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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파푸아뉴기니 전체글ll조회 416l 1
열 일곱의 너는, 뙤약볕이 내리 쬐는 여름을 좋아했지. 우리 학교 운동장은 크기가 작아 너는 점심 시간만 되면 담임의 눈을 피해 교문 밖으로 득달같이 달려나가 넓직한 등판에 땀이 나도록 옆 학교 축구장을 누비고 다녔던게 아직도 기억 나. 
나는 너와 반대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겨울을 좋아했고, 점심 시간이 되면 음악실로 올라 가 피아노를 치기 바빴지.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연습 할 수 없었으니까. 겁이 많은 나를 대신해, 너는 항상 음악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음악실 키를 훔쳐 달아났지. 





우리 둘은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을 닮았었다.
점심 시간의 끝을 알리는 예비 종이 크게 울려도 너는 축구, 나는 쇼팽의 녹턴 연주에 미쳐 아무것도 몰랐다. 윤리 선생님은 학교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둘은 뒤늦게 수업이 시작 된 것을 알고 반으로 달려다가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다. 쉿, 서로 발소리를 죽인 채 뒷 문으로 몰래 들어오려다 딱 걸렸잖아. 교탁 앞에 나란히 엎드려 엉덩이가 불이 나도록 매를 맞았지. 그 다음 날 우리 둘은 각자가 좋아하는 축구와 피아노를 못하고 교실 책상에 엎드려 끙끙 댔다.

"오늘은 피아노 안 치냐."

"응, 녹턴 악보까지 들고 왔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따가워서 쉬려고. 너는 축구 안 해?"

"나도 너랑 똑같지. 뛸 때마다 엉덩이가 떨려서 못 달리겠더라."

풉. 동시에 웃었다. 이 상황이 뭐가 그렇게 웃긴건지 어깨를 들썩이며 끅끅댔다. 열 일곱 어린 김종인은 못내 아쉬워하며 엉덩이를 부여잡고 창가 쪽으로 걸어가 잘 보이지도 않는 옆 학교 축구장을 빤히 바라봤지. 뭐가 보이기라도 한건가. 패스, 패스 하며 중얼거렸다. 나도 축구를 좋아했더라면, 나도 축구를 잘 했더라면 너와 좀 더 친해질 수 있었을까.

"너무 덥다, 빨리 겨울 됐으면 좋겠어."

"난 싫어. 춥잖아. 땅 바닥도 다 얼어서 미끄럽고."



무더운 7월 여름. 버스 정류장에 앉아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나에게 있어 죽음과 같았다. 더위에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학교 정문 앞에서 나눠 준 홍보 부채를 받아 와 부채질을 하기 바빴다. 교문 밖을 벗어나자마자 김종인은 하복 셔츠를 벗고 가방에 구깃구깃하게 접어 대충 쑤셔 박았다. 옷 다 구겨질텐데. 속으로 생각 했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제 집으로 가는 마을 버스가 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김종인의 어깨를 퍽 치며 웃었다.

"야, 먼저 간다. 내일은 음악실 키 갖고 와."

버스 문이 열리자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뒷좌석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창문 밖의 김종인은 멀뚱히 서 버스가 언제 오나. 하며 하염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 준비를 하며 덜컹 댔다. 혹시나 버스 안의 내 모습을 봐줄까 싶어 손을 계속 흔들며 인사했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김종인은 부채질을 하며 폴더폰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발 끝만 바라봤다.
그 다음날 점심 시간. 김종인은 어제 스치듯 이야기한 제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제 책상 위로 음악실 키를 던지듯 내려놨다. 아, 고마워. 제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건지 그럼 나 간다. 하며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교실 밖을 뛰쳐나갔다. 쇼팽의 녹턴 악보를 가슴에 꼭 껴안고 음악실 문을 조심히 열었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손을 풀었다. 그러다 문득 창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음악실은 5층에 있었는데 1층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옆 학교 축구장이 전부 보였다. 시력이 그닥 좋지 않음에도 김종인, 너를 한번에 찾았다. 우리 학교 체육복을 입은 채 옆 학교 축구장을 누비는 뻔뻔스러운 녀석은 단 한명 밖에 없었으니까. 김종인은 수비보다는 공격을 좋아했다. 축구공을 몰고 세차게 골대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중얼댔다.

"넘어져라, 넘어져."

장난스럽게 뱉은 말과 동시에 너는 옆 학교 남학생이 걸은 태클에 볼 품 없이 넘어졌다. 골대로 달려가던 속도가 꽤나 빨랐는지 너는 날아갈듯 죽 미끄러졌다. 그 모습에 난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배를 잡고 큰소리로 웃었다. 정말로 넘어졌네. 바보, 그거 하나 못 피하고 꼴 사납게 넘어지냐. 너무 웃겨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음악실을 빠져나와 1층으로 내려가는 중간에도 넘어지는 네 모습이 생각이 나 피식 웃었다. 반에 가면 엄청 놀려줘야지. 
예상과 다르게 넌 5교시 수업에 오지 않았다. 보건실에서 엄살을 부리며 쉬고 있을게 뻔하다. 6교시가 되면 오겠지. 하지만 이번에도 제 생각과 빗겨나갔다. 7교시가 끝나고 종례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김종인은 교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김종인이 없는 빈 자리를 바라봤다. 오늘은 내가 청소 담당이었다. 종례 마치자마자 보건실로 달려가려했지만 반 여자아이들에게 덜미를 잡혔다. 담임 선생님이 마무리가 깔끔히 된 교실을 검사하고 나서야 집으로 보내주었다. 나는 부리나케 내 가방을 어깨에 메고 교실 밖을 나가려다 아직 나가시지 않은 담임 선생님을 슬쩍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이젠 정말 교실 밖을 나가려했는데, 내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담임 선생님은 김종인의 가방을 품에 안고 교실을 빠져 나오셨다. 나는 급하게 선생님을 불렀다. 그거 김종인 가방이죠. 주세요, 제가 갖다줄게요. 손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종인이 지금 학교에 없어. 다리를 좀 다쳤나봐. 선생님이 잘 갖다 줄테니까 백현이는 걱정 말고 집에 가."

선생님은 웃으며 날 집으로 돌려보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심한가.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김종인이 넘어진게 재밌어 배를 잡고 웃었던게 괜히 미안해졌다. 입맛을 쩝 다시며 집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했다. 아침부터 펄럭 펄럭 부채질을 하며 교실 안에 들어가자 김종인이 다리를 벌린 채 뚱하게 앉아있었다. 

"김종인. 너 어제 왜 안들어 왔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며 김종인에게 물었다. 그는 날 올려다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궁시렁댔다. 진짜 기가 막히게 골 넣을 수 있었거든? 근데 어떤 또라이 새끼가 발 걸어서 넘어졌어. 허벅다리를 살살 문지르며 욕을 하기 바빴다. 다리가 부러졌나?

"부러진거야, 뭐야. 인대 파열. 그런거야?"

"아니, 그냥 좀 찢어졌어. 피가 안 멈추길래 병원 가서꼬매고 왔지. 아 짜증나. 2주동안은 운동도 하지 말래."

제가 최악으로 상상했던 몸 상태와 달라서 약간 안심이 되었다. 난 또, 다리가 부러져서 평생 못 걷는줄 알았네. 축구를 당분간 못 한다는게 아쉬웠는지 김종인은 아침부터 텅빈 운동장을 바라봤다. 수업 시간 내내 김종인의 옆모습을 몰래 쳐다보기 바빴다. 축 처진 어깨가 조금 안쓰러워 보였다. 



김종인은 1학기 마지막을 절름발이로 지냈다. 반 남자아이들도 모두 김종인을 절름발이라고 불렀다. 크게 신경 쓰지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는 날. 한 달 뒤, 8월 말이 되면 쌩쌩하게 돌아 와 그제껏 본인을 놀렸던 아이들을 두드려 패겠지. 1학년 1학기 아침을 책임졌던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늘도 역시 나는 김종인보다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1학년 1학기의 마지막 인사다. 다행히도 오늘은 김종인과 유리 창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김종인은 손을 흔드는 제 모습에 피식 웃더니 저를 따라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그 녀석 생각에 잠 못 이뤘다.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핸드폰을 사주지 않겠다고 했다. 반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두꺼운 폴더폰이 부러웠지만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김종인의 집 번호를 꾹꾹 누르며 김종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그 녀석의 부모님이 받으면 어떡하지. 그러나 다행히도 제 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김종인이었다. 여보세요. 그 목소리가 짜릿해 들 뜬 목소리로 물었다.

"야, 나 변백현. 너 오늘 시간 돼?"

"왜, 갑자기 뭐하려고."

"다리 다 나았지? 내가 오늘은 특별히 너랑 축구 한 판 해줄게. 애들 모으자. 네시 반쯤 만날래? 아 씻고 옷 갈아 입고하려면 그것보다 조금 늦겠다. 다섯 시 어때. 다섯 시쯤 만날까?"

미안한데, 다음에 불러 줘. 오늘은 못 뛸 것 같아. 김종인은 절 무안하게 만든 채로 자기 말만 내뱉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뭐야, 이 새끼. 빈정 상했다. 일주일 동안 저 녀석 생각만 했던 제 자신이 쪽팔려 연결이 끊어진 수화기를 꽉 쥔 채 욕을 내뱉었다. 생각 해줘서 전화 해줬더니 고마워 할 줄은 모르고. 
이번 8월은 늦더위가 한참 이어졌다. 개학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만 잔뜩 보도 되었다.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선풍기 앞에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 더위를 식힐 때 쯤, 집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형과 나는 눈치를 봤다. 눈빛 교환을 마치고 외쳤다. 가위, 바위, 보. 내가 졌다. 투덜대며 현관 앞 쪽에 놓인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변백현. 나야, 김종인."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이 녀석. 갑작스런 녀석의 전화에 어버버- 말을 못하고 눈동자만 굴렸다. 대답이 없는 내가 이상했던건지 김종인은 재차 입을 열었다. 백현아, 나 김종인이야. 들려? 

"니가 무슨 일로 연락을 다 했냐? 뭐, 이제와서 축구 하자는 건 아니지. 절대 안 가. 너 혼자 놀아. 오늘이 제일 덥댔어. 열사병으로 쓰러져서 죽고 싶냐."

몇 주전, 제 마음에 들지 않게 전화를 끊었던 김종인이 생각 나 괜시리 틱틱 대며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할거면 끊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끊어야겠다. 수화기를 꽉 잡고 내려놓을 준비를 했다. 하나, 둘...뭐?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유난히 마을버스가 오지 않아 정류장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심한 듯 무작정 달렸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됐다. 나는 그 거리를 15분 만에 달려왔다.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목이 바짝 타 기침이 절로 나왔다. 온몸이 땀에 젖어 찝찝했다. 땀에 젖은 손이 구겨진 제 악보를 적셨다. 

'축구 하자는 게 아니야. 좀 웃길 수도 있는데, 나 쇼팽 녹턴 듣고 싶어. 너 그거 연주 잘하잖아. 딱 한번만 쳐주면 안 되냐. 왜 답이 없어. 아, 맞다 너네 집에 피아노 없다고 그랬지 참. 그럼 우리 학교 몰래 문 따고 들어갈까? 음악실에서 연주하면 되잖아. 30분 뒤에 만나자. 지금 한 시니까, 한 시 반에. 늦지 말고 와.'

구겨진 악보를 내려다 봤다. 뚝 뚝. 이마에서 흐르는 땀 방울들이 악보 위로 떨어졌다. 두 시가 넘었다. 김종인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흘렀다. 악보를 머리 위로 올려 겨우 햇빛을 가렸다. 세시가 되고, 네 시가 되었다. 다리가 아파 학교 정문에 주저앉았다. 다섯 시 까지만 기다려 보자. 양 손을 허공에 올려 손을 놀렸다. 몇 백 번을 친 쇼팽의 녹턴이지만, 김종인 앞에서 틀리고 싶지 않아 쭈그려 앉아 미리서부터 손을 풀었다. 손목 시계의 시침이 12를 가리켰다. 다섯 시가 되도 김종인은 오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저렸다. 뚝 뚝. 악보 위로 이번엔 제 눈물이 떨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종인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가 받든 소리부터 꽥 지를거야. 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제부터 절교야, 너. 

일주일 만에 늦더위가 가셨다. 여름이 끝이 나고 내 마음 속에 있던 김종인도 끝이 났다. 8월 말, 한 달이 빠르게 지나 2학기 첫 등교였다. 버스 안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들이 반가워 신나게 인사를 나누었다. 버스가 밀리지 않았다. 등교 시간이 아직 널널하게 남아 정문에서부터 반 아이들과 느긋하게 걸으며 수다를 떨었다. 교실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한 몆 명의 아이들이 우리를 반겼다. 8시 40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한 달만의 조례에 기대가 잔뜩 됐다. 2학기의 첫 시작이 마냥 설레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빠짐 없이 앉히고 입을 떼셨다. 나는 양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2학기 부터는 종인이가 학교에 안 나올거야. 1학기 말에 다리를 다쳐서 치료를 했는데,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았다 하더라고. 동네 병원에서 치료가 잘 안되서 큰 병원으로 가봤는데. 검사 받아 보니까..."

급성 백혈병이래. 얘들아, 종인이 지금 입원 중이니까 너희끼리 놀지 말고. 자주 종인이 병원에 놀러가줘야 한다. 알았지? 선생님의 말씀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수군대지 못했다. 다들 충격에 빠진 채 말을 아꼈다. 우리 반은 단합이 좋았다. 개인적인 일이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반장을 선두로, 김종인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김종인이 있는 병원까지는 버스를 두번 갈아타야 했고, 한시간 반 정도 걸리는 꽤나 먼 거리였다. 1학기 방학식 날 이후로 처음 본 김종인은 몰라보게 핼쑥해져 있었다. 마음 약한 여자들이 김종인의 손을 꾹 잡고 울었다. 나는 표정 없이 녀석을 바라봤다. 그 녀석도 날 빤히 바라봤다. 서로가 말이 없었다.
그 날, 나는 집으로 가자마자 부모님의 팔뚝을 잡으며 미친듯이 졸랐다. 핸드폰 사주세요. 제발요. 하며 말이다. 엄마는 계속 되는 제 고집에 화가 난 듯 손에 집히는 것들은 죄다 던졌다.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도, 김종인도 미웠다. 그 다음 날 나는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달만 바짝 일하면 돈은 충분히 모일 것이다. 아이들이 오늘도 역시 나를 불러 종인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고개를 저었다.

"미안, 나 전단지 아르바이트 하러 가야 돼."

반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네들끼리 교실 밖을 나갔다. 한 달만 기다려, 김종인. 굳게 결심하고 그대로 교실 밖을 뛰쳐나갔다. 하교 후, 나는 저녁까지 전단지를 돌렸다. 부모님께 들키면 혼이 날 게 뻔해 옆 동네까지 가서 전단지를 돌렸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어느새 9월 중순이 다 되었다.

"합창제에 나가자. 10월 예정이야. 그때 되면 종인이도 다 낫겠지. 종인이랑 같이 합창제 나가면 추억도 쌓고 재밌을거야."

선생님의 제안에 다들 눈치만 봤다. 노래는 하기 싫지만, 감히 하기 싫단 말은 못 했다. 종인이의 이름이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자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담임 선생님은 안쓰럽게 웃었다. 합창 연습에, 알바까지. 너무 바쁠 것 같았다. 한숨이 나왔지만 김종인을 위해서 참았다. 내가 너 하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어. 알아? 나는 쓰게 웃었다. 

"다들, 합창 곡으로 쓸 괜찮은 노래 알고 있어?"

반장이 교탁 앞으로 나와 합창제에서 부를 곡을 신청 받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여기 저기서 외치며 제안했다. 반장은 어떤 노래를 해야할지 정신 없이 고르느라 바빴다. 나는 머릿속에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노래 제목을 벙긋댔다. 반 아이들이 모두 날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는 만장일치로 그 노래를 선택했다. 종인아, 널 위한 노래야. 꼭 같이 부르자.
그로부터 일주일 후, 수업 중에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우리는 눈을 내리깔고 교장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갑자기 왜 들어왔지. 아이들은 수근대기 바빴다.

"혈액형 A형인 애들 여기 있냐 없냐. 빨리 대답들 해."

아이들이 소심하게 손을 들자 교장은 답답했는지, 손 똑바로 안 드냐며 죄 없는 우리에게 화를 냈다. A형인 아이들이 반에서 7명이 있었다. 그 중 45kg가 안 되는 삐쩍 마른 여자 애 한 명, 생리 중인 여자 애 한 명, 어린 나이에 허세가 가득 차 담배를 피우는 남자 둘을 제외하고 셋만 남아 교장 선생님 앞으로 섰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는 뒤늦게 알았다. 김종인이 오늘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는 것을. 반 아이들의 수혈로 김종인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학교 안이 엄숙해졌다. 우리는 김종인의 병원에 다시 한번 들리기로 했다. 오늘은 나도 아르바이트를 제끼고 김종인의 병원에 갔다. 분명 몇 주 전 만해도 일반 병실에 누워있던 종인이는 격리 병실로 이동됐다. 우리는 김종인을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두꺼운 유리창 사이로 김종인의 모습을 멀리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보다 더 핼쑥해진 얼굴로 김종인은 우리를 바라봤다. 일어날 힘도 없는지 호흡기를 낀 채 그저 숨만 쉬고 있었다. 김종인은 내가 없는 사이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빠졌나보다. 비니 모자를 눈썹 바로 밑까지 푹 눌러쓴 채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주체 할 시간이 없었다. 

"김종인, 이 병신 새끼야 빨리 나아!"

반 아이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아이들은 그 외침을 신호로 소리를 빽 지르며 김종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크게 외쳤다. 이 유리 너머로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길 바라며. 우리는 쫓겨났다. 아이들이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울었다. 종인이 어떡해.. 눈물 많은 여자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울기 바빴다. 
우리 반은 그 다음날 부터 밤 늦게 까지 학교에 남아 합창 준비를 했다. 다행히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나 또한 아르바이트를 관뒀다. 3주만에 아르바이트를 관두자 사장은 탐탁치 않아했다. 그래도 다행히 일 한 만큼 돈을 받았다. 핸드폰을 살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곧장 아이리버 녹음기를 샀다. 그리고 다음 날은 어제와 같이 똑같이 합창 연습에 매진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합창제를 이틀을 남겨두고 있었다.

"다들 각자 대형으로 서 봐."

반장의 말과 동시에 우리는 빠릿빠릿하게 각자의 자리에 섰다. 음악 선생님이 직접 내려와 우리의 합창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주셨다. 완벽했다. 노래를 완곡 한 뒤 우리는 박수를 쳤다. 하지만 음악 선생님은 부족하단 걸 느끼셨는지 흐트러진 대형을 바로 맞추게 했다.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신이 났던 것도 잠시 다시 대형을 맞췄다.

"백현이 옆에 자리가 너무 남는다. 너네 둘은 백현이 옆으로 바짝 붙어 서야지."

음악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 표정이 굳었다. 아이들 둘이 눈치를 보다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우리는 그 뒤로도 두 세번을 더 연습했다. 내일은 우리 종인이 보러가자. 내가 조심스레 제안하자 아이들은 좋아라했다. 우리 종인이 들을 수 있게끔 노래 크게 불러주자. 알았지? 
종인이는 이제 몸도 제대로 일으킬 수 없을 만큼 아파했다. 반 아이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제대로 눈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종인이의 아픈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반장이 눈치를 줬다. 유리창 너머 저 멀리. 종인이가 우리를 바라 보고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유리창 앞으로 바짝 다가가 대형을 맞췄다. 큰 목소리와 함께 무반주로 노래가 시작됐다. 간호사가 우리를 뜯어 말렸다. 그럴 수록 우리는 서로 팔짱을 꽉 낀 채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목소리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마음 약한 아이들이 오열하듯 노래를 불렀다. 이제 클라이막스였다. 우리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기적을 봤다. 김종인이 일어섰다. 우리는 노래를 완곡 해야한다는 것도 잊은 채 유리창으로 달라붙었다. 종인아, 김종인! 반 아이들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외쳤다. 김종인은 비틀대며 유리창 앞으로 걸어왔다. 이렇게 가까이서 김종인의 얼굴을 보는건 거의 한 달 만이었다. 김종인은 눈을 천천히 굴려가며 반 아이들을 훑었다. 그리고 맨 끝 구석 유리창에 딱 붙어 본인을 바라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김종인이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미친듯이 울었다.

'녹턴, 듣고 싶어.'

우리는 쫓겨났다. 아니, 우리 반 아이들은 쫓겨났다. 나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 삼 십분 넘게 숨어있었다. 천천히 몸을 숙이고 격리 병실 문 앞에 섰다. 저를 발견한 간호사가 어깨를 꽉 잡으며 말렸다. 교복 주머니에 있던 녹음기와 이어폰을 꺼내 간호사에게 건냈다. 이거, 종인이가 꼭 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종인이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병원 밖을 빠져나왔다.






10월 11일. 우리는 잔뜩 긴장 한 채 무대 앞에 섰다. 지휘자는 담임 선생님이었고, 반주자는 음악 선생님이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우리는 서로의 손을 꾹 잡았다. 노래 시작 전, 우리를 살펴보던 선생님이 날 바라보며 왼 쪽으로 손짓 했다.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선생님. 선생님의 계속 된 손짓에도 못 본척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지체되자 선생님은 결국 지휘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반주가 시작됐다. 피아노 전주가 무대 위를 울렸다. 그리고 비어있는 옆자리를 바라봤다. 

종인아, 여기가 네 자리야.

우리는 첫 줄 왼쪽 세번 째 자리를 비워두었다. 종인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미소를 띤 채 하늘 위를 바라보며 울었다. 우리는 열 일곱 어린 나이에 종인이를 떠나 보냈다. 우리의 노래가 하늘 위로 크게 닿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종인아, 우리 목소리가 잘 들리고 있어? 



바람같이 떠났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정을 쌓았다. 무대가 끝난 뒤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갔다. 종인이가 해맑게 웃고있었다. 나는 목구멍부터 밀려오는 뜨거운 무언가에 숨이 턱 막혔다. 입술이 덜덜 떨리며 눈물이 흘렀다. 종인이의 어머니가 날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품에서 엉엉 울었다.

"우리 아들이, 백현 학생 피아노 연주 들으면서 편히 갔어요. 고마워요."


녹음기 안에는 딱 2개의 곡만 저장 되있었다. 트랙 리스트 01번에 저장 된 건 반에서 연습할 때 녹음한 우리의 합창곡이었고,  다음 02번에 저장 된 곡은 김종인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음악 선생님의 음악실 키를 훔쳐 몰래 연주한 쇼팽의 녹턴이었다. 
종인이는 죽기 직전까지 녹음기를 꼭 쥐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녹턴이 네 가는 길을 밝게 비춰주었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이제 종인이를 놓아주었다. 잘 가, 김종인.












가끔씩 네 생각을 해 종인아. 
시간 참 빨라. 나는 벌써 스물 일곱이 됐어, 종인아.
우리 반 아이들은 지금 쯤 뭘하고 지낼까.
그 아이들도 널 추억하며 지내고 있겠지.
시간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겠지.
우리 그때까지 아쉽지만 기다려 봐.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겠지.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이야. 나는 그렇게 믿어.
종인아, 열 일곱의 어린 너를 좋아했어.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나도 
평생 널 추억하며 살거야. 안녕, 종인아.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2017년, 스물 일곱 변백현이 열 일곱 김종인에게.

 

 


 


 


 

이번 새벽은 단편으로 짧게 준비 해봤어요. 

종인이는 백현이의 녹턴을 듣고싶어했죠. 

가는 길이, 백현이의 녹턴으로 덜 아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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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파푸아뉴기니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015B- 이젠 안녕이라는 노래입니다!
이게 벌써 25년도 더 된 노래. 허헣.

반 아이들의 합창곡으로 생각하시고 한번 쯤 더 들어보시는걸 추천합니다:)

7년 전
비회원153.5
아니 잠깐만요 작가님 아니 아 눈물 아 진짜ㅠㅠ 조니나ㅠㅠ 벼ㅕ켜나ㅠㅠ 아니 자까님 아니 ㅈ;ㄴ짜 아ㅠㅠ 눈물 너ㅏ오자나여ㅠㅠ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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