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형님을 베었다."
힘이 풀렸다. 이제 시작인건가?
피의 군주. 광종의 운명이.
알 수 없는 분노가 튀어 올라왔다.
당신이 사람을 죽여서도 측은해서도 아냐.
왜 하필 그 사람이 죽은걸까?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던 걸까?
난 그 사람을 한 번 제대로 불러보지도 못했어.
'황자님- 3황자님'
머릿 속에 맴도는 이 말을, 입 밖에 꺼내보지도 못한 이 말을.
마음속으로만 불러봤는데, 제대로 눈을 맞추지도 못하였는데...
당신이 연화공주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니 난 당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형님은 누이를 먼저 찾으라고 하셨어요. 나는 그 분의 친형제입니다.
표정만으로도 어떤 심정인지 잘 알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엔 형님이 폐하의 승하소식만 안중에 계신듯 보였겠만 제 눈에는 누이가 제일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걸 직감하신듯 했어요."
3황자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젖어있을 때 14황자님께서 날 찾아와 얘기하셨다.
3황자님은 아무도 모르게 나를 은애하셨다고.
"거짓말.. 아닙니다. 그 분은 저를 은애하실 분이 아닙니다. 아시질 않습니까?
황자님께선 분명 연화공주님을...."
"폐하께서도 오상궁을 은애하셨습니다."
황제. 황제의 자리, 황후의 자리.
아직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이 나라 고려에서 나 같은 여인은 그 분에게 힘이 되어드릴 수 없다.
또한 힘이 없는 자는 자신의 사람을 지킬 수도 없다.
3황자님은 그걸 잘 알고 계셨던 거야. 그래서....
"누이, 형님께선.."
"저도... 저도 그렇습니다..."
14황자의 침묵이 이어졌다.
내 시야엔 들어오지 않지만 아마도 놀란 표정이겠지.
"은애.. 합니다... 그 분을..."
"하지만 누이는..."
"예 압니다. 모두가 4황자님, 혹은 8황자님과의 연을 생각하고 계시다는걸요.
하지만 전..."
저는 나약해 빠졌습니다. 제 마음하나 추스르지 못합니다.
나 때문에 오상궁이 돌아가셨고, 어쩌면 내가 8황자의 욕망을 일깨워 요황자님의 명줄을 앞당겼을겁니다.
8황자가 아니더라도 제가 알려드린 길로 백아님이 정윤을 데려오셨을테죠.
내가 4황자의 흉을 가려주었기 때문에 3황자님의 마음을 채 듣지 못한채, 제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로 떠나 보내야했던 걸까요?
순리대로 사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워 나는 황자의 얼굴에 손을 댄걸까요.
아니, 그 때 그 아일 구하려 뛰어들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차라리 평안했을겁니다.
.
.
.
1년이 지났다. 나는 무수리에서 벗어나 다시 궁녀로 돌아왔다.
"누이! 누이!!"
"저 어디 가지 않습니다. 누가 보면 제가 도망이라도 치는 줄 알겠어요."
"하... 하아... 누이, 돌아오셨습니다."
"예?"
설마... 설마......
"형님께서.."
스륵- 다리에 힘이 풀린다.
"괜찮으세요?"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가요?"
"아닙니다. 형님께서 돌아오셨어요. 진정입니다!"
믿을 수가 없다.
분명 4황자님께선 그 분을 베었다고 하셨어.
그 분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셨다고..
하지만...
"어디에 계십니까"
보고싶다.
제가 지금 황자님을 뵈러 갑니다.
이제 황자님이 계신 곳으로 제가 갈 겁니다.
그 누구도 떠나보내지 않을겁니다. 못하게 할겁니다.
"황.."
황자님에 대한 반가움이 전해지기도 전에 공포가 뒤덮쳤다.
8황자가 요황자님의 뒤에서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안 돼. 이제 내 곁에서 아무도 뺏어갈 수 없어. 아무 것도 뺏기지 않을거다.
내가 저 분을 지켜드려야 해.
푹-
"...!!"
"ㅅ....수....."
황자님. 이상해요.
칼 끝이 아린데도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습니다.
황자님의 품에 안겨있어서일까요?
"수야!!!"
괜찮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수야, 정신을 차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태의를 불러다오!!"
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모습을 보니 아프신 곳은 없는 모양입니다.
다행입니다. 아프지 않으셔서.. 다치지 않으셔서..
저는 여기서 숨을 거두면 다시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걸까요?
만약 그리 된다면 그 곳에서 황자님을 꼭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야! 정신을 놓으면 안된다! 눈을 떠!!"
"황자님..."
"그래. 내가 여기 있다. 그러니 나를 떠나면 안된다!!"
"은애..합니다....."
제 마음을 전하였으니 이걸로 되었습니다..
부디.. 건강히.. 다시 제 곁으로 돌아와 주세요...
기다릴게요 황자님..
나 글 처음 쪄봐....(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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