맡고 싶은데 맡아지지가 않았다. 네가 풀지 않은 탓일까, 내가 피한 탓일까.
단순한 호기심이, 그에 대한 흥미가, 호감에서 기인한 것이란 걸 알아챘어야했는데. 다가오는 너를 피해 돌아가야하는 것이 맞았는데 내가 어리석었다. 그런데 있잖아, 이것도 다 핑계고 변명이고 모든게 다 엉망진창이야, 정우야. 너를 피하면서도 네가 나를 피하는 행동에 서운해지고 미련이 남는 것도 전부 다. 어지러운 것 투성이야.
‘이거 너 주려고.’
‘버리면 안돼! 나중에 봐!’
어렵게 구한 민트 초콜릿은 끈적히도 입 안을 메웠다. 덩달아 너의 모습들도. 여즉 선연한 네 머리칼들도. 내 망막을 메웠다. 메우다 못해 흘러 넘쳤다.
‘이제 반대편, 이름아.’
네가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가면서도,
‘더워?’
내 밤은 한없이 더워
‘아니면 너 열나, 지금.’
그 열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좋아해, 정우야. 좋아해서 미안해. 비겁한 한 마디를, 입에 욱여넣은 민트 초콜릿 속에 숨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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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피해다닐 건지 성이름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때, 아모텐시아를 만들었을 때. 정우는 기억한다. 아모텐시아에서 맡아지던 미치도록 달콤하던 그 향을. 그리고 그 여린 살결 위에 어른거리던 그 코코넛 오일 향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제 페로몬을 흘린 것이었다. 그걸 우성 알파인 정우가 모를 리는 없었다. 우성 오메가의 향은 기가 막히게 파악했으니까. 느끼려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냄새들이었다.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 그 본능에서 기인한 감각은 이름이의 향까지도 단박에 알아챘다. 거기에다 살결에 맺히던 땀방울까지 보탠다면 그녀의 히트 사이클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성이름!’
애써 모른 척 하면서도 갈무리 하지 못한 손을 뻗어 그녀의 뒷덜미를 훔쳤다. 그 손길에 잘게 떨리는 어깨도 정우는 보았다. 그렇기에 빠르게 교실을 벗어나는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흔한 알파들이라면 페로몬을 맡는 순간 그 살결을 입 안 가득 머금었겠지만 정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저에겐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했다.
좋아하니까.
그녀는, 그로 하여금 단순한 욕정의 대상이 아니었으니. 그러니 그런 욕망이 생기더라도 그는 있는 힘껏 억눌러야했다. 한낱 다섯 글자의 배열에 지나지 않은 그 이유로. 좋아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치밀어오르는 충동을, 몸을 섞고 싶은 욕망을, 그녀에 대한 갈망을 집어삼켰다. 체를 할 것 같아도 그는 참았다. 혹여나 그녀를 마주한다면 저번에 스니치를 쥐어줬던 때처럼, 입술을 파묻기보단 겹쳐올린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욕망을 채웠던 때처럼. 늘 그랬듯이, 언제나. 모든 억누름의 이유는 그녀였고 그녀에 수반되는 이유 하나였다. 그런데 이름이는 저를 피했다. 그때 이후로, 계속. 어렴풋한 이유 한 조각이라도 남겨주지 않은 채. 괜시리 미워져 저도 그녀를 피했다지만 이제는 무리였다.
“… 이름아.”
닿지도 못할 이름은 아무도 없는 복도 위를 떠돌았다. 찰나였지만 진득히 배어버린 그녀의 향기를 되새기며 정우는 또 닿지 못할 말을 중얼거린다.
“나 그만 피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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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름은 한층 더 무거워지고 무더워졌다. 하루의 시작에는 억제제를 미지근한 물과 함께 밀어넣었고 하루의 끝에는 억제제로 감당이 안되는 열들을 풀어놓았다. 그 열들을 풀어놓으며 김정우를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찾지 않으면 사람들 속에 파묻혀가는 그를 생각했다. 틈새에 그의 모습을 욱여넣으면서도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의 향을 맡고 싶어하면서도 이제 다 녹아가는 초콜릿으로 그 욕망을 떼웠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더 이상은 새어나가는 페로몬을 억누를 방도가 없었다. 혹시나 한 줌이라도 흘릴까 싶어 식사도 마다하고 기숙사 안에만 틀어박혔다. 그걸 풀어내야한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미련스럽게 그딴 선택을 했다.
“… 너 페로몬 엄청나. 억제제로 해결 안되는거 알면서 왜 계속….”
늦은 밤이 되어 돌아온 룸메이트가 쓴소리를 했다. 좀처럼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잔소리도 감당이 되지 않아 기어코 기숙사를 나섰다. 병동에 가서 조금 더 센 억제제를 처방받으면 이 지긋지긋한 열대야가 끝날까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걸음에 걸음을 더할 수록 열기가 치고 올라와 숨이 막혀왔다. 괜히 나왔어, 괜히.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인걸 염두에 두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몸 상태는 그 걸음을 지탱하기에 상당히 버거웠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걸음을 딛어나갔다. 더워, 더워. 목이 말라왔다. 온 몸이 홧홧한 느낌에 절로 페로몬이 풀려나갔다. 내 시야도, 열기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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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이름.”
머릿속 목적지는 병동이었으나 발길의 목적지는 그리핀도르 휴게실 앞이었다. 그리고 김정우를 마주쳤다. 내가 얼마나 안간힘을 다해서 널 피했는데. 널 피했는데…. 마음은 피하질 못했나보다. 평상시의 나였다면 이성 때문에라도 그를 피했겠지만 지금은 이 더위를 씻어내고 싶다는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 앞서 그를 피하지 않았다. 묻어둔, 무더운 마음. 그를 안고 싶다는 갈망, 충동, 욕망. 그 어떤 질척한 미사여구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 마음들을 목소리에 적셔내었다.
“정우야….”
사정없이 풀려나가는 내 페로몬을 맡으면서도 그는 꽤나 침착했다. 침착하지 않은 쪽은 내 쪽이었다. 입 안이 말라왔다. 그의 민트 초콜릿 향을 잔뜩 묻히고 싶었다.
“나 좀, 안아줘. 제발.”
“너 진짜….”
김정우는 기가 찬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래, 어이없겠지. 며칠 동안 피해놓구선 찾아와서 하는 말이 안아달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말을 다른 알파한테 해. 이 더위의 이유도, 내 열대야의 주범도 니 이름을 주석처럼 달고 있었는데. 틀어쥔 주먹이 형편도 없이 덜덜 떨려왔다. 내 몸에서 풍기는 페로몬의 향은 갈수록 배가 되고 있었다. 제발, 제발…. 애원하는 내 목소리가 점멸은 커녕 이어졌다. 도리어 점멸에 다가서고 있는 것은 내 시야고, 내 이성이리라. 그만큼 구원이 간절했다. 김정우의 구원이. 소나기 같은 그가 이 더위를 잠식시켜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너에게.
*
그가 다가왔다. 그가 내뿜는 숨결마저 그의 페로몬을 품은 것만 같아 온 몸이 저릿해졌다. 달뜬 숨은 거침없이 뱉어졌다. 더워, 너무 더워. 열기가 미친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제어가 안되는 몸을 억지로 가누며 다가오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한 뼘의 거리를 남기고선 멈추어 섰다. 그 한 뼘의 거리가 수십 뼘의 거리가 되는 듯했다. 그 짧고 먼 거리에서 그가 입을 달싹였다. 머뭇거리는 발 끝과 함께. 그는 말을 꺼내는 대신 한 걸음을 옮기고 내 뺨을 제 한 손에 쥐었다.
“나 좋아?”
“…….”
“난 너 좋은데, 넌 나 좋냐고. 그래서 안아달라고 온거냐구, 이름아.”
“…김정우.”
“대답.”
그의 목소리와 그의 눈길 모두가 낯설었다. 처음 보는 얼굴과 처음 듣는 음성에 여린 입 안쪽 살결을 힘껏 깨물다 대답을 종용하는 목소리에 운을 떼었다. “응, 좋아.”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가 없었다. 있을 수도 없었고. 달달 떨리는 숨으로 겨우겨우 말을 끝내며 팔을 벌렸다. 이제 안아줘.
“그럼 됐어.”
그래, 그러면 되었다. 그의 팔이 내 허리를 잡아채 껴안아왔다. 그제서야 입술을 붙이며 질척히 혀를 옭아왔다. 덩달아 풀려나오는 그의 페로몬은, 달콤한 민트 초콜릿향은 겨우 붙잡았던 한 조각의 정신 마저도 놓아버리기에 충분했다.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힘껏 매달리자 나를 들어 안은 그가 발걸음을 옮겼다. 엉겨붙었던 입술이 어긋나자 나는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입술을 부벼댔다. 어디가. 필요의 방.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딘가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낮은, 가쁜 숨소리를 내쉬며 나를 눕힌 그가 젖은 입술을 또다시 머금어왔다. 그가 손을 올려 넥타이를 풀어냈다. 뒤이어 내 넥타이도. 힘없이 풀려진 초록색과 은색, 붉은 색과 금색의 넥타이가 한 쌍의 뱀처럼 우아하게, 바닥에서 뒤엉켰다. 넥타이 못지 않게 뒤엉켰던 입술으로 목을 지분거리며 그가 나직히 물어왔다. 다가오는 숨결이 뜨거웠다.
“더워?”
“… 응.”
멍울진 숨을 토해내며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얽었다. 짙디 짙던 갈색이 옅어지고 있었다. 내 더위도, 내 열대야도, 정점과 함께. 옅어지고 있었다. 쇄골 부근에 닿는 손길은 나와 다르게 시원했다. 안아줘. 이미 그의 한 팔이 나를 부둥켜 안고 있는데도, 또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가 입술을 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시울이 붉었다.
“나 먼저? 아니면…”
그가 입고있던 셔츠의 단추를 한 개,
“너 먼저?”
그리고 내 단추 한 개. 총 두개의 단추를 풀어낸 그의 손이 멎었다. 손을 멈춘 그가 다시 몸을 굽혀 귓볼을 뭉근히 물어왔다. 귓가를 간질이는 숨이 달아 입꼬리가 씰룩였다.
“너 먼저.”
다시 입술을 맞부딪혔다. 채신머리도 없이 급하게 입술을 파고 드는 혀를 섞으며 손은 그의 단추를 풀어냈다. 민트 초콜릿향이 어지럽게 콧속을 파고들었다. 다디단 소나기였다. 옅은 갈색의 소나기는, 민트 초콜릿향의 그 소나기는, 그 자체로 구원이었다. 한여름 속 소나기처럼 그의 모든 것이 내 무더위의 틈새로 함뿍 젖어들었다.
비로소, 열대야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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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삭 미안해요...............사실 몇시간 마다 잠깨서 쓰고 다시 자고 반복하다 확인 일도 안하고 올린거라......
추가 내용도 불맠전까진 알아서 간거같지만 뭐 여기까지가 끝.....일듯합니다..더이상은 무리라...머쓱타드
이거 외전 나오려나요 (후비적) 작가도 모르는게 이 작품 일정이라는건 비밀 아닌 트루입니다 (후비적)
메일링 공지 내일쯤에..?빠르면 오늘 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아 메일링 하니까 생각난건데 디마뮤는 메일링 예정 없습니다 덫은 메일링 예상목록에 있지만 :D
리퀘 열심히 써볼게여....시간나는대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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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링 기준은 암호닉 + 댓글 다신 분 기준입니다! 다시한번 체크해주세요.
'열대야' 메일링은 원하시는 분들이 말해주셔야 할수있서용...기준은 동일합니다!
비회원 분들도 암호닉 당연히 받습니다. 마구 해주세여. 혐생 덜바쁘니 이제 자주 오도록...노력...해볼게요.....
하투헤 열스합시다.....노래 얼마나 좋게요...?*^^*
♥ 암호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