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무산, 꽃
내 손길이 닿기 전에 꽃대가 흔들리고 잎을 피운다
그것이 원통하다
내 입김도 없이 사방으로 이슬을 부르고
향기를 피워 내는구나
그것이 분하다
아무래도 억울한 것은
네 남은 꽃송이 다 피워 내도록
들려줄 노래 하나 내게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 가슴을 치는 것은
너와 나란히 꽃을 피우는 것은 고사하고
내 손길마다 네가 시든다는 것이다
나는 위험한 물건이다
돌이나 치워주고 햇살이나 틔워 주마
사랑하는 이여

김남조, 참회
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 다오
그 사랑 나를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열히 판결해 다오
겨우내 돌 위에서
울음 울 것
세번째 이와 같이 판결해 다오
눈물 먹고 잿빛 이끼
청청히 자라거든
내 피도 젊어져
새 봄에 다시 참회하리라

윤후명,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이제야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는다
이미 잊힌 사람도 있는데
울지는 못한다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모두 떠나고 난 뒤면
등불마저 사위며
내 울음 대신할 것을
이제야 너의 마음에 전했다
너무 늦었다 컴컴한 산 고갯길에서 홀로

최승자, 근황
못 살겠습니다
(실은 이만하면 잘 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한다면, 죽여주십시오
생각해보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내 죄이며 내 업입니다
그 죄와 그 업 때문에 지금 살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살아 있습니다

안종환, 어느 비 오는 날에
기억 속 갇혔던 회한들
빗줄기로 쏟아지고
그리움은
아스팔트에 부딪는
포말처럼 피어난다
새벽부터 함성을 지르며
쉴 새 없이 뛰내리는
너와 나의 젖은 이야기들
절망을 가르며 울부짖던
네 기도 속의 눈물 같아
우산을 쓸까 말까
엉거주춤하는 사이
나는 너의 생각에 흠뻑 젖어
네개로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너는 멎지 않는 가슴앓이
애증의 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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