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락
이라는 단어임
존트 할머니 할아버지도 사용하시고
문학작품에서도 봤고
우리 부락 사람들! 이런 기사에서도 봤는데..........멘붕이어씀
천민이라니!!!!!!!!!!!!!!!!!!!!!!!!!!11
부락 : 일본의 천민집단의 집단 거주지
라는거 알고 있었어?
천민신분은 비인(非人 인간이 아님, 악귀 따위)로까지 여겨질 정도였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으며
부락민을 때리거나 함부로 대하는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여겨진 신분계급임
(물론 공식적으로는 사라졌고, 일본 내에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라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공공연하게 차별받는다고 함)
그런 부락이라는 단어를!!!!!!!!!!!!!!!!!!!!!!!!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해 우리나라의 고을에 '부락'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힘
일본 개객..............
근데 우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부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잖아
젊은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나 문학 작품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나도 얼마 전에 알게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찜
▼▼▼▼ 부락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계기 ▼▼▼▼
일본 천민집단의 대명사 ‘부락’이 아직도 쓰이는 까닭은?연관목차보기
전남의 한 ‘미니부락’이 행정착오로 빼앗긴 땅을 1년 만에 되찾았다. 68가구, 200여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남 나주시 남평읍 신촌부락 주민들이 1915년부터 소유해온 ‘95년 묵은 땅’의 소유권을 잃은 것은 지난해 2월. 나주시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신촌리’ 명의로 확정된 뒤 1944년 분할된 마을 땅 473m2(143평)에 대해 지난해 2월 나주시 소유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러나 6년 만에 이장에 복귀한 이 모 씨(70)는 지난해 이장으로 다시 선출된 뒤 부락 문제를 살피던 중 해당 토지가 엉뚱하게 나주시 소유로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씨는 곧바로 주민총회를 소집했고,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소유권 보존등기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재판부는 결국 원소유자인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 《뉴시스》(2010년 3월 28일자)
이 기사의 제목은 “미니부락의 힘··· 행정착오로 빼앗긴 땅 1년 만에 되찾아”이다. 작은 마을이라 하면 될 것을 ‘미니부락’이라고 제목을 뽑은 것이 눈에 거슬렸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 안 구석구석 양반 죽은 동네 없고 나라 상사람 살 만한 부락 없다던 것이 옛적부터 일러오던 말이었다”(이문구, 《오자룡》)나 “그들은 부락민을 모아놓고 한바탕 선동 연설을 하였다”(채만식, 《소년은 자란다》) 같은 구절처럼 ‘부락’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쉽게 쓰이고 있다.
‘아양 부락’ 이라고 쓰여 있는 마을안내돌
부락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골에서 여러 민가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 마을로 순화”라고 되어 있다. 지금은 이 말이 많이 사라졌지만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 앞 길가에 서 있는 마을안내돌에 새겨진 ‘아양 부락’이라는 글씨처럼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일본말 찌꺼기를 볼 때면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말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에서 건너온 말로 천민집단을 일컫는 나쁜 말이다. 따라서 국어사전은 ‘부락은 일본말에서 온 것으로 천민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밝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어사전은 단순한 말 상자가 아니라 철학의 상자여야 하고 역사와 문화와 자존심의 상자여야 함에도 단순히 ‘순화’라는 말만 써놓고 있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인 서정주가 1936년 창간한 《시인부락》이라는 시 전문 동인지의 예도 있다. 언어의 마술사인 시인들조차도 ‘부락’의 참뜻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락의 참뜻을 알았다면 과연 동인지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누구보다 언어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다루어야 하는 시인의 부족한 언어 이해와 그 바탕에 깔린 역사의식의 부재는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다이지센》에서 부락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1. 비교적 소수의 민가가 모여 있는 지구, 공동체로서 모인 지연단체로 마을 단위 2. 피차별부락”이라 적고 ‘피차별부락’을 ‘부락해방운동’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설명인즉슨 ‘피차별부락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또 무엇인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부락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지 않을뿐더러 부락해방운동 같은 말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 말에 심상치 않은 뜻이 숨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츠쿠바대학의 하가 노보루[芳賀登] 교수는 “부락이란 미해방부락을 의미하며 차별받고 소외되어 있던 근세로부터의 천민신분으로 주로 예다(穢多, 천업에 종사하는 사람), 비인(非人, 죄인 : 악귀 따위)들의 집단주거지를 일컫는 말”로 소개하고 있다. 요컨대 부라쿠민(ぶらくみん, 部落民)이란 전근대 일본의 신분제도 아래에서 최하층에 있었던 천민집단으로, 현재 일본사회에서 부락은 ‘터부’로 여겨지고 있을 만큼 요주의 단어다. 이곳에 사는 부락민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노예나 다름없었고 인민이나 국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비인’이었을까? 비인, 곧 히닌(ひにん, 非人)이란 ‘사람 아닌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일본은 자신의 나라에서 쓰지 않는 말을 조선의 마을 이름에 갖다 붙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인 천시’ 의식의 반영이다. 그런 의도로 들어온 부락이라는 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해방 이후에도 쓰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의 산이나 마을 이름에 대해 연구한 다니 유우지[谷有二]는 《일본산악전승의 수수께끼(日本山岳 伝承の謎)》(1983)에서 일본의 무라[村]가 조선어 마을(maul)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면서 그 이전 단계는 마루(maru)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곧 ‘마루-마우루(마을)-무라’의 단계라는 것이다. 그는 또 《지명어원지전(地名語原地典)》이라는 책에서 ‘~마루(마을)’라고 표기된 몇 개 지역을 골라 조사해본 결과 후쿠오카 23퍼센트, 큐슈 37퍼센트, 간토[関東]지방 14퍼센트 이상이 ‘~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다. 구체적인 마을 이름으로는 인왕마을(仁王丸), 별마을(星丸), 금마을(金丸), 바위마을(岩丸) 등을 들어 일본 마을 이름의 유래를 고대 조선어에서 찾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나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같은 저명한 학자들도 일본 지명이 상당수 조선어에서 나왔음을 밝히고 있으며 ‘고호리(こほり)’ 역시 한국어 ‘고을’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을-고후리-고오리로 이어지는 일본 지명은 이와테현의 고오리야마, 치바현의 고오리모토, 오사카부의 고오리무라 등 많은 땅 이름에 남아 있다.
이렇게 일본의 땅 이름들에도 흔적으로 남아 있는 마을이나 고을을 부락과 맞바꾼 채 시인들은 《시인부락》을 만들었고 신문에서는 ‘미니부락’이라는 말로 기사를 쓴다. 윗말, 아랫말, 안골, 닭실마을, 빛고을, 남원고을, 감고을 등처럼 아름답던 마을 이름들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근대화 물결 속에 하나둘 사라지더니 서초동, 이문동, 가리봉동 같은 멋없는 말이 우리 삶 속에 똬리를 틀었다. 그나마 요즘 새로운 아파트 단지 이름을 푸른마을이나 달빛마을같이 짓는 곳이 늘고 있어 다행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아름다운 마을 이름을 되살리고 피차별 언어이자 식민 잔재인 부락 같은 말은 하루빨리 솎아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사는 마을이 천민부락으로 여겨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 천민집단의 대명사 ‘부락’이 아직도 쓰이는 까닭은? (사쿠라 훈민정음, 2010.11.15, 인물과사상)
처음에는 빡쳐서 찾아봤는데
볼수록 일본은 이상하다곻 ㅏㄴ다................왠 천민........
현대에도 공공연하게........음..........
▼▼▼▼ 일본내에서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부락민에 대한 차별 ▼▼▼▼
http://blog.naver.com/chimaek801?Redirect=Log&logNo=50177632745)
면접시험에서도 응시자에게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가는 큰일이 날 정도.
일본사회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신분제도 때문인데,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서열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끼지 못하는 계급이 있음.
예를 들면 식육, 피륙, 폐기물처리, 매춘 등에 종사했던 사람들.인도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Untouchable)이 아직도 멀쩡하게 존재하는 사회가 일본!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부라쿠(部落)’라 하는데 동경, 교토, 오사카 등의 변두리에 부라쿠가 아직도 존재함.더욱이 부라쿠출신과는 결혼을 기피한다거나 취직을 차별하는 이른바 부라쿠문제(部落問題)가 현재까지 실재함.
이런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해 묻는 것이 철저하게 금기사항으로 되어있음.
만약 어떤 회사의 입사 면접에서 이러한 금기사항에 대해 질문한 사실이 밝혀지면 다음날 그 회사 앞에 부락민들이 피켓을 들고 몰려와 데모하고 난리남. 요약 : 부락쿠민(부락민)이란 쉽게 말해 조선시대 천민계층, 특정지역에 모여살았기 때문에 차별은 여전히 존재함
실제 21세기인 현재에도 일본에는 아직 최하계층(불가촉천민)인 부라쿠민이 존재!
물론 일본에선 이런 내용이 다른나라에 알려지지 않도록 엄청 신경씀.
밑에부턴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 낙서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호기(좋은 시기),
느슨해져선 안 되는 건 결심,
말해선 안 되는 건 거짓말,
버려선 안 되는 건 의리,
쓰지 말아야 할 것은 낙서
차별 낙서는 범죄입니다
서로 인권을 존중하는 차별 없는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작성자 클라라
▼▼▼▼ 몇 년 전에는 구글어스에서 서비스한 일본 고지도에 '부락민 지역'이 표시되어 난리가 났던 적도 있었음 ▼▼▼▼
http://oddlyenough.kr/505)
구글은 2006년에 구글 Earth 버전을 4.0으로 올리면서 그 지역의 고지도를 볼 수 있게끔 해주는 Rumsey Historical Maps라는 레이어를 추가했으며, 일본은 2008년에야 몇몇 고지도가 추가됐는데 올해 초 일부 고지도가 일본의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도쿄와 오사카의 지도에서 앞서 설명한 부라쿠민이 모여 살던 곳, 즉 穢多村의 위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을 발견한 것이다. 메이지 정부가 신분제를 철폐한 이후 부라쿠민 집단 거주지는 점차 사라져 종전까지 그 위치를 아는 일반인은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일본 출판업계와 박물관 측도 이 문제에 대해선 그동안 조심스럽게 접근해왔는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부라쿠민 연합이 구글 재팬에 항의했고 구글 Earth에 고지도를 제공하는 David Rumsey가 이 지도에서 穢多村(부라쿠민 거주지)이라는 글자를 삭제했다. 아래가 바로 위 사진을 보고 (수십분에 걸쳐 -_-) 구글 Earth에서 찾은 문제의 오사카 부라쿠민 집단 거주지다. 위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명이 삭제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일부 일본인들 사이에선 부라쿠민의 후손을 천하게 여기는 인식이 팽배한 모양이다. 이 소식을 전한 AP 통신의 기사를 보면 한 일본 대기업 채용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녀는 한 지원자가 부라쿠민 후손이라고 의심되면 그 사람의 배경을 조사한다면서 회사가 사전에 부라쿠민 지원자를 걸러낸다고 제보했다.*추가설명*
구글에서 고지도 서비스를 함
그 지도를 현재 지도와 겹쳐봄
어? ㅇㅇ지역이 부락이었네?
거기 살던 사람들은 부락민이겠네?
하고 부락민리스트가 퍼져나가서 난리가 났었다고 함
▼▼▼▼ 그 외에도 부락민 리스트를 만들어서 유포함 ▼▼▼▼
결혼, 취업 등에서 부락민을 걸러내는 용도로 사용하겠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nmany0203&logNo=30109796869&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2006년 2월 1일 수요일 아사히 신문의 기사. 아래는 기사 해석.
새로운「부락지명총람」오사카 시내 흥신소에 오사카 부에서 조사에 나서 (사진 캡션)
새로이 발견된「부락지명총람」(일부 모자이크 처리)
전국 피차별 부락의 소재지 등을 기재한 차별도서「부락지명총람」이 오사카 시내의 흥신소에서 발견된 사실이 부강해방동맹 오사카 부 연합회 조사에서 밝혀졌다. 법무성은 75~78년에 8종류의 지명 총람을 확인, 89년에 조사를 종결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번에 발견된 것은 다른 종류라고 한다. 오사카 부 인권실은 결혼 등의 신원 조사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조건 위반에 해당하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동 연합회에 따르면, 발견된 부락지명총람은 손글씨를 복사한 것으로 A4판 330페이지. 전국의 피차별 부락에 대해 지명이나 소재지 등을 기재하였다. 오사카 부내의 피차별 부락은 가장 가까운 역에서의 거리나 가는 길 등을 기재해, 지구(地區)의 범위를 특정하고 있다.
전철의 역명 등으로 미루어 보아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 연합회는 행정서사들이 부정하게 취득한 호적등본 등이 흥신소에 팔려 나가 신원 조사에 사용된 문제를 조사해 작년(2005년) 12월에 조사처인 흥신소에서 (총람을) 발견했다. 지명총람에 대해서는 기업 등이 취직자의 신원 조사용으로 구입한 점에서 법무성이 조사, 89년에 발행인이나 구입자 등에게 권고하여 사안의 해명을 종결했다고 선언했다.
오사카 부는 85년에「부락차별조사구제조례」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그 후도 복사본이 나도는 등 차별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지명총람을 소지하고 있던 흥신소의 경영자는 아사히 신문의 취재에 대해「이번에는 결혼의 신원 조사는 하고 있지 않다. 지명총람을 써서 출신지를 조사하는 건 어느 흥신소에서나 다 하는 일이다」라고말하고 있다.
*요약*
[부락지명총람]이라는 부락민 리스트가 흥신소에 떠돌다가 발견됨
일본 전국의 부락의 지명, 주소, 주민들의 주요 직업 등의 데이터가 있었기에, 부락 출신자라고 의심받는 인물에게는 입 밖에 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을 추궁할 수 있는 공격질문을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됨
오늘날은 일본 경제의 급성장과 정부 주도의 처우 개선 노력등으로 인해 부라쿠민 거주지의 주거 환경은 상당 부분 개선되었으나,
현재까지도 암암리에 '부라쿠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직, 결혼 등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불이익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본 사회의 민감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기업인사담당자들이 특수부락지명총람 등 탐정사무소, 흥신소 등에서 비밀리에 발간, 유통하는 리스트를 구입하여
지원자의 출신지를 가려내는 데에 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꽤 있었다.
특수부락지명총람의 존재는 일종의 도시전설로 여겨졌으나,
1975년에 최초로 부락지명총람사건이 언론에 드러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고
최소 9종류의 책자가, 채용, 결혼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대의 정서에 역행함을 알고도 발간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부라쿠민 차별철폐운동이 진행될 수록 색출작업도 고도화되어,
1990년에는 도쿄 도내의 행정서사들에 의한 부라쿠민 의심자 족보구매사건,
1998년에는 오사카 시내의 대형 흥신소가 기업들로부터 차별신원조사를 의뢰받은 사건 등이 일어났다.
이러한 필터링은 물론,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는 사례가,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있다.
1963년 5월 1일의 사야마 사건(狭山事件)이라는, 사이타마현 사야마시에서 일어난 여고생 납치피살사건에서 경찰측이 납치범을 잡지 못하자 대신 시 근처의 부락에 쳐들어가서 당시 24세의 이시카와 카즈오(石川一雄)를 붙잡아 고문 후 자백을 받아내는 대규모 병크를 저질렀다.
이시카와 용의자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94년에 가석방되었다.
*요약*
납치 사건이 발생함
경찰이 범인 못찾음
뜬금없이 부락으로 쫓아감
일본인의 부락민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음
아소 타로가 자민당 총리 후보 중 하나였던 노나카 히로무를 까면서 한 말이 "저런 부락민 출신 같은 놈이 천황폐하를 보좌한다면 일본은 그대로 망할거다."였다고 한다.
격분한 노나카 히로무는 TV에 출연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우익 및 집권 세력들이 부락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노나카 히로무는 부라쿠민 출신.
애당초 부라쿠민 딱지만 아니었다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대신 노나카가 총리에 오를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이 당시 노나카 히로무의 직함이 자민당 간사장이였는데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한나라당 총재에 해당되는 위치이다.
한마디로 가장 강력한 대통령 당선 후보인 셈.
한국에선 '부락(部落)'이 마을을 뜻하는 한자어일 뿐이지만,
일본에선 차별용어이자 금기어니 혹시 일본어 문장을 취급할 일이 있다면 주의하자.
소설 등에서 '부락'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해서도 관련단체에서 항의하여 판매금지 시키는 일도 많다.
집락(集落)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의 인터넷상에선 B라는 은어가 주로 사용된다.
또한 강 건너(川の向こう)라는 식의 속어도 쓰이고 있다.
실제로 부락민 출신이라고 판단되는 소설가 나카가미 켄지는 "골목길(路地)"이라고 돌려 말했다.
*요약*
정치계에서도 부락민에 대한 차별은 존재함
내가 글을 못써서
엄청 횡설수설함ㅜㅜ
아무튼
끝
마무리 못하게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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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석말에 터진 유재석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