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에 한 번 착색되면 지우지 못해
기억된 것은 사무칠 뿐
/마음에 두다, 성기완

발 디딜 때마다
내 발바닥이 작은 꽃들이 핀 듯 찬란하였다
/숲의 노래, 고은

오래 흔들렸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오래 서러웠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알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
얼키고 살킨 뿌리를 몰라도
오래 목말랐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오래 흔들렸으므로, 구광본

손바닥만한 나의 정원이
마음같이 흐린 호수되기 일쑤다
/소낙비, 윤동주

빛은
조금이었어
아주
조금이었지
그래도
그게 빛이였거든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中, 임영태

바람은 함부로 제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며
시시각각 몸을 바꿔 딴 데로 달아났다
혹은 누군가 그 이름을 부를 때까지만
그 이름이고자 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 中, 김애란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고통은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난다
/너를 이루는 말들, 김소연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서 짓이겨진 박하 향기가 날 때까지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에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어디에선가 박하 향기가 나면
내가 다녀갔거니 해줘
/박하 中, 허수경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장난감의 세계, 김소연

네가 외워 둔 예문처럼 나를 훔쳐 부르면
나는 어느 깊고 먼 바다에서 가만히 말라 갔다
/심해 사무실, 조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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