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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불편한 날 01 | 인스티즈 

 

 

 

불편한 날 

 

01 

 

 

 

 

 

 

 

 

 

 

 

W.이규

 

 

 

 

 

 

그냥 소나기였던 걸까. 집에 오니 비는 다 그쳤다. 이 좁은 집에 먼지 냄새와 비의 비린내가 가득 찼다. ‘냄새’라는 것은 그 상황을, 그때를 기억하기 좋다. 미간을 좁혔다. 툭- 현관에 세워둔 우산이 쓰러졌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옷을 하나씩 벗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먹먹함이 씻겨 내려갔다.  

 

 

 

‘ 저 회색을 가르면... ‘ 

 

“ 우윽-... “ 

 

‘ 우리가 하는 그 푸른색이겠지? ‘ 

 

 

 

구역질이 났다. 불편했다. 김태형 너는 정말 불편했다. 나의 발밑으로 빗물과 수돗물이 고여있었고 발로 고인 물을 짓이겼다. 몰려오는 구토감을 억누르려 숨을 참았다. 계속되는 헛구역질에 눈물이 고였다. 

 

 

 

“ 짜증나... “ 

 

 

 

서둘러 물기를 닦고 습한 욕실에서 나왔다. 아까의 냄새는 여전했다. 옷을 입고 침대로 향하던 차에 현관에 쓰러져있던 우산을 쳐다봤다. 샤워로 인해 나름 가벼워졌던 마음이었건만 김태형의 가려진 눈동자가 눈앞에 떠오르자 누군가 내 마음을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짜증이 났다. 신경질적으로 우산을 잡아들어 집 문 앞에 두었다. 나의 왼손은 축축했다. 잠깐이었지만 우산이 있던 현관의 자리는 빗물과 흙이 섞여 작게 고여있었다. 김태형의 눈동자가 궁금했다. 다시 말해 그 아이가 자꾸 생각났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유 모를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냉장고를 열었다. 어두워 보이지 않던 탄소의 표정이 냉장고의 노란빛에 의해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반쯤 남아있는 생수병을 잡아들고 급하게 열어 물을 삼켰다. 이제 답답하지 않겠지. 침대로 걸어가 몸을 뉘었다. 조용하기만 한 방에서는 색색 되는 나의 숨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 욕실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소리뿐이었다. 왼손을 들어 눈 위에 올려두었다. 차라리 잠에 들어 이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무거운 비의 냄새가 났다. 우산을 만져서 그런 걸까. 물기 하나 없는 왼손이었다. 우산을 잡던 그 찰나에 순간 내 손에 비 냄새가 배어났나 보다. 잠에 들 수 없었다. 

 

 

 

“ 이게 다 김태형 때문이야. “ 

 

 

 

맞다. 기억났다. 이건 김태형의 냄새야. 너와의 첫 만남을 곱씹으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작년, 그때도 지금 같은 여름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유는 터무니없었다. 같은 반에 전정국이라는 남자아이와 짝꿍이 되고 그 아이와 자주 이야기를 해서 꼬리 치는 여우라고. 그 아이들은 내 사물함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져갔다. 자물쇠를 달아놓은 이유도 그 아이들이 내 물건을 함부로 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에서 흘렸는지 열쇠는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다. 열쇠를 돌려받고 싶으면 찾으러 오라며, 나를 크지 않은 하천 주변 공원으로 불렀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얼굴이며 몸이며 맞았다. 열쇠는 찾지 못하였다. 공원 어딘가에 버렸으니 알아서 찾으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난 이곳에 그 아이들에게 불려 자주 왔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비참한 내 모습이 됐었는데, 바보같이 열쇠를 찾으러 또 이곳에 온 내가 미웠다. 그냥 숙직실에서 장비를 빌려 자물쇠를 잘라버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비가 엄청 많이 오던 날 옷은 물론, 신발이며 양말이며 다 젖었던 날 나는 널 처음 만났다. 어디선가 시원하면서도 무거운 비의 냄새가 났다. 

 

 

 

‘ 안녕. ‘ 

 

 

 

내 눈앞엔 열쇠를 쥔 상처 가득한 손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시선을 맞췄고, 이미 비에 다 젖은 몸이지만 내게 우산을 씌워줬다. 나와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마 다른 학교 학생 같았다. 눈은 긴 앞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의 왼쪽 가슴엔 ‘김태형’이라 수놓아져있었다. 그때부터였나, 이 불편함. 

 

 

 

 

 

 

 

 

 

 

 

 

 

 

 

 

어제 비가 마구 쏟아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늘은 푸르렀다. 

 

일기예보 

2019년 7월 20일 토요일  

구름 조금, 강수확률 30% 

 

오늘의 날씨. 온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이틀 뒤 비가 온다는 점이 날 조금 조급하게 만들었을지도. 우산을 들고 김태형을 기다렸다. 공원의 벤치는 어제의 비 때문에 젖은듯했다. 괜한 발 장난을 쳤다. 꽤나 기다렸을거다. 의문이 들던 와중에 짜증스러운 마음이 내 표정에 비쳤다. 김태형은 자주 말없이 나오지 않곤 했다.  

 

 

“ 그럼 내일 보자는 말은 왜 한거야... “ 

 

 

그럴 때마다 난 그곳을 생각했다. 민윤기의 작업실. 뭐 그전엔 생각만 했지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우산을 줘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가야 하지만. 태형이 가끔 데려가 주던 곳이었다. 비를 피한 다나 뭐라나. 흰 운동화는 군데군데 바닥에 고여있던 흙탕물로 얼룩져있었고 내 발걸음은 조금 빨랐다. 가끔 가봤던 그의 작업실이라 혹시 다른 곳으로 옮긴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김태형의 뒤를 따라가던 기억 더듬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작업실이 맞는듯했다. genius lab 그의 작업실 이름이다.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었는데, 잘 찾아왔네. 두어 번 문을 두드리자 귀찮은듯한 표정을 한 윤기가 나왔다. 들어오세요. 

 

 

 

 

“ 저...안녕하세요. “ 

“ ...아 안녕하세요 탄소씨. “ 

“ 네...저기, “ 

“ 김태형이라면 오늘 아파요. “ 

 

 

당혹스러웠다. 아니, 그것보다 김태형과 나는 알고 지낸지 대략 10개월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런데도 서로 연락처를 몰라 이렇게 엇갈리기도 여러 번. 그렇다고 그 김태형은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도통한 적이 없다. 뭐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일화나 기분, 상태, 과거 등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안 할 뿐이었다. 그런 김태형이 아프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었고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넌 아프면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무표정? 아니면 아파서 일그러진 표정이려나. 1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널 만나왔건만 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윤기는 내 반응을 지켜보다 내 오른손에 들린 우산으로 시선을 옮겼다. 작게 한숨이 들리는듯했다. 

 

 

“ 이 우산 김태형거예요. 여기에 두고갈게요 전해주세요 걔한테. “ 

“ ...그럴게요. “ 

“ 그리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 

 

 

고개를 살짝 끄덕- 하며 윤기에게 조용히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던 중 번쩍이는 윤기의 핸드폰에 시선이 갔다. 급하게 핸드폰을 뒤집는 그다. 차가운 그의 눈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초조함을 표하고 있었다. 그때 무거운 기침 소리가 윤기의 뒤쪽 문 뒤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어색했던 그와의 만남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 날씨는 참 좋았다. 햇볕이 기분이 좋아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 야 김태형 이제 나와. “ 

 

 

 

윤기의 노크 소리와 이제 나오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었다. 그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아팠다. 눈두덩과 관자놀이 부근이 뜨거운듯했다. 

 

 

 

“ 형, 저 물좀 줘요. “ 

“ 이렇게 까지 해야겠냐. 카톡이랑 기침은 왜 해 들킬 뻔 했잖아. “ 

 

 

 

윤기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 했다. 물을 삼켰다. 목구멍의 따가움에 미간을 절로 찌푸렸다. 컵을 내려놓고 탄소가 놓고 간 메마른 우산을 봤다. 당장 집어 들어 작업실 입구 벽 쪽에 눕혀두었다. 쓰러지지 않게. 

 

 

 

“ 그런데 형은 김탄소 가끔 봤잖아요. 왜이렇게 어색해해. “ 

“ 가끔 봤으니까 어색하지. 그리고 걔가 날 보러 온 것도 아니었잖아. “ 

“ 하긴, 그렇네. “ 

“ 고맙다고 전해달래. “ 

“ 다 들었어요. “ 

 

 

 

그렇다. 윤기와 나 그리고 탄소 이렇게 셋이서 이 작업실에서 만난 적은 꽤 있다. 밥도 같이 먹었었지만 이야기를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윤기는 탄소의 방문을 불편해했다. 그럴 때마다 태형은 뭐가 좋은지 웃었다. 탄소는 작업실을 신기해하는듯했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생각났다. 문 뒤에서 탄소의 말을 들었는데 고맙다고 전해달라니, 한 번도 네 입에서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 낯설고 조금은 웃기기도 해서 웃음이 터질뻔했다. 표정은? 고맙다고 말하는 네 표정은 어땠을까. 오늘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아 화가 난 표정이었을까? 약간 아쉽기도 했다. 그렇게 아쉬워하던 중 윤기의 표정을 보았다. 윤기는 무언가 머뭇거렸다.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 말해보라는 나의 무언의 대답이었다. 

 

 

 

“ 어제 지민이 왔다갔어. “ 

“ ...그래서요. “ 

“ 너 학교 안나올거냐는, “ 

“ 안가요. 박지민한테도 이제 오지 말라고 해주세요. “ 

 

 

 

그는 한숨을 쉬며 스스로 머리를 헤집었다. 그러곤 나에게, 

 

 

 

“ 박지민이 너 많이 걱정해. “ 

“ ...... “ 

“ 연락이라도 해주던가. “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걱정할만하겠다. 한창 수능을 준비하고 있을 지금 말도 없이 학교에 나가지 않았으니까. 뭐 그전에도 제대로 출석한 것은 아니다. 아 진짜 아프네. 몸이 무거웠다. 어제 잔뜩 맞은 비 때문이 분명했다. 윤기는 어제 흠뻑 젖어서 온 나를 보고는 실소를 터뜨리며 욕지거리를 했었다. 자꾸 나오는 기침을 계속해서 했다. 

 

 

 

“ 병원가서 주사라도 맞던지. 거슬려 죽겠으니까. “ 

“ 너무하네. 그리고 무서워서 싫어요. 그냥 형이 타주는 유자차나 먹고 형한테 밥이나 얻어먹을래요. “ 

 

 

 

윤기는 허- 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고 내가 어제 쓰고 의자 등판에 걸어두었던 수건을 들곤 장난스럽게 날 때렸다. 계속되는 기침에 윤기는 나를 소파에 누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무거운 몸을 뉘었다. 잠시 후 내 이마 위로 축축하고 차가운 게 닿는다. 그리곤 내 옆 탁자 쪽에서 가볍게 둔탁한 소리가 두어 번 정도 났다. 힐긋- 보니 약과 물이 놓여 있었다. 형 나 알약 안 먹는 거 알잖아요. 

 

 

 

“ 그럼 애기들 먹는거처럼 내가 절구로 빻아줘야겠냐? “ 

“ 저야 좋죠. “ 

 

 

 

말을 말자. 말을 어떻게 말아요? 윤기는 때리는 시늉을 하며 손을 높게 들었다가 내렸다. 내 입가는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너는 내게 고맙다고 한 적이 없다. 네가 찾던 열쇠를 찾아줬을 때도 오히려 화를 냈다.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네 목소리가 떠올랐다. 불편했다. 아파서 그런 건지 몸이 아닌 마음까지 무거웠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 졸음이 몰려왔다. 무거운 눈꺼풀에 못 이겨 나는 잠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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