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씬 설정 주의! 나에겐 소중한, 아니 소중했던 약속이 하나 있다. - 나, 진호, 그리고 재희는 둘도 없는 단짝들이었다. 9살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난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우리는 다같이 모여 약속을 하나 했다. 25살이 되면, 꼭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난 해외로 떠났다. 그 이후에도 연락을 계속 주고 받았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느샌가 연락의 횟수가 줄었고, 결국 끊겼다. 외로웠다. 말도 통하지 않고, 피부 색도 다르단 이유로 난 외톨이가 되었다. 의지할 친구들마저 연락이 끊겼다. 죽고만 싶었다. 어렸던 나이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만든 부모님도 싫어 비뚤어졌다. 힘든 상황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만 싶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을 견디고 견뎠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웠다. 폭충전야라고 했던가. '그' 전화를 받고 나서의 충격은 더 컸다. 진호에게 연락이 왔다. 실로 오랜만이라 약간 투정부릴 심산이었다. 재희가 죽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부랴부랴 한국으로 들어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직 23살인데, 약속도 지키지 않고 가버리다니. 진호가 알려준 병원으로 갔다. 해맑게 웃고 있는 재희의 영정사진이 야속했다. 야속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국화꽃을 내려놓고, 조용히 서있는 진호의 앞으로 향했다. -진호야. -...오랜만이야. -너, 목에 이거 뭐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가 아니잖아! 넌 또 왜그랬어. 너네가 가버리면, 남겨질 내 생각은 안해? -요환아. 여기 장례식장이야. 목소리 낮춰. -하, 참. 슬펐다. 그리고 미안했다. 왜 나는, 나와 같이 슬퍼하는 진호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진 못할 망정 화만 낸걸까. 자괴감이 들었다. 진호는 나보다 몇배는 힘들텐데. 왜 나는. 발인이 끝났다. 재희는 화장됐다. 우리들의 약속 장소 근처 강에 뿌려졌다. 진호는 휘청였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았다. 재빨리 잡아주었다. 진호의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있지. 나 용의자였어. -...니가? -응. 의심도 받았고, 상처도 받았는데. 이젠 괜찮아. -...... -니 말마따나 나도 재희 따라서 죽으려고 했어. 난 재희가 너무 좋았거든. 막 고백편지도 쓰구, 그랬는데... 진호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범인이 쓰레.기 새.끼지 뭐. -그렇지? -나, 우리들 약속 지키는 나이까지 한국에 있을게. -요환아. -그러니까 나 좀 거둬주라. 나 한국에 연줄 너밖에 없잖아. -...... -우리들 약속 지키면, 나랑 외국 가자. -너 도대체... -너 혼자 내버려둘수가 없어서. 너 버려두고 나 혼자 다시 돌아가버리면, 나 죄 짓는 기분일거 같아서. 외로움은 버틸 수 없는 거란걸 아니까. 나도 그랬거든. -하... -그러니까, 나랑 살자. 우리 둘이라도 살자. 꼭 살자. 재희 몫까지. -우리만 살아가는 거, 재희한테 미안해. -아니, 재희 걔 성격이라면 우리가 여기 남는 걸 더 좋아할걸. 넌 나보다 오래 붙어 있던 애가 그것도 모르냐? -그런가. 우리는 손을 꼭 붙잡았다. [금귤] 어릴 때의 우정, 혹은 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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