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터 내가 군생활한 일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많은 기억은 아니지만 각색하여서 남기려고 글을 씁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어느정도 각색하여서 쓸예정입니다.
-입대
나는 여타 동갑내기와 다를것 없이 친구와 날짜만 고르면 되는 아주 쉬운 입대를 했다. 보직을 고른것도 아니고 그냥 날짜만 같이 잡았다. 나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어리숙하게 일어나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을 보고 있는데 오늘이 입대 신청일인것을 알았다. 나는 시골태생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입대일을 잡을수 있었고 2013. 3. 18 일로 입대하게 되었다.
-훈련소
입소대대에서 입소식을하는데 옆사람이 자꾸 울어 나도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 형식상으로 진행되는 경례와 배웅 여기저기서 어머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주머니에는 펜한자루와 편지지와 편지봉투 그리고 지갑과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가족들과의 먹먹한 이별을 끝마치고 막사에 들어왔다. 분대장들이 뭐라뭐라 하는 말에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아직은 네? 왜요? 라는 말이 나왔고 소대장은 그것을 강하게 윽박질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번은 63번 훈련병! 하는 말에 왜요? 라고 대답했다가 진땀을 뺐다. 입소대대의 3일차는 빨간등불의 불침번과 함께 지나갔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보급품도 나눠 주었고 사이즈가 맞는지 안맞는지 교체도 잘해 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렇게 교체해주는 곳도 몇군데 없다고 했다. 첫주말에는 동기들과 기독교에 가서 가나파이를 받아왔다. 종교행사는 상당히 즐거웠고 떼창이란것이 이런것이구나를 처음으로 느낄수 있었다.
입소대대를 떠나서 훈련소에 도착했다. 28연대 x중대 x소대 였다. 나는 키가 어느정도 되어서 앞소대에 배치되었고 같이 입대한 친구는 뒷소대에 배치되었다. 뒷소대는 늘 우리소대에게 놀림받았고 그것때문에 우리소대는 단체기합을 받은적도 있다. 기초 훈련부터 각개전투 까지 상당히 많은 훈련을했다. 하지만 가장 짜증났던것은 그놈의 군장이다. 빌어먹을 논산출신들을 알것이다. 교장과 교장거리는 상당히 멀다. 나는 모범생 스타일이다. 일생을 규칙을 지키며 살았다. 나는 분대장이 말하는대로 전부 행동에 옮기려고 노력했고 군장도 항상 FM으로 채워 넣었다. 군인으로서의 생활은 싫었지만 남들에게 피해가 가는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악을쓰며 노력했다. 하지만 늘 군대가 그렇듯이 우리분대에는 고문관이 한재했다. 그 은 늘 늦었으며 화장실에 들어가면 도통 나올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분대는 그 을 돌아가면서 챙겨주어 연대에서 우수 분대로 뽑혀 표창을 받았다. 또, 내옆자리 훈련병은 훈련소장의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나의 군생활도 이렇게만 풀리면 참좋겠다는 생각을했다. 사실 우리 분대에는 큰 비밀이 있다. 60번 훈련병인 조XX 동기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허술한 감시망을 피해 핸드폰과 충전기까지 가져온 그훈련병은 늘 새벽마다 전화를 하게 해줬으며 심지어 담배까지 챙겨와 동기들을 위로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비흡연자였다. 그 사실을 알게된후에는 노심초사 하면서 이것이 걸리면 우리는 죽는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숨기며 다녔다. 정말 기가막히게 숨겼다. 샤워팩에 숨기거나 수건뭉치 사이 배개속에 숨긴다거나 하면서 우리는 밤마다 가족과 혹은 연인과 통화를하면서 지냈다.
3주차 쯤 지나서 방송에서 나와 내친구(같은날짜를 받아온 아이)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가보니 면회가 있다는것이다. 군필자들은 알것이다. 훈련병은 면회가 금지된다. 훈련기간이 끝날때 면회한번하는것이 끝이다. 근데 면회가 있다니 뭔소린지 몰랐다. 어쨌든 기관병의 안내를 받아 휴게실에 들어가게 됬는데 이게 웬일인가 고등학교 동창이 떡하니 서있는게 아닌가 그것도 몽쉘 2박스를 들고서이자식!!! 그 자식이 하는 말이 자기가 주말에 여기올려고 행보관과 쇼부를 봤다는것이다. 페인트 작업을 열심히 하면 보내준다는 말에 다른 연대에 온것이다!!! 지금생각하면 일병나부랭이 자식이 그런 용감한짓을 하다니 나는 훗날 몽쉘이 고기로 바뀌는 마법을 보여주었고 그날 정말 몽쉘이 세상에서 가장맛있는 음식이란것을 느꼈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이 끝나가고 나는 분대장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훈련소는 지긋지긋했기에 그냥 야전으로 나가기로 했다. 사실 수도방위 사령부에 가고 싶었다. 결국 수료식이 끝나고 면회도 끝나서 보직발표가 났다. 소대장은 내이름을 부르며 탄약처리병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고 소대장과 분대장에게 질문했지만 결국 탄피를 줏으러 다닌다는 말만 들을수 있었다. 탄피라니 나쁜......
육군 종합군수 학교
탄피를 줍는데 기술이 필요한것일까? 라는 생각으로 무슨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참고로 입대같이한 친구는 조종수로 보직을받아서 가버렸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기에 불가능해보였다. 젠장할... 나는 머리도 썩나쁘지 않았고 분명 징집병만 한다는 IQ검사와 기타등등의 검사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받았음은 명확했다. 옆분대 서울대 출신은 지뢰제거반에 들어갔다. 그는 상당히 우울해보였고 같이 종합군수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며 내가 옆자리에서 위로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버스는 결국 대전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짜증나는 목소리들로 여기저기 모이라는 말과 동작봐라 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뛰었다. 그냥 뛰어서 내자리에 그냥 서있었다. 그 이후로 하나둘씩 내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한 10명 남짓한 사람 밖에 없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40-50명이 넘어보이는데 말이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것을 느끼고 있을무렵 걸음이 시작됬고 나는 걸음을 맞추면서 불안감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그곳은 한마디로 천국이었다. PX를 갈수 있었고 담배도 필수 있었으며 거기다 TV까지 있어서 행복했다. 게다가 토요일밤에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하... 그곳은 천국이었다. 처음으로 보직훈련을 받으면서 했던일은 면담이었다. 면담을 받으며 면담일지를 슬쩍 본적이 있는데 그곳에는 급이 나누어져 있었다. 뭐 에이급 부터 비급까지 였다. 면담을 나누면서 무슨일을 하게될지 알게됬다. 나쁜... 그때 포기했어야 했다. 교관님은 준위계급을 달고 있으셨다. 상당히 젠틀하셨지만 조금 정신이 이상한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불발탄을 처리하고 대테러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EOD라고 했다. 나는 입대전 하트로커라는 영화를 본적있다. EOD를 다룬영화다. 그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죽으며 영화의 런닝타임 반이 폭발과 폭발로 이루어져있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그만뒀어야 했다. 그만둔다고 해도 그만둘수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면담이 끝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천천히 설명드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걱정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 신나있었다. 상당히 신나서 그런일을 할기회가 주어졌다는것에 미친듯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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