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즉위:1392~1398

아래는 사서에 기록된 보우마스터 이성계의 위엄
1.
1362년, 원의 장수 나하추가 고려를 침공하였을 때 나하추의 부장 중 온 몸을 갑옷으로 감싼 장수가 있었다.
화살이 들어갈 틈이 없자 그가 탄 말을 저격, 적장이 말에서 떨어져 입을 벌리며 놀란 틈을 타 입 속으로 화살을 쏴서 죽였다
2.
1370년, 동녕부의 추장 고안위(高安慰)가 오녀산성에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 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이용하여성의 병사들 얼굴에 70발을 쏴 모두 맞췄다.
이를 보고 고안위는 기겁하여 도망갔으며, 성안의 적군들의 사기가 떨어져 곧 항복을 하였다.
이것을 보고 주위 여러 성들이 항복하였는데 항복한 백성들의 가구가 1만 여 호나 되었다.
3.
1377년, 경상도 원수(慶尙道元帥) 우인열(禹仁烈)이 비보(飛報)하기를, "나졸(邏卒)들이 말하기를,
'왜적이 대마도(對馬島)로부터 바다를 뒤덮고 오는데 돛대가 서로 바라다보인다.' 하니,도와서 싸울 원수(元帥)를 보내 주기를 청합니다." 라 하였다.
이때 왜적이 있는 곳은 가득히 찼으므로, 태조에게 명하여 가서 이를 치게 하였다.
태조가 행군하여 아직 이르지 않으니 인심(人心)이 흉흉하여 두려워하였다.
인열(仁烈)의 비보(飛報)가 계속해 이르므로, 태조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서
적군과 지리산(智異山) 밑에서 싸우는데, 서로의 거리가 2백여 보(步)나 되었다.
적 한 명이 등(背)을 세워 몸을 숙이고 손으로 그 궁둥이를 두드리며 두려움이 없음을
보이면서 욕설을 하므로, 태조가 편전(片箭)을 사용하여 이를 쏘아서 화살 한 개에 넘어뜨렸다.
이에 적군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기운이 쑥 빠졌으므로, 곧 크게 이를 부수었다.
4.
1377년, 해주에서 왜구 토벌 당시 화살 17발을 쏴 모두 왜구의 왼쪽 눈에 명중시켰다고 한다.
5.
격전을 앞두고 150보 떨어진 곳에서 투구를 놓아두고 세번 쏴 세번 다 맞추어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다.1보가 대략 1.2~1.8m니, 180~270m 거리를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실력이었던 셈...
(이 정도 사거리는 웬만한 초기 화약병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1380년, 황산대첩 때 왜구 적장 아지발도의 투구를 활로 맞춰 떨어트리고, 그 뒤를 이어 이지란이 얼굴에 화살을 맞춰서 쓰러뜨렸다.
또한 난전 중에서도 대우전 20발, 소전 50발을 쏴 전부 왜구의 왼쪽 눈에 박아버렸다고 한다.
6.
1385년, 함주 전투 당시,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70보 앞에 있는 소나무의 솔방울들을
7번을 쏘아 모두 맞추었다.
또 전투가 벌어지자 왜군을 향해 쏜 화살이 겹 갑옷을 뚫고 사람이랑 말을 한꺼번에 관통하였다고 한다.


▶위 사진은 함경도 조선 신궁에 있던 이성계의 활과 화살을 촬영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에 찍은 사진인데, 저기에 있던 활과 화살들은 전쟁후 그 행방이 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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