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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재욱 윤도운 방탄소년단 엑소
중력달 전체글ll조회 1248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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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이라도 숨고 싶은데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다. 맞다, 그래봤자 여긴 차안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것도 단둘이.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쌩쌩 달리고 있는 차문을 연 채 미친 척 뛰쳐 나간 사람으로 뉴스 기사 첫 페이지를 장식할 순 없는 일이었다. 대신 창문 구석에 콕 박혀서 연신 딴청을 피웠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날도 더운데 죄다 옆구리에 연인을 한 명씩 끼고 거니는 사람들을 열심히 구경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풍경들이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참 이상하네. 커피를 못 마신다는 사람이 대체 왜 그렇게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한 거지?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덜컥 분홍색 물음표가 급습한다. 떨쳐내려 고개를 내저었다. 근데, 그 이유가 없는 사이란 무얼까?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스쳐간 가로수 개수만큼 지나친 빌딩 수만큼 그를 닮은 물음표가 자꾸 늘어만 갈 뿐.




 

"밖에 뭐 있어요?"




   창문에 껌딱지처럼 아주 철썩 붙어서 영 떨어질 생각을 않는 나를 그 나긋한 음성이 불러 세운다. 슬쩍, 겁도 없이 고개를 돌았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의 그와 마주한다. 그림 같은 얼굴이 코앞이었다. 새까맣게 타는 속은 모른 채로 그저 개구지게 실룩이는 저 눈썹, 오래는 못 버틸 숨막히는 시선을 내 시야 한 가운데에 담았다.




   "나를 봐야지,"
   "…,"
   "…부럽게."




   말간 입술을 개구지게 비죽거리다 부럽다고 말한다. 부러우니 자기를 보라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스쳐가는 풍경들 마다마다 당신이 둥둥 떠다닌다고, 당신의 따듯한 그 다정함이 이 차 안은 물론이고 저 밖에도 가득하다고. 부러워하지 말라 말했어야 했는데, 꾹 다문 입이 떨어질리 없었다.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는데에도 영 젬병인 나였다. 그래서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는 편을 택했다. 자는 척 할까 고민했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눈을 떠야만 보이는 그런 다정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맞아, 나 봐봐요."




   질끈 두 눈을 감은 내 이마 위로 불현듯 누군가의 찹찹한 손이 얹혀졌다. 당연히 이진혁, 그의 손이다. 벌써 두 번째 터치였다. 스위치라도 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동안 더 얹고 있었다. 널찍한 손바닥으로 몇 번씩 더 짚어 내더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제 곧 나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입꼬리가 활짝 휘어졌다. 내가 열이 내린 게 그렇게도 좋은지. 감춰 지지 않을 정도로 다행인 일인지. 뭐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도 행복해 할 까. 왜 당신의 행복이 내 안에 다 있어.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 인스티즈 

 

 

"아니, 내가 열 오르게 한 거 같아서."




   그가 장난스럽게 말꼬리를 올렸다. 모든 걸 훤히 다 안다는 자부심이 담긴 표정. 그걸 지금 아는 사람이 그래요?! 나는 그저 속으로만 외쳤다. 어차피 내뱉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소리칠 용기가 없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숨이 막히게도, 나를 덥게도, 내 이마에 열이 끓게도 하는 사람이니까.




   머지않아 차가 멈췄다. 뭐야, 우리집이 이렇게 가까웠나. 괜히 뒤를 돌아봤다. 생각해보면 길고 또 어떻게 보면 그저 짧기만한 길, 이게 뭐라고 내가 이리도 아쉬울까. 매고 있던 벨트를 조용히 끌러 놓곤 수분동안 생각에 잠겼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는 게 먼저겠지. 꾸벅, 고갯짓도 해야겠고. 머릿속에 가만히 굴려 놓았던 시뮬레이션을 재현하려 찬찬히 고개를 드는데, 차를 멈춰 세우자마자 그 기다란 팔로 뒷좌석 어딘가를 열심히 뒤적거리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분주한 행동. 갑자기 뭘 찾으려고 그럴까. 




   "이거."




   그러더니 곧, 멀뚱멀뚱 눈만 꿈뻑이고 있는 내 손에 기어이 무언가를 쥐어 준다. 물음표 모양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약 먹기 전에 먹어요, 꼭."




   꽤나 묵직한 봉투 하나가 무릎 위에 놓였다. 꽤나 유명한 죽 로고가 그려진 베이지색 쇼핑백. 안엔 알록달록 사탕 한 봉지와 처방 받았던 약 꾸러미도 함께 들어 있었다. 대체 사탕은 무슨 이유에서 넣어 둔 건지, 궁금해 할 시간도 안 주고 그가 덥석 덧붙였다. 잊지말고 약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 잔소리 했고, 약이 쓸 때마다 이 사탕 하나씩 까먹으라 말했다. 내 일상을 참견하겠다는 게 이런 뜻이었을까. 간섭이 일상인 사이가 이런 거였을까.

   그런 거라면 누군가의 옆에서 나란히 발맞춰 걷는 일도 꽤나 괜찮은 일 같은데.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니야, 탈락.

   죽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이것 역시 탈락이란 말이야.




   손에 들려 잇던 쇼핑백은 진작 식탁 한 구석에다 제쳐뒀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 입지 않고서 액정 켜진 휴대폰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 그야 그에게 전할 메시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보내고 싶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가 선물해준 선물 같은 오늘 하루를 고작 몇 단어로 함축하기엔 부족한 게 너무나도 많지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준 내 오늘에 대해서.




   샥, 메시지가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역시도 내가 한 발 늦어버렸다. 내가 이리도 어리숙하다.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보내기가 무섭게 휘리릭 사라진 숫자 '1'을 보면서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꺄르르 배를 잡고 웃고 있으려나. 생각할 수록 부끄러워서 있지도 않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가 쌓아 놓은 문장들을 가만히 읽어 내렸다.




   아프지 말고 푹 자요.



   몇 글자 읽자마자 나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선물한 오늘 하루의 '끝'도 역시,




   내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보고 싶을 거에요.
   당신이니까 이유는 없어요.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는 걸.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 인스티즈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미간에 잡힌 주름의 개수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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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기간을 맞은 대학교를 바로 코앞에 둔 카페의 상황이란, 여름 휴가로 치면 가히 비성수기라 불릴 만했다. 이 시기 카페를 찾는 고객층은 주로 과제나 공부를 하기 위해 온 대학생들이다. 그 말인 즉슨, 한동안 휘핑크림을 손에 들 거나 크림 위에 뿌릴 초코칩을 갈 일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쉬운 주문들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향연들. 조금 어려워지면 카페라떼 정도? 그 마저도 들어가는 건 우유 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계에 들어갈 새 원두 패키지들이나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날 점심 시간도 딱 이 정도기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유나 언니가 입술을 비죽이며 푸념했다. 나는 조용히 혼자 생각했다. 저도 사람 많은 점심 시간은 정말 싫어요, 한 사람만 빼고. 생각하다 말고 느닷없이 피식 터뜨리는 내게 다들 무슨 일 있냐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옅게 웃고 말았다. 여유롭게 웃고 떠들다보니 시간은 벌써 두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볼 때마다 두 시가 다 되어가는 건지, 두 시가 될 때마다 자연스레 시계에 눈이 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시계 보는 일은 어느새, 내 일과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띠링, 도어벨이 울렸다. 어느새 시계 바늘이 2에 반듯하게 가향해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 걸어 온다. 나는 원두 꾸러미를 뜯다 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사람인가? 저벅저벅, 입구를 지나 카운터를 향해 걸어 오는 얼굴을 가만히 마주한다. 불행히도 그가 아니었다. 그건 불행이었다. 이진혁 그가 아닌데도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이제 그만 익숙하고 싶은데, 여전히 낯익은 얼굴이 둥둥 떠다니다 내 앞에 섰다.




   "아직도 여기서 일하네. 잘 지냈어?"




   며칠 전에도 나는, 이 인간이 나오는 꿈을 꿨다. 언제나 나타나 발이 묶인 나를 내버려둔 채, 드레스 빼입은 나리 손을 잡고 훨훨 날아간다. 겪었던 일을 꿈에서도 매번 똑같이 겪는다. 그런 인간이 내 안부를 묻고 있다는 게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나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안다는 듯 '아직도'라고 말했다. 뚫린 게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인간을 두고서도 한마디 못했다. 결국 내가 문제였다. 바보처럼 쭈뼛거리다 불현듯 왼쪽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명찰이 잡혔다. 이것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식하게 달려있던 명찰을 제 손으로 잡아뜯다 기어이 피를 냈다.




   "얼굴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나는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아는데, 알아 듣고 싶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자다가도 울다 벌떡 깨는데. 넌 왜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건지. 왜 가해자가 더 떳떳한 건지 도저히 알기 힘들었다. 손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잔뜩 고개를 수그린 채 서있었다.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어쩐지 나는 쓸모 없는 존재 같아졌다.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로 두 잔 줘, 들고 갈 거야."




   하필 시켜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음료가 나한테 어떤 음료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현듯 가슴팍 어딘가 동그랗게 구멍이 생긴 느낌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건네는 반말에도 눈물이 핑 돌아 흐를 것 같았고, 그게 '두 잔'인 것도 나를 슬프게 했다. 니가 사들고 돌아간 그 한 잔은 이제 곧 나리 손에 있으려나. 자꾸만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가슴이 아파서 그대로 기절할 것 같은 걸 꾹 참았다.

   피 흐르는 손으로 포스기를 두드리다 시계를 쳐다봤다. 2시가 훌쩍 넘었다. 이진혁 그는 오늘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울 것 같은 이유는 여기에 다 있는지도 몰랐다. 보면 당장 품에 안겨 꺼이꺼이 울 자신이 있을 정도로 보고 싶은데, 보고 싶어 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젠 좀 알 것도 같은데, 그가 곁에 없었다.




   "…적립,"
   "어, 해줘. 내 번호 알지."
   "?"
   "아는 사람 있는데 자주 와야지."




   뱉는 말마다 기절할 민자였다. 저 꼴을 나더러 언제고 또 보라는 뜻인가. 귀로 듣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왜 내가 니 아는 사람이야. 왜 내가 니 번호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묻고 싶은 게 산더미로 늘어가는데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피나는 손가락이 아팠다. 쓰라렸다. 손에 흐르는 피도 닦지 못했고, 마음에 흐르는 피 역시 닦지 못한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다음 번에 오면 지인 할인 되냐."




   말해놓고 웃었다. 너는 여전히 나를 앞에 두고 웃고 싶니. 염치라는 것의 '염'자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마음 같아선 저 놈의 뺨 한 대 갈기고 그냥 관둬버릴까 이 생각도 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당장 바닥에 나앉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진혁 그를 만난 이 공간을 뜨는 건 더욱 싫었다. 

   두 귀로 버텨내기 힘든 개소리를 이겨가며 캐리어를 접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나리와 함께 마실지 모를 음료를 담고, 그 음료를 캐리어에 담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순간순간 속으로 눈물을 훔쳤다.




   띠링-♪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누군가, 울기 일보 직전의 내 곁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뚜벅뚜벅 큰 보폭으로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익숙해서 눈물나는 발걸음을 가만히 들었다. 눈물 매단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진혁이다. 창백해진 얼굴로 날 보고 있는 그의 시선과 맞닿았다.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 인스티즈 

 

"밖에 뭐 있어요?"




   창문에 껌딱지처럼 아주 철썩 붙어서 영 떨어질 생각을 않는 나를 그 나긋한 음성이 불러 세운다. 슬쩍, 겁도 없이 고개를 돌았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의 그와 마주한다. 그림 같은 얼굴이 코앞이었다. 새까맣게 타는 속은 모른 채로 그저 개구지게 실룩이는 저 눈썹, 오래는 못 버틸 숨막히는 시선을 내 시야 한 가운데에 담았다.




   "나를 봐야지,"
   "…,"
   "…부럽게."




   말간 입술을 개구지게 비죽거리다 부럽다고 말한다. 부러우니 자기를 보라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스쳐가는 풍경들 마다마다 당신이 둥둥 떠다닌다고, 당신의 따듯한 그 다정함이 이 차 안은 물론이고 저 밖에도 가득하다고. 부러워하지 말라 말했어야 했는데, 꾹 다문 입이 떨어질리 없었다.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는데에도 영 젬병인 나였다. 그래서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는 편을 택했다. 자는 척 할까 고민했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눈을 떠야만 보이는 그런 다정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맞아, 나 봐봐요."




   질끈 두 눈을 감은 내 이마 위로 불현듯 누군가의 찹찹한 손이 얹혀졌다. 당연히 이진혁, 그의 손이다. 벌써 두 번째 터치였다. 스위치라도 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동안 더 얹고 있었다. 널찍한 손바닥으로 몇 번씩 더 짚어 내더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제 곧 나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입꼬리가 활짝 휘어졌다. 내가 열이 내린 게 그렇게도 좋은지. 감춰 지지 않을 정도로 다행인 일인지. 뭐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도 행복해 할 까. 왜 당신의 행복이 내 안에 다 있어.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 인스티즈 

 

 

"아니, 내가 열 오르게 한 거 같아서."




   그가 장난스럽게 말꼬리를 올렸다. 모든 걸 훤히 다 안다는 자부심이 담긴 표정. 그걸 지금 아는 사람이 그래요?! 나는 그저 속으로만 외쳤다. 어차피 내뱉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소리칠 용기가 없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숨이 막히게도, 나를 덥게도, 내 이마에 열이 끓게도 하는 사람이니까.




   머지않아 차가 멈췄다. 뭐야, 우리집이 이렇게 가까웠나. 괜히 뒤를 돌아봤다. 생각해보면 길고 또 어떻게 보면 그저 짧기만한 길, 이게 뭐라고 내가 이리도 아쉬울까. 매고 있던 벨트를 조용히 끌러 놓곤 수분동안 생각에 잠겼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는 게 먼저겠지. 꾸벅, 고갯짓도 해야겠고. 머릿속에 가만히 굴려 놓았던 시뮬레이션을 재현하려 찬찬히 고개를 드는데, 차를 멈춰 세우자마자 그 기다란 팔로 뒷좌석 어딘가를 열심히 뒤적거리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분주한 행동. 갑자기 뭘 찾으려고 그럴까. 




   "이거."




   그러더니 곧, 멀뚱멀뚱 눈만 꿈뻑이고 있는 내 손에 기어이 무언가를 쥐어 준다. 물음표 모양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약 먹기 전에 먹어요, 꼭."




   꽤나 묵직한 봉투 하나가 무릎 위에 놓였다. 꽤나 유명한 죽 로고가 그려진 베이지색 쇼핑백. 안엔 알록달록 사탕 한 봉지와 처방 받았던 약 꾸러미도 함께 들어 있었다. 대체 사탕은 무슨 이유에서 넣어 둔 건지, 궁금해 할 시간도 안 주고 그가 덥석 덧붙였다. 잊지말고 약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 잔소리 했고, 약이 쓸 때마다 이 사탕 하나씩 까먹으라 말했다. 내 일상을 참견하겠다는 게 이런 뜻이었을까. 간섭이 일상인 사이가 이런 거였을까.

   그런 거라면 누군가의 옆에서 나란히 발맞춰 걷는 일도 꽤나 괜찮은 일 같은데.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니야, 탈락.

   죽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이것 역시 탈락이란 말이야.




   손에 들려 잇던 쇼핑백은 진작 식탁 한 구석에다 제쳐뒀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 입지 않고서 액정 켜진 휴대폰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 그야 그에게 전할 메시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보내고 싶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가 선물해준 선물 같은 오늘 하루를 고작 몇 단어로 함축하기엔 부족한 게 너무나도 많지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준 내 오늘에 대해서.




   샥, 메시지가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역시도 내가 한 발 늦어버렸다. 내가 이리도 어리숙하다.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보내기가 무섭게 휘리릭 사라진 숫자 '1'을 보면서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꺄르르 배를 잡고 웃고 있으려나. 생각할 수록 부끄러워서 있지도 않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가 쌓아 놓은 문장들을 가만히 읽어 내렸다.




   아프지 말고 푹 자요.



   몇 글자 읽자마자 나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선물한 오늘 하루의 '끝'도 역시,




   내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보고 싶을 거에요.
   당신이니까 이유는 없어요.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는 걸.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 인스티즈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미간에 잡힌 주름의 개수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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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기간을 맞은 대학교를 바로 코앞에 둔 카페의 상황이란, 여름 휴가로 치면 가히 비성수기라 불릴 만했다. 이 시기 카페를 찾는 고객층은 주로 과제나 공부를 하기 위해 온 대학생들이다. 그 말인 즉슨, 한동안 휘핑크림을 손에 들 거나 크림 위에 뿌릴 초코칩을 갈 일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쉬운 주문들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향연들. 조금 어려워지면 카페라떼 정도? 그 마저도 들어가는 건 우유 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계에 들어갈 새 원두 패키지들이나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날 점심 시간도 딱 이 정도기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유나 언니가 입술을 비죽이며 푸념했다. 나는 조용히 혼자 생각했다. 저도 사람 많은 점심 시간은 정말 싫어요, 한 사람만 빼고. 생각하다 말고 느닷없이 피식 터뜨리는 내게 다들 무슨 일 있냐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옅게 웃고 말았다. 여유롭게 웃고 떠들다보니 시간은 벌써 두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볼 때마다 두 시가 다 되어가는 건지, 두 시가 될 때마다 자연스레 시계에 눈이 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시계 보는 일은 어느새, 내 일과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띠링, 도어벨이 울렸다. 어느새 시계 바늘이 2에 반듯하게 가향해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 걸어 온다. 나는 원두 꾸러미를 뜯다 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사람인가? 저벅저벅, 입구를 지나 카운터를 향해 걸어 오는 얼굴을 가만히 마주한다. 불행히도 그가 아니었다. 그건 불행이었다. 이진혁 그가 아닌데도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이제 그만 익숙하고 싶은데, 여전히 낯익은 얼굴이 둥둥 떠다니다 내 앞에 섰다.




   "아직도 여기서 일하네. 잘 지냈어?"




   며칠 전에도 나는, 이 인간이 나오는 꿈을 꿨다. 언제나 나타나 발이 묶인 나를 내버려둔 채, 드레스 빼입은 나리 손을 잡고 훨훨 날아간다. 겪었던 일을 꿈에서도 매번 똑같이 겪는다. 그런 인간이 내 안부를 묻고 있다는 게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나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안다는 듯 '아직도'라고 말했다. 뚫린 게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인간을 두고서도 한마디 못했다. 결국 내가 문제였다. 바보처럼 쭈뼛거리다 불현듯 왼쪽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명찰이 잡혔다. 이것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식하게 달려있던 명찰을 제 손으로 잡아뜯다 기어이 피를 냈다.




   "얼굴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나는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아는데, 알아 듣고 싶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자다가도 울다 벌떡 깨는데. 넌 왜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건지. 왜 가해자가 더 떳떳한 건지 도저히 알기 힘들었다. 손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잔뜩 고개를 수그린 채 서있었다.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어쩐지 나는 쓸모 없는 존재 같아졌다.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로 두 잔 줘, 들고 갈 거야."




   하필 시켜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음료가 나한테 어떤 음료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현듯 가슴팍 어딘가 동그랗게 구멍이 생긴 느낌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건네는 반말에도 눈물이 핑 돌아 흐를 것 같았고, 그게 '두 잔'인 것도 나를 슬프게 했다. 니가 사들고 돌아간 그 한 잔은 이제 곧 나리 손에 있으려나. 자꾸만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가슴이 아파서 그대로 기절할 것 같은 걸 꾹 참았다.

   피 흐르는 손으로 포스기를 두드리다 시계를 쳐다봤다. 2시가 훌쩍 넘었다. 이진혁 그는 오늘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울 것 같은 이유는 여기에 다 있는지도 몰랐다. 보면 당장 품에 안겨 꺼이꺼이 울 자신이 있을 정도로 보고 싶은데, 보고 싶어 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젠 좀 알 것도 같은데, 그가 곁에 없었다.




   "…적립,"
   "어, 해줘. 내 번호 알지."
   "?"
   "아는 사람 있는데 자주 와야지."




   뱉는 말마다 기절할 민자였다. 저 꼴을 나더러 언제고 또 보라는 뜻인가. 귀로 듣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왜 내가 니 아는 사람이야. 왜 내가 니 번호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묻고 싶은 게 산더미로 늘어가는데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피나는 손가락이 아팠다. 쓰라렸다. 손에 흐르는 피도 닦지 못했고, 마음에 흐르는 피 역시 닦지 못한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다음 번에 오면 지인 할인 되냐."




   말해놓고 웃었다. 너는 여전히 나를 앞에 두고 웃고 싶니. 염치라는 것의 '염'자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마음 같아선 저 놈의 뺨 한 대 갈기고 그냥 관둬버릴까 이 생각도 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당장 바닥에 나앉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진혁 그를 만난 이 공간을 뜨는 건 더욱 싫었다. 

   두 귀로 버텨내기 힘든 개소리를 이겨가며 캐리어를 접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나리와 함께 마실지 모를 음료를 담고, 그 음료를 캐리어에 담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순간순간 속으로 눈물을 훔쳤다.




   띠링-♪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누군가, 울기 일보 직전의 내 곁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뚜벅뚜벅 큰 보폭으로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익숙해서 눈물나는 발걸음을 가만히 들었다. 눈물 매단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진혁이다. 창백해진 얼굴로 날 보고 있는 그의 시선과 맞닿았다.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 인스티즈 

 

"밖에 뭐 있어요?"




   창문에 껌딱지처럼 아주 철썩 붙어서 영 떨어질 생각을 않는 나를 그 나긋한 음성이 불러 세운다. 슬쩍, 겁도 없이 고개를 돌았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의 그와 마주한다. 그림 같은 얼굴이 코앞이었다. 새까맣게 타는 속은 모른 채로 그저 개구지게 실룩이는 저 눈썹, 오래는 못 버틸 숨막히는 시선을 내 시야 한 가운데에 담았다.




   "나를 봐야지,"
   "…,"
   "…부럽게."




   말간 입술을 개구지게 비죽거리다 부럽다고 말한다. 부러우니 자기를 보라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스쳐가는 풍경들 마다마다 당신이 둥둥 떠다닌다고, 당신의 따듯한 그 다정함이 이 차 안은 물론이고 저 밖에도 가득하다고. 부러워하지 말라 말했어야 했는데, 꾹 다문 입이 떨어질리 없었다.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는데에도 영 젬병인 나였다. 그래서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는 편을 택했다. 자는 척 할까 고민했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눈을 떠야만 보이는 그런 다정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맞아, 나 봐봐요."




   질끈 두 눈을 감은 내 이마 위로 불현듯 누군가의 찹찹한 손이 얹혀졌다. 당연히 이진혁, 그의 손이다. 벌써 두 번째 터치였다. 스위치라도 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동안 더 얹고 있었다. 널찍한 손바닥으로 몇 번씩 더 짚어 내더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제 곧 나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입꼬리가 활짝 휘어졌다. 내가 열이 내린 게 그렇게도 좋은지. 감춰 지지 않을 정도로 다행인 일인지. 뭐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도 행복해 할 까. 왜 당신의 행복이 내 안에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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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열 오르게 한 거 같아서."




   그가 장난스럽게 말꼬리를 올렸다. 모든 걸 훤히 다 안다는 자부심이 담긴 표정. 그걸 지금 아는 사람이 그래요?! 나는 그저 속으로만 외쳤다. 어차피 내뱉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소리칠 용기가 없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숨이 막히게도, 나를 덥게도, 내 이마에 열이 끓게도 하는 사람이니까.




   머지않아 차가 멈췄다. 뭐야, 우리집이 이렇게 가까웠나. 괜히 뒤를 돌아봤다. 생각해보면 길고 또 어떻게 보면 그저 짧기만한 길, 이게 뭐라고 내가 이리도 아쉬울까. 매고 있던 벨트를 조용히 끌러 놓곤 수분동안 생각에 잠겼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는 게 먼저겠지. 꾸벅, 고갯짓도 해야겠고. 머릿속에 가만히 굴려 놓았던 시뮬레이션을 재현하려 찬찬히 고개를 드는데, 차를 멈춰 세우자마자 그 기다란 팔로 뒷좌석 어딘가를 열심히 뒤적거리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분주한 행동. 갑자기 뭘 찾으려고 그럴까. 




   "이거."




   그러더니 곧, 멀뚱멀뚱 눈만 꿈뻑이고 있는 내 손에 기어이 무언가를 쥐어 준다. 물음표 모양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약 먹기 전에 먹어요, 꼭."




   꽤나 묵직한 봉투 하나가 무릎 위에 놓였다. 꽤나 유명한 죽 로고가 그려진 베이지색 쇼핑백. 안엔 알록달록 사탕 한 봉지와 처방 받았던 약 꾸러미도 함께 들어 있었다. 대체 사탕은 무슨 이유에서 넣어 둔 건지, 궁금해 할 시간도 안 주고 그가 덥석 덧붙였다. 잊지말고 약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 잔소리 했고, 약이 쓸 때마다 이 사탕 하나씩 까먹으라 말했다. 내 일상을 참견하겠다는 게 이런 뜻이었을까. 간섭이 일상인 사이가 이런 거였을까.

   그런 거라면 누군가의 옆에서 나란히 발맞춰 걷는 일도 꽤나 괜찮은 일 같은데.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니야, 탈락.

   죽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이것 역시 탈락이란 말이야.




   손에 들려 잇던 쇼핑백은 진작 식탁 한 구석에다 제쳐뒀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 입지 않고서 액정 켜진 휴대폰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 그야 그에게 전할 메시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보내고 싶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가 선물해준 선물 같은 오늘 하루를 고작 몇 단어로 함축하기엔 부족한 게 너무나도 많지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준 내 오늘에 대해서.




   샥, 메시지가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역시도 내가 한 발 늦어버렸다. 내가 이리도 어리숙하다.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보내기가 무섭게 휘리릭 사라진 숫자 '1'을 보면서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꺄르르 배를 잡고 웃고 있으려나. 생각할 수록 부끄러워서 있지도 않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가 쌓아 놓은 문장들을 가만히 읽어 내렸다.




   아프지 말고 푹 자요.



   몇 글자 읽자마자 나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선물한 오늘 하루의 '끝'도 역시,




   내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보고 싶을 거에요.
   당신이니까 이유는 없어요.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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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미간에 잡힌 주름의 개수만큼









v




   시험 기간을 맞은 대학교를 바로 코앞에 둔 카페의 상황이란, 여름 휴가로 치면 가히 비성수기라 불릴 만했다. 이 시기 카페를 찾는 고객층은 주로 과제나 공부를 하기 위해 온 대학생들이다. 그 말인 즉슨, 한동안 휘핑크림을 손에 들 거나 크림 위에 뿌릴 초코칩을 갈 일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쉬운 주문들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향연들. 조금 어려워지면 카페라떼 정도? 그 마저도 들어가는 건 우유 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계에 들어갈 새 원두 패키지들이나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날 점심 시간도 딱 이 정도기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유나 언니가 입술을 비죽이며 푸념했다. 나는 조용히 혼자 생각했다. 저도 사람 많은 점심 시간은 정말 싫어요, 한 사람만 빼고. 생각하다 말고 느닷없이 피식 터뜨리는 내게 다들 무슨 일 있냐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옅게 웃고 말았다. 여유롭게 웃고 떠들다보니 시간은 벌써 두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볼 때마다 두 시가 다 되어가는 건지, 두 시가 될 때마다 자연스레 시계에 눈이 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시계 보는 일은 어느새, 내 일과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띠링, 도어벨이 울렸다. 어느새 시계 바늘이 2에 반듯하게 가향해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 걸어 온다. 나는 원두 꾸러미를 뜯다 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사람인가? 저벅저벅, 입구를 지나 카운터를 향해 걸어 오는 얼굴을 가만히 마주한다. 불행히도 그가 아니었다. 그건 불행이었다. 이진혁 그가 아닌데도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이제 그만 익숙하고 싶은데, 여전히 낯익은 얼굴이 둥둥 떠다니다 내 앞에 섰다.




   "아직도 여기서 일하네. 잘 지냈어?"




   며칠 전에도 나는, 이 인간이 나오는 꿈을 꿨다. 언제나 나타나 발이 묶인 나를 내버려둔 채, 드레스 빼입은 나리 손을 잡고 훨훨 날아간다. 겪었던 일을 꿈에서도 매번 똑같이 겪는다. 그런 인간이 내 안부를 묻고 있다는 게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나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안다는 듯 '아직도'라고 말했다. 뚫린 게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인간을 두고서도 한마디 못했다. 결국 내가 문제였다. 바보처럼 쭈뼛거리다 불현듯 왼쪽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명찰이 잡혔다. 이것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식하게 달려있던 명찰을 제 손으로 잡아뜯다 기어이 피를 냈다.




   "얼굴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나는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아는데, 알아 듣고 싶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자다가도 울다 벌떡 깨는데. 넌 왜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건지. 왜 가해자가 더 떳떳한 건지 도저히 알기 힘들었다. 손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잔뜩 고개를 수그린 채 서있었다.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어쩐지 나는 쓸모 없는 존재 같아졌다.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 벤티로 두 잔 줘, 들고 갈 거야."




   하필 시켜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음료가 나한테 어떤 음료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현듯 가슴팍 어딘가 동그랗게 구멍이 생긴 느낌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건네는 반말에도 눈물이 핑 돌아 흐를 것 같았고, 그게 '두 잔'인 것도 나를 슬프게 했다. 니가 사들고 돌아간 그 한 잔은 이제 곧 나리 손에 있으려나. 자꾸만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가슴이 아파서 그대로 기절할 것 같은 걸 꾹 참았다.

   피 흐르는 손으로 포스기를 두드리다 시계를 쳐다봤다. 2시가 훌쩍 넘었다. 이진혁 그는 오늘 오지 않았다. 어쩌면 울 것 같은 이유는 여기에 다 있는지도 몰랐다. 보면 당장 품에 안겨 꺼이꺼이 울 자신이 있을 정도로 보고 싶은데, 보고 싶어 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젠 좀 알 것도 같은데, 그가 곁에 없었다.




   "…적립,"
   "어, 해줘. 내 번호 알지."
   "?"
   "아는 사람 있는데 자주 와야지."




   뱉는 말마다 기절할 민자였다. 저 꼴을 나더러 언제고 또 보라는 뜻인가. 귀로 듣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왜 내가 니 아는 사람이야. 왜 내가 니 번호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묻고 싶은 게 산더미로 늘어가는데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피나는 손가락이 아팠다. 쓰라렸다. 손에 흐르는 피도 닦지 못했고, 마음에 흐르는 피 역시 닦지 못한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다음 번에 오면 지인 할인 되냐."




   말해놓고 웃었다. 너는 여전히 나를 앞에 두고 웃고 싶니. 염치라는 것의 '염'자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마음 같아선 저 놈의 뺨 한 대 갈기고 그냥 관둬버릴까 이 생각도 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당장 바닥에 나앉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진혁 그를 만난 이 공간을 뜨는 건 더욱 싫었다. 

   두 귀로 버텨내기 힘든 개소리를 이겨가며 캐리어를 접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나리와 함께 마실지 모를 음료를 담고, 그 음료를 캐리어에 담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순간순간 속으로 눈물을 훔쳤다.




   띠링-♪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누군가, 울기 일보 직전의 내 곁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뚜벅뚜벅 큰 보폭으로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익숙해서 눈물나는 발걸음을 가만히 들었다. 눈물 매단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진혁이다. 창백해진 얼굴로 날 보고 있는 그의 시선과 맞닿았다.




[프로듀스/이진혁] 여름날의 다람쥐를 좋아하세요? 06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누구야, 자기야." 

 





   구세주가 따로 없는 모습으로 들어와 건넨 부름의 첫 마디가 그랬다. 나는 전보다 더 말문 막힌 표정으로 그의 생김새 하나하나를 뜯어 보았다. 복사용지가 따로 없는 새파란 얼굴이 구멍난 내 가슴을 가득 매웠다. 줄곧 불쌍한 내 신세만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내 신경이 그를 향해 있었다. 파리해진 안색과 푸석해진 턱자락이 내내 심기를 건드린다. 녀석이 그런 이진혁의 모습을 겁도 없이 올려다보았다. '자기'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부터 쭉, 어쩐지 조금은 당황한 눈치였다.




   "여주…너 남자친구 있었어?"



   놈의 입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오자마자 이진혁 그의 미간이 삽시간에 팍 좁아들었다. 어떤 순간이 와도 저 정도로 화가 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인상이 잔뜩 구겨져 주름이 졌다. 머리 끝까지 열 받은 표정.

   이럴 때마다 나는 늘, 피부로 머리로 깨닫고 또 깨달았다. 이진혁 그의 세포 하나하나가 얼마만큼 나를 향해 있는지를. 또 그게 얼마나 나를 눈물 나게 하는 지를.




   "주문 다 하셨음 자리 좀…비켜 주시죠."
   "…네?"




 

 

"그만 제 여자친구 얼굴 좀 보게." 


 


 


 

   이제 그만 그 안에 녹아들고 싶었다. 그저 아무것도 재지 않고. 그 한 사람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라는 파도에 몸을 맞춰. 


 


 


 


 


 


 


 


 


 


 


 


 


 


 

+ 

내용의 질이...부끄러워서...무어라 말도 못하겠는......담편은 알차고 재밌도록 많은 노력 하겠슴..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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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재밌어요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2
작가님 저 또 알림 뜨자마자 허버허버 달려와놓고.. 한 줄 한 줄이 너무 아까워서 조심조심 읽었어요... 다음 화에서 만나요💙
4년 전
독자3
흐엉엉 자기라뇨 설레요
4년 전
비회원120.6
이 글을 왜 제가 지금 발견했을까요ㅠㅠㅠㅠㅜㅜㅜㅜㅜ작가님 필체가 너무 좋아요....뭔가 잔잔하면서 달달하고 다 꽉 찬 느낌ㅠㅠㅠㅠㅠㅠㅠ
여주가 조금씩 마음 열어가는 과정보니까 저도 같이 찡하네요,,
오늘도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4
아 진혁이 안 와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여주 넘 걱정되고,, 하,, 나쁜자식,,,,
4년 전
독자5
저 진짜 초반의 여주랑 진혁이 같은 차 속에 있는 얘기 읽으면서 나같으면 심장 부여잡고 헉헉 거릴텐데 카페에서 여주랑 진혁이 읽으면 저 기절할것 같야여
4년 전
독자6
몽글몽글 말랑따뜻한 분위기였던 차안에서 갑자기 뾰족하고 불편한 카페로 바뀌게 만든 똥차야... 주댕이 여물어 제발..! 뭐어~? 아는 사람~? 지인 할인~? 니 머리는 머리카락 키우는 화분이냐??? 튀어나와요 눈깔의 숲이다 아주
4년 전
독자7
헙 작가님 설레 죽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 어떻게 딱 그 타이밍에 나타나서 구해주는 거야 ㅠㅠㅠㅠㅜㅠㅠ
4년 전
독자8
진짜 오늘도 설레임 달달하게 충전하고 갑니다ㅜㅜㅜㅜㅜㅜㅜ 하 작가님 최고
4년 전
독자9
아니 사람이 생각이 없으면 티를 내지말아야지 쟤 진짜 너무 ㅁㅎㅅ된거 아닌가뇨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0
와 너무 설레요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1
와 진짜 작가님 필력,,,대박이에요ㅜㅜㅜㅜㅜㅜ진짜 이진혁 설레버려ㅠㅠㅠㅠㅠㅠㅠㅜ이렇게 좋은 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4년 전
독자12
저 지금 녹아내리는 중입니다....진혁이의 스윗함에 녹아내리는 중....어엉 오늘도 너무너무 재ㅣㅆ어요!!!!! 늘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해요♥
4년 전
독자13
ㅠㅜㅜㅜㅜㅜㅜㅜ 진짜 진혁이 조고 위로 받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 힐링 그 자체
4년 전
독자14
와 너무너무 욕하고 싶어요 (쌍욕)
지녁이 안들어왔으면 진짜 폭발할뻔ㅜㅜ
구ㅇㅇ 딸요 두잔사간다는데 지녁이2시에 안와가지구 설마 둘이 아는사이는 아니겟지 설마 설마 계속 빌엇어요ㅠㅠㅠㅠㅠㅠ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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