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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이 없습니다. 전체글ll조회 532l 1
남준X석진
W. 필명이 없습니다.

 

                                        

 


 

 "으윽" 


 

 방금 막 잠에서 깬 석진이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잠자리가 잘못되었는지 어깨가 뻐근해져 오는 것을 느낀 그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짧게 기지개를 켰다.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 졸음이 가득한 눈을 하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초점 없는 흐릿한 눈빛과 푸석해진 피부, 바짝 말라붙은 입술이 거울 속에 비쳤다. 걷힌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바늘 자국들과 손끝에 묻은 빨간 핏자국들이 어제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어 얼굴에 끼얹었다. 차가운 물이 황무지같이 폐허해진 그의 얼굴을 적셨다. 거침없이 콸콸 나오는 수돗물이 튀며 온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큰 눈을 가늘게 뜨며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문지른 그가 욕실에서 나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뻣뻣한 허리를 애써 숙여 배터리가 다 분리된 휴대폰을 집어 든 후 배터리를 다시 끼워 넣고 전원을 켰다. 화면이 제대로 켜지자마자 쏟아지듯 울리는 알림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수십 통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쌓여있었고 그들을 무시하며 휴대폰 전원을 다시 끄려던 찰나, 다시 한 번 전화가 진동을 울렸다. 화면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누구인지 아는 듯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석진이 형? 형이에요?" 

 "…" 

 "형, 대답 좀 해봐요. 어제 어디 있었던 거에요?" 

  "…" 

 "형 때문에 지금 경찰서 다 뒤집어졌어요. 제발 그 정도만 하라니까 왜 자꾸…" 


 

 석진은 그의 말에 단 한 번의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한두 번이 아닌 듯 익숙하게 그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울리는 휴대폰에 석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휴대폰의 배터리를 분리해 소파에 던져 놓았다. 지금쯤 속이 타 다리를 달달 떨고 있을 남준을 생각하니 석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차올랐다. 뻐근한 어깨와 허리를 움직여 몸을 대충 푼 그가 걷어 올려져 있던 하얀 와이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하얗고 가녀린 손목과 부드러운 손을 모두 덮어버릴 만큼 큰 와이셔츠가 그의 마르고 앙상한 형체를 모두 집어삼켰다. 해가 중천에 떠 맑은 하늘의 한가운데에 걸쳐 그의 집 안으로 따스한 햇볕이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쳐 장렬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피했다. 옷장을 열어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외투를 꺼내 걸쳐 입고 모자와 마스크까지 걸친 그가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신발을 신으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젯밤 약통과 주사기를 꺼냈던 작은 서랍을 뒤져 작은 알약과 담배 한 갑을 찾아 부엌으로 달려갔다. 금세 물과 함께 약을 꿀꺽 삼킨 그가 한층 더 몽롱해진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아릿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져 헤실헤실 웃으며 담뱃갑을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신발을 신었다. 현관 앞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의 발이 닿은 곳은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선술집이었다. 환하고 밝은 대낮에 가게의 문은 열려있을 리가 만무했다. 굳게 잠신 문을 몇 번 흔들어보다가 그가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짧게 이어지다 끊기고 누군가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연결되었음에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세요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렇게 침묵의 통화만 이어지고 있었다. 불이 꺼진 가게 안에서 어떤 남자가 통화 중인 휴대폰을 들고 문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새카만 머리카락에 몸에는 담요를 둘둘 만 그가 잠긴 문을 열어주고 멍하니 가게 안을 바라보던 석진을 안으로 들였다. 석진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후 그 남자를 따라 가게 안으로 발을 옮겼다. 아까와는 다르게 반짝이는 그의 크고 동그란 눈이 가게의 이곳저곳을 빠르게 훑었다. 가게 안으로 쭉 발걸음을 이어가다 마주친 문을 남자가 열어주자 석진은 익숙한 듯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몇 없는 가구와 커다란 박스 몇 개가 전부인 방 안은 석진의 집만큼이나 썰렁했다. 남자가 커다란 박스를 열고 무언가를 찾는 동안 석진은 구석에 위치한 침대에 가 누웠다. 따뜻한 침대의 온기가 차디찬 그의 몸을 포근하게 감쌌다. 


 

 "지민아." 

 "네, 형." 

 "나 졸려. 좀만 잘래." 


 

 석진이 잠에 취해 반쯤 풀린 나른한 눈으로 침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가게에 오기 전 삼켰던 약이 반응하는 듯 그가 묘한 쾌감에 사로잡혀 침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베개에 머리를 비볐다. 큰 상자에서 계속 무언가를 찾으며 뒤적이던 지민이라는 남자가 말없이 일어서 벽장으로 발을 옮겼다. 두텁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을 하나 꺼내 넓게 펼친 뒤 침대에 바르게 누워있는 석진에게 덮어주었다. 왠지 모르게 지민의 향이 나는 것 같아 석진이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푸하. 크게 숨을 내쉬고 푹신한 베개를 손으로 통통 두드린 다음 머리를 기대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그를 감싸 안았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마냥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좋아 입꼬리를 올려 옅게 미소를 지었다.  


 

 "잘 자요." 


 

 지민의 말을 끝으로 석진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지민은 다시 박스 앞에 앉아 계속하여 무언가를 찾으며 상자 안을 뒤적였다, 꺼냈다,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고요한 방 안에 석진의 숨소리만이 이어졌다. 어딘지 모르게 점점 불안해지고 위태로워지는 그의 호흡에 놀란 지민이 그의 옆에 다가섰다. 색색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그를 보곤 지민이 석진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수많은 바늘 자국들이 남아있는 하얀 팔뚝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민이 작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주사기에 약을 몇 방울 넣더니 그의 팔뚝에 남아있는 바늘 자국을 피해 꽂았다. 조금 뒤 그의 가슴이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안정적인 호흡을 내뱉자 지민의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추운 겨울도 아닌데 바싹 말라 하얗게 튼 석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다시 그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귀가 찢어질 듯 큰 굉음이 그의 귓가를 때렸다. 곤히 잠든 석진의 모습을 한 번 확인한 후 아무렇게나 걷어 놓은 담요를 몸에 다시 감았다. 뭉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가게 밖으로 슬금슬금 걸어나갔다. 바깥 상황을 경계하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문밖에 주차된 검은 차량을 노려보았다. 시동이 꺼졌지만 내릴 생각이 없는 것인지 미동조차 없는 자동차의 문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진하게 썬팅 된 차량 내부를 보려 미간을 좁혔다. 한동안 잠잠하던 차의 창문이 소리 없이 내려갔다. 새까만 창문 안쪽으로 꽤 익숙한 얼굴들이 비쳤다. 창문이 내려가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확인되자마자 지민의 눈이 크게 떠졌다. 몸에 돌돌 말고 있던 담요를 걷어내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석진이 있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잠그고 문 뒤에 등을 붙이고 서서 모든 신경을 가게의 출입문 가까이에 집중했다. 곧이어 차에서 누군가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겨있던 가게의 문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지민이 최대한 숨을 죽이고 그들이 하는 말에 집중하며 크게 요동치는 심장에 작은 손을 갖다 대었다. 


 

 "아직 없나 본데?"  

 "그런가? 안에 사람이 없어."  

 "여기가 아닌 거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여기가 아닌가?"  


 

 차에서 내린 두 남자가 가게의 문을 두어 번 더 밀고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점점 작아지는 말소리와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 소리에 지민이 안심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거칠어져 있는 숨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석진이 누워있던 침대 옆으로 가 그를 깨웠다. 몸을 살짝 흔들자 큰 눈이 반쯤 떠지며 상체를 일으켰다. 몸을 비비 꼬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이불을 걷어냈다. 얼굴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으니 지민이 그의 작은 뒤통수를 팔로 감싸 안으며 받쳐주었다. 몸이 찌뿌둥한 지 크게 하품을 하며 길게 기지개를 켠 그가 살짝 졸음에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또 경찰 왔다 갔어?"  

 "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없는 척 방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그냥 가던데요?"  

 "멍청한 새끼들."  


 

 석진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찾던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말이야.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리던 그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입고 있던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찾았다. 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담배의 끝에 라이터를 갖다 대었다 뗐다. 아른하게 흔들리는 작은 불꽃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불꽃이, 마치 석진과 같았다. 이리저리 휘날려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이, 살얼음이 언 강둑 위를 걷듯이, 가늘고 위태로운 외줄에 발을 내딛듯이. 아찔한 절벽 끝에 내몰린 그의 모습은, 정말 위태로웠다.  


 

 속이 텅 빈 듯한 눈을 하고선 담배의 끝을 입에 물었다. 깊게 빨아들였다, 숨을 내뱉기를 반복했다. 담배 필터의 끝이 빨갛게 타오르다, 완전히 검게 타버렸다. 지민이 말없이 재떨이를 건네오자 담배에서 입을 떼고 타들어 간 담배의 끄트머리를 비볐다. 타들어 가던 담뱃불이 스르륵 꺼졌다. 방 안 가득 뿌연 연기가 차오를수록, 석진의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어젯밤의 기억을 하나둘씩, 지워나갔다. 하루를 살고 하루를 잊는 그의 삶이, 마치 한번 불이 붙어 타올랐다가 모든 것을 다 태우고 한순간에 꺼지는 담뱃불과 같았다. 


 

- 


   작가의 말 

그취로 글잡은 처음이네요. 빠르면 이번주 주말, 늦으면 7월 6일에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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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어어어어 작가님 [뷔티뷔티] 암호닉 신청합..신청 되겠죠?
글 뜨자마자 홀린듯이 들어와서 읽었는데 작가님 필력 대단하신것♥
아 그리고 bgm 너무 좋아서 그런데 제목 알 수 있을까요?

7년 전
필명이 없습니다.
으앗 감사합니다ㅠㅠ 요놈이 그취글이라 암호닉 신청 받을 생각은 못 했는데 신청은 몇 없겠지만 그냥 받는대로 받겠습니다! 브금은 Dillon-Thirteen Thirtyfive이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어엉ㅠㅠ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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