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맑은 하늘이 서서히
잿빛 구름으로 멍드는 걸 보니
그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다가도 개면 그만이건만
온통 너로 멍든 내 하늘은
울적하단 말로 표현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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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서덕준
마음가에 한참 너를 두었다
네가 고여있다보니
그리움이라는 이끼가 나를 온통 뒤덮는다
나는 오롯이 네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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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서덕준
당신을 생각하며
한참 뭇별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손가락으로 별들을 잇고 보니
당신 이름 석 자가 하늘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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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서덕준
당신과 불현듯 스친 손가락이
불에라도 빠진 듯 헐떡입니다.
잠깐 스친 것 뿐인데도 이리 두근거리니
작정하고 당신과 손을 맞잡는다면
손등에선 한 떨기 꽃이라도 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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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서덕준
당신이 나의 들숨과 날숨이라면
그 사이 찰나의 멈춤은
당신을 향한 나의 숨 멎는 사랑이어라.
-
호흡, 서덕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해 당신이 비행한다.
나는 당신이 남긴 그 허망한 비행운에
목을 매고 싶었다.
-
비행운, 서덕준
저기 저 하늘 좀 봐
달이 손톱처럼 실눈 떴다
네 손톱일까? 어쩐지 살구색 노을이
네 뺨을 닮았다 했어
갈대가 사방으로 칭얼댄다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겠지
어느덧 네 짙은 머리칼처럼
하늘에도 먹색 강물이 흐른다
너를 향해 노를 젓는 저 달무리를 봐
머리 위로 총총한 별이 떴구나
마치 네 주근깨같기도 해
그래 맞아, 그만큼 어여쁘단 뜻이야
저기 저 들꽃 좀 봐
꽃잎이 사정없이 나풀거린다
네 눈썹일까?
아니면 네 입술일까?
-
너를 쫓는 근위병, 서덕준
너는 몇 겹의 계절이고 나를 애태웠다.
너를 앓다 못해 바짝 말라서
성냥불만 한 너의 눈짓 하나에도
나는 화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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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 서덕준
당신은 사막 위 나비의 날갯짓이어요.
그대 사뿐히 걸어보소서
흩날리는 머릿결에도
내 마음엔 폭풍이 일고 나는 당신께 수몰되리니.
-
나비효과, 서덕준
네게는 찰나였을 뿐인데
나는 여생을 연신 콜록대며
너를 앓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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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서덕준
어둠 속 행여 당신이 길을 잃을까
나의 꿈에 불을 질러 길을 밝혔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눈부신 하늘을 쳐다보는 일쯤은
포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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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서덕준
겨울이었어
네가 입김을 뱉으며 나와 결혼하자 했어
갑자기 함박눈이 거꾸로 올라가
순간 입김이 솜사탕인 줄만 알았어
엄지발가락부터 단내가 스며
나는 그 설탕으로 빚은 거미줄에 투신했어
네게 엉키기로 했어 감전되기로 했어
네가 내 손가락에 녹지 않는 눈송이를 끼워줬어
반지였던 거야
겨울이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자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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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크레딧, 서덕준
무지개가 검다고 말하여도
나는 당신의 말씀을 교리처럼 따를 테요
웃는 당신의 입꼬리에 내 목숨도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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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것, 서덕준
너는 나의 옷자락이고 머릿결이고 꿈결이고
나를 헤집던 사정없는 풍속이었다.
네가 나의 등을 떠민다면
나는 벼랑에라도 뛰어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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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바람, 서덕준
누가 그렇게
하염없이 어여뻐도 된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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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서덕준
너를 그리며 새벽엔 글을 썼고
내 시의 팔 할은 모두 너를 가리켰다.
너를 붉게 사랑하며 했던 말들은
전부 잔잔한 노래였으며
너는 나에게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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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의미, 서덕준
네가 새벽을 좋아했던 까닭에
새벽이면 네가 생각나는 것일까.
아, 아니지.
네가 새벽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좋아해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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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서덕준
그 사람은 그저 잠시 스치는 소낙비라고
당신이 그랬지요.
허나 이유를 말해주세요.
빠르게 지나가는 저 빗구름을
나는 왜 흠뻑 젖어가며 쫓고 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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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서덕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물 위로
당신은 어찌 저다지도 연연한 순분홍 연꽃으로 피었습니까
바지춤에 구정물만 출렁일지언정
나는 기어코 당신께 침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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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늪, 서덕준
밤 하늘가 검은 장막 위로
별이 몇 떠있지가 않다.
너를 두고 흘렸던 눈물로 별을 그린다면
내 하늘가에는 은하가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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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서덕준
- 시인 서덕준 페이스북 페이지 http://facebook.com/seodeok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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