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친애하는 사물들 아파서 약 먹고 약 먹어서 아팠던 아버지는주삿바늘 꽂고 소변주머니를 단 채 차가워졌는데따뜻한 피와 살과 영혼으로 지어진 몸은불타 재가 되어 날고 허공으로 스몄는데 아버지의 구두를 신으면 아버지가 된 것 같고집 어귀며 책상이며 손 닿던 곳은 아버지의 손 같고구두며 옷가지며 몸에 지니던 것들은 아버지 같고내 눈물마저도 아버지의 것인 것 같다 우리는 생긴 것도 기질도 입맛도 닮았는데정반대의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본다포옹하는 사람처럼 서로의 뒤편을 바라보고 있다우리는 마주 오는 차량의 운전자처럼무표정하게 서로를 비껴가버린 것이다권순진, 개별 경제학 입맛 당기고 호기심 당기는 점심 특선 웰빙비빔밥정가가 육천 원이라..잠시 망설이다사천 원짜리 그냥 비빔밥으로 낙찰을 본다 문자 받고 가야되나 말아도 되나 머리 굴리다가찾은 고등학교 동창 초상집에미리 준비해간 부의금 삼만 원다른 녀석은 대개 오만 원이고 십만 원도 했다는데잠시 망설이다 돌아서서슬그머니 이만 원을 더 보탠다이천 원의 내핍과 이만 원의 체면스스로 쩨쩨해지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자유아직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아그래서 늘 부자가 부럽기는 부럽다이종수, 달함지 대학교 다닐 때 써클실마다 떡 팔러 올라오던 아주머니아직도 떡 팔고 있다김밥말이 인절미 절편 튀김 담긴 고무대야를 내려놓으며떨이떡이니 팔아달란다아니 할머니가 다되어 등장할 대목이 아닌데누가 쓴 쪽대본일까떡 팔아 빌딩 몇 개는 샀다는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줄 알면서도괜히 믿고 싶어진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오르내렸던 언덕길만 해도 지구 몇 바퀴는 되었을 텐데간간히 오리배 타는 유원지에도 나타나곤 했던신출귀몰한 떡들은 왜 아직도 생계형 떡으로 달라붙어 있을까아직도 밖으로 내모는 떡의 자식들돈 없어 못 사먹던 그때나 있어도 안 먹는 지금이나떡은 마천루를 짓고도 남을 이문 없는 일이거나늘 꼭대기나 벼랑에 부리고 돌아가는저것을 달함지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문창갑, 책들이 나를 읽는다 책도 외로움을 타는가내가 책을 읽어주지 않으니까 요즘은 가끔책들이 나를 읽는다 오늘도 책장의 책들 죄다 나와멀뚱멀뚱 밤빗소리나 듣고 있는 궁상스런온몸에 곰팡이 핀, 나를 읽기 시작한다 낱낱이 읽히고 있다천방지축 개판으로 살아온 내 삶의 기록들 책들이 나를 읽는 밤내 몸, 한없이 차갑다이화은, 나비 저 가벼운 터치를시라고 말해도 되나 저 단순한 반복을시라고 말해도 되나 저 현란한 수사를시라고 말해도 되나 허공을 즈려밟는 위험한 스텝을 꽃에 얽힌 지루한 염문을 한 번쯤하루쯤한 생(生)쯤은 몸을 바꾸고 싶은 저 미친 외출을 시라고, 시인이라고 말해도 되나