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남자들이란 28초에 한 번 섹스를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이성애자의 경우고, 게이의 경우는 대략 9초에 한 번이다.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심지어는 빨래를 개다가도 어느샌가 정열적인 섹스를 할 남자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어젯밤을 함께 보낸 남자보다도 더 멋진 남자를! 그것이 우리가 지금, 새벽 1시에 침대 속이 아닌 레드 가넷이라는 게이 클럽에 있는 이유이다. 누가 이 시간에 혼자 차디찬 이불에 있고 싶겠는가? 혹시나, 오늘 하룻밤을 함께 할 멋진 그이가 여기서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생각한 진호는 한숨을 내쉰다. 게이들에게 가장 핫한 남자는 키 180, 떡 벌어진 등과 어깨, 진한 눈썹과 빠져들듯한 우수에 찬 눈빛, 매끄러운 허리와 골반의 선, 길고 잘 빠진 다리를 가진 사람이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옆집 강아지처럼 귀여운 얼굴에, 키 171(이라고 진호는 외친다), 그리고....보통 길이의 다리. 뭐 세번째 다리는 자신있지만. 이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진호는 바에 몸을 기대어 흔들리는 조명 속에서 춤추는 무리를 바라본다. 옷 벗은 남자는 많지만, 날 옷 벗게 할 만큼 꼴리는 남자는 없다. 오늘은 완전 꽝이네. 흐느적거리며 진호의 옆으로 다가온 경훈도 똑같은 생각이었나보다. 심드렁한 얼굴로 바에 비스듬히 기대더니 스테이지를 노려본다.
"수질 1급이라며, 언제부터 여기가 폐수처리장이었지?"
"여기서는 연가시도 살지 못할걸."
경훈의 말을 맞받아치며, 준석은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준석도 스테이지를 훑어보다가,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눈정화시키고 싶은데, 이대로 눈을 뜨고 있다가는 시신경만 파괴될거야. 경훈과 준석, 진호의 오랜 친구다. 게이 세계에서는 친구란 그저 작업에 실패한 남자일 뿐이라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진호에게 이 주장은 옳지 않다. 둘 다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 끓여버린 파스타 소스 같은 느물느물한 것들이다, 이준석과 김경훈이란. 진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경훈을 바라보았다. 경훈은 느끼하게 왁스를 발라 올린 머리를 뽐내며 진호에게 고개를 돌린다.
"어제 너 원나잇, 불러봐. 좀 빌리자. 이거 원, 소득이 없으니."
"그런 완벽한 사람이 너랑 잘 것 같냐."
"그런 사람보다 밑의 클라스라도, 너랑은 아무도 안 잘걸."
경훈의 말에 준석은 시무룩해진다. 준석은 클럽에 오는데 오늘도 주름진 와이셔츠에 밑이 짱뚱한 면바지를 입고 왔다. 게다가 운동화라니, 경훈은 준석의 발을 바라보며 혀를 찬다. 한국 탑 게이가 되고 싶다는 놈이, 더럽게 안 꾸민다. 이 바닥에서 어느 정도 팔리려면 포장 기술을 좀 익혀야 하는데 말이야, 이준석은 글러먹었어. 저랬다간 첫날밤은 고사하고 어느 놈 하나 목덜미도 못 핥아볼걸? 경훈은 시무룩한 채로 먼 곳만 바라보는 한심한 친구를 보며 불쌍한 기분이 든다. 진호는 그런 애처로운 준석을 보며 불우이웃에게 보내는 듯한 눈빛을 보내준다. 넌 착하고, 착하고, 착해. ....좋은 친구야. 준석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연다.
"아, 진짜 집에 가고 싶다. 레드 가넷에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게 말이 돼?"
"말은 되지, 우리가 장동민이 아니니까."
진호는 준석에게 대답하며 스테이지의 중심을 바라본다. 그 한가운데서, 여러 벌거벗은 남자들이 한 명에게 구애의 춤이라도 추듯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한 남자는 그저 훑어보기만 할 뿐, 도무지 반응이 없다. 이 남자의 이름은 장동민.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키가 크지도 않다. 앞에서 말한 대로, 전혀 인기 있는 게이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장동민에게는 무언가 거스를 수 없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다. 이 카리스마는 사람을 대들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장동민에게 홀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지. 진호는 불나방들처럼 동민에게 이끌리는 게이 무리를 바라본다. 참, 사람 하나 꼬시는 데 타고났다.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사람들을 홀리게 할 수 있지? 대단해.
"술이나 마시러 가자."
"..........동민이 형은?"
"내가 데리고 갈게."
진호의 말에, 준석과 경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저 클럽을 빠져나간다. 진호는 동민의 쪽을 바라본다. 그런데 몇 초 사이에 벌거벗은 인원의 수가 늘었다. 아니, 이 놈들이 단체로 발정제라도 타 먹었나. 지네끼리 할 것이지, 장동민이 뭐가 대단하다고 이렇게 인산인해를 이루는 거지? 진호는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동민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게이들은 착 달라붙어 절대 진호에게 조금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아이씽, 왜 이래! 진호가 버럭 짜증을 내자, 나른한 눈으로 춤추고 있던 동민이 진호에게 시선을 돌린다. 진호는 입모양으로 말한다. 나와, 한 잔 하러 가자. 동민은 알았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진호는 입구에서 5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 인산인해를 뚫고 나오는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단하다, 대단해. 진호는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입구로 다가오는 동민을 바라본다. 그리고 동민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동안 3명이나 억지로 입 맞추려는것을 간신히 떼어내는 광경을 바라본다.
현민은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느낀다. 새벽 한 시의 게이 골목은, 현민에게는 너무나 낯선 공간이다. 한 번도 이런 공간에 대해 상상해본 적도 없고,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라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길을 걸으며 혀가 다 보일 정도로 격렬하게 키스를 하는 남남 커플을 볼 때는, 눈이 절로 질끈 감겼다. 이런 거, 하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아. 그러나 현민은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야 했다. 이런 낯선 공간에서 쫄았다는 티를 전혀 내어서도 안 된다. 현민은 애써 담담한 척,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다. 그러나 라이터를 켜는 손이 달달 떨린다. 누가 봐도 이 소년은 명백하게 처음으로 담배를 피며, 이 곳의 이방인이다. 콜록, 콜록. 매캐한 담배 연기를 간신히 입 밖으로 꺼낸 현민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자신의 발걸음을 향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리고 길에서 혼자 걷고 있는 사람에게 당당한 척 말을 건넸다.
"여기, 괜찮은 곳 알려주실래요?"
"식성에 따라 다르지. 이쁜이들은 브레이킹룰, 울끈불끈이는 블랙심텀, 나머지 것들은 레드 가넷."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현민은 의아해진다. 식성? 여기 게이 골목 아니었나? 현민을 바라보던 남자는 눈썹을 들어올린다. 볼때기가 빵빵한 것을 보아하니 여기 오긴 너무 어린 것 같은데.
"뭐, 또래를 찾으면 학교나 가라구. 이런 데엔 없을테니."
그리고 남자는 현민에게서 등을 돌려 가 버린다. 자신이 고등학생이라는 게 티가 너무 나나, 옷을 좀 더 쫙 빼입고 왔어야 했나. 담배를 피고 있어도 어리다는 것이 뻔히 보인다는 데에 상심한 현민이다. 그런데 진짜 어디로 가야하지, 나 여기 길 모르는데. 현민은 비척비척 걸음을 옮긴다. 아무데로나, 사람들이 많은 데로 가봐야 겠다.
한편 동민은 간신히 클럽에서 빠져나온다. 오늘 하루는 꽝이다. 이쁘장한 놈들 하나 없고, 징그럽게 배에 털이나 북실북실 난 것들이 옷을 벗고 달려들다니. 온 몸에 털을 뽑아다가 소금물에 절여버려야해, 저런 놈들은. 동민이 으르렁거리자, 경훈은 히엑 - 하고 놀란 척을 한다. 오빠, 그렇게 사나운 말하시면 우리 무서워요! 경훈의 너스레에 동민은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다.
"야, 차 어딨어. 김경훈, 가져와."
"어머, 나 술먹었는데엥 - 오빠, 음주운전은 나빠여!"
"게이 골목에서 살인 사건, 신문에 실리게 해줘? 나 술 안마셨으니까, 내가 차를 몰지."
운전하는 오빠, 멋쪄여! 경훈의 외침을 무시하고, 동민은 차를 세워 놓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저 얼빠진 놈이 이 골목 어딘가에 세워놨는데. 계속해서 시선을 돌리다가, 비척비척 걸어오는 한 인영에 눈길이 꽂힌다.
찾았다.
얇고 헐렁한 맨투맨에, 얄쌍한 다리를 감고 있는 청바지. 거기에 수수한 운동화에, 순수해 보이는 귀여운 얼굴.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 얼굴에 동민은 시선이 멎는다. 이 귀여운 어린 남자는 술이 취한건지, 나른한 눈빛으로 동민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는다.
"...........형?"
진호는 동민의 눈길을 따라 길 건너편을 바라본다. 웬 어린아이 하나가 서 있다. 그런데 이 어린아이는 동민을 바라보며 벽에 삐딱하게 기댄 채 가만히 서 있다. 뭐야, 지금 끼 부리네. 역시 장동민이야, 클럽에서 나오자마자 끼순이 하나가 저러고 유혹을 하고 서 있으니. 근데 어쩌냐, 너 같은 어린애를 동민이 형이.....형, 혀엉? 진호는 갑자기 어린아이 쪽으로 움직이는 동민을 보며 당황한다. 동민은 경훈과 준석, 진호를 놔두고 길을 건넌다.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밤을 함께할 당신을 찾았다는 게 중요하지. 현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빤히 바라본다. 낯선 게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노골적으로 다가온다. 솔직하게, 두렵다. 오늘 밤의 종착지가 어떻게 될 지는. 하지만 지지 않겠어, 현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전적인 눈빛을 한다. 마침내 동민은 현민의 앞에 섰다. 동민은 흥미로운 듯이 현민을 빤히 바라본다.
"오늘 어땠어?"
"그냥, 돌아다녔는데 별 거 없더라고요. 브레이킹룰, 블랙심텀..."
"유감이네. 돌아다니기만 했다니. 이제는 뭐 할거야?"
"딱히."
현민이 도도하게 어깨를 들썩인다. 당당해보이기 위해 허세를 부려보는 것이다. 뭐, 갈 곳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현민의 도도한 태도에 동민은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한 걸음 더 현민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담배 냄새와, 달짝지근한 냄새가 동시에 현민에게 풍겨온다.
"그럼 이제부터 할 걸 만들어 줄게."
이 말과 동시에, 동민은 현민의 손목을 그러쥔다. 그리고는 마침 달려오는 택시를 손짓으로 부른다. 경훈과 준석, 진호는 당황한다. 아니, 우리는 어쩌고 갑자기 낯선 놈을 덥석 잡아서 택시를 타는거야? 어디가! 우리는 어떡하라고!!!!!!! 셋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민은 택시에 현민을 밀어넣는다. 그리고 자신도 택시에 몸을 싣는다. 곧 택시는 게이 거리를 빠져나간다. 셋은 허탈하게 택시의 꽁무니만 바라본다.
어제 썼던 퀴어애즈포크 지니어스로 바꿔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장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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