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칼을 드세요, 용사여
아침부터 뭐야. 현민은 굳은 표정으로 진호를 바라보았다.
현민은 어제 차 안에서 동민에게 뺨을 맞게 된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러니까 왜 들어가서 대신 맞아요! 라고 현민이 화를 내자 동민은 진호가 맞을 걸 알면서 놔둘순 없잖아. 란다. 그걸 왜 차장님이 맞아서... 라고 현민이 말을 흐리자 동민은 만약 너가 맞는 상황이었어도 난 달려들었을거야. 라고 대답했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현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탕비실에서 물을 마시며 어제의 대화를 곱씹어보고 있는데, 자신의 뒤로 진호가 다가왔다. 진호는 대뜸 작은 USB 하나를 현민에게 넘긴다. 이것 안에 든 파일들 좀 재정렬해줘. 이건 대리님 업무 아닌가요?
"... 어제 그 일 때문에 나 시말서 써야 돼."
아, 어제 진호가 광고주의 속을 긁었었지. 확실히 진호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광고주에게 좀 더 둥글게 말할 필요는 있었다. 상민도 그렇게 생각하며 진호에게 시말서를 써 오라고 말했다. 자신이 까칠하게 말해서 동민이 얼굴을 다쳤다는 죄책감에 진호는 잘못을 인정하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그래서 이거 정리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대신 해줘. 현민은 허, 웃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호는 오케이 한거지? 그럼. 이라고 말하며 몸을 돌린다.
"... 어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알고 있어요? 현민의 질문에 진호가 우뚝 선다. 어제 입 안이 다 터져서 저녁도 못 먹었어요. 이게 다 대리님 때문이에요.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했으면 대화를 잘 하는 방법을 아실텐데요. 인턴 꼬맹이한테 본보기가 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높고 흥분된 목소리. 현민은 진호에게 어느새 화를 내고 있었다. 진호는 현민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동민이 뺨이 부은채로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던 모습이 생각났다. 괜찮을리가 없잖아. 형이나 나나, 둘 다 괜찮을리가 없잖아.
"...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휴, 아니 대리님은..."
"어떡하라고!!!!!!!!!!!"
진호의 울부짖음에 현민은 화를 내다가 놀라서 입을 다문다. 뭐야, 나 때문에 화나서 미친건가?! 그러나 진호는 지금 현민이 안중에도 없다. 동민이 형. 나한테 관심이 아예 없으면 없던가. 나 실컷 걱정하고, 나 실컷 신경쓰면서 밀어내는 건 뭐야. 차라리 처음부터 단호하게 밀어내던가. 이제 와서 왜 애매하게 밀어내는 거야. 그러면서 막상 한발 더 다가가면 못 밀어내고 바라보고 있는 건 뭔데. 그리고 어제는 왜 뛰어들어와서 날 위해주는 거야. 소리를 지르고 부르르 떠는 진호의 뒤에서 현민은 눈치를 살핀다. 어, 저기요. 여기 방음 잘 안되는데...
"미워할수도 없게, 뭐 어쩌라고..."
한숨을 쉬며 진호는 현민만 남겨두고 나가 버린다. 현민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서 진호가 사라진 뒤에도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 더 몰아붙였다간, 진호는 폭발할 것이다. 현민은 한숨을 쉬면서 벽에 기댔다. 차장님, 내가 나타나기 전에 대체 얼마나 이 사람이 들이대는 걸 그냥 받아준 거에요. 선을 넘어설 땐 막을 줄도 알라구요. 상처받을까 봐 넘어오는 걸 허용하지 말구요. 막을 때보다 안 막을 때 자기 자신이랑 상대방 모두 마음에 상처를 더 크게 받는 걸 왜 몰라요. 대체 이 사람은 강한 척 센 척만 할 줄 알지, 왜 이렇게 착한 거야. 현민은 입 안이 쓰다.
"글쎄..."
연승의 질문에 동민도 갸웃한다. 그리고 둘은 찰싹 달라붙어있는 준석과 경훈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요즘 연승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음침하고 매사에 시니컬한 준석이, 요 근래에 갑자기 밝아졌다. 콧노래를 부르질 않나, 언제 어디서나 헤실헤실대질 않나. 사무실로 경쾌한 발걸음으로 폴짝대며 들어갈 땐 연승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심지어 언제 한 번은, 기획팀 사무실에 자료를 건네주러 들어왔는데 펜을 귀에 꽂은채로 들어왔다. 이건 어느 나라 개그인가 싶어, 연승은 준석이 사라질때까지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경훈은 요즘 준석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분명 예전에는 장차장님한테 맨날 혀엉, 이러면서 달라붙었는데 말야. 요즘엔 별로 달려가지도 않고. 오히려 준석씨만 나타나면 주인 반기는 개처럼 구니. 그런데 그 시니컬한 준석도 경훈이 달려들면 은근히 받아주는 분위기고. 경훈과 제일 친한 동민이 뭐 아는 게 있을까해서 연승은 물었던 것이다. 저 둘이 요즘 뭐 같이 하는 거 있어요? 연승의 질문에 동민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김경훈 놈, 엄청나게 이상하다. 예전 같았으면 형 심심해요, 형 놀아줘요, 형 술 마셔줘요. 라며 매일 카톡을 보내는데. 요즘은 그런 것 없이 잠잠하다. 심지어 어제 새벽에 본 SNS에는 어디 술 집에서 누군가가 찍어준 듯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올렸다. 나는 왜 금사빠인가. 선천적이라면 그댈 바라보기 위해, 후천적이라면 그댈 만나기 위해. 뭐 이딴 글과 함께. 동민은 소름끼치는 글을 보고는 짜증을 내며 경훈의 팔로우를 끊어버렸다. 요즘, 저거, 설마?
"김경훈."
준석의 옆에 앉아 뭐라고 소근대던 경훈은 동민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다. ㅇ, 에? 동민은 검지손가락을 까딱, 한다. 이리 와 봐. 저 지금 중요한 얘기하고 있는데여! 경훈이 대들자 동민은 어쭈? 한다. 그래, 다 컸다 이거지.
"경훈아, 너는 왜 나한테 지금 오지 않을까? 선천적이라면..."
"...지금 가겠습니다, 상사님!!! 지금 당장 당신의 곁에 가게 해 주십시오!!!"
으아아아아!!! 경훈은 괴성을 지르며 엄청난 기세로 동민에게 돌진해왔다. 그래, 착하지. 동민은 경훈의 뒤에서 인형을 뺏긴 꼬마아이의 표정을 짓고 있는 준석을 보며 어느 정도 확신했다. 이제 김경훈을 닦달해서 확실한 정보를 얻는 일만 남았군. 그렇게 생각하며 경훈을 자료실 안에 밀어넣고 문을 닫아버렸다. 따라들어오려던 연승은 코 앞에서 문이 닫히자 시무룩하다. 나도... 나도 알고 시퍼...
"너 요즘 연애하냐?"
자리에 앉자마자 던지는 동민의 돌직구에 경훈은 얼어붙었다. 에? ㅇ, 아닝데여! 아이씨, 뻥을 쳐? 동민이 손을 들어올리자, 경훈은 깨갱 한다. 그 날 결국 그렇게 된 거냐? 동민의 말에 경훈이 무, 무슨 소리하는지 이, 일도 모르게써여! 라고 되지도 않는 발뺌을 한다. 결국 어제 경훈의 SNS 캡쳐를 회사 사보에 싣겠다는 동민의 말에 경훈은 바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네. 그 날부로 사귀게 됐습니당...
"야, 사귀게 됐으면 좀 티를 내지 마. 아까 연승씨가 너네 뭐냐고 물어보더라."
"...으엥? 우리 완전 티 안내는데?"
"뭔 소리야, 둘 다 평소같지도 않고 찰싹 붙어 다니는데."
아니에요. 우리 회사 안에서는 손도 안 잡고 뽀뽀도 안하는데! 경훈의 말에 동민은 이번엔 진짜로 경훈의 머리를 세게 한 대 친다. 누구는 회사 안에서 그런다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왜 너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니, 김경훈아. 경훈은 머리를 문지르다가, 헤헤 웃는다.
"형, 저 요즘 진짜 행복해 죽겠어요."
"...알 만하다. 금사빠가 드디어 짝사랑 12번만에 연애를 하니."
아, 그거 준석씨한테 비밀이에요. 말하지 말아줘요, 제발... 경훈이 징징대자 동민은 굳이 그럴 필요 있냐? 라고 되묻는다. 이미 넌 입이 싸니까 그런거 미주알고주알 다 말했을텐데. 동민의 말에 경훈은 잠시 기억을 되짚어본다. 헐, 그러고 보니 예전에 술 마시면서 다 말해버렸다! 아 어떡하지. 동민은 눈썹 한 쪽을 들어올린다. 에휴. 한심한 놈.
"그런데 형은 언제 사귀어요?"
"...? 나? 내가 누가 있다고."
오 인턴이요! 경훈의 말에 동민은 표정이 굳는다. 뭐? 누구? 아이 참, 현민씨요! 요새 둘이 분위기도 좋고, 어제 형 맞았다니까 얼굴이 사색이 돼서는 큰일난 사람처럼 달려가고. 둘이 뭐 있는 거 아니었어요? 경훈의 말에 동민은 부인한다. 야, 뭔 그런 애기랑 내가 그런 게 어딨겠냐. 그리고 난 아무도 안 좋아해. 좋아하는 사람 없어. 동민의 말에 경훈은 에 - 이, 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건 내 촉인데. 확실히 현민씨는 형한테 마음 있어요. 눈도 못 떼고 병아리가 엄마 따라다니듯이 형 따라다니는데 뭐!"
마치 내가 준석씨한테 하는 것처럼♡ 동민은 앞에서 대놓고 지르는 염장에도 대꾸를 할 수가 없다. 가만히 굳어있자, 경훈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다시 준석씨한테 가 볼게요. 라면서 문으로 다가가다가, 동민을 바라보고 한 마디 한다.
"솔직히, 형도 걔 싫어보이진 않고."
이거 둘 다 맞으면 난 완전 셜록이지, 김셜록! 경훈은 동민의 속도 모르면서 헤헤, 웃으면서 문을 열고 나간다. 동민은 혼자 남아서 입술을 꾹 깨문다.
좀 너무 세게 말했나, 싶어 상민은 미안했다.
어제 광고주가 난리를 친 데에는 광고주 70, 진호 30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문이 까진 무릎에 약을 바르고 동민이 쿨팩으로 뺨을 진정시킬동안, 상민은 진호를 크게 혼냈다. 대체 이게 무슨 프로답지 못한 짓이냐고. 아무리 광고주가 그렇게 나온다고 해도 똑같이 나가면 비슷한 인간밖에 더 되냐고. 내일까지 시말서 써서 올리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오늘 진호의 상태가 좋지 않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인상을 쓰고 다녔다. 저, 이따 1팀 중 한 명 외근 보냈으면 싶은데... 그러나 아직 볼의 붓기가 빠지지 않은 동민에게 말할 수는 없고, 진호에게 말하려는데 진호가 저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 좀 살살 말할걸. 저렇게 누구 죽일 표정으로 있을 필요는 없잖아..! 상민은 남은 사람인 경란, 윤선, 준석 중 누구를 외근보낼까 생각하는데, 뒤에서 인생에서 한 번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팀장님 - 뭐하세요?"
돌아보니, 생글생글 웃는 ... 준석?! 준석이, 이렇게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웃고 있어? 상민은 더욱 무서워졌다. 준석은 더욱 눈웃음치며 왜 1팀 사무실 앞에 서 계세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라며 상냥하게 묻는다. 와... 상냥한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어? 상민은 덜덜 떠는 목소리로 서류 하나를 내민다. ㅈ, 저기 준석씨. ㅇ, 오늘 오후 이, 이 회사 영업, ㅂ, 부탁해도 되, 될까? 술은 안 마신다, 하던데...
"네! 제가 갈게요!"
...바로 오케이했어?! 상민은 더욱 멘붕이 온다. 원래 깐깐하게 따져보고 열 개 정도의 질문을 던진 후에야 그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라며 딱딱하고 시크하게 대답하던 준석이었는데. 그런데 그냥 바로 오케이를 한다고? 이렇게 겁에 질린 상민과는 상반되게, 준석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 오후 외근이면 회사에 안 돌아오고 외근한 곳에서 빨리 퇴근해야지. 그리고 경훈씨 퇴근할 때까지 집청소 해놓고 요리나 해놓을까? 뭘 해놓는게 좋을까? 라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저희 사무실 앞에서 뭐하세요?"
동민은 이런 괴상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왜 둘이서 이상한 표정으로 우리 사무실을 막고 있는거지? 그러자 준석은 앗, 실례했습니다! 라며 동민에게조차 상냥한 말을 하며 2팀 사무실로 들어가버린다. 상냥한 이준석이라니... 공포다. 동민은 발목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소름이 돋았다. 뭐야, 저 말투는. 아무리 사랑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무서운데?
"아, 오늘 오후에 외근 할 사람 물어보려했는데, 준석씨가 간다네."
"... 거긴 술 안마시는 분위긴가요?"
"다행히 이번에 미팅 잡은 사람이 많이 마셔봤자 주량이 맥주 한 잔이래."
그 정도면 안심이야. 상민의 말에 동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네요, 또 제가 출동할 일은 없어서.
"저도 참 다행이네요."
갑자기 들려오는 말소리에 동민과 상민은 깜짝 놀란다. 언제 문을 열고 있었는지, 진호는 문을 열고 서 있었다. 어, 지, 진호씨 시, 시말서는? 상민이 어정쩡하게 손인사를 건네며 진호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진호는 동민을 바라보고 있다. 차장님이 오늘 오후에 외근을 안 나가면, 저랑 얘기할 시간이 있는 거네요.
"오후에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업무 다 끝내고, 퇴근 전에 잠깐이면 됩니다. 그리고 문이 쾅 닫혔다. ...진호씨랑 동민씨, 무슨 일 있었어? 원래 저런 말투 아니었잖아. 상민처럼 동민도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웠다. 처음이다. 진호가 자신에게 이렇게 날을 세우는 것은. 설마, 이제 한계인건 아니겠지. 동민이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이 다가온건가 싶다. 진호의 상처가, 이제는 진호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걸까. 동민은 숨을 들이쉰다.
이제 해가 지기 전에도 날씨가 차다. 찬 바람이 와이셔츠만 입은 동민의 몸을 파고든다. 옥상이라 더 추운 것 같다. 동민은 으슬으슬해서 팔짱을 낀다. 그러나 이 차가운 바람도, 진호의 표정보다 자신을 아프고 서늘하게 할 순 없었다.
5시가 되자, 진호는 상민에게 시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동민의 자리로 와, 잠시 얘기 좀 하시죠. 라고 했다. 존댓말이라니, 그렇게 딱딱한 말이라니. 너 답지 않잖아, 진호야.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진호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온 동민이다. 진호는 옥상 난간에 팔 하나를 걸치고 동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동민이 이제껏 보지 못한 눈이다. 항상 가득했던 애정도, 기대하고 있던 열망도, 지지부진한 관계에 대한 조급함도. 아무것도 없었다.
"형."
말없이 진호의 눈만 바라보다가, 진호의 부름에 재빨리 반응한다. 응, 진호야.
"나는 형이 날 자상하게 챙겨주는 거에 설렜었어. 그러다가 다시 장난치고 나한테 욕을 하는 형한테, 그래, 재미있는 형이다. 라고 생각했고."
그러다가 또 카리스마 있게 이끌어주는 모습에 멋있다고 생각했고. 일이 끝나고 나서는 부드럽게 챙겨주는 모습에 다시 설렜고. 그렇게 나는 형한테 반하게 된 거지. 진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 면이 형의 전체가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됐어. 내가 너무 한 면에만 몰두하고 있었나 봐. 진호는 고개를 흔든다. 현민의 말을 듣고 많이 고민을 한 것일까. 동민은 현민이 진호에게 새벽에 말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처음엔 내가 그 많은 면들을 보고 견딜 수 있을까 싶어서, 이제 그만 포기할까 생각도 했어."
".....진호야."
"그런데 이렇게 싱겁게 끝낼만큼 내 마음이 작은 게 아니라서."
하루이틀 형을 좋아한 게 아니잖아. 진호는 한 발짝 동민에게 다가선다. 동민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선다. 그걸 보고, 진호는 다시 한 발짝 다가선다. 동민이 또 뒤로 물러서려하자, 진호는 동민의 어깨를 잡고 앞으로 당긴다. 서로의 코가 닿을만큼 가까워졌다. 동민이 놀라 진호를 바라본다.
"내가 반한 이외의 모습을 봐도, 놀라긴 해도 난 피하지 않을게."
"........"
"그러니까 이제, 그 벽 좀 낮춰주면 안될까? 나, 좀 힘든데."
포기는 못하겠는데, 나 형의 벽에 계속 부딪히면서 힘들어. 욕심 안 내겠다는 말, 취소할래. 나 많이 욕심나, 우리 관계가. 형이 날 잃기 싫어하는 것처럼, 나도 형을 잃기 싫어. 그러니까, 나도 노력할테니까, 형도 노력 좀 해주면 안될까? 진호의 말에, 동민은 눈이 흔들린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 저기, 진호야. 나 좀 생각할 시간을 줘."
"미안, 생각은 형이 따로 했으면 좋겠어. 나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힘이 없어."
나는 이제 많이 욕심을 낼거야. 벽을 오르는 손을 잡아서 안으로 들일지, 아니면 그대로 놓아버릴지는 형이 따로 생각해. 진호의 굳은 얼굴을 보며 동민은 느낀다. 이건 선전포고구나. 남은 건, 동민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것 뿐이다. 이 관계의 칼자루는, 내가 쥐어야 하는 구나. 동민은 한숨을 쉰다. 바람이 불어와 동민의 한숨을 날려버린다. 바람 한 줌 어딘가에 어린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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