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설명하자면 현민이는 없는 플레이어야, 경훈이의 애인일 뿐
― 더 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의 준우승자 김경훈 씨, 제가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트장에 홀로 남아 있던 경훈은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화면 속에 비친 남자, 자신들과 자신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은 그를 ‘붕대맨’ 이라고 칭했다. 정확한 이름이 뭐였더라, 주최자라고 했던가. 하여튼 그건 지금 경훈에게 있어 필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저 남자가 혼자 있는 자신을 불렀다는 것과, 지금은 녹화와 전혀 상관없는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이야, 붕대맨이 플레이어 상대로 권력 남용하고 이거 횡포잖아요~”
― 김경훈 씨에게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뭔데요? 설마 원래부터 우승은 동민이 형이었다고요? 아니면 준우승자 상금?”
― 김경훈 씨는 더 지니어스 게임에 초대된, 입증된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랬다. 보기 좋게 일반인 시험에 -물론 성적이 높아서 들어온 건 아니지만- 통과하여 지금 이 시즌에서 준우승이라는 결과까지 만들어 낸 걸 보면 입증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웃으며 그렇다고 한 경훈은 이어질 남자의 기계적인 목소리를 기다렸다.
― 당신은 더 지니어스에 초대된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의아할 뿐이었다. 그 말은 자존심이 은근히 센 경훈에게, 네 면접 성적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뽑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은 경훈은 깍지를 낀 채 어디를 쳐다보는지도 알 수 없는 그를 향해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말했다. 그 이유 좀 알 수 있을까요? 특유의 젠틀한 억양이 묻어져 나왔다. 남자는 짧지 않은 시간을 아무 말 없이 있었지만, 화면 너머로 봐도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 당신이 정말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는지, 꼭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 그걸 붕대맨이 봐야 했다고요? 이분마저 날 좋아하는구나. 번호는 못 드립니다?”
― 그리고 원하던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제 나가 주셔도 좋습니다.
“허무하기 짝이 없네. 그럼 이제 내가 얘기해도 되죠.”
남자가 말할수록 굳어가던 경훈의 표정에 마침내 억지 웃음이 걸터앉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제대로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성격 탓인지 이렇게 억지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그였다. 남자는 경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부정은 아니었던 것인지 화면은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얼마나, 혹은 어떻게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는지 봐야 할 사람이 딱 한 명 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내 옆에는 없어요. 슬프죠, 나도 원래 슬퍼서 아무한테나 시비 걸고 학업도 포기하고 좀 막 살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지만.”
― ……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이 꼭 보이는 곳에서 날 지켜보는 게 아니더라도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요. 그렇게 마음을 다시 먹으니까 평소보다 더 독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지니어스에도 나오게 되고. 신기하지 않아요? 사람이 사람을 바꾼다는 게?”
― 김경훈 씨, 이제 퇴장해 주십시오. 오늘의 게임은 여기까지입니다.
“내 게임을 돌아가게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어.”
눈물이 맺힌 채로, 경훈은 세트장 안의 모든 방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넓었기 때문에 문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지만, 그는 빠르게, 마치 게임을 하듯이 차근차근 문을 열어나갔다. 몇 분이 지난 후 마지막 남은 하나의 문고리를 잡은 그는 망설임 없이 힘을 주었고, 그대로 방의 풍경이 그의 눈에 담겼다.
“… 붕대맨 실물 본 사람, 내가 처음 맞죠?”
실제로 접한 그의 모습은 화면과 다를 바 없었다. 온 얼굴을 붕대로 감싸고 모자를 쓰고 있는 그는, 앞이 보이기는 하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치밀하게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경훈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아까 말한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이 우연한 사고로 온몸이 불에 탔어요. 그리고는 이런 추한 모습으로 나를 대하기 싫다고 떠나갔는데요, 내가 머리가 좋아서 그때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 말이 뭔지 알아요?”
“… 퇴장해 주십시오.”
“어디에서라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나라는 존재만은 잊지 말았으면 해요. 그리고 꼭 멋진 어른이 되어 줘요, 내가 좋아하는 형은 언제나 빛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잖아.”
경훈은 그가 막을 틈도 없이 그의 모자를 벗겼고 붕대의 끝을 잡아 풀어헤쳤다. 그의 두 손은 경훈의 큰 손에 의해 단번에 결박된 상태였다. 이윽고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눈에도 똑같이 눈물이 고여 있었고, 얼굴에는 불에 탄 흔적이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반 이상은 빨갛게 부어오른 상태였고 심지어 일부는 흘러내려가 있는, 사람들이 보면 흉측하다고 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경훈의 눈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너는, 이미 언제나 빛나고 있었어. 너무 늦게 찾았잖아. 추한 모습이 어디 있어, 오현민인데.”
“손, 풀어 줘요 형…”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떠나서!!! 찾을 수도 없게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울었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의 궁극적인 표현이었다. 역시 멋진 어른이 되었네요, 형은… 물기 서린 소년의 목소리에 서러움이 북받쳐올랐다. 붕대와 모자가 바닥에, 그들만큼이나 서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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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맨 글이 올라왔는데 이런 거나 떠올리고 일상 불가...
나 찌민으로 되게 오랜만에 글 쓴다 ㅜㅜ 그래서 뭔가 낯설기도 한데
읽어준 모든 갓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할게~ 오늘이 원래 짓요일인데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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