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전하지 못 했던 말이 있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면 그 말이 다시 돌아와 찌를까 무서워 겁을 냈던 말이 있습니다. '요 황자님.' 매일 아무렇지 않은 척 이름을 붙여가며 황자님께 인사를 드리고 밤마다 같이 거닐며 뱉으려던 말은 결국에 제 마음속을 파고들어 생명을 잃었습니다. 오늘도 바람은 여전히 붑니다. 달은 여전히 빛을 내고 별은 제 자리에서 밝게 웃습니다. 하지만, 제 옆에 황자님은 더이상 계시지 않아요. 보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보고 싶습니다. 처음엔 그저 답답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꺼내드리고 싶었고 원하는 걸 이루셨으면 했습니다. 그 끝이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전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제게 다정했던 다른 황자님들처럼은 아니어도 저를 많이 챙겨주신다는 거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헌데, 저는 그런 황자님께 아주 큰, 상처를 남긴 거 같아 아직도 제 자신이 밉습니다. '무서워요, 황자님.' 제 말에 굳은 황자님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를 차마 보지 못하시고 돌아서서 떨던 모습이 아직도 이리 눈에 선합니다. '도망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는 싶었지만 황자님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겁쟁이였습니다. 겁이 너무 많아, 황자님을 뒤로하고 도망쳤습니다. 황자님, 눈이 옵니다. 황자님께서 그러셨지요, 눈이 내리는 날 제가 내린 차를 마시고 싶으시다고. 저와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고요. 너무 늦었지만, 제가 너무 늦게 왔지만 그래도 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왕요 X 해수
비밀
새벽빛이 어슴푸레 밝아왔다. 조용히 옥 문을 열고 남자의 품에 안겨 옮겨진 수는 하루 꼬박을 앓았다. 수의 방문 앞에 서서 서성이던 요가 작게 한숨을 쉬며 문을 살짝 짚었고 문틈새로 들리는 수의 숨소리에 입술을 깨물다 걸음을 돌렸다. 다미원을 빠져나오자 해가 천천히 하늘 위로 올랐다. 두 번의 새벽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수가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익숙한 천장과 코끝에 닿아오는 익숙한 향에 몸을 일으키자 약을 들고 들어오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수에게 인사를 했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남자의 질문에 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수의 눈앞에 약을 내려놓은 남자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약을 드시고 채비를 하시지요, 바로 궁을 나가라는 웃전의 명입니다." 수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제게 와서 도망가라고 했던 요의 말이 어렴풋 생각난 수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수를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가고 눈앞에 놓인 약을 마신 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비를 할 것이 있었나,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하다 힘없이 웃은 수가 다시 자리에 앉아 자신이 누워 지냈던 이불 보를 쓸었다. 이제, 끝인가. 괜히 눈물이 나올 거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자리에 그렇게 멈춰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돌아온 남자의 모습에 수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대로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는 겁니까."
"... 아마, 그러실 거 같습니다."
"...황자님은."
"..."
"아닙니다."
수의 질문에 그저 입을 다무는 남자를 바라보던 수가 옆에 놓인 짐을 들고 남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요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겹쳐 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괜히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내던 수가 남자를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고 다미원과 항상 요와 함께 걷던 길을 지나 문 앞에 선 수가 멈칫하며 몸을 돌렸다. "황자님..." 작게 흘러나오는 말에 남자는 수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눈앞에 그려져도 자신은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피바람이 불어올 곳이었다.

"...괜찮으시겠지요."
"...괜찮으실 겁니다."
"...가요."
주어와 목적어가 없는 말에도 남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수 또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몸을 다시 돌려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수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요가 숨었던 곳에서 빠져나와 자리에 섰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의 모습이 이젠 정말로 끝없이 멀어지고 있었다. "...해수." 작게 수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손을 내린 요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허탈한 미소가 입가에 걸리고 수의 모습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박힌 듯 서있던 요 역시 걸음을 돌렸다. 완벽한 이별의 끝이었다.
"나는, 너와 함께 첫눈을 맞는 거 그거면 된다." 수가 잠에서 깨어났다. 궁에서 떨어져 지내는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저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 역시 친절했고 또다시는 그렇게 무서운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수에게 안정을 주었다. 얼굴과 몸에 있던 흉들은 시간이 지나며 옅어지고 사라졌다. 임금이 승하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반역이 일어났다는 소리도 어렴풋 들려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시했지만, 그 뒤로는 자꾸 요와 함께 있었던 그 어느 날의 꿈을 꾸곤 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수는 항상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 잊은 줄로만 알았는데, 다 잊지 못하였다. 자신의 마음을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마음은 닫힌 게 아니었다. 날은 어김없이 밝았고 애써 꿨던 꿈을 떨쳐내려 찻잎을 따러 간 수의 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백아님?"
"수야."
"아니,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옷은 또 그게..."
"쉿, 나는 그냥 지나가던 나그네일 뿐이다."
"잘나셨어요, 또 황궁을 몰래 나오셨습니까?"
오랜만에 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백아의 표정도 좀 전과 달리 풀어졌고 가만히 수의 옆에 서서 걸음을 옮겼다. 찻잎을 담아둔 바구니를 한 팔에 안은 채 누구보다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수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다 시선을 돌린 백아의 머릿속에 요의 얼굴이 떠올랐다. 핏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아무도 몰래 울고 있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했다. 제게 그리 모질게 굴었음에도 형님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어 요에게 다가갔지만 들려오는 건 수의 이름이었다.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서서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던 백아는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황자님, 제 이야기 듣고 계셔요?" 수의 목소리에 백아가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자 혀를 차며 "변했네, 변했어" 하던 수가 자리에 멈춰 섰다.

"진짜로 여기 오신 이유가 뭐예요?"
"나는 단지,"
"그런 말은 안 통합니다."
"..."
"백아님."
" 그, 쓰으, 그게."
"..."
"요 형님이... 널 많이 그리워하시는 거 같아..."
백아가 차마 말을 다 잇기도 전에 굳은 수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무거운 정적이 잠시 깔리는 탓에 헛기침을 한 백아가 시선을 돌렸다. '제 꿈에 나오신 것이 이리 백아님께 이야기를 전하라 말씀하셨기 때문이세요?' 수가 혼자 속으로 조용히 생각을 하다가 어색해하는 백아에게 웃음을 띠었다. "괜찮습니다, 그리 눈치 보지 않으셔도 돼요." 백아의 시선이 다시금 수에게로 돌아가고 자신의 품에서 주섬주섬 작은 쪽지를 꺼낸 백아가 수에게 조심스레 그 쪽지를 건넸다. 수는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저 웃음을 지은 백아는 한걸음 물러서서 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간 뒤에 열어보거라, 그럼 나는 할 일을 다 했으니 돌아갈게."
"..."
"지금처럼 잘 지내고."
"백아님도 잘 지내세요."
백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다 사라지자 웃어 보이던 수의 시선이 쪽지로 내려갔다. 쪽지 안에 무엇이 쓰여있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또 생각하던 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찻잎을 마루 위에 올려두고 방으로 들어와 천천히 이불보 위에 앉은 수가 쪽지를 조심스레 펼쳤다. 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떨리는 손이 쪽지 안글씨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뿌예지는 시야에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떨어졌다. "어찌, 어찌하여..." 울음에 섞인 목소리가 흩어져 진동을 만들었다. 쪽지 위로 떨어지는 수의 눈물에 글씨가 조금씩 번졌다. 쪽지를 품에 안고 엉엉 눈물을 쏟아내던 수가 천천히 정신을 놓았고 수의 손에서 떨어진 쪽지 위엔 '解樹' 두 글자가 정갈하게 쓰여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눈이 내렸다, 수가 장옷을 조금 더 걸치며 걸음을 옮겼다. 새하얀 눈 위로 수의 발자국이 찍혔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돌아가는 궁이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다가도 금세 사라졌다. 말없이 걷는 수의 머리를 찬 바람이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괜스리 불안하게 떨려오는 손은 자꾸만 옷자락을 꾹 쥐게 만들었다. 요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의 그 쪽지 이후로 요의 생각을 하루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다시 달려갈까 생각을 하다가도 악몽이 떠올라 몸을 돌리고 마음을 접었다. 시간은 그런 해수를 기다려주지 않고 흘렀다. 요의 병세가 점점 악화된다는 소식도 이제 다음 왕을 정해야 하지 않냐는 작은 수군거림도 해수의 귀로 들어왔다. 그리고, 요가 저를 찾는다는 남자의 전갈을 받았다. 입술을 살짝 물고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리 가도 이틀은 족히 걸릴 텐데, 그 짧은 시간에 혹시나. 혹시나. 나쁜 생각이 수의 머리를 지배하다가 사라졌다. 날을 새워 걷고 주막에 들러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궁을 향해 걸었다. 지칠 수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히 들었다. 궁이 멀리 모습을 보였고 그제야 긴장한 표정을 푼 해수가 조금 더 걸음을 빨리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황자님, 제가 가니까 조금만.
수가 온다는 이야기에 몸을 겨우 일으킨 요가 궁을 나섰다. 하얀 눈 위로 요의 발자국이 찍혔다. 흔들리는 설렘에 고통이 잊히는 거 같았다. 수가 저 멀리서 걸어올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며 웃어줄 거야. 요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수를 위해 꽃을 한품에 안아 들고 걸었을 때 시끄러운 소리가 요의 정신을 헤집었다. 눈을 꾹 감았다 뜬 요의 시야에 또 한 번 환영들이 보였다. 주춤, 걸음을 뒤로 빼며 고개를 젓는 요의 등으로 칼이 날아들었다. 중심을 잡지 못해 기우뚱하던 요의 몸이 눈 위로 쓰러졌다. 환영들은 어느새 다시 사라져 그저 허한 궁의 모습만이 요의 시선에 들어왔다. 쿨럭, 입에서 붉은 피가 떨어졌다. 손에 들려있는 꽃을 억세게 잡으며 다시 몸을 일으키던 요가 곧바로 다시 앞으로 쓰러졌다. 궁의 문이 열렸다. 수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 위로 하얀 눈이 떨어진다. 요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수를 바라봤다. 요의 모습에 손에 들린 짐을 놓친 수가 입을 막았다. 눈앞에서 붉게 물드는 눈도, 제 앞에 쓰러진 요의 모습도 수를 공포에 밀어 넣었다.

요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수가 뛰어서 요에게로 다가갔다. "황자님, 황자님." 급하게 요를 품에 안고 흔들어도 그저 미간을 찌푸리던 요가 천천히 눈을 떴다. "...태의, 태의를..." 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뻗어 수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싼 요가 살풋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보는 미소에 수의 눈이 더 심하게 떨려왔다. "미안, 하구나." 겨우겨우 뱉어진 말에 수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할 필요 없다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 나오지 않아 입술을 꾹 씹자 제 아랫입술을 매만지며 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짓던 요가 가쁜 숨을 뱉었다. "황자님, 황자님 제발." 수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요는 그저 웃으며 수와 한참 시선을 마주하다가 천천히 다시 눈을 감았다. "황자님, 황자님!!!" 수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차가운 눈 위로 떨어진 손은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의 하얀 손을 붉게 물들이는 피도, 힘없이 눈에 파묻히는 꽃도 더 이상 그가 살아 숨 쉬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였다. 지독히 아팠던 꿈은, 지독히 아팠던 현실이 되어 눈처럼 녹아 흘렀다. 꽁꽁 싸매던 두 진심은 결국 이어지지 못한 채 숨을 죽여버렸다.
결국은 둘이 이어지지 못하고 해수는 눈 앞에서 요가 죽는 걸 보고.... 약간 죽는 걸 달리했지만..엄 길어졌네ㅠㅠㅠㅠㅠ 이상하다 미안해... 요해 사약은...이렇게 원샷...ㅠㅠㅠㅠ 오 오늘 심지어 요 움짤은 넣지도 못햇자나?????? 요 미안,,,, 내 죄다,,,,,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