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망고8ㅅ8
낯선 건물들과 붐비는 거리 가운데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소녀의 팔을 확 낚아채는 한 소년.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 하는 소녀를 몸으로 지탱하며 자신이 마치 경호원이라도 된 듯 인파 속을 헤쳐나간다. 소년의 얼굴에는 짜증이 한가득했지만 그걸 알리 없는 소녀는 자신과 밀착되어 있는 소년의 몸을 밀어내려 한다.
" ..야, 쫌. 너 여기서 미아되고 싶냐? "
소년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소녀는 그저 소년이 이끄는 대로 향했다. 그렇게 한 참을 이끌려 왔을까, 낯선 건물들 뿐이었던 소녀의 눈에 낯익은 건물이 보인다.
" 이제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 "
소년이라고 칭하는게 어색할 정도로 남자다워진 전정국이, 나를 내려다 보며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날 잡고 있던 제 팔을 놓고선 큰 보폭으로 휘적휘적 뒤돌아 간다.
한 시간 전
세 시간의 긴 여정 끝에 서울에 도착했지만, 타고난 길치 본능으로 코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빠져버렸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사람들은 점점 몰리고. 정신은 혼미해져가고. 정작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장본인은 아까부터 전화기가 꺼져있다. 하아, 이모 어디 계세요.
이러다 정말 장기매매라도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 공포에 떨던 나는 고심 끝에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전정국!
전정국한테 이렇게 반가운 목소리를 낸 건 처음인지라, 꽤 당황한 듯 한동안 말이 없던 정국은 오늘 내가 오는 날이라는 걸 방금 자각했다는 말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아, 맞다. 도착했냐"
" 방금 도착하긴 했는데.. "
" 어 "
"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
*
도대체 무슨 바쁜 일이 있길래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지. 괘씸한 놈. 가다가 넘어져라. 마음속으로 전정국 욕을 하면서 익숙하게 집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풍겨오는 향기가 아까 전정국 몸에서 나던 향과 겹쳐졌다. 집 냄새였구나-, 스읍. 냄새 좋다.
변태같이 코를 벌렁거리고 있던 나는 왈! 하는 소리에 뒤로 보기 좋게 넘어졌다. 윽. 엉덩이뼈를 어루만지며 힘겹게 고개를 들자, 매서운 이빨을 내보이며 내게 그르렁거리는 구름이가 보인다. 몇 년 전, 동물에 별 관심이 없던 정국이 갑자기 키우겠다며 무작정 데리고 온 구름이는 이모네 집에서 사랑스러운 막둥이를 맡고 있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까칠하다.
" 구, 구름아 안녕? "
왈오랑ㄹ왈왈왈오랑ㄹ왈!
...그, 그래.
구름이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가니 큰 식탁에 포스트잇 하나가 붙혀져 있었고,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 여주 왔니?
이모는 일본 여행 다녀올테니까 그동안 정국이랑 싸우지 말고 있으렴*^^*
돈은 통장에 넣어 놨으니까 필요할 때 꺼내 쓰고, 방은 비어있는 방 아무 데나 써도 돼^^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
- 아름다운 이모가 - '
구깃-,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포스트잇을 구겨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가 다시 포스트잇을 주워들었다. 앞으로 닥쳐올 시련들을 알지 못한 채, 말없이 떠나버린 이모를 탓할 뿐이었다. 돈은 그렇다 치고, 당장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가라구.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질질 끌며 빈 방으로 향했다. 제일 좋아하는 색인 연핑크로 뒤 덮인 벽과 침대 커버였지만 그게 눈에 보일 리 없었다. 깔끔히 정돈된 침대에 털썩 앉으니, 지잉- 하는 진동과 함께 문자음이 울린다.
' 우리 딸 잘 도착했지? 영숙이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
엉엉 엄마. 나 그냥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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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정국이 같은 엄마 친구 아들 없슴니까!!!!!!!!!!!!!!!!!!!!!!!!!! (소리없는 아우성_txt)
오타 지적은 감사히 받겠습니다8ㅅ8
많이많이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