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니가모르게감아
1.박보검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7시 너와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너의 집 앞에 도착해서는 다시 화장을 고치고 어제 산 향수를 다시 한 번 귀밑에 뭍힌 후, 초인종을 누른다
“선생님 오셨어요?”
과외시간은 두 시간 남짓
오늘은 왜인지 너는 네가 매일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이 아닌 교복 차림이다
그래도 너의 까만 머리칼과 함께 풍겨오는 비누향은 오늘도 나를 매혹시키기 충분하다
과외가 시작되고, 오늘 따라 내 눈을 마주치려 더 노력하는 너의 모습에 나는 결국 웃음이 터진다
내 웃음에 반응해 너의 뺨은 분홍빛으로 물든다
“선생님이 좋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서툰 듯 순수한 너의 고백에 나는 붉어지는 너의 귀를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해보는 고백인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너
처음 받는 고백인 듯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나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아요”
그토록 듣고 싶고, 바라왔던 말이지만 오늘 따라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깔끔하고 준수한 너의 모습에
나는 쉬이 나도 널 많이 좋아한다는 정직한 대답을 꺼내기 힘들어진다
2.강동원
비오는 날의 성당은 항상 어둡고 축축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눅눅한 공기가 불쾌하게 나를 감싸고,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밖의 눈을 살피며 그의 방으로 들어간다
“또 왔네요”
무심한듯 건네는 그 한마디에 나는 그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기쁘고 또 기뻤다.
당신 때문에 매일 오는 거예요- 라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키고, 그에게만 닿을 목소리로 조용히 고해성사를 하는 나
이 대화의 주인공이 당신이라는 걸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좋아해서는 안 될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요 신부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뱉은 나의 말에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와 습한 공기만이 멀고도 가까운 우리 사이의 빈공간을 채워준다
이상하게 긴장되는 공기와 잠긴 듯 섹시한 목소리로 낮게 대답하는 아, 나의 신부님 나만의 신부님
“아, 그게 누군지 알 것 같네요”
그리고 뒤이어 내귀에 박히는 나를 타락시키려는 것이 분명한 그의 속삭임
“저도 요즘 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내가 놀라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벙쪄있자,
신성히 내리는 빗소리와 어우러지며 들리는 그의 속삭임은 마치 모순적이게도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하느님, 이곳은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나는 두렵지 않아요, 용기를 내요 아멘”
3.이제훈 (전편과 이어짐)
홀딱 젖은 채 우리 집 안으로 들어선 그는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로 우리 집 바닥마다 그의 흔적을 남기고,
나는 추운 듯 떠는 그를 샤워실로 안내한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이어지는 어색한 정적과 그를 젖게 한 빗소리
“고마워요”
나는 화장실문을 닫아주고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 그가 했던 말과, 그의 표정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그의 샤워소리와 기침소리
그가 내 집에 있다니-.
나도 모르게 나의 모든 신경은 그를 향하고, 나는 점차 내 몸이 긴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딸칵
문이 열리고, 풍겨오는 나와 같은 은은한 그의 샴푸향과, 바디워시 향.
그리고 젖은 머리의 그는 꽤나 나른 한 듯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다
"정말 미안한데,"
샤워 가운을 대충 걸친 채,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내 앞으로 걸어오는 그의 눈엔 나만이 가득하고,
나를 바라보는 그는 단언컨대, 그 어느 때보다 섹시하다
“나 오늘 자고 가도 돼요?”
그를 보내기가 죽기보다 싫어지는 나를 미이라 욕해도 나는 이제 상관없다.
혹시 종교적으로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ㅜ
망상은망상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